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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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은 누군가 물 밖으로 나오는 소리를 듣고는 손질하던 인어 살점을 내팽개치고는 수족관으로 달려갔다.

방금 전까지 너무도 태연한 표정으로 괴생의 다리 살점을 발라내는 영진의 행태에 기가 질릴 대로 질려 버린 주방 식구들은 모두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동그랗게 모여 있었는데 갑자기 변한 그의 얼굴을 보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저건 나찰과 선녀 수준의 변화였다. 바다 가장 깊은 곳에 또아리를 틀고 살면서 수태 많은 바다 백성을 잡아다 고문하며 즐긴다는 

전기뱀장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갑자기 그가 화사해지는 것은 또 뭐냐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더 무서웠다.

“별하야. 왜 벌써 왔어. 좀 쉬다 올 것이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영진은 별하가 도리천의 일이 끝나자마자 돌아온 것이 너무 기뻤다.

요즘의 별하는 영진을 일러 화를 내지도 않고 물건을 던지지도 않기 때문에 더 그랬다. 하지만 어디가 아픈 듯 가끔 휘청거리는 

그는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었다.

“아…….”

눈이 부시도록 잘난 얼굴을 보자 푸르죽죽하게 사색이 되어 있던 별하의 마음이 확 풀어져 그는 그만 수족관 턱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그가 선견성에서 목격하고 온 것을 말해도 영진은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세상에 누가 그런 황당한 일을 믿겠는가. 자신들의 

용왕은 미친 게 분명했다. 아니, 미친놈이었다.

“별하야! 별하야. 어디 아프냐?”

“주문 들어온 거 작업하던 중 아니었냐? 일이나 마자 하고 이야기 하자.”

꺼져들어가는 듯한 음성의 별하가 걱정되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영진이었지만 그가 암만 무서운 눈으로 주방을 돌아본다 한들 인어 

고기를 손질할 수 있는 자가 있기나 하겠는가. 동그랗게 둘러서 저희들끼리 끌어안은 채 이쪽의 눈치만 살피는 팽준 이하의 오적어 

가족을 노려보던 영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별하를 의자에 앉혀 두고 도마로 향했다.

“인어 회 주문 들어왔냐?”

“응. 별실에 인간 손님들이…….”

“이번엔 누가 휴가 가는 거지?”

“괴생이.”

“후……. 생각 잘 했네. 고기 상납하고 나면 휴가라도 가니 이 더러운 세상 잠시 잊을 수 있겠지. 나도 자라 고기나 메뉴에 얹어 

달라 그럴까?”

“벼, 별하야!”

팽준 이하의 오적어 패밀리들은 곰치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별하가 도리천으로 올라간 지난 

열흘 동안 그저 우울한 어둠의 포스를 뿜어내는 그의 눈치를 보며 얼마나 힘들고 서러운 날들을 보냈었는가. 이제 별하가 

돌아왔으니 숨통이 트이겠다 싶었는데 이런 날벼락 같은 말이라니. 별하의 말에 사생결단을 하고 만류할 쪽은 곰치 영진이 아니라 

오적어 패밀리들이었다.

영진이 별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모르는 것은 별하 자신 밖에 없었다.

모두가 다 영진의 마음을 알지만 내심 제발 별하가 저 음흉하고 사악한 곰치의 손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다들 

별하가 주방에서 칼질 한다고 백정이니 살어자니 하는 말을 하지만 죽지 못해 그 짓을 하는 별하와 은근히 즐기는 것이 표시 나는 

곰치가 어떻게 같은 수준에 있겠는가. 더군다나 별하는 말로만 와락바락하며 울컥증을 부려도 성격이 좋은 녀석이었다. 

뚝심도 있고, 잔정도 많은 그래서 인기 좋은 용궁 제1비서관 자라 별하가 무려 곰치의 손에 넘어가는 걸 반기는 이는 아마 

광동수산의 미친 용왕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사장 미쳤나 봐.”

“……?”

영진은 물론이고 팽준과 다른 오적어 패밀리들도 희한한 얼굴이 되어 별하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영진은 괴생의 다리살이 잘 회 떠진 접시를 컨베여 벨트 위에 올려놓았고, 내실을 담당하는 인어가 그것을 

서빙할 수 있도록 알림 벨을 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별하가 도리천에 올라가 있는 동안 영진은 광동수산의 주방 일에 매우 

익숙해 진 듯 보였다.

“아니. 미친 게 확실해.”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제 할 일을 모두 마쳤으니 이제 온전히 별하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얼굴로 돌아온 영진은 넋을 빼고 있는 별하의 머리 수건을 

매만져 주며 그를 위로했다. 이럴 때 영진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상냥해 보였다. 그가 다른 바다 백성들을 위협하고 

성질을 부리며 그 큰 입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 보일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제 정신이면 그럴 수가 없어.”

“응?”

“드디어 장가드시기로 하셨잖아. 원로원에서 오는 처녀 단자도 더 이상 거절할 필요도 없다 하셨고.”

“그래서?”

그건 기꺼워해야 할 일이 아닌가. 영진은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별하의 말에 집중했다. 사실 동해 바다 백성들로서 용왕이 용부인을 

들이지 않겠다 고집 부리고 있던 그간의 마음고생을 생각한다면 별하가 물고 온 소식은 기쁜 것이지 당혹스럽거나 외면하고픈 

류의 것이 결단코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 사장 선견성의 대연회장에서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

“서왕모께서도 계신 자리에서 아랫도리를 훌렁 내놓고 양물을 만지면서 온 대신들 앞에 그 것을 자랑하고 다니는 게 그게 정상적인 

용왕이 할 수 있는 짓이야? 그 인간 진짜 미친 게 틀림없어. 진짜로 미쳤어.”

“아…….”

영진은 광해가 능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별하와 같이 단순하게 그 행동만으로 그의 모든 것을 판단하지는 않지만 

필요하다면 그것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는 것이 영진이 아는 광해였다. 그리고 광해의 광자가 미칠 광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는데 별하만이 유독 그것에 이처럼 괴로워하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동해 용왕을 옥좌에 끌어다 앉힌 것은 별하 자신이니 그 용왕이 미쳤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힘든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책임감도 강하고 의리와 명분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별주부 가문의 자손이니 그건 어쩔 수 없다 싶어도 영진에게는 용왕의

정신 상태에 저처럼 큰 충격을 받아 버린 별하가 안타까우면서도 서운했다.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해 그를 바라보는 자신에게는 곁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별하는 온통 용왕 생각에 근심을 떨굴 날이 없었던 것이다.

“진짜 미쳤나 봐.”

“별하야…….”

“나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나 미친 용을 옥좌에 앉힌 역적이 되는 거야? 아으으으으으! 믿었는데. 아무리 허튼 짓을 하고 

다녀도, 아무리 이해할 수 없어도 그래도 믿었는데…….”

선견성의 대연회장에서 본 충격적인 광경으로 살짝 이성이 흔들리고 있는 별하는 눈앞에서 안타까운 표정을 한 채 자신을 위로하는 

영진에게 그저 냅따 안겨 버렸다.

핑계라고만 볼 수는 없겠지만 광해의 그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한 번 두 번도 아닌데 이번의 광기가 다소 도를 넘어선다고 해도 

그런 일에 끄떡할 별하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잔뜩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죽는 소리를 하면 저 잘생긴 남자가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이 좋았다. 지금도 봐라. 냅따 그 가슴에 얼굴을 묻으니 살포시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이 얼마나 다정한가 말이다.

앙큼 발칙한 별하의 속내를 알 리 없는 영진은 그저 작은 소리로 별하에게 속삭여 주었다. 동해 용왕님이 비록 이해 못할 짓을 가끔

하기는 해도 결코 세인들의 평처럼 정신을 놓고 사시는 분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 분을 믿어도 된다고.

두 눈 뜨고 보지 못할 끔찍한 광경 앞에 서서 오적어 팽준은 제 팔자를 탓할 뿐이었다.

용왕은 미쳤고, 제1비서관이란 녀석은 그저 얼굴 빼고는 모두가 평균 이하인 무려 곰치에게 넋을 잃고 있다.

동해가 어떤 꼴이 되려고 이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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