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짓말-36화 (36/123)

거짓말 - (2부 2편)

“ 그 새끼 4반이더라. ”

건우는 번들거리는 얼굴로 말한 영철을 한 번 힐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여줬다.

전혀 관심도 없는 얘기는 잘도 입에 담는다. 저렇게 쓸모 없이 아랫도

리 휘두르느니 차라리 당구나 한 판 치는 게 더 낫겠다.

“ 어디 가냐? ”

일찌감치 가방을 메고 교실에서 나오는 건우에게 영철이 묻는다.

“ 공놀이하러. ”

무심결에 주머니를 뒤졌던 건우는 손에 잡히는 마지막 담배를 들고 빈 종이를 구겨서 던져버렸다.

지루해서 죽어버릴 것 같다. 동갑내기 녀석들이라

고는 하나같이 죄다 유치해서 도저히 같이 놀아줄 수가 없다. 자주 가는 주점의 주인은 오늘쯤 나왔을까.

교문이 보인다. 건우는 보란 듯이 주차해 있

는 세련된 승용차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선생 차는 아닌 것 같은데. 어느 아줌마의 행차신가.

무심하게 생각하고 막 담배를 입에 물었던 건우는

이번엔 라이터를 찾을 수가 없어 멈춰서 버렸다. 어차피 마지막이니까 불이나 빌릴까,

하고 주변에 누구 만만한 녀석이 없을까 돌아보았던 건우는 문

득 시선을 멈추고 말았다.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임에도 그는 한번에 눈에 들어왔다.

왠지 그가 있는 곳만이 유독 다른 세계와 같다. 키는 보통보다

약간 큰 정도. 적당히 마른 체격에 선이 꽤 가늘다. 조금 자란 머리카락은 염색을 한 듯 짙은 갈색이다.

다른 녀석과 얘기를 나누며 오고 있는 그는 점

차 건우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 쪽이 일방적으로 떠들고 그는 잠자코 듣는 눈치다.

조금 시선을 내리깔고 있는 그의 얼굴이 무척 궁

금하다. 그가 눈을 들어서 나를 보아준다면 어떨까. 바로 그 순간, 마치 신호를 한 것처럼 절묘하게

그가 고개를 들었다. 짙은 갈색의 눈동자가 건우를

응시한다. 살짝 벌어진 입술에 엿보이는 하얀 치아가 도발적이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건우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려 버렸

다. 아랫배가 싸아하니 떨려온다. 어떻게 된 거야, 난. 혼란스러워 하며 멍하니 그를 보고 있는데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돌려 건우를 스

쳐 걸어갔다.

“ 잠깐만… ”

자신도 모르게 그를 불러 세우려던 건우는 문득 걸음을 멈춰버렸다. 교문 앞에 멈춰서 있던 승용차를 보고

그는 아주 잠깐 멈칫하는 듯 하더니 곧 옆

의 녀석에게 뭔가 말을 한 후 그 쪽으로 걸어갔다. 조수석으로 돌아가 차에 타자 곧 승용차는

시동을 걸고 빠르게 달려간다. 언뜻 선탠이 되어있는 창

너머로 젊은 남자의 모습을 본 것 같아 건우는 얼굴을 찌푸렸다. 저런 녀석이 학교에 있었던가…?

학교에 자주 나오지 않은 데다 또래에게 관심이 없

던 건우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멍하니 있던 건우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가

비어있는 손을 보고 발치에 떨어져 있는 담배를 발견한

후 쓴웃음을 지었다.

“ 이런, 돛대였는데. ”

친구녀석이라도 붙잡아서 그 녀석에 대한 걸 물어보는 거였는데, 하고 생각했지만 이미 승용차도 녀석의 친구도

사라져버린 후여서, 건우는 씁쓸한

얼굴로 학교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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