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6)
호화판 아침을 먹고 난 재중은 방을 청소하러 오기 전에 서둘러 욕실로 들어갔다.
아직 몸이 안 풀려 여기저기 다니기는 곤란했지만 침대에 널부러져서 아주머니하고 인사를 나눌 만큼
간이 크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잔뜩 받으며 한동안 재중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지난 밤의 일이 모두 꿈같다. 몸이 이렇게 아프지만 않다면 정말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있는 곳부터 지금 이 현실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은 움직일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뼈마디가
대신 알려주고 있었다.
“ 굉장한 일을 저질러 버린 것 같아 나… ”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지만 이미 돌이킬 수는 없었다. 대충 물을 받은 후 욕조에 들어가자,
때를 같이 해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란하게 이곳 저곳을 헤집는 듯 부산한 소리가 이어진다.
방청소인가, 하고 깊숙이 욕조 안에 몸을 밀어 넣는데, 요란한 아줌마의 음성이 들려왔다.
“ 이 방 또 왔나 보네. 하여간 돈도 많아. 여기 한 달이면 웬만한 전세는 그냥 얻겠네 그랴. ”
2인 1조인 듯 또 다른 음성이 이어졌다.
“ 그러게나 말이우. 좋겠어, 돈 많은 사람들은. ”
그리고 한동안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수선스럽게 오고가던 그들의 대화가 다시금 귀에 와 꽂힌 것은,
느닷없이 내지른 짜증섞인 음성 때문이었다.
“ 또 이래 놨네. 하여간 기운도 좋다니까. 도대체 여기 쓰는 양반은 처녀만 좋아하나.
한 번 왔다 하면 그 때마다 시트에 피칠을 해놓는다니까. ”
재중의 얼굴이 벌겋게 익어버렸다. 재중은 당황해서 욕조안에 앉은 채로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 여기도 청소한다고 들어오면 어쩌나. 아마도 그렇겠지. 문, 문은 잠궜던가…
머릿속이 온통 전쟁을 일으키는 듯 하다. 도대체 정리가 되질 않는다. 어쩌나. 어쩌나.
한동안 허둥대던 재중의 귀에 맞장구를 치는 다른 음성이 들려왔다.
“ 혹시 바람피우는 거 아녀? 마누라 집에 모셔놓고 아무 여자나 사서 이러는 거 아니냐고.
그 뭐냐, 그렇지, 원조교젠가 뭐시긴가 하는 거 말여. ”
와이프가 집에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여자는 사서 이러는 건 아닌 듯 했다.
무엇보다도 재중은 남자니까. …원조교제라는 건 사실이지만. 뒤늦게 재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구나. 나 아직 미성년인데. 정말 원조교제구나.
잘 나가는 여학생들에게나 해당될 거라고 생각했던 그 단어가 이렇게 갑작스레 자신을 찾아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재중은 몇 배로 당황해 버렸다. 어쩌지. 어쩌지. 들키면 정말 끝장이야.
퇴학.
강렬한 단어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안돼! 고교중퇴는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 욕실은 청소했나? ”
헉. 재중은 너무나 놀라 그대로 기절해 버릴 것 같았다. 심장은 이제 두근거리는 정도를 지나쳐 쿵쾅거리며
DDR을 춘다. 덜컥. 문 돌아가는 소리에 맞춰 이제 심장은 매니악을 달리기 시작했다.
“ 잠겨 있네? 이봐, 열쇠 가져왔어? ”
“ 이봐, 잠겨 있으면 사람 있는 거 아니야? ”
그래요, 나 여기 있어요! 재중은 들리지 않게 마음속으로 힘껏 외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대로 가주었으면.
그냥 돌아서서 가주었으면.
“ 괜찮아, 이 방 언제 이 시간까지 누구 있는 거 봤어? 방 주인은 아까 나갔고,
여자들은 항상 밤에 내보내는 것 같던데. ”
“ 어이구 많이도 아시는 구랴. ”
아마도 윤호는 관계를 가져도 같이 잠은 자지 않는 것 같았다. 어라, 그럼 왜 나는 돌려보내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 그까짓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핀치에 몰려 허둥지둥 주변을 돌아보던 재중은
문득 시야에 들어온 목욕세제를 보고 눈을 번쩍 떴다.
달칵. 동시에 열쇠가 돌아가고 활짝 문이 열렸다. 기운차게 들어온 아줌마 중 하나가 말했다.
“ 응? 커텐이 처져 있네. 누가 있나? ”
커텐 너머로 부옇게 비치는 욕조를 향해 다른 한 명이 말했다.
“ 청소 좀 할께요. ”
그와 동시에 재중은 이미 욕조에 가득 찬 거품으로 머리를 감는 시늉을 했다.
커튼 너머로 희미하게 모습을 확인한 아줌마들은 서둘러 대충 커튼으로 가려진 부분만 제외한
나머지를 재빨리 치우고 물품을 채운 후 사라졌다. 한참동안 욕조에 앉아있던 재중은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100을 더 센 후에야 비로소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이 짓도 할 거 아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