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짓말-44화 (44/123)

거짓말 (2부 10편)

“ 헉, 헉. ”

숨을 몰아쉬며 학교 내 전화부스 앞에 선 재중은 차마 들어가지를 못하고 망설였다. 어떻게 하지.

전화, 걸어도 괜찮을까. 그런 일 있었는데 나 침착하

게 그와 통화할 수 있을까.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면 좋지.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어져서 걸었다고…… 오늘은 나를 안아줄 거냐고…

…?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재중은 한참동안 망설이다가 겨우 수화기를 들었다. 그냥 끊어버리자.

그의 목소리만 한 번 듣고 끊어버리자. 그것만으로

도 괜찮을 거야.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누른다. 귓가에 울려오는 날카로운 신호음이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심장은 더 빠르게 뛰었다.

달칵, 하고 전화가 연결되었다.

“ 네, 정윤호입니다. ”

기다리고 있던 서늘한 음성이 이어진다. 그 순간 재중은 심장이 멎어버리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어야 하는데 도저히 끊을 수가 없다. 몸을 움직일 수

가 없었던 탓이다. 어떻게 하지, 나는 생각보다 당신의 음성이 더 많이 듣고 싶었나 봐.

재중은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붙잡고 그렇게 서있기만 했다.

윤호는 가는 숨소리만 전해져오는 전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장난전화로 생각하고 끊어버릴까.

윤호 쪽에서 먼저 끊어준다면 차라리 나을지도.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심장을 두근거리고 있는데 잠시 후 윤호의 가라앉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 ……너인가. 지금 수업시간 아니야? ”

다시 심장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재중은 대답을 해야했지만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뻑뻑한 성대를 겨우 움직여 한참만에 대답을 했다.

“ 에, 에예…… 자율학습이어서……. ”

“ 그래, 무슨 일이지? ”

무심하게 계속되는 그의 말에 재중은 여전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재중의 침묵을 오해한 윤호가 말했다.

“ 돈이라도 모자란가? 그러면 네 가방에 카드를 만들어 넣어놨으니까 그거 써. 비밀번호는…… ”

몰랐었다. 언제 또 그런 걸 만들어줬지?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할 말을 잃고 있는 재중에게 윤호가 말했다.

“ 그럼 이제 용건은 없는 건가? 바쁘니 그만 끊지. ”

“ 네에…… ”

재중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윤호가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무정하게 울리는 통화불통의 신호음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당신이

보고 싶어요,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하고 한 마디만 할 것을 그가 오해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이도 어린 주제

에 돈만 밝히는 남창.

눈물이 나왔다. 어째서 당신과 나는 이렇게 어긋난 대화를 해야만 할까. 말하고 싶은데.

당신을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하지만 그런 말

을 하면 당신은 얼굴을 찌푸리겠지. 나를 버릴 거야. 당신 곁에 있지 못해. 난 남창이니까.

당신이 필요할 때 몸을 내주는 남창일 뿐이니까. ……왜 나

는 당신을 사랑해버린 걸까.

“ 사랑해요…… ”

끊겨진 전화에 대고 속삭인 재중은 결국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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