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35)

동이 눈을 뜬 것은 의원이 탕약을 들고 용왕의 침전에 든 것과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의원은 환자가 정신을 차렸으니 

행여라도 목 달아날 일은 없겠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거기 내려놓고 물러나라.”

“예.”

더군다나 용왕의 심기도 한결 안정되어 보여 방금 전에 벼락같은 호통을 치며 살벌한 위협을 서슴지 않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저 인간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그가 인간인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다시 침전에 동과 둘만 남게 되자 광해는 순순히 사과했다. 솔직히 광해가 사과할 문제는 아니었다. 동이 원한 일이었고, 

자신의 실책이라면 그저 자리를 비운 것뿐이니 말이다. 그간 둘이 놀아난 것을 따지고 본다면 그 물건이 동의 몸을 헤집어 

놓을 것이라는 예상은 절대로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광해는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자신을 보는 시선에 한숨을 내쉬며 사과해야 했다.

“미안하다.”

“…… 뭐가요?”

“본의 아니게 상처를 입힌 셈이 되었으니 부주의한 것을 사과하는 거다.”

“…….”

동은 광해가 내미는 한약이 뭔지 묻지도 않고 그것을 마셨다. 일어나 앉는 행위가 끔찍하게 느껴질 만큼 겁이 났지만 광해의 

부축을 받아 앉아 보니 그 지독한 피비린내로 예상한 것과는 달리 상처가 심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쓰고 떫은 한약을 

다 마시고 나서야 아직 닦아내지도 못한 목마 근처의 질펀한 핏자국을 볼 수 있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갔던 약이 고스란히 

다시 넘어올 것 같은 느낌에 동은 인상을 찌푸렸다.

“당과를 주랴?”

“저거……. 다 내 몸에서 나온 겁니까?”

“…….”

동은 몸서리를 쳤다. 저렇게 피를 흘리고 아직도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인간의 몸에 몇 리터의 

피가 있더라? 당장 저렇게 흘러 있는 것만 봐도 피티병 콜라 두 병은 족히 나오겠다 싶었던 것이다.

“아니면 사탕을 주랴.”

“사탕 쪽이 좋을 것 같네요. 당과는 뭔지 모르겠습니다.”

광해가 집어 입안에 넣어 준 것은 새콤달콤하면서 시원하게 목으로 넘어가는 과일 맛이 났다. 더군다나 사탕인데도 이에 들러붙지 

않는데다 딱딱하지도 않았다.

“이게 뭡니까?”

“사탕을 달라고 했잖아.”

“이런 사탕 처음 먹어 봅니다.”

“원래 사탕이 그런 거다.”

“하나 더 줘 보십시오.”

“맘에 드는가 보구나.”

광해는 붉은 사탕 하나를 다시 집어 동의 입에 넣어 주었다.

어린 새처럼 쫑긋쫑긋 입을 벌려 사탕 받아먹는 모양이 가슴팍이 아프도록 아까웠다.

마음에 든 맛에 살짝 웃음까지 짓던 동이 침상 한켠에 걸터앉아 있는 광해의 가슴팍으로 머리를 기대 오자 광해는 다소 몸을 

경직시키며 그를 품에 안았다.

“결혼 이야기는 저도 몰랐던 것입니다.”

“…….”

“그런 언질은 받았지만 그렇게 신문에 날만큼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몰랐다는 말입니다. 저도 기사를 보고 놀랐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해서 열흘 정도 말미를 얻었을 뿐입니다.”

“네가 혼인을 하던 하지 않던 내게는 상관없다.”

“그렇습니까?”

“그래.”

광해는 모든 것을 그에게 말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계획한 대로 말이다. 비록 주작을 소개 시켜 주어 그가 주작을 따라 

나서도록 하지는 못할 형편이 되었지만 그건 나중에 어떻게든 해결이 날 것이니 자신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인간에게는 말이다. 삼충이라는 것이 있다.”

“예?”

“내 말 끝까지 들어라. 머리와 배 그리고 발에 각각 충이 있어서 삼충이라고 하지. 하늘에 계신 하늘님이 인간의 행실을 

알아보고자 나고 자라 죽는 그 순간까지 인간과 함께 더불어 살며 그분의 눈과 귀가 되라 명한 것들이지.”

“하늘님? 여호와 말하는 겁니까?”

“그건 하나님이지. 하늘님은 다른 분이시다. 내가 양것들이 떠받드는 신을 일러 그 분이라 하겠냐?”

“아아…….”

광해는 품안에 찰싹 감겨 오는 동의 머리통을 턱으로 꾹꾹 누르며 살짝 팔에 힘을 주었다 풀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좀 더 누워서 

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놓아주기가 싫었다.

“헌데 아주 가끔 삼충을 잃어버리는 인간이 있다.”

“……?”

“그런 자들은 천상 명부에서 이름이 지워져 삿된 것들의 노리개 감이 되어 버리지. 빛도 어둠도 없는 곳에 끌려가 숨이 끊어질 

때가지 산 것의 생기를 탐하는 그것들에게 희롱당하며 필설로 설명 못할 고초를 겪게 되는 것이다.”

“무시무시하네요.”

“네가 삼충을 잃어버렸다.”

“예?”

놀란 듯 되물으면서도 동은 온 몸에 힘을 빼고 광해의 가슴에 기댄 채 일어나지는 않고 있었다.

“내가 숙주를 잃은 삼충을 주웠는데 처음 널 봤을 때 내가 주운 삼충이 네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네가 너무 귀엽고 

욕심이 나서 네게로 돌려주지를 않았다. 네가 나에게 맞춘 듯 놀아나는 것이 삼충 없는 탓이라 여겼거든.”

“아…….”

“짧은 생각에 용의 정을 스미도록 하면 삿된 것들도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고 또 네가 삼충을 잃은 자라는 것을 그들이 

알지 못할 것이니 별 사단이 날까 싶기도 했던 거다.”

“…….”

“이미 천상 명부에서 네 이름은 지워졌다. 미안하구나. 그것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 할 말이 없다.”

“당신의 정을 스미게 해준다는 게 나랑 섹스하는 걸 말합니까?”

“…….”

“전 그걸 좋아하니까 특별히 사과할 일이 아닌 거 같은데요?”

광해는 부드럽게 웃으며 동의 등을 쓸어 주었다. 아이를 안고 어르는 것 같은 손길이었지만 동은 내처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 처지가 언제까지고 널 돌봐 줄 수 있다 장담할 수가 없다.”

“…….”

“긴 이야기가 될 텐데 다 들어줄 테냐?”

“해보십시오. 이대로 편하니까요. 딱히 아픈데도 없고 전 이 자세가 좋은데요?”

“그래.”

광해는 아주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온 이야기. 그가 어째서 동을 돌봐 줄 수 없는지. 그가 왜 동을 

주작에게 넘기려고 하는 것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하려 마음먹은 것이었다. 아무한테도 낱낱이 이야기 해 본 적이 없는 

짜증나는 과거였다. 생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치솟고 살점 하나하나가 분노로 물드는 것 같아 여간해서는 생각하지도 않으려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털어놓아야 할 것 같았다.

“난 전전대 용왕이신 백룡 자겸의 서자로 태어났다. 내 어미는 어떤 자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알을 깨고 태어났을 때 

내게 용왕이 될 자격이 되는 증표가 있었기 때문에 적손을 낳으신 용부인께서 격하게 노하여 나를 해치려 하셨지.”

“당신 알에서 태어났습니까?”

“내가 용이라는 말은 안 했더냐?”

“흠……. 계속 하세요.”

동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자코 광해의 말을 듣기만 했다.

“형님 되시는 전대 용왕 청명은 알에서 깨어났을 때 그 표식이 보이지 않았거든. 물론, 용왕의 적손인 경우 성인이 되어 

그러한 표식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으니 그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더군다나 용왕과 용부인 사이에 태어난 적손의 경우 

그 표식이 없어도 대통을 잇는 것은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는다. 용왕이란 종신·세습 직이니까. 하지만 큰어머니 되시는 

용부인께서 용왕의 표식을 갖고 태어난 나를 보는 마음은 그렇게 태평하지 않으셨을 거다. 어쨌든 당신의 아들은 갖지 못한 

표식을 서자인 내가 갖고 태어났으니 그냥 간과할 수 없었겠지.”

“…….”

“용부인께서는 도리천으로 올라가 서왕모께 눈물로 읍소했고, 서왕모께서는 내 이름을 천상 명부에서 지워 버리셨다.”

“……?”

“아버지이신 전전대 용왕 자겸께서 나를 감추려 했지만 삿된 것들의 손에서까지 나를 감출 능력은 없으셨다. 나는 갓 태어난 

아기 적에 빛도 어둠도 없는 곳으로 잡혀가 그곳에서 자랐다. 용은 어미와 아비 되는 자의 기를 받고 자라는 것인데 

나는 죄와 고통, 분노와 증오를 먹고 자란 것이라 하더구나. 제석천님의 말에 따르면 내가 죽지 않고 이렇게 성장한 것은 

아무도 그 영문을 알 수 없다고 하더라. 내가 그곳에 끌려간 것을 모르고 아비는 날 찾아 세상을 다 뒤지셨지만 결국 찾지 못하셨지.

하늘 주인 되시는 제석천님께 그 마음의 짐을 털어놓은 것은 그 분이 하늘이 주신 수명을 다 살고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그 때 나는 이미 그곳에서 인간의 나이로 열댓 살은 먹었을 때였다. 제석천님이 당신의 부인되시는 서왕모가 행한 일을 

깨닫고 나를 찾아 그곳으로 친히 오셔서 나를 데리고 나오셨다. 천상 명부에 다시 이름을 써 올려 주시고 그 분이 귀애하시는 

사방신을 내 친구로 만들어 주셨지. 하지만 난 많이 비뚤어지고 난폭한 성품을 가진 미친 용이었다.”

“…….”

“형님 되시는 용부인의 적자가 동해 용왕의 자리에 즉위 하실 때까지 나는 도리천 선견성에서도 매일 같이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서왕모가 나를 혐오하셨고, 용부인께서 내가 살아 있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또한 그 분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시시때때로 나를 노렸지. 살아남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세월이었다. 하지만 난 살아남았고, 형님은 용왕이 

되셨지만 그래도 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자들은 너무 많아 하나하나 꼽을 수도 없다. 지금은 형님께서 갑자기 후사 없이 

비명횡사 하는 바람에 내가 용왕의 자리에 앉아 있으나 나는 이 자리가 싫다.”

“왜요? 종신·세습직이라면 그것도 철밥통 아닙니까?”

광해는 부드럽게 동의 어깨와 등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냥 싫다. 궁이 갑갑하고 면류관이 무거워서 싫다. 내 자리가 아닌 듯해서 싫고, 자질 없는 용왕을 모시며 백성들이 힘들어 

할 것이 싫다. 아니. 모든 것에 앞서서 아직도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너무 많고, 그들이 내 목숨을 노리는 것은 

내가 용왕의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냥 미친 용으로 살면 그들도 나를 경계하지 않을 것인데 하늘 주인 되시는 

제석천님 외에는 누구도 머리 위에 두지 않는 용왕의 자리에 있으니 그들이 어찌 나를 가만히 둘 것 같으냐. 내 명줄을 재촉하는 

이 자리가 나는 싫다.”

“암살이라도 당할 것 같습니까?”

“훗……. 이래봬도 내가 용이다. 암살이야 당할까마는 추잡하고 더러운 음모가 싫고, 그들의 술수에 놀아나는 게 싫은 거다. 

아직은 내가 완전한 용왕이 아니니 저들이 시시때때로 틈을 노리고 있지만 이제 곧 용부인을 들이면 아무도 나를 동해 용궁의 

옥좌에서 끌어내리지 못하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아무나 용부인으로 들일 수밖에.”

“무슨 소립니까? 당신의 입지가 용부인을 들여야 튼튼해진다는 말입니까? 당신도 정략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다소 높아진 목소리로 묻고 있었지만 동은 여전히 광해의 품안에서 머리를 들지는 않았다.

“용왕은 용부인을 맞이해야 비로소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용왕의 권위를 가지는 거다. 내가 아직 미혼이니까 내 자질 문제는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지. 자신의 자손으로 동해 용궁에 세력을 가지려는 자들은 어떻게든 그 일을 성사시키려고 하고, 

형님이 가까스로 남기셨다는 형님의 적자를 찾고 있는 자들은 내가 용부인을 들이면 조카님을 찾아내도 날 이 자리에서 끌어내리지 

못하니 그 일만은 막으려 들고 있지. 용부인을 들이면 용왕의 자리는 비록 정당한 옥좌의 계승자가 나타나도 결코 번복되지 

않는 일이거든.”

“왕위 계승자가 나타나도 말입니까?”

“말했지 않아. 용왕은 종신·세습 직이라고 용왕을 갈아치울 수 있는 것은 용부인을 들이기 전. 그러니까 용왕이 미혼일 때뿐이다. 

탄핵도 쿠테타도 용부인이 있는 용왕에게는 해당 없는 이야기지.”

“그런데 왜 제게는 당신이 혼인하는 것을 꺼리는 것처럼 들립니까? 부인을 들이면 더는 아무 걱정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게 

아닙니까?”

광해는 자신의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를 동이 매우 영리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에 감탄했다. 밝히고 노는 것만 보면 생각 없는 

색정광이라 여겨져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인데 머리가 비상한 것이 보통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 자랐으면서도 

용궁에 와서 안색이나 한 번 바뀌었던가? 이 인간의 배포가 남다르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용인 자신보다 나은 재목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훗……. 난 조카님을 찾게 되면 조카님에게 이 옥좌를 주고 싶다. 권세를 가지고 싶어 한 적도 없고, 형님의 옥좌를 탐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겪은 일을 말하지 않았냐. 그러니 이런 옥좌 따위는 징그럽고 싫다. 정치도 싫고 권력 암투도 

진저리난다. 내가 용부인을 들이면 조카님이 와도 내가 이 자리에서 물러나지를 못하니 그래서 혼인하기 싫은 것이다.”

“그런데 조만간 혼인을 한다면서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

그 피치 못할 사정이 제갈동이라는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할까. 광해는 불현듯 그런 생각을 했다. 일이 이 지경으로 치닫도록 

자신조차 깨닫지 못한 진실이었다. 끝끝내 목숨이 위태로워도 조카를 위해 용부인은 들이지 않겠다던 광해가 마음을 바꾼 것이 

제석천의 어떤 말 때문이었나. 그는 동을 위해서 용부인을 들이겠다 하였고, 동이 삿된 것들에게 끌려가는 일만은 막아 보겠다 

조카를 배신한 셈이 아닌가. 아깝고 아까워서 주작에게 주기 쓰리고, 또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기와 신이 대가리를 들이밀고 

나온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늦어 버렸지만 주작 주원이 전해 준 말처럼 마음으로 그가 흐르는 것을 알지도 막지도 못한 스스로가 한심해 졌다.

“용부인은 누가 되는 겁니까. 용왕의 부인이니까 용만 될 수 있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니다. 용은 어떤 존재와도 교접할 수 있으니 용부인의 자격이란 것은 없다. 대신 내 부인이 될 자는 동해 용궁에 

세를 넓히고자 하는 권세 높은 가문의 자제분이겠지. 나도 그가 누구로 낙점 받을지는 모른다.”

“자기 와이프 될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됩니까?”

“별하 더러 처녀 단자에서 아무나 뽑아 낙점하라고 했다. 내 마음에 드는 자로 부인 삼을 수가 없으니 모시는 자의 마음에라도 

들어야 할 게 아니냐.”

“주방장이요?”

“그가 이곳 동해 용궁의 제1비서관이다.”

“훗……. 용왕이 횟집 차리고 제1비서관이 회를 뜬다……. 막가는 세상이네요.”

“뭐…….”

광해는 겸연쩍게 조금 웃다가 제일 가슴 쓰린 말을 하려 했다. 그것이 목구멍에 머물기도 하고 혀끝에 맴돌기도 하는데 한참 동안 

아무리 해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애를 먹어야 했다.

“동아.”

“…….”

“그리하면 내가 널 돌봐 줄 수가 없다.”

“그렇겠네요. 정식 부인이 애인 꼴을 두고 보겠습니까?”

“내가 널 돌봐 주지 못하면 네가 어떤 꼴을 당할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나는 안다. 내가 그곳에서 겪은 일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해.”

“…….”

“그러니 내가 너를 누구 다른 이에게 부탁해야 했다.”

광해는 이야기를 시작하고 난 후 처음으로 동이 자신의 품을 빠져 나가자 맥없이 그를 놓아주어야 했다. 침상에 창백한 얼굴로 

똑바로 앉아 광해를 바라보는 동의 표정은 한 톨의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원래 왕후장상의 씨라 평가할 수 있을 만큼 싸늘하고 

품위 있는 얼굴이지만 이렇게 마음 한켠도 내 비추지 않은 채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기품 있는 시선은 광해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좋은 이다. 내게는 그곳을 나와 처음으로 사귄 친우이고 지금까지 그 마음이 변치 않는 오랜 벗이다. 그가 곧 황룡을 가진 

완전한 사방신이 될 것이니 그 권능과 정순함 또한 나와 비교해 결코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정한 이이고, 사려 깊은 이다. 

그러니 널 돌봐 줄 거다. 오늘 너와 그를 인사시켜 주려고 널 용궁으로 데려온 것인데 내가 실수를 해서 네가 험한 꼴을 당했구나.”

“…….”

동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정말 밀랍으로 만든 인형같이 앉아 거만한 눈으로 광해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나의 내일이 어떨지 모른다. 내가 내일 당장 숨이 끊어져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러니 널 돌봐 줄 수가 없어. 이것이 

나 혼자만의 문제라면 끝까지 널 욕심내고 싶지만.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지만 내 몸 하나도 추스를 기운이 내게는 없다. 

그러니 넌 주작에게로 가서 제 살길을 모색하는 것이 옳을 게다.”

“주작이요?”

“내 오랜 벗 사방신의 주작. 불의 주작. 지순한 남쪽 땅의 수호신 주작 주원이 내가 너를 맡기려는 이다. 그가 좀 기다려 줬다면 

너도 만날 수 있었을 테지만 워낙에 물을 싫어하는 녀석이라 먼저 돌아가 버렸구나. 그가 흔쾌히 승낙했으니 삼충 잃은 단전으로 

탁기가 모여들어 그곳으로 끌려가는 일은 없을 거다. 그러니 안심해도 좋다.”

“후훗…….”

동은 아주 짧게 웃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암만 혼백이 나갈 정도로 흥분해도 여간해서는 반말 짓거리하는 성품이 못되니 

그것은 혼잣말이 분명했다.

“출세했네. 용왕에 주작이라……. 현무하고 청룡, 백호도 만날 수 있는 건가?”

“보고 싶다면 만나게 해주지.”

“그보다 먼저.”

입술을 삐죽거리며 혼잣말을 마친 동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광해를 바라보았을 때 광해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 광해의 눈에 비춘 것은 그냥 반짝이는 별이었다.

짜악!

양 볼이 화끈거리며 눈앞에는 별이 보이고 한참 동안 귓속에까지 벌 한 마리가 웅웅 대는 것 같아서 광해는 아야 소리도 못한 채 

멍하니 넋을 빼고 있어야 했다.

동은 양손을 들어 광해의 두 뺨을 단번에 올려붙인 것이고 광해는 한참만에야 굉장히 화가 나 보이는 동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정말로 정신이 번쩍 날 만큼 매섭고 정확한 손매였다.

“이게 무슨…….”

하지만 동은 제 양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빙그레 웃는 게 아닌가.

“진짜로 되네. 쌍뺨……. 아픕니까?”

“네 놈이 진정 용왕 상투를 쥐고 흔들 놈이 맞는 거였구나.”

“아! 그 때 그렇게 말했죠. 그렇네요. 용왕한테 쌍뺨을 날릴 정도면 나도 진짜 간땡이가 부어서 눈에 봬는 게 없는 건 확실하네요.”

그리고 다음 순서로 동은 광해의 침의 멱살을 틀어쥐고 창백한 제 얼굴을 광해의 얼굴 코앞으로 갖다 붙였다.

“똑똑히 들어요. 바보 아닙니까? 자길 노리는 사람이 많다고 맥없이 앉아 당하기만 하는 게 미덕인 줄 아십니까? 날 물어뜯으려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물어뜯어 버리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물어뜯기만 할까요? 아니죠. 내 팔을 베는 놈이 있으면 그 놈 목을 뽑아 

버려야 하는 겁니다. 세상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겁니다. 거기가 어딘지는 모르는데 그 무섭고 지독하다는 곳에서 살아남았다고 

당신이 강한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끝까지, 최후까지 살아남는 게 강한 겁니다. 나보다 강해서 날 위협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재껴 버려야 겁니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그들이 바라는 대로 유순하게 행동하면 상대방도 인정을 갖고 날 대할 거라 

생각합니까? 천만에요. 그런 자비로운 적은 어디도 없습니다.”

“동아…….”

“하! 기가 막혀서……. 진짜 당신 지금 얼마나 한심해 보이는지 알아요? 용왕의 표식을 갖고 태어났으면 멀쩡하게 옥좌에 앉아 

있는 형님이라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궁리를 해야지. 하늘이 도와 당신이 앉아야 하는 자리에 앉은 게 죄책감이라도 느껴지는 

겁니까? 조카를 줘요? 표식은 당신이 갖고 태어났습니다. 조카가 용왕의 표식을 갖고 있을지 없을지 누가 압니까. 갖고 있다고 

해도 늦게 태어난 것이 죄이니 조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가질 필요 없는 겁니다. 왜냐구요? 당신이 지금 앉아 있는 자리는 

당신 자리니까요. 당신이 태어날 때 표식이 있었다면 그 자리는 당신 겁니다. 당신이 가질 수 없었지만 결국 갖게 되었다면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당신 자리란 말입니다. 내 말 알아들어요? 당신은 거기 떠밀려 앉게 된 게 아니라. 원래 거기 앉아야 

하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가진 것에 죄책감 갖는 바보짓을 하면서 날더러 지금 당신 마음을 이해하라는 겁니까?”

“나는…….”

광해는 이렇게 무서운 제갈동은 처음 봤다. 세상에 제석천보다 더 무시무시한 말을 하면서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광해의 

재롱동이는 망설이지도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고생 많이 하면서 산 것은 알겠는데 그 패배주의는 도무지 납득이 안 되네요.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태어났을 때 내가 운이 좋아 부잣집 외동아들 자리에 있었으니 나는 그 자리를 필사적으로 지키는 겁니다. 내가 행실을 

잘못해서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빼앗길까 봐 불편하고 번거로워도 그것이 힘들다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당신은 뭡니까. 

살길이 뻔히 있는데도 뭐요? 내일 내가 어찌될지 모른다구요?”

“그게 아니라.”

“아니면 뭐요. 당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서왕모요? 서왕모의 힘이 얼마나 센지는 모르니까 설명해 주세요. 서왕모가 용왕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

“용왕은 서왕모에게 예를 표할뿐 그 지시를 받는 자는 아니다.”

“별거 아니네요. 제석천의 아랩니까? 용왕이?”

“아래라고는 하나 그 분이 바다의 일에 간섭하지도 않으신다.”

“제석천이 당신을 그 끔찍한 곳에서 데려 나오고 또 이름도 다시 적어 줬다면서요. 천상 명분가 뭔가 하는 곳에.”

“그렇지.”

“그럼 일단 제석천은 당신 편이 맞네요. 그리고? 또 당신을 해치려고 드는 자들 중에 용왕한테 삿대질 할 수 있을 정도로 

권력이 센 자가 누굽니까.”

“그건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문제다.”

“흠…….”

동은 좀 어지러운지 살짝 이마를 짚다가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침상 바로 곁에 있는 사탕 접시를 가리켰다. 그걸 입에 넣어 

달라는 모양 같아서 광해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사탕을 집어 동의 입에 넣어 주어야 했다. 자신이 왜 이렇게 화난 동의 앞에서 

쩔쩔 매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동은 무섭고 살벌했다.

“당신은 정력도 세고, 음……. 이거 정말 맛있군요. 그러니까 힘도 세고 지금 용왕이기도 하고 다 좋은데 말이죠. 정치를 너무 

모르는 거 같군요.”

“……?”

사탕을 오물오물 씹으며 살짝 미간을 그은 동이 다시 광해를 똑바로 쳐다보자 광해는 이 앙큼한 것이 또 뭐라 말할까 걱정부터 

되었다.

“용부인을 들이면 그 때부터는 일단 아무도 용왕 자리에 당신이 앉고 내려가고를 언급하지 못한다고 말했죠.”

“…….”

“그런데 당신은 당신 사람이 누군지 적이 누군지 구분을 못하는 거 같고. 내 말 맞습니까?”

“…….”

광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용부인은 어떤 일을 합니까.”

“바다 백성의 살림을 살피고 용궁의 안살림을 맡아 하는 것이지만 그 으뜸 되는 일은 무엇보다 용정을 받고 용손을 수태하는 거다.”

“종족은 상관없지만 여자라야 하는 거로군요.”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

“예?”

광해는 원리 원칙대로만 설명했다.

“남자라고 용정을 받아 용손을 수태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 대신 그러니까 진짜 용정을 받으면 씨앗이 말라 더 이상 자신의 씨로 

아이를 가질 수는 없게 되지.”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다구요? 무정자증 이런 게 되는 겁니까?”

“인간의 기준에서 말하자면 그렇지.”

광해는 비상하게 반짝이는 눈을 내려 뜨고 뭔가를 생각하는 동이 자신에게는 끔찍하기만 한 상황을 이처럼 신속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는 정치하는 아비와 장사하는 어미를 가졌다. 보통 인간에 비해 과하게 많은 것을 갖고 태어났으며 그것을 누리면서 성장했다는 

뜻이었다. 그 정도가 평소의 행동거지 하나 마저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그것에 대해 갖는 부담이 크다는 말이었다. 

그는 마치 광해의 오랜 벗인 백룡 용하와 같았다. 한정 없이 성격 좋게만 보이지만 어디 가서도 꿀리지 않는 집안의 귀한 손으로 

태어나 자란 용하 또한 제 몫은 확실하게 챙기는 기민한 계산이 머릿속에 있었던 것이다. 광해가 용하를 싫어하지는 않으나 결코 

그에게 동화될 수 없는 점이었다.

가진 자들은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다. 용하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가 비록 친구들에게 있어서 끝 간 데 없이 퍼 주는 

경향이 있기는 해도 그것은 단지 몇 안 되는 지란지교의 벗들에게 한했다. 그렇지 않은 자에게 있어 그는 야멸치리 만큼 쌀쌀맞은 

구석이 있었고 광해는 그것의 괴리감을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다.

“아무리 형편없는 가문의 사람이라고 해도 당신이 그를 부인으로 삼겠다 하면 아까 말한 용왕의 종신·세습직이 보장된다든지. 

아무도 용왕의 뜻에 반해 탄핵이나 쿠테타를 일으킬 수 없다든지 하는 것이 보장되는 겁니까? 일단 용부인을 들이면?”

“그가 용정을 받아 냈다는 증거가 나타나면.”

“용정을 받는 건 뭡니까.”

동은 광해의 애인이 아니라 참모와 같았다. 별하 또한 머리 좋고 영리한 비서관이었으나 이처럼 심도 있게 광해의 심정을 파악하려 

든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용왕의 자질을 증거 하는 표식은 세 개의 양물이다.”

“예?”

“즉, 용왕될 자격이 있는 자는 양물이 세 개가 있다는 거다. 기와 신과 정이라고 말하는데 용정을 받는다는 말은 그 세 개의 

양물을 한꺼번에 품어 씨앗을 받아 내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당신…….”

“응?”

“용왕의 표식을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다고 했잖습니까?”

“그랬지.”

“난 지금까지 하나밖에 보지 못했는데요?”

“아아…….”

광해는 다소 겸연쩍은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가 본 것은 정의 양물이다.”

“나머지 기와 신의 양물은 어디 있습니까.”

“그게 아무 때나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말이다. 어렸을 때 내게 그것이 있었다는 말만 들었지 실물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서…….”

“오늘 봤다구요?”

“…….”

광해가 고단하게 살아온 지난날 자신은 보지도 못한 그 나머지 두 개의 양물을 얼마나 원망하고 증오했는지를 안다면 지금 

제갈동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그걸 보여 달라는 식의 얼굴은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제갈동은 잔인하게도 냉큼 보여 

달라는 말까지 친절하게 덧붙였다.

“한 번 봐요. 세 개를 동시에 삽입해야 용정을 뱉어내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내 마음대로 나오고 들어가고 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나하고 놀면서 나왔다 이 말입니까?”

“…….”

“아까 목마 위에서 갑자기 쑥 빼내고 옷을 입은 게 기와 신이 나와서 창피하고 놀라 숨긴 거였습니까?”

“부정할 수는 없구나.”

동은 광해의 침의 고간을 더듬던 손을 빼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정자증이 된다 이 말이죠.”

“……?”

“뭐 그건 어쨌든! 일단 아까 한 말은 사과하고 취소하십시오.”

“무슨 말을 말하는 거냐?”

“날 무슨 짐스러운 물건 마냥 주작에게 넘기네 어쩌네 했던 말 말입니다.”

“허나 내 처지가 널 계속 돌봐 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광해는 이 녀석이 곧잘 광해의 처지와 상황을 이해하는 것처럼 굴었다가 또 갑자기 왜 이러는가 싶었다.

“내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널 끼고 앉아 있을 수 있겠냐. 내가 없어지면 넌 당장에 삿된…….”

“약한 소리 하지 마십시오.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에게 단검이 있으면 당신을 베겠다고 덤비는 모든 이들을 찌르십시오. 

당신에게 긴 칼이 있으면 당신을 업신여기는 모두의 앞에서 휘둘러야 합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리고 듣기에 당신은 

그 어떤 것보다 큰 힘을 갖고 있으면서 그걸 사용하는 것에만 겁먹고 있는 것뿐이에요. 그러니 저들이 더 당신을 얕잡아 보고 

함부로 행동할 수 있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권력은 휘두르기 때문에 권력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뺏기는 짓은 절대로 바보들만 

하는 짓이라구요. 알아들었어요? 날 좋아합니까?”

광해는 갑자기 바뀌는 화제에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금세 그 말의 말미에 붙은 물음에 뭐라 답해야 좋을지 몰라 한참 동안 굳게 입을 다문 채 동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쉽게 내뱉을 수는 없는 말이었다. 허나 그것은 방귀나 기침처럼 감추고 가릴 수도 없는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물론……. 물론, 나는 네가 아깝다. 아까워서 주원에게 널 주는 게 싫다. 허나 내 욕심을 차리다 널 그곳으로 끌려가게 할 수는 

없다.”

“당신이 나와 섹스를 하는 동안은 그들이 날 끌고 가지 못한다면서요.”

“내가 언제까지 지상에서 너와 어울려 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당연히 그럴 수는 없겠죠. 권력이라는 것은 그만한 책임이 뒤따르는 일이니 용왕님께서 그렇게 한가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 정도도 물정 모르는 바보는 아니니까 안심하십시오. 뭐, 지금 보면 당신이 나보다 훨씬 더 물정을 모르는 거 같아서 답답할 

정도니 그 점은 걱정하실 필요 없을 것 같군요.”

그렇게 말을 한 뒤 동은 광해의 침의를 확 들췄다. 그 아래로는 앞섶을 뜯어낸 비단 바지만 있었으니 졸지에 양물을 드러낸 

꼬라지가 되어 버린 광해는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동을 만류하지도 못했다.

“이러지 마라. 네 몸이 지금 많이 상해서 날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짓 하려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 나는 당신과 달라서 우선 내 몸이 먼저고 그 다음이 내 바람입니다. 나한테 당신이 아무리 

중요해도 당신 생각 하는 것은 세 번째 밖에 안 된다는 말입니다.”

“뭐라?”

새파란 얼굴을 하고 침상에 엎드려 광해의 고간으로 얼굴을 묻은 동은 할짝거리며 혀를 내밀어 그의 양물을 핥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아주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는 그동안 내 사랑을 담뿍 받았으니 다른 애들도 좀 선 보여주지? 내가 마음에 결정을 하려면 진면목은 모두 알고 판단해야지. 

안 그래? 괜히 빼지 말고 나와 봐. 기라는 녀석이랑 신이라는 녀석도 면상을 좀 보자. 견적이 나와야 나도 할지 말지 선택할게 

아니냐구. 응?”

그 목소리가 너무도 달콤하고 관능적이라서 광해는 이럴 상황이 아님을 알면서도 뻐근하게 힘이 들어가는 하초를 어찌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뿐이 아니었다. 근질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뜨거운 것 같기도 한 낯선 감각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흐음……. 너희냐? 기와 신이라는 녀석들이?”

“읏!”

우람하지만 평범한 남근과는 달리 머리도 없고 길면서 꿈틀대는 물뱀처럼 제멋대로 요동치며 움직이는 기와 신의 모습은 

광해의 눈에 끔찍할 만큼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동은 침의 앞섶을 가리려는 광해의 손목을 붙들고는 그 모양을 더 자세히 

관찰하느라 엎드려서 꿈쩍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견적이 좀 세기는 하다. 니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양심이 있으면 아니라고는 말 못할 거다. 아……. 니들한테는 입이 없어서 

말은 못하겠구나.”

광해는 한참만에야 벌떡 일어서서 야무진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동의 시선에서 그 흉물스러운 것들을 얼른 가려야 했다. 

그가 살면서 이처럼 치욕스러운 날은 없었다. 물론, 그것이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지극히 주관적인 수치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리고 다른 용왕들이 모두 이것들을 갖고 있음도 머리로는 알지만 적어도 동에게 보여주고픈 모양새는 아니었던 것이다.

“결혼합시다.”

“……?”

“용궁의 시간이 길다고 했죠. 한 시간이 세 시간과 같으면 하루는 사흘, 열흘은 한 달과 같겠군요.”

“…….”

“내가 어머니께 말미를 얻은 것이 열흘이고 그 중에 이틀을 써 버렸으니 용궁 시간으로는 이제 스무 나흘이 남은 거니까 혼인하여 

내가 당신 용정을 받고 무정자증이 되는데 시간이 빠듯한 겁니까?”

동은 망설이는 법이 없었다. 잠자리에서도 잠자리가 아닌 곳에서도 말이다. 아니, 지금 이곳이 용왕의 침전이고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가 침상이라는 것을 따진다면 당연히 그가 이처럼 당당하고 뻔뻔한 것이 이해되어야 했다. 하지만 광해는 제 목숨 중한 줄도 

모르고 자신처럼 적이 많은 자의 부인이 되겠다는 동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미 옥좌에 앉은 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암습과 음모로 곤혹을 치루지 않았는가. 그들이 용부인이라고 봐주지는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한낱 인간이 용부인 자리에 앉았으니 자신 보기를 벌레보다 못한 눈으로 바라보는 서왕모가 그라고 어여삐 보겠는가?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동아. 내가 너를 싫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가 생각처럼 그리 만만하지 않다. 더군다나 오늘 당장 내가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위험한 일을 네게 맡기고 싶지 않다. 나 역시 너를 부인으로 맞을까 하는 생각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너를 아끼기 때문에 너를 그 더럽고 위험한 곳에 두고 싶지 않은 것이다. 너를 주작에게 주더라도 그래서 내가 다시는 너를 보지 

못한다 해도 내 고단한 삶에 너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거다.”

“약한 소리는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벌써 잊었습니까? 난 내 몸과 내 바람이 먼저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고,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판단하고 내린 결정이니까 두말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정치와 암투, 

권모술수와 추잡한 협잡, 모함이나 음모 따위는 내게 너무도 익숙한 일이니까 당신이 그런 걱정 할 필요 없습니다.”

“동아…….”

“나는 당신하고 다릅니다. 나는 날 위협하는 녀석들은 그냥 안둡니다. 나름 계산이 서고 승산이 있으니까 거기 끼겠다는 겁니다. 

내 목숨 귀한 줄은 나도 알고 내 몸 위하는 일도 당신보다 내가 더 잘합니다. 하늘 주인이라고 하는 제석천보다 높은 사람 있습니까?”

“없다.”

“그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당신이 부인을 들여 용왕직을 종신·세습직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니 절차를 서두르세요. 

나도 내 어머니께 받은 말미가 그렇게 밖에 없으니 용정을 받아서 무정자증이 되는 게 아주 급합니다.”

“네가 제석천님을 믿고 있는 모양인데 그 분은 결코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으신다.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 평화는 절대로 

유지되지 않을 것이야. 그 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지만 모든 것을 모른 척 하신다. 네가 바라는 대로 내 힘이 되어 주실 분이 

아니다.”

광해는 제석천의 독특하고 괴팍한 성품을 설명하려 했지만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그것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것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광해의 품안을 빠져 나와 화려한 비단 금침을 덮고 누워 버린 동은 오만하고 기품 있는 얼굴로 광해에게 명령했다. 그가 

말하는 제석천에 대한 설명은 들을 필요조차 없다는 태도였다.

“그건 구워삶기 나름입니다. 그런 쓸데없는 걱정할 시간 있으면 가서 혼인에 관련된 절차나 밟고 오십시오. 내 몸은 언제 나아서 

당신하고 섹스 할 수 있는 겁니까?”

“……!”

대체 저게 인간이 맞는 것일까?

“일단 나는 좀 쉬면서 혼인할 수 있을 만큼의 컨디션을 만들 테니까. 당신은 나가서 일 보십시오. 내가 깨어났을 때는 당신이 

혼인 날짜를 받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그 정도 수완은 있으시죠?”

“동아……. 내 말을 제대로 듣고…….”

“나가요. 난 노곤해서 눈을 좀 붙여야겠으니까.”

처음에 알아봤어야 했다. 몸을 나누면서 망설이는 법도 없고 제 욕심 차리는 것에 내숭을 떠는 법도 없는 저 뻔뻔하고 이기적인 

성격을 알아봤어야 하는 것이었다. 광해는 비단 금침 위로 얌전히 내밀고 있는 손을 까딱거리면서 나가보라고 말하는 동을 보면서 

더 이상 뭐라고 그를 설득할 기운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꼭 구미호에 홀린 기분으로 침전에서 쫓겨나야 했고 그리고 모략과 음모에 능숙하다는 그 구미호의 말대로 혼인에 관련된 

모든 절차를 위해 별하를 닦달해야 했다.

갑작스러운 동해 용왕의 용부인 확정과 혼례식 재촉에 도리천의 원로원이 발칵 뒤집힌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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