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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38화 (38/123)

거짓말 (2부 4편)

창민과 관계를 가진 것은 봄방학이 시작할 때. 2주 남짓한 시간이 지났지만 재중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창민은 처음과 많이 달라져서 이제는 노골

적으로 체인지 파트너의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지만 재중은 듣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요청한 것도 벌써 꽤 된다. 하지만 재중

은 언제나 정해진 시간만을 그와 함께 있을 뿐 1분도 더 지체하지 않았다.

창민은 그것이 또 불만인 것 같았지만 강요할 권리는 없었다. 그 날도 창민

은 재중을 데리고 교외의 한식집으로 향했다.

“ 어서 오세요, 김 사장님. 오랜만에 뵙네요. ”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가 나와 창민과 재중을 반겼다. 몇 마디 예의바른 인사가 오고간 후 방으로 안내되었다.

메뉴판을 보여주며 창민이 묻는

다.

“ 뭐가 좋겠어? ”

정식 세트는 몇 종류가 있었지만 재중에게는 무엇이든 결국 같게 느껴졌다.

시큰둥하게 말도 안 하고 앉아있자 창민은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

해 어떻게든 애를 썼다.

“ 여긴 정식 2가 잘 나오더라고. 이걸로 하자. ”

“ …… ”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재중의 말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창민은 기다리고 있던 여자에게 주문을 하고

몇 가지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재중은

꼿꼿하게 앉아서 흘끔 시계를 본다. 개학식이었기 때문에 수업이 없어 일찍 끝났다.

교외까지 나오긴 했지만 아직 2시도 안 된 시간이다. 창민과의 시

간은 5시로 한정되어 있다. 그나마 오늘은 교외로 나왔으니 돌아가는 시간을 더해야 한다.

30분 정도 잡으면 될까. 그럼 아직도 두 시간 반이 더 남았

구나. 재중은 불쾌한 기분을 역력히 드러내며 묵묵히 앉아 있었다.

창민이 이런 저런 시덥잖은 농담을 지껄여댔지만 재중은 여전히 굳은 얼굴이었다.

이윽고 창민이 한숨을 푹 내쉰다.

“ 이봐, 사람이 이 정도 노력하면 좀 웃는 척이라도 해보라고. 너무하잖아. ”

“ 마음에 없는 행동을 강요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억지로 웃는 것까지 시킬 수는 없을 텐데요. ”

오늘 만나서 한 말 중 가장 긴 말이었지만 또한 가장 창민의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기도 했다.

“ 내가 그렇게 싫어? ”

창민의 직접적인 말에 재중이 그제야 웃는다. 하지만 그것은 경멸에 가득차 있는 것으로,

또한 창민이 바랬던 것은 아니었다.

“ 차라리 당신이 내게 섹스만을 강요할 때가 더 나았어요. 이제는 징그러워서 소름까지 끼치는군요. ”

경직된 공기가 그대로 얼어붙는 것 같았다. 창민의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차갑게 일그러졌다.

“ 그래?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

창민은 이를 갈 듯 뇌까리고 벌떡 일어나 재중을 밀어뜨렸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린 재중의 위에서 창민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 너를 남창으로 대우해주길 바란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어. ”

거친 손짓으로 바지가 벗겨진다. 브리프 째 벗긴 바지를 무릎 밑까지 끌어내리고 창민은 재중의 몸을 뒤집어

등을 보이게 했다. 지익, 지퍼가 내려가

는 소리가 들린다. 재중은 마찰을 적게 하기 위해 몸의 힘을 뺐다.

전희나 부드러움이라고는 전혀 없이 밀고 들어오는 딱딱한 물건에 자연스레 몸이

굳어진다. 몇 번이나 드나들면서 거칠게 안을 손상시키는 바람에 통증이 배가 되었다.

하지만 재중은 이를 악물고 참으며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때마침 노크와 함께 문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들어오려다가 놀라 서둘러 나가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그들 중 누구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질척하

게 드나드는 소음이 저질스럽다.

“ 빌어먹을. ”

창민이 등뒤에서 신음과 같은 욕설을 뱉어내더니 이내 재중의 몸안에 사정을 했다.

뱃속으로 끓어오르는 뜨거운 것을 느끼며 재중은 언뜻 시계를 보

았다. 아아, 30분도 지나지 않았다. 창민은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재중의 허리를 붙잡아 난폭하게 자신을 잡아뺐다.

심하게 흔들리는 바람에 몸이 움

칠거린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무는 창민을 무시하고 재중은 느릿하게 일어나 냅킨을 집었다.

다리 사이를 닦아내던 그는 평소의 감각이 아니라 다른

것이 섞여 있는 것을 깨닫고 불쾌한 마음과 함께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닦아낸 것을 바라보았다.

하얀 체액과 함께 붉은 피가 섞여 있다.

“ 다음부터는 조심해 주세요. 찢어져 버렸잖아. ”

더할 나위 없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한 재중은 행여나 바지에 묻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출혈이 심한지 어떤지를 살펴보았다. 몇 번 닦아내고 나니 그다

지 심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그대로 두면 멈출 때까지 바지에 묻을 정도는 될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남은 냅킨을 모두 집어 속옷에 살짝 대

어뒀다. 그제야 허리를 펴고 조심스레 자리에 앉자 그 때까지 묵묵히 담배만 피우고 있던 창민이 벨을 눌렀다.

잠시 후 노크소리가 들리고 조심스레

여자가 고개를 내민다.

“ 끝났으니까 식사 가져와요. ”

더할 나위 없이 불쾌한 음성으로 지껄인 창민에게 그녀는 허둥지둥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그 때까지도 재중은 시계만 볼 뿐이었다.

“ 그만 좀 해. ”

창민이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 어서 돌아가고 싶다는 얼굴로 시계보는 것 좀, 그만 하란 말이야. 어차피 시간 되면 늦지 않게 알아서 보내 줘.

그러니까 그것만이라도 좀 그만둘 수

없어? ”

재중이 경멸에 찬 얼굴로 웃었다.

“ 당신은 언제나 내게 거짓말을 하라고 강요하는군요. ”

불쾌한 얼굴로 입을 다문 창민에게 재중이 내뱉었다.

“ 사양하겠어요. 하루 종일 신경 곤두세워서 거짓말해야 하는 상대는 한 명으로 족하니까. ”

이어서 식사가 날라져오고, 둘은 그 이후로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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