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35)

“고얀 놈…….”

광해는 제법 살림집처럼 꾸며 놓은 거실 한가운데 철퍼덕 드러누워 버렸다. 세상을 떠돌며 아무데서나 먹고 자던 버릇이 몸에 배여 

잠자리도 음식도 타박이 심하지 않은 것은 체질이 되어 버렸다.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이라도 머리만 고정되면 잘 수 있는 광해는 하지만 연사흘째 한잠도 자지 못하고 있었다.

월요일 가게로 돌아와 늘어지게 한 잠 때리려던 계획은 습관처럼 읽고 있는 신문 경제면을 펼치자마자 와장창 깨져 버리고 말았다.

제갈동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별로 없고, 또 알려 하지도 않았지만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 없도록 작게 사진까지 나와 있는 

기사는 절대로 유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주말 내내 난잡하게 놀아나고 집에 태워다 준지 한 시간도 안 되서 그런 기사를 

읽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상당히 기분이 떨떠름해지는 일이었다.

호리병 안에 갇힌 악령처럼 처음엔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가 있었다. 어차피 저녁이 되면 돌아오겠다고 했으니 물어보자. 이쪽에서 

특별히 그에게 욕심을 내색한 적이 없고, 시쳇말로 찌질하게 군 기억도 없었다. 생각으로야 자신을 떠나면 당장 죽는 것 보다 

못한 신세가 될 것을 뻔히 알고 있으니 곱게 놓아 줄 마음이 없지만 거죽으로는 그런 속내를 들킨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가족이며 집안의 위신을 생각해 제 얼굴 팔리는 일만은 필사적으로 자제하려는 것만 봐도 제멋대로 그저 살아남는 것만을 생각하며 

생존했던 광해와는 다른 점이 많은 녀석이었다. 그러니 대체 저런 몸으로 지금까지 어떻게 얌전히 살 수 있었을까 싶어도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혼인 말이 신문에까지 나올 정도면 본인이 몰랐다고 하는 게 말이 안 되고, 알았으면 이야기를 해 주었어야 도리가 

아니겠느냐 싶은 것이었다.

광해에게 제갈동이라는 인물의 혼인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살 섞은 것이 몇 번인데 그 말을 숨긴 것이 

괘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일단 그는 참았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도 밤이 되어도 그 밤이 꼴딱 새 아침이 되어도 동은 광동수산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가뜩이나 자신의 혼례 

문제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거기다 동의 결혼 문제까지 겹치자 더 심기가 불편해진 광해는 그래도 기다렸다.

“참으로 괘씸한 녀석일세…….”

그렇게 화요일이 지나고 수요일이 되었다.

“감히 제깟 놈이 날 어찌 보고 이런 수모를…….”

광해가 아니었다면 벌써 그자들에게 끌려가 제발 죽여 달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모진 꼴을 당했을 것인데 지금 저리 멀쩡하게 

살아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 누구 탓인가. 물론, 그런 사정을 알지 못하니 광해가 자신에게 무엇을 해주는 것인지 짐작하지 

못하겠지만 한 마디로 뽕빨나게 박아 주고 코피 터지게 핥아 줬더니 돌아오는 게 겨우 이건가 싶어 이제는 화도 나지 않았다.

어차피 제 놈이 혼인을 하던 혼인 할애비를 하던 그가 광해의 손을 벗어나는 일은 가당치도 않았다. 아니, 딱히 광해가 아니라 

할지라도 신성한 영물이나 신수의 정으로 비어 있는 단전을 가리지 않는다면 당장에 그자들이 어둠도 빛도 없는 곳으로 그를 끌고 

갈 테니 누구의 도움이든 받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혼인을 한다고 해도 광해는 상관없었고, 하지 않는다고 해도 관여치 

않을 생각이었다.

광해는 용부인을 들여야 했고, 그리고 무슨 일을 당할지 짐작할 수 없는 입장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광해는 천상의 명부에서 이름이 지워진 동을 그냥 내버려 둘 생각도 없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주작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아무런 이해타산 없이 그저 친구라는 이름 때문에 그 일을 떠맡아 줄 이가 주작 외에는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곧 황룡을 가질 것이니 권세나 권능이 다른 자들에 떨어지지도 않고, 주작은 더욱이 성품이 다정하고 착한 녀석이니 광해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직 주작에게 말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사정이 이리 되었으니 자신의 신변에 일이 생기면 그것만은 해 달라는 부탁 같은 것은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현무라면 몰라도 주작이라면 딱 잘라 거절하지도 못할 것이고 그럴 위인도 못된다. 그렇게 일을 

정리하면 되는 것이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동의 혼인과 관련된 신문 기사는 생각지도 않았던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그리 하기로 결정했으니 인간들 속에 살아갈 동이 혼인을 하거나 말았거나 광해 알 바가 아닌데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토라진 계집애처럼 꽁하게 가슴 한구석이 답답한 것이 이런 상황 

자체가 화딱지 나는 것이었다.

그가 동에게 화를 낼 이유가 없고, 그가 동에게 서운해 할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냥 고약하다는 말. 참 괘씸한 사람이라는 말은 연신 중얼거리면서도 광해는 이게 참 파렴치하고 이기적이다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아무나 낙점해서 장가들 생각을 하면서 제갈동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욕심 부리는 이 심보가 참으로 고약했던 것이다.

미친 척하는 일을 하도 오래 했더니 이제 정말로 미친 모양이라며 헛헛하게 웃는 광해의 주변을 푸른 연초 연기가 감싸고돌았다.

동은 주방장의 안내를 받아 새로 지어 올렸다는 스틸 하우스로 향하면서 어리둥절한 기분뿐이었다. 동그랗게 반짝거리는 주방장의 

눈은 어른 남자의 그것답지 않게 검은자위가 크고 아주 까만색이었다. 그것이 호기심을 잔뜩 담고서 드러나게 드러나지 않게 자신을 

힐끔거리는데 그게 기분이 나쁜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어디 가서 빈말로도 귀엽게 생겼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동이었기 때문에 저렇게 그냥 봐도 귀여운 것이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주방장의 묘한 행동이 몹시 흥미로웠던 것이다. 고개를 모로 꼬고 한 번 자신을 보는가 싶으면 다시 체머리를 흔들며 뭔가를 

부정했다가 또 큰 눈을 깜빡이며 동을 진지하게 훑어보는 것이다. 어쩌면 저렇게 귀여운 표정이나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동은 세상에 딱 하나 자신을 더러 귀엽다느니 사랑스럽다느니 앙큼하다느니 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남자를 떠올렸다. 

아무리 봐도 저런 얼굴을 매일 같이 보는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남자는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그리 말했던 것이다.

묵직하게 손에 들린 가방이 가슴 한켠을 짓누르고 있어도 일단 눈에 보이는 주방장의 기발한 모습은 그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사장님 손님 왔는데요?”

“흐응?”

“구청 위생과 제갈동 씨가 사장님을 찾아 왔는데요?”

“아…….”

별하는 스틸 하우스 2층 거실 한가운데 룸펜처럼 자빠져 있던 사장이 게으르게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삐죽거렸다.

“그런데 진짜 돈 받아요?”

“응?”

잠을 잔다고 올라가더니 한숨도 눈을 붙이지는 못한 것인지 안색이 안 좋다.

“그 방송국 사람들이요. 진짜 돈 받아요? 그러면 안 될 거 같은데요?”

“너는 내 말이 개좆으로 들리냐?”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세상사는 데는 다 특별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암묵적으로 지키는 약속이란 게 있는데 

그 사람들한테 밥값 안 받는 게 그런 거라구요!”

동은 오늘 유난히 붐비는 듯한 홀의 분위기를 이제야 이해했다.

“방송국에서 나왔습니까?”

“응. 가게에서 뭘 찍는다며 우르르 몰려왔더군.”

동은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저렇게 태연스러운 광해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자 광해는 웃으며 

괜찮다는 손짓을 해보였다.

“상관없어. 별하는 입 싼 놈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어쩌겠는가.

“……그냥 맛집 프로입니까? 아니면 드라마나 영화 촬영?”

“유명인 맛집 탐방? 뭐 그런 거 던데?”

“누구요?”

“안채강.”

“…….”

동은 서슴없이 신을 벗고 거실로 올라섰다. 집 주인인 사람이 들어오라 청하지도 않았고, 객이 된 입장에서 들어가도 좋겠느냐 

묻지도 않았지만 그는 태연하게 거실로 들어가 한켠에 자신의 가방을 내려놓았다. 주방과 거실이 합해져 있는 이 집의 한켠 냉장고 

속에서 물을 한 잔 꺼내 마시기도 했다.

“그냥 보내세요.”

“응?”

확답을 듣기 전에는 절대로 못 돌아간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주방장과 할 일 없이 곰방대만 빡빡 빨고 있는 광해 사이에 

중재를 나선 것은 동이었다.

“안채강이 CF 안 찍기로 유명한 거 모르십니까? 그런 사람이 자청해서 자기 단골집이라고 소개하는데 10억 들여서 CF 만드는 

거보다 효과는 더 좋으니까 그냥 보내시는 게 좋다는 말이라구요. 그 정도면 밥값을 받아도 촬영 팀에서 방송 안 하겠다 강짜는 

못 부리겠지만 잔돈 아끼다가는 큰돈 못 버는 법입니다.”

“흐응?”

“주방장님이 말씀 잘하신 겁니다. 잘 대접해서 그냥 보내는 게 훨씬 이득이에요. 편집의 묘미라는 것도 무시 못 하니까 말이죠.”

“거봐요!”

“어이 별하.”

“예?”

광해는 싱크대를 집고 서서 아주 천천히 물을 마시고 있는 동과 스틸 하우스 이층 현관에 서서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는 

별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너 여기 오기 전에 저 녀석한테 뇌물 받쳤냐?”

“설마요.”

“그러데 왜 둘이 입이 맞아서 날 들볶는 거냐?”

“내가 언제 사장님을 들볶아요. 내가 들볶는다고 들볶여 주기나 해요?”

동은 머릿속이 복잡하기는 했어도 이 남자를 보자 도무지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던 고민들이 다 별무소용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하자.

광해가 하는 말을 믿어 주면 되는 것이고, 자신도 광해에게 바라는 바를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다. 광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기분이 동으로 하여금 자신의 바람 또한 광해가 들어줄 것이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다 마신 물 잔을 싱크대 안에 내려놓았다.

“별하야.”

“예?”

“그럼 네 뜻대로 하고, 물 나이트 가서 주원이를 좀 데려와라.”

“주원 어……. 주원 ㅎ……. 주원 형은 왜요?”

세 번 만에야 가까스로 호칭을 말할 수 있었던 별하는 구청 위생과 직원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가게 일과 관련해서 

물 나이트의 도움을 요청한다면 주작 주원이 아니라 현무 태수가 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재차 확인하는 것이었다.

“주원이 데리고 궁으로 오거라.”

“……예?”

“한 시간 쯤 여유를 주면 좋겠구나. 한 시간 쯤 있다가 물 나이트로 가서 주원이를 데리고 궁으로 오너라.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마.”

“저기 사장님!”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너는 가서 주원이나 데리고 와.”

별하는 이 용왕이 드디어 진짜 미쳤구나 싶었다. 혼몽 중에 정신이 나간 인간도 아니고 저렇게 말똥말똥 말귀 다 알아듣는 인간을 

앞에 두고 궁이니 뭐니 하는 말을 두 번이나 하다니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광해는 뻔뻔하게도 손을 내저어 

별하를 스틸 하우스에서 나가도록 하였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게 가장 좋을 것이었다. 저렇게 뻔뻔한 얼굴로 돌아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치미를 떼는 인간이 

괘씸하기는 해도 그를 방치할 생각이 아닌 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그에게 살길을 알려주는 것이 좋다고, 광해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정체나 제갈동의 상태 그리고 앞으로 닥칠 일을 설명하자면 용궁으로 그를 데려가는 것만이 가장 이해를 돕는 길이 

될 것이니 더는 망설이고 미뤄 둘 일이 아니라 판단했던 것이다.

곧 원로원에서 처녀 단자가 내려올 것이고 별하가 그 중 하나를 간택하여 올려 보내면 혼례는 눈 깜빡할 사이 치러진다. 

혼례가 치러지기 전에 자신을 없애려는 자들도 있을 것이고, 그 혼례가 성사되기를 바라며 자신을 보호하려는 세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많은 수의 자들은 광해가 용궁의 옥좌에 앉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니, 광해가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의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니 처녀 단자가 내려오기 전에 제갈동의 문제는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시급한 문제였다.

“재롱동아. 내가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저도 당신한테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전에 나를 따라 어디 갈 데가 좀 있다.”

“……?”

그 때까지 거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있던 광해가 길게 연초 연기를 내뿜고는 곁에 있던 놋쇠 재떨이에 곰방대를 땅땅 털어 내고 

일어섰다. 더 이상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휘적휘적 걸어 앞으로 가는 광해의 뒤를 동은 아무 말 없이 따랐다.

한 손에 이곳으로 오면서 들고 들어왔던 여행용 가방을 가뿐하게 들고 있는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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