거짓말 (2부 20편)
점심시간이 지나고 5교시가 끝났을 때, 재중은 교무실로 가 담임에게 조퇴에 관한 얘기를 했다.
사실 몸이 아픈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아침부터 부자
연스럽게 걷고 있는 모습을 보아왔던 담임은 썩 내키지 않는 얼굴로 조퇴증을 끊어주었다.
“ 아프다며? ”
또 어떻게 알았는지 냉큼 쫓아와 가방을 챙기고 있는 재중의 옆에 서서 묻는 건우를 한 번 노려본 재중은
묵묵히 계속 가방을 쌌다.
“ 바래다줄게. ”
“ 됐어. ”
“ 왜, 아프니까 편하게 모시겠다는데. ”
“ 집에 가는 거 아냐. ”
“ 헤에, 그럼 또 데이트? ”
“ …… ”
건우는 피식 웃더니 다시 말했다.
“ 그래, 그럼 거기까지 바래다줄게. ”
“ 뭐? ”
재중은 기가 막혔다. 건우는 재중의 어이없는 표정을 보며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어 보였다.
“ 세컨드를 노리고 있는 저로서는 어쩔 수 없지요. 퍼스트에게 가겠다는 와이프를 눈물로서 보내줄 수밖에. ”
“ 너…… ”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마, 하고 이를 갈며 말하려는 재중에게 건우가 말했다.
“ 둔하구나 너, 정말로. 그 동안만이라도 너와 있고 싶다는 의미야. ”
웃고 있는 얼굴과는 다르게 진지한 눈을 보고 재중은 더 이상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입을 다물고 있는 재중을 보고 건우가 다시 말했다.
“ 그럼, 1층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
휘파람을 불며 건우가 나가고, 재중은 망설이다가 결국 가방을 챙겨 1층 현관으로 갔다.
어느 새 나와 있던 건우가 재중을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든다.
재중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 미안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어. 오늘은 나 혼자 가고 싶어. ”
건우는 한동안 재중을 내려다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 할 수 없지. 그럼 교문까지만 바래다줄게. 그건 괜찮지? ”
그것까지 거절하기는 어려워 재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건우는 휘파람을 불며 옆에서 걷고 재중은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발걸음을 옮겨 운동장을 빠
져 나왔다. 6교시 시작종이 울린 지도 꽤 되어서 체육을 하는 반을 빼고 이렇게 나와있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 기분이 참 이상하지? 수업시간에 이렇게 나와 있으니. ”
건우의 말에 재중이 고개를 돌렸다.
“ 정해진 규격에서 빠져 나올 때 가장 큰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아. 안 그래? ”
“ 너는 언제나 그래? ”
재중이 되묻자 건우가 웃었다.
“ 대개는 그렇지. 넌 안 그래? ”
“ 잘 모르겠어. ”
솔직하게 대답하는 재중을 보고 건우는 말했다.
“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
어느새 교문에 도착했다. 재중은 조퇴증을 수위실에 내밀고 건우를 향해 돌아섰다.
“ 그럼, 갈게. ”
“ 그래. 몸조심해라. ”
흔한 인사에 문득 재중은 얼굴을 찌푸렸다. 뭘까. 뭔가 이상한 기분이……
“ 왜 그래? ”
건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재중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 아니야, 아무 것도. 잘 들어가. ”
그리고 재중은 돌아서서 교문을 나왔다. 우선은 윤호의 회사에 전화를 해야겠다.
아침에 생각했던 계획을 실천하는 것만으로 다시 기분이 좋아져 콧
노래를 흥얼거리던 재중은 학교 앞 진입로에 모습을 드러낸 낯익은 승용차를 보고 순간 얼굴이 굳어버렸다.
차의 주인도 재중을 알아보고 속도를 줄
이더니 바로 옆에 와 섰다. 창문이 내려가고 전혀 반갑지 않은 얼굴이 재중에게 말을 걸었다.
“ 마중을 나오길 잘 했군. 타. ”
재중은 그 날이 창민에게 가는 날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기분이 엉망으로 추락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조수석에 타고 나
자, 창민이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학교에 오지 말라고 했는데, 하고 속으로 투덜거렸던 재중은
조금 더 서둘렀더라면 그를 만나지 않고 오늘은 건
너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새삼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다. 어차피 마중 온 거니까 빨리 끝내고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차가 창민의 아파트에 도
착할 때까지 재중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 밖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