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2부 15편)
종소리가 들린다. 재중은 종례가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건우가 모습을 나타내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려는 속셈이다. 하지만 재중의
소박한 계산은 교실문 앞에서 좌절되었다.
“ 야아, 마중 나와준 거야? ”
비위좋게 웃고 있는 건우의 얼굴을 후려치고 싶은 것을 겨우 참으며 재중은 그의 곁을 스쳐 걸어가기 시작했다.
“ 같이 가― ”
건우가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는 손쉽게 재중을 따라잡아 보조를 맞추어 걸으며 말했다.
“ 오늘도 곧장 갈 거야? ”
“ 그래. ”
대답하지 않으면 더 시끄럽게 군다는 것을 이미 점심시간에 충분히 알았으므로 재중은 짧게 대답했다.
건우는 웃으며 다시 말했다.
“ 별다른 계획 없으면 나랑 놀지 않을래? ”
“ 안 놀아. ”
현관을 나와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말한 재중에게 건우는 끈질기게 권했다.
“ 그러지 말고. 내가 정말 오늘 하루 책임질게. ”
“ 다른 녀석 알아봐. ”
“ 난 너랑 놀고 싶다니까. ”
“ …… ”
재중을 쫓아 교문 앞까지 와버린 건우는 갑자기 재중이 입을 다물고 걸음을 멈춰버려 역시 놀란 얼굴로 멈춰 섰다.
재중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고급 승용차가 서 있었다. 거기에 기대어 선 채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남자는
척 보기에도 꽤 고급스러운 상류층의 성인
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근사한 사내였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표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고급 슈트가 맵시있게 어울리는 체격에 마치 모델처럼 잘 빠진 생김이며 큰 키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잠시 탐색하는 눈으로 그를 보았던 건우는 무심결에 재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더욱 놀란 얼굴이 되고 말았다.
재중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몇 번이나 눈을 깜박이며 그렇게 서있었다.
점차 그의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일더니 화색을 띤다. 시종 찌푸린
얼굴이나 우는 얼굴만 보아왔던 건우는 재중의 얼굴에 번지는 기쁨의 빛에 할 말을 잃고 그렇게 서 있었다.
갑자기 재중이 냅다 달리기 시작하더니
곧장 그의 품안으로 뛰어들었다.
“ 어떻게 왔어요? 무슨 일로? 저, 혹시…… ”
단숨에 뱉어내던 재중의 음성이 잦아든다. 윤호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마주 안아주려던 손으로 그를 밀쳐냈다.
“ 지나던 길이야. ”
거짓말, 하고 마음 한 구석에서 또 다른 음성이 들려왔지만 윤호는 무시했다.
“ 친구인가? ”
그 때까지 교문에 서있던 건우를 가리키며 한 윤호의 말에 재중은 얼굴을 찡그렸다.
“ 친구라니…… ”
“ 안녕하세요. ”
어느새 놀란 표정을 지우고 넉살좋게 다가와 인사를 하는 건우를 보고
재중은 윤호가 눈치채지 못하게 잔뜩 눈에 힘을 줘 위협의 표시를 해보였다.
하지만 건우는 짐짓 모른 척 하고 느물거리며 윤호에게 잘도 말을 건다.
“ 재중이 형이신가봐요. 전혀 안 닮으셨네요 하하. ”
손을 내밀며 말하는 그에게 윤호는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마지못한 듯 손을 맞잡았다.
“ 둘이 어디 갈 계획이었나? ”
“ 예. ”
“ 아뇨! ”
건우와 재중이 동시에 대답을 했다. 윤호가 미간을 찌푸리고 둘을 번갈아 본다.
재중이 건우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다시 말했다.
“ 아무 일도 없어요! 전 돌아가려던 참이었으니까! ”
재중의 기세는 ‘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면 정말 죽여버릴 거야 ’
하고 말하는 듯 했기 때문에 건우는 한 발 물러났다.
“ 다음에 가죠. ”
“ 그래. ”
윤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더니 큰 보폭으로 걸어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 타지. ”
재중은 아주 짧은 순간 다시 한 번 건우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 후 재빨리 조수석으로 달려갔다.
탕, 하고 문이 닫히고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온 윤호
은 건우를 무시하고 자리에 앉는 듯 했지만 건우는 그가 역시 아주 짧은 순간 건우를 노려보았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차가 출발하자 백미러를 통
해 손을 흔드는 그를 보고 윤호는 생각했다.
사랑하는 게 아니니까.
사랑하는 게 결코 아니니까, 너를 놓아줘야 할 이유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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