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24)
재중은 침대에 엎드려 묵묵히 담배를 피우고 있는 윤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담배연기가 치솟아 올라간다.
“ …저기요… ”
이름을 부르는 것이 어색해서 재중은 그렇게 말을 걸었다. 윤호가 대답대신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 아까 그 사람이랑, 친해요? ”
윤호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며 재중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 글쎄, 친하다면 친하고… ”
“ 그래요… ”
윤호가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내더니 손을 뻗어 재중의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 왜, 신경쓰이나? ”
“ 아니…저기… ”
혹시, 내가 남창이라고 그에게 얘기했나요?
묻고 싶었지만 도저히 입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재중은 말을 돌려 이렇게 물었다.
“ 아까 마주쳤을 때 저라면 굉장히 놀랄 것 같은데 꽤 덤덤한 반응이라… ”
“ 흔히 있는 대면이지. ”
“ 저어… 상대를 구하면 헤어질 때까지 항상 호텔에 계속 묵나요…? ”
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겨우 입밖에 내어 묻자 윤호는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 그런 편이지. ”
“ …사랑하는 상대도…? ”
왜 이런 걸 물어봤을까, 하고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말을 내뱉고 난 후였다.
윤호는 담배를 다시 입으로 가져가 깊숙이 빨아들이며 재중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연기를 뱉어내었다.
“ 난 사랑 따위는 안 해. ”
“ …그래요… ”
침묵이 흘렀다. 재중은 문득 눈가가 더워져 서둘러 눈을 감았다.
다행히 방안이 어두워 흐느끼는 소리만 나지 않는다면 윤호는 모를 것이다.
윤호가 계속해서 머리칼을 쓸어넘겨주는 감각은 부드럽고 따뜻했지만 또한 너무도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당연한 거잖아. 난 남창이니까. 사랑 같은 거 할 리 없어. 질릴 때까지 함께 섹스를 하다가 질리면 바이바이,
그런 건 당연한 거잖아. 그러니까 난, 울 필요 따위는 전혀 없는 거야…
울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재중은 생각했다. 차마 굴러 떨어지지 못한 눈물이 가득 눈에 고여
자꾸만 눈을 아프게 했다.
다음날은 방학식이었다. 열흘의 봄방학이 끝나고 나면 3학년이다.
재중은 아침부터 일찌감치 교복을 입고 호텔에서 나왔다. 윤호는 이미 회사에 나가고 난 후였다.
도대체 고등학생보다 일찍 출근하는 회사원이라니. 문득 쓴웃음이 나온다.
학교에 가서 재중은 언제나와 똑같이 혼자 조용히 앉아있다가 종례가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재중아! ”
말을 걸어오는 것은 언제나와 같이 민철이다. 재중이 시선을 향하자 민철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오늘 스케줄 있어? 별 거 없으면 같이 놀지 않을래? ”
방학식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끝났다. 윤호가 돌아오기 전까지만 들어가 있으면 되니까
몇 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을 것 같았다. 혼자 방에 앉아있는 것도 청승맞으니까 그렇게 할까…
재중은 깊이 생각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민철은 행여 재중이 마음을 바꿀까 걱정스럽기라도 한 듯
서둘러 가방을 챙겨와 옆에 섰다.
“ 3학년 반 배정 봤어? ”
계단을 내려오면서 묻는 민철에게 재중은 ‘아니’하고 고개를 저었다. 민철이 계속해서 말했다.
“ 너랑 나랑 같은 반이야. 또 1년 잘 지내보자. ”
재중은 건성으로 ‘그래’하고 대답했다. 민철은 머쓱해졌는지 과장되게 큰 소리로 웃으며
재중의 옆을 따라갔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재중은 문득 나무 한 그루에 이른 벚꽃이 몇 송이 피어있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그것을 보고 있던 민철이 헛기침을 하고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진지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 재중아, 저번에 내가 했던 얘기 말이야. 많이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나는 그저 걱정이 돼서… ”
“ 응? ”
그 때까지 나무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돌려 민철을 바라보자 민철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 저기, 그러니까 영철이 패거리들에 대해서 한 얘기 말이야… ”
“ …아… ”
뒤늦게 기억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이자 민철은 애써 말을 꺼낸 것이 민망해져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 이제 방학이고 학년도 바뀌니까 그렇게 신경쓰지 말라고… 내가 지나치게 걱정을 했던 거 같아.
네 말이 맞아, 오지랍이 넓었지. 미안해. ”
“ 그렇게 말할 것 까지는… ”
재중이 당황해서 말을 꺼냈을 때, 갑자기 크랙션소리가 울려왔다. 마침 교문까지 나왔던 재중과 민철은
앞에 서 있는 거대한 고급 승용차를 보고 걸음을 멈춰버렸다.
창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전혀 반갑지 않은 얼굴이 말을 걸어왔다.
“ 시간을 잘 맞춰왔네. 혹시나하고 일찍 온 거였는데. ”
재중은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창민은 계속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
“ 할 얘기가 있어서 말이야. 타지 않겠어? ”
“ 난 당신과 할 얘기가 없습니다만. ”
꼿꼿이 고개를 세우고 말하자 창민은 애석하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 그러지 말고. 얘기를 듣는 편이 좋지 않아? 여기서 굳이 하겠다면 나야 상관없지만 넌 곤란할 텐데. ”
슬쩍 고개를 돌리니 학교를 나오던 애들의 시선이 잔뜩 몰려있다. 재중은 이를 악물고 창민을 노려보았다.
“ …민철아, 다음에 보자. ”
“ 어, 어어 그래… ”
민철은 당황한 얼굴로 둘을 번갈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중은 한 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 똑바로 걸어가 창민의 옆자리에 앉았다.
부드러운 엔진소리를 내며 차가 떠나고, 남겨진 민철은 한참동안이나 차를 바라보며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