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35)

인간 종업원을 뽑아 홀의 서빙을 담당하게 하고 광동수산 뒤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공터 한켠에는 스틸 하우스를 얹기로 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주택을 옮겨와 용전 용수를 연결하는 것 뿐으로 인허가에 관련된 까다로운 부분은 모두 현무 태수가 맡아 

해주는 바람에 일층 벽을 트고 통로를 연결하는 것까지 채 보름도 걸리지 않을 거라 했다.

본격적으로 연애질을 시작하기 위해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인간의 눈을 속일 수 있고, 목마를 비롯한 장난감들을 

마음 편하게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은 연애질에 있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었다.

동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져갈 수 없다며 광해에게 물건 전부를 맡겼고, 광해는 그것들을 일단 용궁에 가져다 

놓았지만 매번 궁으로 가서 물건을 가져오는 일은 성가시다 생각했다. 그리고 계속 호텔이나 가게의 내실을 이용할 수도 없으니 

그에게 그 스틸 하우스는 연애를 위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연애질을 위해 연애질 때문에 등한히 했던 몇가지 일들을 다 처리하고 나니 며칠은 훌쩍 지나가 있었다.

“사장님.”

“……?”

광해는 오늘쯤 동이에게 전화를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넋을 빼고 있다 다급한 채랑의 부름에 슬쩍 고개를 쳐들었다.

“태수 어르신한테 연락이 왔는데요?”

“지척에 두고 전화는 왜.”

“당장 그쪽 사무실로 오라십니다요. 뭔지 모르지만 굉장히 화가 난 음성이라서…….”

“응?”

“아무튼 빨리 오래요.”

현무 태수가 동해 용왕을 오라 가라 할 입장은 아닌데 화까지 내며 전화를 했다는 말은 이색적이었다. 채랑이도 그게 요상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이었다.

그들의 황룡이 될 자를 일러 코딱지만하다고 떠들어 댔더니 그날 꽤나 화를 내기는 했었다. 비단 태수뿐만 아니라 사방신 전부가 

입을 모아 이만큼 큰 코딱지를 봤냐며 언성을 높였던 것이다. 그것만 봐도 그들 사방신이 황룡될 아이를 얼마나 애지중지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광해는 기분이 나빴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그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기 때문에 

광해도 입으로야 코딱지만하다며 놀려대었지만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용왕의 직권을 사용해서라도 그 아이 편을 

들어주리라 마음을 먹었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그가 사방신의 왕이 될 자이니 광해와 비견해 결코 낮은 신분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은 그가 황룡이 되기로 선택하였을 때의 일이지만 말이다.

지금 당장은 태수가 자신에게 화를 낼 문제라는 것이 그것 말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광해는 한참을 빈둥대고서야 가게를 나섰다.

한창 바쁜 시간에 사장이 자리를 비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른 녀석도 아니고 태수가 부른다는데는 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심연의 통로를 지나 아직은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물 나이트의 문을 열었을 때 그는 두 번째로 놀라야 했다.

“쌍놈에 새끼 너 대체 무슨 사고를 친 거야!”

“씨발 놈. 제발 얌전히 있으라구!”

“나이가 적어서 그러는 거야? 이제 철들 때도 됐잖아. 뭐 때문에 지급으로 동해 용왕 광해의 소환장이 날아오게 만드는 거야. 

응? 그것도 원로원이 아니라 제석천님이 손수 보낸 거라고!”

광해가 물나이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정신없이 떠들어대는 사방신의 등 뒤로 배경처럼 수태 많은 신수 영물들이 괴상한 표정을 

한 채 광해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곳 물 나이트가 생긴 이래 단 한번도 이 놀이터를 방문하지 않았던 구천의 미친용 광해를 보고자 나온 것이겠지만 가히 기분은 

좋지 않았다. 광해가 너그러운 성품의 소유자도 아니거니와 구경꺼리가 되는 일을 기꺼워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무슨 짓을 한 거냐.”

“아니. 저기 나도 말 좀 하자.”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사무실로 오라 해놓고 태수까지 살기등등한 표정을 한 채 팔짱 끼고 광해를 노려보고 있었다. 와글와글 떠들어대는 다른 사방신들은 

차치하고라도 어째 생전 가야 이성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는 현무 태수까지도 싸늘하게 질린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지 

광해로서는 짐작할 도리가 없었다. 장가 가라는 원로원의 압박을 가볍게 씹어준 것 말고는 요 근래 말썽 피운 것도 사고 친 것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돈 버는 재미에 빠져 정신없이 장사한 것이 무슨 죄가 되겠는가. 그리고 맨 처음 물 나이트 옆에 횟집을 차려 두 번째 놀이터를 

만들라고 권유한 것도 제석천인데 지금 광해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일인 장사가 이처럼 큰 소란의 원인이 되지는 

않았을 거다.

“내가 부탁까지 했다. 제발 사고 치지 말라고.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우리가 완전한 사방신이 된 후에 쳐달라고 했어. 지금은 

너무 이르지 않으냐. 네가 정신이 있는 놈인 거냐?”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광해!”

광해는 곰방대를 꺼내 깊게 그 연기를 들이마신 후 현무 태수를 보았다.

“북쪽 땅의 수호신 현무 태수.”

“……?”

“대체 왜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인지 말해라. 동해 용왕으로서 명령하는 것이다.”

“…….”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현무 태수 정도 되는 녀석이 이성을 잃어버리고 앞뒤 설명도 없이 용을 잡겠다 나섰을 때는 이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광해의 판단은 주효했다.

그는 냉정한 자이고 이치에 밝았다. 감정보다 이성이 빠른 존재에게 차가운 판단력은 순식간에 돌아왔다.

“선견성에서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급으로 동해 용왕을 소환하라는 제석천님의 호출입니다. 따로 그쪽 분위기를 알아본 바 

원로원이 비상 호출 되어 모두 선견성에 집결하고 있는 중이며 원로원 원로가 아니라 해도 신망 있는 신장급의 어르신들이 모두 

선견성으로 불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남해 서해 용왕님은 물론이고, 다른 땅의 사방신들도 모두 배석을 명 받았으며 저희들도 함께 

오라는 분부가 있었습니다.”

“뭐?”

“이 정도 규모라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큰 분란이 있음을 짐작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동해 용왕의 탄핵을 위한 청문회가 

아니라면 다른 어떤 이유로도 이 정도의 회합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허니 오래된 벗으로서 저들이 무례를 범한 것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석천은 세상 만물 모두를 다스리시되 결코 실수하는 법이 없는 어진 왕이었다. 왕 위에 왕이며 진리에 앞선 진리였던 것이다. 

그가 허술하고 얄궂은 성미로 보이는 것은 그의 개인적인 취향일뿐 결코 그의 진면목은 아니었다.

불완전한 사방신과 미친 용이라는 소리를 듣고 사는 파락호용에게까지 내밀한 애정과 관심을 쏟아 그의 눈을 벗어나 행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단 한 개도 있지 않다 생각될 정도로 용의주도한 분이셨던 것이다.

“관복이……. 궁에 있다.”

“먼저 제석천님과의 독대가 있을 것입니다. 동해 용궁 제 1 비서관인 자라 별하가 동해 용왕님의 관복을 대령할 것이니 따로 

의복을 차려입을 필요는 없다 하셨습니다.”

아마도 태수의 예상대로 탄핵을 위한 자리가 될 것 같았다. 어떻게든 광해를 옥좌에서 떨궈버리고 싶은 자들은 셀 수 없이 많았고, 

자신의 궁이라고 해야할 동해 용궁에서조차 광해는 환영받지 못하는 왕이었다. 정치라는 것이 얼마나 비정한 일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 비정한 정치로 인해 저지르지 않은 죄를 받고 금옥에 갇히는 자들을 광해는 수태 보아왔다. 강해져야 하고 누구보다 독해지지 

않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자가 광해였기 때문에 그는 이 산을 넘어서지 못하고 꺾인다면 그것 역시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벗들의 안타까운 눈빛은 마음의 선물로 안고 가면 되는 것이다.

살아남을 만큼의 힘이 없기 때문에 도태되는 것은 억울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의 순리이며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였다.

“그럼 가자.”

“모시겠습니다.”

“태수야…….”

“……?”

물 나이트의 홀을 지나 도리천으로 가는 문을 향하면서 광해는 자신의 걸음이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혹여 저 신수 영물들의 눈에 

자신이 나약하고 비굴하게 보이지 않는지 걱정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옛친구의 이름이 그의 발걸음을 견고하게 

만들었고, 그의 표정을 의연하게 포장해 주었다.

“나 떨고 있냐?”

“……드라마 너무 많이 보지 마라. 바보 된다.”

만년동안 녹지 않는 얼음같은 얼굴을 하고서도 오랜 벗은 광해의 너스레를 태연하게 받아주고 있었다.

“너도 봤냐?”

“응.”

“멋지지 않았냐?”

“……내 눈에는 네가 더 멋지다. 광해.”

환한 빛 속에서 도리천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고 그 문을 지나면 바로 선견성이었다.

선견성에 도착하자 사방신은 다른 사방신이나 원로, 신하들이 배석하고 있는 대회장으로 가야 했다. 광해는 다른 선녀의 안내를 받아

곧장 제석천의 개인 별궁인 수라사궁으로 안내 되었다.

부드러운 흰빛의 모래가 수라사궁의 상징이었다.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신장과 신수 영물들도 이곳 수라사 궁에서는 발목까지 

푹푹 낚아채며 몸을 둔하게 만드는 모래 때문에 고역을 치르기 일쑤였다. 제석천께서 그의 정인 되시는 백사가 쉬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세상에서 가장 작고 부드러운 모래로만 바닥을 채웠다는 수라사 궁은 좀처럼 외부인을 받아들이지 않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제석천의 연인 백사의 궁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는 이곳 별궁은 무장한 호위도 없고, 선견성 내부의 경비를 맞는 궁내부 

사람들조차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곳이었다. 하늘 주인 되시는 분의 발목까지 낚아채 빠지도록 만드는 수라사 궁의 모래 바닥에서

쉬이 걸을 수 있는 자가 없거니와 그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두 제석천의 눈과 귀가 되니 삿된 마음을 품은 자가 이 위를 

걷는다면 그 정체가 발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가장 허술한 경비를 갖고 있는듯 보이지만 가장 완벽한 제석천만의 

개인 별궁으로 자신이 안내되고 있다는 사실을 광해는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하늘 주인의 부인 되시는 

서왕모께서도 제석천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수라사 궁의 내부로 들어가면서 광해는 그때까지 손에 들고 있던 

곰방대를 소매자락 안쪽에 집어넣어버렸다.

“흰빛은 흰빛인데 이곳은 흰 벽과 천장은 언제나 눈이 부시지 않는구나.”

“…….”

말을 아끼는 듯 그를 안내하던 선녀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광해를 돌아보았지만 그저 그말에 수긍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한발자국씩 앞으로 나갔다.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까마득하게 생각조차 희미하지만 제석천의 연인 백사라는 사람이 꼭 이러했다. 흰빛은 흰빛이건만 눈이 

부시지도 싸늘하게 느껴지지도 않는 부드러운 백색의 사람.

어쩌면 제석천은 그의 정인이 주는 그 편안한 흰빛을 이곳 수라사 궁에 그대로 옮겨놓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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