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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9화 (9/123)

거짓말 - (9)

“ 응… ”

재중은 어지러움을 느끼며 가늘게 신음소리를 냈다. 덥다. 이 방은 지나치게 난방이 잘 되어 있는 것 같아…

응? 방?

놀라 벌떡 일어나려던 재중은 현기증에 다시 고꾸라져버렸다.

“ 이런, 생각보다 빨리 깨어버렸네. ”

머리위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겨우 고개를 들자 낯익은 얼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누구더라… 잠시 생각을 더듬다가 곧이어 떠오른 기억에 뒤늦게 재중은 겨우 입을 열었다.

“ 어 어떻게 된 거죠? 여긴… ”

아버지와 아는 사이인 척 다가왔던 이 남자는 자신의 회사에 대한 얘기를 하며 재중을 붙잡고 있었다.

처음에는 끈기있게 들어주었지만 그나마 곧 지루해져서 나름대로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으나 남자는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 딱 한 잔만, 응? 홍사장님하고 난 친한 사이였다고. 이대로 헤어지기 섭섭해서 그래. ”

마지못해 ‘ 그럼 마지막으로 한 잔만 ’ 이라고 말한 후 잔을 냉큼 마셔버리고 돌아섰는데,

그 뒤에 눈을 떠보니 본 적도 없는 방이다. 아련히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곳은 아래층인 것 같다.

“ 여기라면 아무도 방해할 사람도 없고 말이야. ”

“ 뭐를… ”

어리벙벙해서 다시 물었지만 남자는 대답대신 재중에게 기습키스를 했다.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뜬 재중은 뒤늦게야 버둥거리기 시작했지만 침대에 눕혀져 있는 상태에다가

아직 정신이 몽롱해서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 가만히 있으라고, 비싸게 쳐줄 테니까 말이야. 너, 갈 곳 없지? ”

순간 재중은 멈칫하고 몸을 굳혔다. 아버지의 회사가 망한 걸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면 왜 모른 척하고 내게 접근했던 걸까. 게다가 이상한 걸 먹이기까지하고.

“ 비 비켜주세요 전 이런 거 싫습니다… ”

다시금 손에 힘을 줘 남자를 밀어냈지만 남자는 여전히 느물거리며 말했다.

“ 이봐, 서로 좋은 거잖아. 얌전히 좀 있으라고. ”

“ 싫다니까! ”

재중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냅다 남자의 다리사이를 걷어차 버렸다.

“ 우왓! ”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사이에 재중은 벌떡 일어나 문으로 달려갔다.

“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

남자는 욕을 퍼부으며 넘어진 채로 달아나는 재중의 발목을 붙잡았다.

“ 우왓! ”

그대로 바닥을 굴러버린 재중의 위에 올라탄 남자는 거세게 재중의 뺨을 여러 차례 후려갈겼다. 눈이 번쩍한다.

몇 대 뺨을 맞고 나자 재중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혼미한 가운데 지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 …우… ”

입안 가득히 이물질이 들어온다. 재중은 뒤늦게 버둥거렸으나 남자에게 난폭하게 머리털을 붙잡혀

고개를 저을 수도 없었다.

“ 충분히 적셔놓는 게 너한테도 좋을 테니까 말이야. ”

남자는 키득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입안에서 이물질이 커져간다. 토할 것 같다.

갑자기 윤호와의 첫 경험이 생각났다. 그 때도 이랬었지. 토할 것 같이 괴로운데 남의 사정 따위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자기 좋을 대로. …빌어먹을, 이 자식이나 그 자식이나 마찬가진데 그냥 당해버릴까…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재중은 문득 눈물이 나왔다.  왜 나는, 이 지경으로 살아야 할까.

애초에 그런 짓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얼어죽는 한이 있어도 몸을 파는 짓만은 해서는 안되었다.

그러니까 벌을 받고 있는 거야 나는. 때를 같이 해 입안을 괴롭히던 이물질이 빠져나갔다. 길게 타액이 이어진다.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던 재중은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빌어먹을, 그래도 그건 내가 선택한 것이었어. 이성이 돌아오자 분노도 함께 치밀어 올랐다.

이건 나의 선택이 아니야. 내게도 선택의 자유는 있어. 이렇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당하다니,

누구도 나를 이렇게 벌할 수는 없는 거야. 남자는 불쾌한 헐떡임을 계속하며 재중의 몸에서 내려갔다.

아마도 재중이 아무 저항도 하지 않는 것에 마음을 놓은 듯 하다.

퍽-----

재중은 냅다 남자의 얼굴을 걷어차 버렸다. 재중의 바지를 벗기려던 남자는 그대로 나가떨어져 구석에 처박혔다.

재중은 서둘러 일어나 이번에야말로 문을 향해 돌진했다.

또다시 잡히면 정말 몇 대 맞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 이 새끼, 거기 안 서! ”

남자가 뒤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재중은 이미 문을 열고 복도로 뛰어나온 뒤였다.

“ 헉, 헉. ”

정신없이 복도를 내달리다가 문득 남자가 자신을 쫓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재중은

비로소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몰골이 엉망일 것이다.

윤호가 값비싼 수트도 사주었는데… 멍하니 생각했던 재중은 천천히 비틀거리며 벽에서 몸을 떼고

화장실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 몰골이 말이 아니군. ”

귀에 익은 낮은 목소리에 재중은 시선을 고정시켰다. 윤호가 입에 담배를 물고 벽에 기대어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재중은 문득 몸이 가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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