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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7화 (7/123)

거짓말 - (7)

윤호가 돌아온 것은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못해도 9시는 넘어서 들어올 거라고 멋대로 짐작하고

그 때까지 침대에 쓰러져 있던 재중은 7시도 못 된 시간에 들려온 열쇠 돌아가는 소리에 기겁을 하고

벌떡 일어났다가 그대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 우갸아아아아아악!!! ”

찢어지는 비명소리를 지르며 시트에 휘감겨 그냥 바닥에 고꾸라진 재중의 위로 윤호의 음성이 들려왔다.

“ 굉장히 요란한 환영이군. ”

재중이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윤호가 혀를 끌끌차며 허리를 굽혀 재중의 팔을 붙잡아 일으켜 세워 주었다.

아직 곳곳이 쑤시는데 바닥을 구르기까지 했는데 몸이 멀쩡할 리가 없다.

지끈거리는 통증에 왈칵 눈물이 솟는다. 그러나 윤호의 박정한 한 마디에 재중은 서둘러 눈물을 그러모았다.

“ 내 앞에서 울지 마라. 난 우는 게 정말 싫으니까. ”

어제는 그렇게 그만둬 달라고 매달려도 기어코 울려놓고는!! 당신이 원인이라고, 이봐 알고 있어?!

윤호는 잠시 문어가 되었던 재중을 안아 침대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 오늘 하루는 좀 쉬었나? 심심해할 것 같아 일찍 왔는데. ”

재중은 늦게 오라고 그럴 걸, 하고 내심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일그러진 얼굴로 접대용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 예에, 기다렸어요 아주 많이. ”

같은 남자로서 아마도 전날 관계를 가졌던 상대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기뻐할 것 같아서 일부러 지어낸 말이었지만

과연 믿어줄 지는 의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윤호는 비웃듯 한 쪽 입술을 비틀어 웃으며 재중의 말투를 흉내내어

되물었다.

“ 아주 많이? ”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남자는 성격이 나쁜 것 같다. 좋게 생각해 보려 해도 전날부터 지금까지 시종 말끝마다

심술궂기는 놀부가 따로 없는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참자, 참아야 한다. 손님은 왕이니까.

게다가 이렇게 후한 손님이라면 왕이 아니라 황제라고 해야겠지.

“ 선물이야. ”

윤호가 툭, 하고 무언가를 침대가에 떨구고 돌아섰다. 윤호가 셔츠를 갈아입는 새 재중은 힘겨운 몸을 일으켜

엎드린 채 예쁘게 포장된 길고 납작한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섬세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초콜렛 세트가 화려하게 놓여 있었다.

재중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사이에 윤호의 음성이 들려왔다.

“ 초콜렛은 출혈에 그다지 좋지 않다고 들었지만, 기운을 내는데는 좋으니까 말이야. ”

어쩌면 하는 말이라고는 저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얄미울까. 피가 나건 말건 어서 기운 내서 밤일해라 이거지?

재중은 갈수록 윤호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표현할 수 없는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지만.

“ 고, 고마워요. 내일 낮에 먹을게요. ”

애써 감사의 말을 했지만 윤호는 만족하지 못한 듯 벗은 넥타이를 옷걸이에 아무렇게나 걸치고 돌아서서

재중에게로 허리를 숙였다.

“ 감사의 인사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지. ”

미소와 함께 윤호가 말했다. 재중은 눈앞에 클로즈업된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을 증오를 담아 노려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여전히 엎드린 채로 있었던 재중은 결국 조금 허리를 들어 빠르게 윤호의 입에 쪽, 을 했다.

“ 난 유치원생이 아닌데. ”

잔뜩 찌푸린 음성. 이봐 당신, 우린 지금 원조교제라고. 알아? 이것 저것 따질 때가 아니잖아.

아무 거나 해주면 감사하게 있을 것이지…

하지만 역시 비굴하게 웃어버린 것은 그 순간 슬프게도 떠오른 수표때문이었다.

재중은 ‘끙’, 하고 일어나 주춤거리며 윤호의 입술에 입을 꾹 눌렀다.

그러나 윤호의 미간에 새겨진 주름은 펴지지 않는다.

“ …하여간 입으로 하는 건 뭐든 못 하는군. ”

야, 니가 한 번 해 봐! 재중은 새빨갛게 변한 얼굴로 씨근거리며 화가 난 것을 감추기 위해

후다닥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윤호가 머리 위에서 말했다.

“ 난 옷을 갈아입기 위해 들어온 거니까 너는 쉬도록 해. 오늘 쉬어두지 않으면 내일 곤란할 테니까. ”

에? 내일? 파묻었던 머리를 들고 말똥말똥 바라보자 윤호가 싱긋 웃었다.

“ 내일은 외식을 하도록 하지. ”

그리고 윤호는 재중이 메뉴가 무엇인지 물어보기도 전에 빨리도 옷을 갈아입고 휭하니 나가 버렸다.

아마도 나는 왕이 아닌 황제나 신 정도의 손님을 받아버린 건지도 몰라,

하고 재중의 마음 한 구석에서부터 조금씩 후회가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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