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17)
조금이라도 더 늦게 들어가려고 뜸을 들이던 재중은 보는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은 민망하기도 하고
시간을 끌려는 생각에서도 최대한 천천히 옷을 벗었지만 기어이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엉거주춤 욕실로 따라갔다. 문이 열리자 넓은 욕조에 깊숙이 몸을 묻고 있던 윤호가 고개를 돌린다.
평소에 깔끔하게 넘겨져 있던 머리칼은 흩어져 내려와 살짝 물기를 머금고 있다.
안경을 벗고 머리도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또 이상하다. 처음 보는 사람 같다.
안경을 쓰고 있을 때의 그는 뭐랄까, 무척이나 도시적이고 차가운 이미지랄까.
하지만 저런 모습을 보니 그 동안의 빈틈없고 서늘한 이미지가 돌변해 과묵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저돌적이고 정열적인 남자로 보이는 것이다.
하긴, sex를 할 때는 그 말이 맞지. 안경을 벗고 머리가 흩어지는 것은 sex를 할 때는
당연히 언제나 그렇지만 정작 이 쪽도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상대를 살펴볼 수가 없다.
물론 정신이 없는 이유는 저 쪽과 전혀 다른 이유로 참을 수 없이 아프고 불편하기 때문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런 모습을 찬찬히 보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무척 생소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목욕은 별도요금이에요” 라고 했던 말을 이 남자, 기억하고 있을까.
“ 살이 익어버리겠군. ”
주춤주춤 욕실 안으로 들어오는 재중에게 윤호가 투덜거렸다.
이봐요, 나야말로 당신의 시선에 익어버릴 것 같다고.
벗은 몸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바람에 재중은 온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소중한 곳을 한 손으로 쥐어 가리고 욕조로 다가갔다.
욕조에 기대어 앉아있던 윤호는 그 때까지 노골적으로 재중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가 가까이 오자 갑자기 손을 뻗어 재중의 허리를 잡아 끌어당겼다.
“ 우왓! ”
풍덩--
욕조의 물이 파도치듯 일렁이며 난폭하게 흩어졌다. 벗은 허리에 와닿는 맨살의 체온이 뜨겁다.
재중은 익숙한 그의 팔안에 갇혀 밀착된 윤호의 젖은 나신을 전신으로 느껴야했다.
곧장 입술이 겹쳐지고 뜨거운 혀가 격렬하게 입안을 헤집는다. 뒤섞이는 타액.
서로의 폐속으로 깊숙이 교환되는 더운 호흡. 젖은 손이 뜨거운 물속에서 등을 훑고 지나간다.
재중은 소름이 끼쳐 순간 몸을 떨었다. 키스를 멈추지 않은 채 조금 몸을 움직여 다리를 벌려 윤호의 위에 앉았다.
이로써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닿은 그의 체온을, 재중은 전신을 휘감는 물의 온도보다도 더욱 뜨겁게 체험하고 있었다.
“ 침대보다 이 쪽을 더 느끼는 것 같군, 너는. ”
키스 사이로 윤호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음성에 실려있는 가는 웃음소리에 재중은 더욱 몸이 달아올랐다.
오늘 같으면, 그다지 아프지 않을 것 같아, 하고 재중은 몽롱히 생각했다.
음, 그러면 정말로 느낄 수 있게 되는 걸까. 그럼 그것도 또 나름대로는 문제가 되는 건 아닐까.
때를 같이 해 윤호의 긴 손가락이 자신의 위에 올라와 앉아 허리에 둘러져 있는 재중의 다리 안 쪽을 훑으며
들어와 엉덩이 사이로 밀려들어왔다. 덕분에 윤호와 재중의 사이에는 조금의 틈이 생겨버렸다.
재중이 질러들어온 손가락에 몸을 움칠하자 윤호가 키스를 재중의 목덜미로 옮기며 말했다.
“ 행위중에 다른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
잘못했어요, 하고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정작 흘러나온 것은 헐떡이는 신음소리뿐이다.
여지없이 검푸른 멍을 목덜미에 새기며 윤호가 말했다.
“ 벌써부터 조이지 마. ”
아, 힘주어 버렸던 건가. 재중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숙여 표정을 감추려 했다. 윤호가 역시 낮게 웃는다.
윤호는 한 손으로는 내부를 계속해서 문지르면서 다른 손으로 재중의 엉덩이를 붙잡아 끌어당겼다.
흥분으로 가늘게 떨리는 페니스가 윤호의 복부에 문질러지자 재중은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허리 아래가 국부적으로 월등히 뜨거워진 것은 자신의 흥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피부 아래로 느껴지는 윤호의 페니스가 발기해 있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윤호는 좀처럼 들어와주려 하지 않는다.
“ 응, 응응… ”
거친 신음소리가 호흡과 함께 새어나온다. 깍지를 끼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 마디가 하얗게 두드러졌다.
엉덩이를 어루만지던 손이 등을 타고 올라와 엄지손가락으로 유두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재중은 이를 악물고 이미 밀착되어 있는 윤호의 몸에 더더욱 몸을 밀어부쳤다.
욕조의 물이 부드럽게 파문을 일으켰다. 몸을 움직여 윤호의 피부에 맞닿을 때마다 긴장하고 있는 하복부가
뻐근하게 저려온다. 부드럽게 놀리듯 스치는 윤호의 손가락이 안타깝다.
재중은 상반신을 조금 뒤로 빼고 그 때까지 자신의 유두를 희롱하던 윤호의 손을 들어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마치 자신을 괴롭히던 그것을 응징하듯 뜨거운 혀를 사용해 핥고 깊숙이 빨아들이자 윤호가 낮게 웃는다.
“ 꽤 급한 모양이군. ”
내벽을 깊숙이 어루만지던 손가락이 빠져나가자 재중은 다음에 올 상황을 예상하고
윤호의 어깨를 잡고 있던 두 손을 움직여 깍지를 꼈다.
이미 충분히 흥분되어 이제 폭발의 시기만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물건이 와 닿았다.
다른 때보다 더 큰 무게감으로 몸 안을 채워오는 하반신에, 유독 강하게 느끼는 건 나만이 아닌 것 같아,
하고 재중은 달아오른 뇌로 생각했다.
“ 응, 응응… ”
물 속에 있어서 고통은 다른 때보다 줄긴 했지만 그렇다고 전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전처럼 통증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윤호가 통증사이로 아찔할 만큼
능숙하게 그를 위로해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리 격하게 몸을 밀어부쳐도 한계가 있어
뿌리까지는 받아들이지 못해 윤호는 언제나 재중의 안이 너무 좁은 데다 부드럽지 못하다고 투덜대곤 했는데
물 속에 있어서인지 그것은 깊숙이 파고들어 윤호의 testis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삽입이 되고 나자 정작 윤호는 재중을 위로하던 손을 떼어 버렸다.
“ 뒤로 느껴봐. ”
귓가에 대고 속삭인 윤호가 재중의 허리를 붙잡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몽롱하게 남아있던 쾌락이 썰물처럼 흩어진다. 재중은 가득히 차들어온 그것에 다시금 익숙한 통증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깍지를 꼈던 손을 풀어 대신 윤호의 등을 꼭 끌어안았다.
“ 읏, 으, 으응… ”
쾌락과는 거리가 먼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윤호의 움직임이 격렬할수록 재중의 신음소리는
어느새 흐느낌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제길, 어쩐지 오늘은 좀 잘 된다 했다.
들어와서 괴롭히는 것도 아프지만 지나치게 벌어진 애널 또한 아찔할 정도로 쿡쿡 쑤셔온다.
그나마 앞을 문질러준다면 조금이라도 느껴볼 텐데, 제대로 배출해내지도 못한 채 시들어 버리다니.
뻐근하게 남은 불쾌감이 더해 통증은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윤호가 얕은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그는 나가주기는커녕 더욱 깊이 몸을 뚫고 들어왔다.
…아…?
문득 재중은 머릿속이 저릿해지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고 흐느끼던 숨을 들이마셨다.
등을 두르고 있던 손끝까지 전류가 흐르는 것 같다. 재중은 흠칫하고 손가락을 세우고 이를 악물었다.
윤호의 행위가 빨라지더니 더욱 격해진다. 재중의 입에서 넘어갈 것 같이 거친 신음이 연신 쏟아지며
전신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럴 때마다 욕조의 물이 요란하게 일렁이며 거칠게 파도쳐 욕조 밖으로 넘쳐났다.
윤호의 등에 날카로운 상처가 그어진다.
“ 아, 아아… 앗! ”
비명처럼 격렬한 호흡을 쥐어짜낸 재중은 이미 이성을 잃고 다시 가득 차버린 체액을 단숨에 토해버렸다.
뇌속에 하얗게 섬광이 일어나는 것 같다. 때를 같이 해 재중의 몸 안에 참았던 욕정을 뱉어낸 윤호가
흠뻑 젖어 축 늘어진 재중을 안고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음성으로 역시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속삭였다.
“ 여자를 상대로 이 정도 가버리긴 어려울 걸. ”
완전히 지쳐 윤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재중은 낮게 쿡쿡대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역시 당신은 성격이 나빠. 윤호는 재중을 여전히 안은 채로 말을 이었다.
“ 다른 때라면 그만 하겠지만, 이 정도 들어가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니니까 조금 쉬었다 다시 할까? ”
몸안에 아직 들어와 있는 윤호의 물건에 위기감을 느끼던 재중은 이제 하얗게 질려 절망해 버렸다.
재중을 안은 채 팔을 뻗어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욕조에 더운 물을 틀은 윤호가 말했다.
“ 이제 겨우 너도 느끼기 시작한 것 같으니까 말이야. ”
아무 대꾸도 없이 입을 꾹 다문 채 재중은 속으로 다짐했다. 다신 이 남자 앞에서 여자얘기는 하지 말아야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