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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23화 (23/123)

거짓말 - (23)

재중은 잔뜩 긴장해서 창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창민은 빙글거리는 얼굴로 재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 설마. 오늘 처음 보는데. ”

어라, 감싸주는 건가. 재중은 놀라 눈을 깜박였지만 어쨌거나 위기는 지나친 것 같아서 그냥 있었다.

윤호는 여전히 믿지 않는 눈치로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창민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 네 취미가 좋은 건 알고 있지만 게다가 저렇게 섹시한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놀라지 않겠어? ”

뒤늦게 나는 내 몰골을 깨닫고 얼굴을 확 붉힌 채 서둘러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뒤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 것으로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창민이 어깨를 떨며 웃고 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 놈에 그 친구라고, 둘 다 성격 나쁜 건 단박에 알겠다. 재중은 뒤틀린 마음으로 한껏 꼬아서 생각해주고

가운을 걸친 후 심호흡을 하고 다시 방으로 나왔다. 윤호는 마침 또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두리번거리자 의자에 앉아 막 담배를 입에 물었던 창민이 말했다.

“ 윤호는 샤워하러 저 쪽 욕실로 갔어. ”

아, 그런가. 좀 더 있다가 나올 걸. 어색해하며 잠시 머뭇거리는 재중에게 창민이 말했다.

“ 설마 했는데 정말 윤호가 상대였군. ”

에에? 조금 놀라서 바라보자 창민이 웃었다.

“ 저 자식 취향이야 이미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사실 설마 설마 하고 있었거든.

저 녀석은 너 같은 타입 별로 안 좋아했는데. ”

“ 저 같은 타입이라면… ”

감이 잡히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했다. 남자를 안 좋아한 게 아니라 타입을 안 좋아한 거라면 어떤 걸까.

“ 어디도 모자라지 않을 모범생타입 말이야. ”

담배연기를 뱉아내며 창민이 키득거렸다.

“ 넌, 내가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지. 나는 분명히 너를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야. ”

“ 무슨 말씀이신지… ”

얼굴을 찌푸리고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본 것도 같은데 도무지 어딘지…

“ 멀리 갈 것 없이 나한테 팔랬더니, 결국 윤호인가. ”

낮게 속삭이는 음성은 왠지 위협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재중은 그의 얼굴을 기억해내 버렸다.

처음 윤호와 만났던 그 날, 자신이 부딪혔던 사내. 이 남자의 말 한 마디로 내 인생이 이렇게 바뀌어버렸지.

그 전까지는 남자에게 몸을 파는 남자따위는 절대로 상상도 못 해봤었는데…

재중은 황당한 얼굴로 입만 뻐끔거렸다.

“ 그 날 윤호랑 나는 같이 있었거든.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우습군. ”

정말로 재미있는지 그는 계속 웃고 있었다. 하지만 재중은 전혀 웃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물끄러미 눈만 깜박이고 있는 재중을 보며 창민이 말했다.

“ 앉지 그래?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군. ”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어쩔 수 없이 창민이 가리키는 의자로 다가가던 재중은 등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더더욱 안색이 하얘졌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창민의 맞은 편 의자에 다가갔을 때,

그 때까지 담배만 피우고 있던 창민이 갑자기 창민의 손목을 거세게 잡아당겼다.

“ …앗…! ”

놀라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끌려가자, 창민이 낮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 네가 실수했어. 난 한 번 찍은 건 절대로 놓치지 않아. ”

본의 아니게 무릎을 꿇고 올려보게 된 창민의 눈에는 위험한 기색이 다분히 숨겨져 있었다.

재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크게 뜬 눈으로 창민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 사람, 누군가와 닮았어…

재중은 멍하니 생각했다. 그 때 문소리가 들리고 창민이 잡았던 손을 놓았다.

“ 뭘하고 있는 거야? ”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재중을 보고 아직 덜 마른 머리칼을 수건으로 닦으며 들어온 윤호가 물었다.

“ 넘어졌어. ”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싱긋 웃으며 창민이 재중에게 손을 내밀었다.

“ 자. ”

하지만 재중은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손을 무섭게 노려보고 재빨리 혼자 일어나 버렸다.

윤호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서류 가지러 온 거였잖아. 어서 가지고 가. ”

옷장을 열어 봉투를 하나 꺼내 테이블로 던지며 말한 윤호를 보고 창민이 웃었다.

“ 애써 찾아온 친구가 담배 한 대도 다 피우기 전에 이렇게 쫓아내려 하다니,

어서 안고 싶어 안달이 나는 모양이지. ”

“ 알면 그만 나가주지 그래. ”

윤호는 뭔가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재중은 창민이 나가도 문제 안 나가도 문제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암담해졌다. 나가면 또 윤호가 이런 저런 심한 짓들을 해댈 게 눈에 보이지만,

또 안 나가면 이 둘 사이에 끼어서 신경이 곤두서 폭발해버릴 지도 몰랐다.

어쩌지. 어쩌면 좋지.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창민이 재중에게 본의 아닌 선택의 기회를 제공했다.

“ 좋아, 어차피 나도 바쁘니까. 즐거운 시간을 방해한 것 같군. 이만 가볼게. ”

그리고 그는 돌아서서 문을 향해 걸어가다가 뒤늦게 생각난 척 돌아서서 말했다.

“ 지영이 지금 난리 났더라. 그대로 두면 꽤 시끄러워질 거야. 한 번 정도는 자주지 그래. ”

“ 시끄러워. ”

난폭하게 내지르는 윤호에게 창민은 크게 웃더니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

생각이 났다. 멍하니 한 쪽에 서서 재중은 생각했다.

그 여자랑 닮았어. 특히 저 눈가가… 순간 오싹하니 소름이 돋아 재중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왜 그러지? 추운가? ”

윤호의 말에 재중은 서둘러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물어볼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한 번 기회를 놓친 데다 갑작스레 연타로 알게 된 사실에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묵묵히 서있기만 하자 윤호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레 고개를 들자 침대에 앉아 있던 윤호가 손을 내밀었다.

“ 이리 와. ”

재중은 쭈삣거리며 그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아직 물기에 젖어 흩어져 있는 윤호의 머리칼이 차가운 빛을 낸다.

가까이 가자 윤호가 재중의 손을 잡고 팔을 뻗어 목을 끌어당겼다.

맞닿은 키스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부드러운 것이었다. 재

중은 한 쪽 무릎을 세워 침대에 걸치고 윤호의 한쪽 다리를 사이에 두고 서서 눈을 감았다.

자연스레 팔을 올려 윤호의 목에 감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키스만으로 이렇게 가슴이 뛰는 것은 처음이야,

하고 재중은 문득 생각했다. 언제나 관계를 가질 때면 가슴이 뛰곤 했지만 오늘은 뭔가…

윤호의 키스가 목덜미를 거쳐 가슴으로 옮겨갔다. 목욕가운을 헤쳐 마른 가슴에 입술이 와닿자

순간 재중은 작게 숨을 들이켰다. 윤호의 손이 허리로 옮겨와 한 손으로 허리를 감고

다른 손으로 재중의 가운끈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계속해서 온 몸에 키스를 남기는 것 같은

그의 자취는 멈추지 않고 있었다.

“ …응… ”

배로 옮겨가 살짝 배꼽을 혀로 핥자 재중이 가는 신음소리를 냈다. 다리에 힘이 빠져 서 있기가 힘들어진다.

재중은 떨리는 손으로 윤호의 어깨를 붙잡고 겨우 버티며 서 있었다.

털썩…

재중의 등뒤로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시트의 감촉이 느껴졌다. 윤호가 침대에 재중을 눕힌 것이다.

침대에 가로로 눕혀져 무릎을 침대 밖으로 구부리고 있는 모습은 어딘지 자극적이다.

스스로의 모습을 알지 못하는 재중은 열에 들뜬 얼굴로 가슴을 두근거리며 윤호의 다음 행위만 기다리고 있었다.

복부 근처에서 헤매이던 윤호의 혀가 천천히 옮겨간다. 설마, 하고 생각한 순간 윤호가 재중의 것을 입에 물었다.

재중은 자신도 모르게 날카롭게숨을 들이키고 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부드럽게 혀로 감싸올리는 감각에 머릿속이 저릿해졌다. 척추를 타고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이 전신이 오싹오싹하다.

거푸 흘러나오는 신음을 이를 악물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겨우 견디고 있는데,

갑자기 윤호가 고개를 들어 그 때까지 재중이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붙잡아 떼어놓으며 말했다.

“ 참지 말고 울어봐. 네 목소리가 듣고 싶으니까. ”

그런 창피한 짓을,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윤호가 곧장 다시 재중의 것을 입에 물었기 때문에

항의는 날카롭게 숨을 들이키는 것으로 돌변해버렸다.

“ 앗, 아… 응, 응… ”

재중은 양 손을 윤호에게 붙잡힌 채 이를 악문 채 신음을 삼키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입가로 비어져 나오는 신음을 참지 못하고 재중은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윤호가 달콤하게 재중의 것을 깨물자, 재중은 흥분에 온 몸을 바르르 떨었다.

“ 자, 잠깐 멈춰요… 참을 수가 없게 돼 버려요… ”

겨우 울먹이며 폭발할 것 같은 호흡사이로 말하자 윤호가 고개를 들었다. 다시 입술에 부드러운 키스를 한다.

이 사람이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었나…? 재중은 도무지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난폭한가 싶으면 돌변해서 친절해지고, 거칠게 대하는가 싶으면 다음 순간에는 이렇게 부드럽게 대해주니…

도대체 당신은 어떤 사람인 걸까.

하지만 물을 수는 없었다. 윤호가 손을 뻗어 사이드 테이블에 놓여있는 젤을 꺼내 재중의

뒤에 바르기 시작한 것이다. 재중은 부드럽게 깊숙이 밀어 넣어진 손가락을 느끼며 몸의 힘을 빼려 애썼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키스, 키스, 키스. 정신이 몽롱해진다. 오늘 윤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이렇게 다정하다니. 윤호가 손가락을 빼고 재중의 다리를 벌려 몸을 밀어 넣었다.

“ ……!! ”

둔한 통증과 충격에 재중은 자신도 모르게 또다시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윤호가 다시 키스를 한다. 하지만 재중은 아까처럼 키스에 몰두할 수가 없었다.

잔뜩 밀고 들어와 가득히 몸을 채워넣는 익숙한 감각에 재중은 눈을 꼭 감았다.

삽입이 깊어지고 행위가 거칠어질수록 통증은 조금씩 다른 것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 응, 응응… 앗… ”

재중은 자신도 모르게 윤호의 팔을 붙잡았다가 문득 느껴지는 까칠한 감각에 조금 이성이 돌아왔다.

뭐지? 뭔가 상처같은 게… 의아해했지만 때를 같이 해 윤호가 깊숙이 밀고 들어왔기 때문에

더 이상 생각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뇌까지 저릿해지는 강렬한 엑스터시.

“ 앗, 아핫… 앗!… ”

거친 호흡사이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침내 뜨거운 것을 토해내버리자,

재중은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리는 것 같이 몽롱해졌다. 윤호가 귓가에 대고 작게 웃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윤호도 재중의 안에 같은 것을 토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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