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20)
삑--
조용한 방안에 울려퍼지는 가느다란 카드키의 체크소리에 재중은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침대 한 구석으로 급히 몸을 웅크렸다.
“ 뭐하는 거지? 새로운 놀이인가? ”
평소처럼 찡그린 얼굴로 내뱉은 윤호는 넥타이를 풀어 의자에 걸치며 말을 이었다.
“ 오늘은 아무 것도 안 먹었나? 과일도 그대로 있고. ”
재중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윤호는 셔츠의 단추를 풀며 계속해서 말을 했다.
“ 호텔음식이 질렸으면 그렇게 얘길 하든가. 그러면 나가서 다른 뭐라도… ”
소매의 단추를 풀던 윤호는 그 때까지 재중이 아무 말이 없는 것에 그제야 이상한 듯 재중을 바라보았다.
“ 왜 그러지? ”
온 몸에 시트를 둥글게 말고 창백한 얼굴로 숨을 몰아쉬며 전신을 떨고 있는 재중을 보고 윤호는
더더욱 얼굴을 찌푸렸다.
“ 이봐, 무슨 일이야? ”
큰 걸음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지만 재중은 더욱 놀라 경기를 일으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뒤로 물러섰다.
한동안 바라보고 있자니 떨림은 더욱 심해질 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를 맞부딪히는 것을 참기 위해 힘껏 깨문 입술에서 피가 터져 어느 새 가슴까지 흘러내리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턱은 불규칙하게 떨리고 있었다. 게다가 두 눈은 크게 열려 초점도 제대로 맞지 않는 것처럼
불안하게 두리번거린다. 윤호는 재중의 이상한 행동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 무슨 일이냐고 묻고 있잖아. ”
참을성있게 물었지만 재중은 이제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운 듯 발작적으로 호흡이 흩어진다
싶더니 갑자기 멈춰버렸다. 윤호의 안색도 창백해졌다.
“ 제길. ”
윤호는 격렬하게 진동하는 재중을 다짜고짜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재중의 입에서 격한 신음이 새어나오더니 온 몸을 경직시키며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윤호는 재중을 억지로 침대에 눕혀 거칠게 입을 맞대었다. 비릿한 피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하는 재중을 내리누르며 키스를 계속했다.
재중은 자지러질 듯이 울음을 터뜨리며 자신을 강하게 속박하고 있는 윤호의 팔과 등을 몇 번이나 내리그었다.
얇은 셔츠의 천이 금세 붉게 물든다. 윤호는 재중의 호흡이 아직 격렬하지만 다시 되돌아온 뒤에야
키스를 멈추고 고개를 숙여 귓가에 속삭였다.
“ 괜찮아. ”
살짝 귀를 핥자 재중이 움칠한다. 여전히 그는 버둥거리고 있었지만 조금씩 그것은 잦아들고 있었다.
윤호는 재중을 꼭 끌어안은 채 계속해서 속삭였다.
“ 이제 괜찮아. 안심해도 돼. 그러니까 그렇게 무서워하지 말아… ”
이제 괜찮아, 라는 말이 주문처럼 흩어진다. 버둥거리던 재중의 몸짓이 점차 수그러들더니
이윽고 그는 깊은 숨을 쌕쌕거리며 잠이 들어 버렸다. 한동안 재중을 안고 있던 윤호는
그가 평온히 잠이 든 것을 확인한 후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얼굴이 온통 눈물로 젖어 엉망이 되어있는 재중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윤호는
그를 바르게 침대에 누여준 후 아무렇게나 걸쳐두었던 코트를 뒤져 담배를 꺼냈다.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답답한 마음에 짜증스레 중얼거렸지만 재중은 간헐적으로 흐느낌이 남은 호흡을 평온하게 내쉬며 깊이 잠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