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28)
창민은 자주 가는 호텔의 바에 앉아 흐뭇한 얼굴로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이미 친숙한 바텐더가 말을 건넨다.
“ 좋은 일이 있으셨나보죠? 즐거워 보이는군요. ”
“ 아아, 있었지 물론. ”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때마침 경쾌한 구두소리가 들려오며 누군가 말을 걸었다.
“ 무슨 일이야? 갑자기 불러내고. ”
“ 야아, 오늘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나의 사촌. ”
창민은 지영을 향해 두 팔을 벌려 보이며 웃었다. 지영은 한껏 얼굴을 찌푸리고 백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창민의 옆자리에 앉았다.
“ 불렀으면 용건을 얘기해. ”
바텐더에게 주문을 하고 고개를 돌린 지영을 보며 창민이 말했다.
“ 이번에 윤호가 상대말이야, 꽤 속 썩이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 ”
지영은 대답대신 잔뜩 골이 난 얼굴로 창민을 노려보았다.
“ 꽤 괜찮던데. ”
“ 뭐야, 지금 나랑 한 판 하자고 날 부른 거야? ”
히스테릭하게 외치는 지영에게 창민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 이런 이런, 흥분하지 말라고 나의 사촌. 그럴 리가 없잖아. 단지 나는 그대에게 도움이 되려고 하는 것뿐인데. ”
“ 무슨 말을 지껄이고 싶은 거야? ”
창민은 자신의 앞에 놓인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고 웃었다.
“ 그거, 당분간 나한테 맡기지 않겠어? ”
글래스너머로 보이는 창민의 눈동자가 간교해 보인다. 지영은 때마침 나온 자신의 칵테일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창민을 노려보았다.
“ 맡기다니? ”
“ 넌 어쨌거나 윤호랑 그 애랑 헤어지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그러느니 나한테 맡기라고. 나도 요즘 심심하던 차에 꽤 괜찮은 걸 발견하게 된 것 같으니까. ”
지영은 대답대신 고개를 저으며 칵테일을 들어 마셨다.
“ 괜찮은 조건일 텐데? 넌 그냥 우아하게 있으면 되는 거잖아? 그 애는 내가 갖고, 다시 싱글이 된 윤호를 네가 가지면 모두 얘기는 끝나는 거니까.”
“ …너를 믿을 수 있는 거야? ”
지영이 의심스레 눈을 번뜩였다. 창민은 잔을 들어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 물론. ”
“ 네가 난잡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애한테까지 눈독을 들일 줄 몰랐군. ”
다시 글래스를 입으로 가져가는 지영을 보며 창민이 웃었다.
“ 윤호가 취향이 워낙 고상하잖아. 이번 상대도 나쁘지 않던데. ”
지영은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듯 옆눈으로 창민을 흘겨보았다.
“ 뭐야, 벌써 맛을 본 거야? ”
창민이 대답대신 씨익 웃는다.
“ 하여간 손은 빠르다니까. ”
“ 맛을 보지도 않고 섣불리 나설 리가 없지. ”
지영은 흘깃 창민을 보고 투덜거렸다.
“ 남창이니 당연히 테크닉이 좋겠지. ”
“ 글세, 테크닉이라기 보다는… ”
잠시 말을 멈추었던 창민은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말했다.
“ 그런데 어때? 오늘은. ”
의미심장하게 키를 들어 흔들어 보인 창민을 보고 지영은 얼굴을 찌푸렸다.
“ 남창하고 뒹군 주제에 나한테 자자고? 사양하겠어. ”
“ 이런, 하여간 까다롭기는. ”
창민은 웃으며 다시 글래스를 입으로 가져갔다. 지영은 마시던 칵테일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좋아, 그 일은 그럼 너한테 맡길게. 이제 얘기가 끝났으면 가겠어. 너랑 오래 앉아서 그 자식 얘기할 기분 전혀 아니니까. ”
“ 살펴 가시길, 공주님. ”
조롱하듯 말한 창민을 한 번 노려보고 지영은 우아하게 바를 빠져나갔다. 남겨진 창민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키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바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한 쪽에 오도카니 혼자 앉아있던 여자와 시선이 마주친다. 뭐, 나쁘지 않군. 창민은 곧장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 선약이 있으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