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짓말-52화 (52/123)

거짓말 (2부 18편)

차안에서 시종 재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칫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자신의 두근거리는 심장이

입밖으로 튀어나와버리는 게 아닐까

하고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상상이 치달아갈 정도로

심장은 무리하게 뛰고 있었다. 벌써 이렇게 두근거리면

정말 나중엔 어떻게 하지. 지나치게 앞서가는 건지도 모르지만 만약에 그가 안아줄 때

심장이 너무 무리해서 딱 멎어버린다던가 아니면 기절해버린

다던가 하면……

안되겠다. 가는 길에 청심환이라도 사가자고 해야지.

굳은 결심을 했던 재중이었지만 막상 호텔로 돌아와서는 역시 지나치게 뛰는 심장을 부여잡는 것만으로도

급해서 그것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뒤늦

게 앗, 청심환! 하고 번쩍 생각을 떠올렸을 때는 이미 방에 들어온 후여서,

남은 길은 그저 심장이 멈추더라도 제발 내일 아침에 멈춰주길 바라는 수밖

에 없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바짝 차려서 기절하는 일은 없게 해야할 텐데.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재중은 자신의 맥박소리가 1분에 300회는 뛸 것 같았다. 주춤주춤 침대가로 가 섰는데 윤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척척 걸어가 옷장을 열고 슈트

를 벗어 걸기 시작한다. 멍하니 윤호가 넥타이를 푸는 것을 보고 있던 재중은 뒤늦게 화들짝 놀랐다.

응? 혼자 벗는 거야?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러고 보니 안아준다는 얘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재중은 기대했던 것만큼 실망해버려서

얼굴이 금새 회색으로 변해버렸다. 오늘의 행운은 이것

으로 끝인가 보다. 그래도 지난 며칠에 비하면 정말 꿈같은 하루였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축 처진 발걸음으로 샤워나 해야겠다, 하고 샤워룸으로 향

하는데 윤호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 아직 와인을 안 마셨잖아. ”

와이셔츠의 단추를 두어 개 푼 채 와인병을 들고 있는 윤호를 보고 재중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건 또 언제 챙겨왔지.

윤호가 와인을 무척 즐긴다는 것

을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참 내키지 않았다.

실망, 실망, 실망으로 트리플 복권이 트리플 실의의 바다로 바껴 헤매고 있는데 와인이라

니.

하지만 윤호의 말을 거절할 용기도 패기도 없는 재중으로서는 시키는 대로 발길을 돌려 그에게로 갈 수밖에 없었다.

윤호가 글래스를 꺼내 와인을 따

랐다. 재중은 글래스가 하나인 것에 얼굴을 찌푸렸다. 먹는 거 구경하라는 거야 뭐야. 갈수록 기분이 나빠졌다.

에이, 그냥 아까 키스했을 때 기절해버

릴 걸 그랬다. 그러면 이렇게 실망할 일도 없었을 텐데. 입을 잔뜩 내밀고 있는 재중에게 윤호가 글래스를 내밀었다.

“ ……에…… 안 드세요? ”

나만 먹는 건가? 하고 어떨결에 글래스를 받아들고 묻자 윤호가 대답했다.

“ 마실 거야. ”

눈에 가득히 뭔가 즐거운 듯 보이는 빛을 띄고 있는 그의 생각을 알 수가 없어 재중은 고개를 기우뚱하며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차갑고 부드러운 것

이 입안으로 들어온다. 향기가 좋다.

“ 달콤해요. ”

혀끝으로 살짝 단 맛이 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 재중을 보고 윤호가 웃었다.

재중이 다시 한 모금 입에 넣었을 때, 갑자기 윤호가 재중을 끌어당겼다.

“ …… ”

놀랄 새도 없이 덮쳐온 그의 키스에 재중은 다시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혀가 질러 들어오더니 아직 입안에 남아있는 와인을 휘감아갔다. 혀 밑에 숨어

있던 와인까지 가져가 버리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돌아와 입안 곳곳을 휘

저어 놓았다. 남아있는 와인을 모두 빼앗아 가려는 듯.

마침내 윤호가 키스를 끝내고 고개를 들었을 때 재중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윤호가 다시 웃었다.

“ 달콤하군. ”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재중은 기대했던 밤이 다시 오는 건가, 하고 가라앉았던 심장이 조금씩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소리 없는 물음에 답하듯 윤호가 다시 키스를 한다. 재중은 팔을 들어 그의 목을 끌어안고 반갑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긴 키스가 끝나고 윤호가 재중을 안아 침대에 눕혔다.

등뒤로 닿는 차가운 매트리스의 감각이 오늘따라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윤호가 재중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벌어진 셔츠 사이로 보이는

피부에 부드러운 입술이 닿는다. 재중은 자신의 거칠어진 숨소리를 행여나 그가 눈치챌까봐 서둘러 손으로 입을 막았다.

몇 번 부드럽게 입술을 스치던 윤호가 갑자기 일어섰다. 엇, 내가 뭐 잘못했나?

아니면 너무 밝힌다고 짜증이라도 난 건가? 재중은 불안해져서 팔꿈치로 몸을 기대 엉거주춤 일

어났다. 윤호가 말했다.

“ 누워 있어. ”

윤호는 테이블로 가더니 와인을 들고 다시 왔다.

“ 와인은 산화가 되면 맛이 없지. ”

“ ……에…… ”

“ 식사 후에 와인을 마시지 않으면 식사가 끝났다고 할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

그리고 윤호는 재중의 입에 가볍게 키스를 하더니 와인을 천천히 떨어뜨렸다.

차가운 와인이 맨살에 와 부딪히더니 급히 굴러 떨어진다. 한기와 기대

감으로 몸에 소름이 돋았다. 처음 심장이 있는 부위에 부어졌던 와인은 배를 거쳐 더 밑으로 향해갔다.

아직 벗지 못하고 있던 바지가 온통 와인으로

젖어버렸다. 온 방안에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와인의 향이 온통 가득 차 버린 듯 했다.

재중은 머릿속이 와인의 향으로 채워져 완전히 취해버린 것 같

았다. 다시 이어진 윤호의 키스가 이번에는 와인이 부어졌던 방향을 쫓아간다.

처음 두근거리는 심장에 내려앉았던 입술이 살짝 벌어지더니 부드러

운 혀가 살갗에 닿았다. 기대감으로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던 재중은 윤호가

그의 유두를 살짝 깨물자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켜버렸

다. 윤호가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애태우는 키스는 재중의 몸을 적시고 있는 와인을 쫓아 계속해서 이어지더니

배로 옮겨졌다. 배꼽을 핥는 간지러

운 느낌에 재중은 뱃속이 싸아하게 떨려왔다.

지익.

흠뻑 젖은 바지지퍼가 내려간다. 역시 온통 와인으로 젖어있는 속옷으로 윤호가 입을 가져갔다.

“ 응…… ”

재중은 이를 악물고 참으려 했지만 흘러나오는 신음을 누를 수가 없었다.

입술로 부드럽게 빨아들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이빨로 살짝 깨물기도 한다.

온 몸이 오싹오싹해진다. 자신도 모르게 그의 머리를 끌어당길 것 같아 재중은 급히 시트를 움켜쥐었다.

뇌속이 저릿해지는 것 같은 쾌감에 금새 시

트를 붙잡은 손에 힘이 주어져 관절이 두드러졌다.

“ 그만…… 해요…… 해버릴 것 같아…… ”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 말한 재중에게 윤호가 말했다.

“ 그럼 해. ”

에에?

재중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하라고? 지금? 물음에 답하기라도 하듯 거칠게 빨아들이는 감각에

재중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이미

잔뜩 흥분해버려 당장이라도 털어내 버리고 싶은데 가까스로 참고 있는 지금, 저렇게 자극을 하면……

“ 시, 싫어요. 싫어 싫어…… ”

당신의 입안에 그런 더러운 걸 뱉어내다니, 싫어! 하고 격렬하게 고개를 젓는 재중을 보고 윤호가 말했다.

“ 괜찮다니까. ”

“ 싫어!! ”

재중은 격하게 소리치고 그야말로 윤호를 떼어낼 기세로 벌떡 일어났다. 윤호가 포기한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 고집이 세군. ”

결국 윤호는 고개를 들고 재중의 바지와 속옷을 함께 벗겨 내렸다.

재중은 그 때까지 시트를 잡고 있던 손으로 서둘러 그것을 감췄다. 얼굴이 새빨갛

게 달아오른다. 이렇게까지 흥분해 버린 거 보이고 싶지 않아. 윤호가 그런 재중을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 이제 와서 새삼 부끄러워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

그, 그야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깨달은 이후로 이렇게 흥분해보기는 처음인 걸!

재중은 속으로 대꾸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윤호가 재중의 귀를 가볍게 깨물더니 속삭였다.

“ 나는 너보다 더 흥분해 있으니까 그렇게 감출 필요 없어.  ”

그리고 윤호는 재중의 것을 가리고 있는 손을 들어 자신에게로 가져갔다.

바지 위로 융기해있는 그것을 느끼자 심장이 몇 백배는 빨리 뛰기 시작한

다. 재중은 어서 그를 받아들이고 싶어 허리가 욱씬하게 떨려왔다.

“ 빨리…… 아아…… ”

잔뜩 열에 들뜬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그에게 애원했다.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아. 어서, 어서……

“ 성격이 급하군. ”

윤호가 웃었다. 하지만 그도 더 이상 참을 생각은 없는 듯 가볍게 재중의 입에 키스를 한 후에 지퍼를 내렸다.

“ 응, 으응…… ”

처음 삽입의 통증으로 재중은 이를 악물고 겨우 신음을 견뎌내었다.

깊숙이 들어차는 익숙한 통증이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나자 달콤한 쾌감으로 변

한다. 더 깊이 나를 채워 줘. 더 가득히 나를 소유해. 더 강하게 나를……

“ 아아…… 앗…… ”

숨이 막힐 듯 격렬하게 흩어지는 호흡 사이로 비음이 섞여 나왔다.

재중은 갈증에 허덕이듯 윤호를 끌어당겨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몸 안에 가

득한 그의 일부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다.

몇 번씩 강하게 내부를 드나드는 그의 행위는 이제 절정을 향해가고 있었다.

“ 아, 아아…… 아! "

재중은 비명처럼 신음을 헐떡이며 그대로 사정해버리고 말았다.

머릿속에 전류가 통과해간 것처럼 강렬하게 섬광이 일어났다. 저릿하게 온 몸이 떨

려온다. 그리고 간발의 차로 뱃속에 차 들어오는 뜨거운 감각에 재중은 자신도 모르게 윤호를 꼭 끌어안았다.

윤호가 재중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입술

에 부드러운 키스를 했다.

“ 잘 먹었어. ”

역시 거칠어진 숨결사이로 농담처럼 한 그의 말에 재중의 얼굴이 다시 뜨거워진다.

그리고 그는 땀에 젖은 재중의 앞머리를 쓸어 올려주더니 이마에

키스를 했다.

“ 씻어야겠군. ”

너무 피곤해서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움직이기 싫었다.

귀찮은 기색을 역력히 내보이며 얼굴을 찌푸린 재중에게 윤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도와주지. ”

“ ……에…… ”

무슨 말인지 눈치를 채기도 전에 윤호가 재중을 안아들었다.

그대로 욕실로 향하며 재중은 너무나 행복해서 다음 날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내심 들뜬

마음으로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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