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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41화 (41/123)

거짓말 (2부 7편)

“ 어디가 안 좋아? ”

재중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민철이 자신을 향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머리가 둔하긴 한데, 하고 생각하면서 벌써 2교시

가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호실에 누워라도 있을까.

어차피 수업이라는 거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고 피곤하기만 한데.

재중은 아직 옆에 서있는 민철에게 말했다.

“ 혹시 빈 교실 있을까? 실험실이라도. ”

“ 많이 안 좋아? ”

“ 좀. ”

양호실은 그럴 듯한 핑계를 대도 쫓겨나기 일쑤였기 때문에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재중의 생각을 눈치챈 듯 민철이 말했다.

“ 지금 시간이라면 과학실 비어있을 거야. 양호실 들러서 약 얻어 가지 그래? ”

민철은 여전히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저것 온통 피곤하기만 하다.

날이 선 신경이 닳아빠져 쇳소리를 내는 것 같다. 3교시

종소리가 울려왔지만 재중은 아랑곳하지 않고 교실을 나와 양호실로 향했다.

“ 헤이, 저게 누구야? ”

입에 물었던 담배를 떼어내며 영철이 말했다. 시선을 돌렸던 건우는 마침 현관을 나와 한적한 건물 뒤를 걸어가는 그를

볼 수 있었다.

“ 어딜 가는 거지? ”

역시 또다른 누군가가 말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꽤 거리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단번에 시야에 들어오는 뭔가가 있었다. 얇게 흔들리는 머리카락

부터 가는 몸 전체가 꽤 자극적이다. 건우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교복을 반듯하게 입고 있는 데다 걸음부터가 단정해서 품행방정한 모범

생, 이라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게 느껴지는 그가 수업시간에 저렇게 나와있으니 뭔가 상당히 이상했다.

그 때 뒤쪽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

다.

“ 마침 잘 됐네. 이것저것 잴 거 뭐 있어? 벼르고 있었잖아. ”

건우는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암묵적인 눈빛을 교환하는 사내들이 뒤에 있었다.

건우는 여럿이서 몰려들어 하나를 상대로 폭력을 행사

하는 것을 전부터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말리기엔 동기가 충분하지 못하다.

게다가 자신 또한 그에게만은 충분히 흥미가 있는

것이다. 말릴 이유가 없다. 건우는 피우던 담배를 발치에 던져 짓밟아 껐다.

그러는 사이 놈들은 벌써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 어이. ”

부르는 소리에 재중은 고개를 돌렸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다가오는 그들은 보기에도 퍽이나 불량해 보였다.

재중은 어렴풋이 그들이 학교를 주름잡는 파라는 것을 눈치챘다.

“ 얘기 좀 하지? ”

웃고 있는 그들을 향해 재중은 침착하게 말했다.

“ 지갑은 교실에 두고 왔어. 점심시간이나 수업이 끝나고 난 후라면 줄 수 있지만.

알다시피 지금은 수업시간이라서 들어갔다 나올 수는 없어. ”

마침 다가왔던 건우는 그의 논리적인 말에 새삼 감탄했다. 얼굴만 예쁜 줄 알았더니 머리도 그럭저럭 돌아가는 모양인데.

꽤 이성적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그가 자신이 당할 상황에 대해 전혀 짐작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아마……

“ 소문대로 도련님인 모양이지. 안됐지만 우린 지금 충분히 배부른 상황이라 다른 게 필요한데. ”

재중이 얼굴을 찌푸렸다. 건우는 그의 표정을 보고 그가 사내들의 속셈에 대해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재중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정반대였다.

“ 그래서, 실컷 먹었으니 이제 남은 욕구는 하반신 뿐이라는 건가. ”

생각했던 것처럼 도련님은 아닌 모양이었다. 건우는 새삼 그에 대해 놀라워하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는 피곤한 얼굴로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말했다.

“ 보니까 그냥 넘어가주진 않을 것 같으니 서로 편한 방법으로 끝내는 편이 좋겠지.

과학실이 비었다니까 거기로 가자. ”

건우를 비롯한 모두는 예상치 못했던 전개에 놀라 먼저 돌아서서 걸어가는 재중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봐, 이건 내가 기대했던 반응이 아닌데…….

패거리들은 수군거리며 서둘러 재중의 뒤를 따랐다. 역시 그 뒤를 쫓아가며 건우는 재중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어 시종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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