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2부 19편)
“ 우웅…… ”
기지개섞인 신음소리를 내며 천천히 눈을 떴던 재중은 방안 가득히 넘쳐 들어오는 햇살과
그 안에 혼자 남겨져 있는 자신을 깨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아침이구나. 시계를 보니 7시가 넘어있었다. 날이 더워진 지도 꽤 되어서 해는 벌써 저만치 올라가 있다.
지난 밤은 정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로 격렬했다. 윤호가 자신을 그렇게 안아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재중은 기억이 되살아나자 금새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침
대에서 처음 그렇게 자극적인 관계를 가진 후로 윤호는 씻어주겠다는 명목으로 재중을 안고 샤워룸으로 향했지만
샤워기 밑에서 또 그에게 안기고
말았다.
“ 학교에 가야할 학생을 너무 무리시켰군. ”
침대로 돌아와 웃으며 말한 그에게 재중은 나른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 학교에서 배우지 못할 것을 배우고 있잖아요. ”
“ 그런가. ”
나름대로 재치 있는 대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윤호의 표정은 어딘지 우울해 보였다. 어라, 뭔가 잘못한 건가,
하고 다시 불안해진 재중에게 윤호가 다
시 키스를 했다.
“ 그러면 레슨을 좀 더 해보지. ”
그리고 이번에는 좀 더 은근하고 끈기있게 관계를 가졌다.
자꾸 애를 태우는 그의 행위에 몇 번이나 울고 떨었는지 모른다.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안겼다. 그리고 완전히 녹초가 되어 새벽에야 겨우 그에게 안겨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이렇다.
이런 날 아침에는 윤호가 있어주면 얼마나 좋을
까, 하고 재중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 아야야야…… ”
삐걱거리는 몸을 겨우 일으켜 앉은 재중은 테이블 위에 뭔가 쪽지가 남겨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란 눈을 했다.
다리를 끌며 겨우겨우 가서 펼쳐보니 재
윤이 남긴 것이다.
안 나가고 싶지만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너 또한 학교에 가야할 테니 저녁에 보도록 하지.
재중은 몇 번씩 쪽지를 되짚어 읽어보고는 살짝 냄새를 맡았다.
윤호가 즐겨 쓰는 애프터 세이브 로션의 향내가 희미하게 섞여 있다. 쪽지를 조심스
레 펴서 소중하게 다이어리 사이에 끼워둔 재중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윽고 결심을 했다.
시간이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학교에 가긴 해야겠다. 쉬고
싶긴 하지만 어제와 같은 행운이 또 찾아와 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만약에 그가 찾아와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의 회사로 찾아가는 것 정도는 괜찮을
거야. 일찌감치 조퇴를 하고 “ 학교가 일찍 끝나서 들렀어요 ” 라고 얘기하면 그도 그렇게 믿겠지.
나름대로 꽤 괜찮은 계획이라고 생각한 재중은 고개를 끄덕이고 여전히 다리를 끌며 샤워룸으로 가
학교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 얼굴이 좋아 보이네― ”
하필 학교에 오자마자 보는 얼굴이 이 얼굴이라니.
재중은 자신을 향해 방글방글 웃고 있는 건우를 보고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 어제 이 불쌍한 친구를 버려두고 가더니 사장 아저씨가 끝내줬던 모양이지. ”
“ ……너……"
재중은 화를 내려고 했지만 비꼬는 표정도 아닌 순수하게 웃는 얼굴의 그에게 차마 야박한 말은 할 수 없어
그냥 입을 다물었다.
“ 너 웃는 얼굴도 지을 줄 아는 구나. 사실 어제 정말 놀랬어. ”
“ …… ”
“ 오늘은 어때? 오늘도 사장 아저씨랑 약속 있어? 언제 시간 나? ”
“ 이 건우. ”
결국 참다 못한 재중이 이를 갈며 말했다.
“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너하고 보낼 시간은 없어. 알았으면 그만 너희 반으로나 가. ”
아침 자율학습시간에 떡하니 남의 반에 와서 하는 소리라고는. 재중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건우가 머리를 긁적인다.
“ 정말로 섭섭하네. ”
“ …… ”
다시 참고서에 시선을 박아버린 재중을 보고 건우가 웃었다.
“ 그럼 이따가 점심시간에 올게. ”
차마 점심까지 오지 말라고는 할 수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는데 건우가 돌아서며 말했다.
“ 그래도 웃는 얼굴 보니까 훨씬 낫더구나. ”
그의 음성에 묻어있는 다정함에 재중은 자신도 모르게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건우가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너무도 따뜻해서 재중은 하마터면 마주 웃어버릴 뻔했다.
황급히 입을 다물고 나자 건우가 손을 흔들더니 휘파람을 불며 반에서 나갔다.
재중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산란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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