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35)

"대체 저 인간은 언제 잡아 먹었수?"

"흐응? 본 거냐?"

흡족한 미소가 떠나지 않아 빙글빙글 웃고 있던 광해는 계단참을 내려서자마자 덮치기라도 할 듯 덤비는 자라 별하를 마땅찮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위생 검열 받았다는 서류 받으러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우리 사장님께서 깐깐하게 생긴 구청 위생과 직원과 찐하게 입술 박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겠소? 내 보기에는 사장님이 구청 직원한데 겁탈이라도 당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우?"

"그래서. 질투라도 난 거냐?"

"미쳤어요?"

광해는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쑥대머리를 하고 있는 별하를 보며 놀리는 듯한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작은 일에도 발끈하고 뒷일 

생각 않고 울컥증을 부리는 것이 여간 귀여운 놈이 아닌 것이다. 이래저래 주변 모두를 마음에 드는 이로 바꿔놓고 좋아하는 돈까지 

벌고 있으니 지금의 광해 팔자야 말로 태어난 이래 가장 훌륭하다 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중천에서 진주 장사 할 때와 비교할 

필요조차 없었다.

"왜. 질투 난 여편네처럼 손톱 세우고 달려들 때는 언제고 왜 딴청을 부리냐. 솔직히 말해봐라. 너 나 좋아하지?"

"정신이 나갔구만 이 사장이."

"하하하하하. 꽃 같은 시절이로구나. 꽃 같고 꿀 같은 시절이야."

별하는 소용되지 않는 이야기로 딴청을 부리며 자리를 뜨려는 용왕의 옷자락을 꽉 움켜 잡았다. 수틀리면 방금 그가 말한대로 

얼굴을 할퀴어 주리라 작정하면서 말이다.

"말해 보쇼. 저 인간은 언제 잡아먹은 겁니까."

"잡아먹기는. 내가 식인종이냐? 잡아먹게."

"그게 아니면!"

별하는 급하게 목소리를 죽였지만 윽박지르는 듯한 태도를 고치지는 않았다.

"신수 간 연애 금지령이 풀리면서 인간을 함부로 미혹하여 데리고 노는 게 금지 되었다는 거 모르는 겁니까? 허구헌날 제석천님이 

드나드는 이곳에서 그런 짓을 하다 걸리면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이러는 겁니까. 가뜩이나 용부인을 맞으라 위에서는 야단도 

그런 야단이 없는데 허튼 데다 용정을 뿌리고 다니는 것을 알면 도리천의 원로원에서 그냥 두고 볼 것 같습니까?"

"하아……."

금세 풀이 죽은 듯 깊은 한숨을 내쉬는 용왕이 불쌍하기는 해도 제 1 비서관으로서의 별하는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가 찾아 데려온 

용왕이고 별하의 손으로 그를 옥좌에 앉히지 않았는가. 가뜩이나 아직도 용왕 부재시의 문제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동쪽 바다인데 

이런 시덥잖은 문제로 다시 용왕의 자질 문제가 논란의 쟁점이 된다면 동해의 평화는 끝장이 난 것이나 진배없는 일이었다.

"알아요. 안다구요. 장가가라는 말 질색하는 거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용부인만 맞이하고 나면 사장님이 좀 허튼짓을 

하고 다녀도 원로원에서 더 이상 사장님을 씹지 못할 거 아닙니까 이 말이라구요. 예?"

"별하야."

"예?"

광해는 심각한 얼굴로 곰방대를 물고 빡빡 빨아 당기다가 한참만에야 별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용정은 누가 뿌리고 다녔다는 말이냐. 더군다나 아무나 데려다 놓고 용부인 자리에 앉혀두면 그게 용부인이 되는 거냐? 나도 

마땅한 재목을 찾아봐야 할 거 아니냐고. 자꾸만 잔소리 해대면 널 그 자리에 앉히는 수가 있으니 그쯤에서 샤따 마우스 하지 그래?"

"커허억!"

"설마 내 부인 자리가 탐나는 거냐?"

"이 인간이 진짜 말이라고 다 말인줄 알아? 엉?"

별하는 움켜쥐고 있던 광해의 옷자락을 놓으며 게거품을 물면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별하의 손에서 달아난 광해가 푸른 연초 연기를 뿜으며 달아난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내가 인간이냐? 용이지. 하하하하하하."

"어이구 내 팔자야……. 저걸 내가 왜! 대체 왜! 아그그그그……."

구천을 헤매면서 광해를 찾아낸 것도 별하 자신이고, 저 상종 못할 파락호를 용왕 자리에 밀어 올린 것도 자신이니 그저 별하는 

제 가슴을 치며 후회와 한탄의 탄성을 터트릴 뿐이었다.

날로 그의 울컥증이 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동은 욕실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미친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그의 일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얄팍하기 그지 없는 인간관계도 지루한 사회생활도 한치 

달라진 점이 없었던 것이다.

태어나서 자라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딱히 일탈이라고 할 만한 행동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욕구조차 갖지 못했던 삶이었다. 

한마디로 한심해 눈물이 날만큼 교과서적인 삶에서 이런 과감성이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그러면서 마음이 불편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는 흥분하지도 않았고, 설레지도 않았다.

모친이 아신다면 뒷목을 붙잡고 쓰러지시고도 남을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차분하게 가라앉은 마음은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잘만 꾸며놓으면 아버지의 정치 생명을 끝장나게 만들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까지 생각을 하지만 마음과 행동은 일치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호텔로 들어와 방을 예약하였고, 일행이 있으니 객실 번호를 알려주라는 말까지 남겼다.

모든 것이 일상과 같이 평이하게 진행되는 엄청난 사고였다.

감기에 걸려 미칠것 같이 배가 고프지 않았더라면.

그때 보인 것이 휘황찬란한 횟집 간판이 아니었더라면.

내실로 들어가 식사를 하지 않고 그냥 홀에서 허기를 채웠더라면.

저 남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목소리와 체향이 그처럼 편안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가정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일어났고 동은 실낱같은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

객실에 비치된 욕의를 막 걸쳤을때 초인종이 울리자 동은 상대를 묻지도 않고 문을 열어주었고, 남자 또한 겸연쩍은 인사 따위는 

하지 않은채 객실로 들어섰다.

너무 오랫동안 만나고 알고 공유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처럼 그들은 태연하게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도 안 먹고 달아났더군. 밥 생각이 달아날 만큼 뒷구멍 사정이 급했나?"

"그렇기도 하지만……. 과장님하고 같이 밥 먹는 게 싫었습니다."

열린 욕실 문간에 서서 수증기 냄새를 맡는듯 코를 킁킁 거리던 남자가 터무니없이 난잡한 말을 했지만 냉장고 문을 열고 음료수를 

꺼내는 동은 광해 못지않게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럼 저녁 전?"

"샤워 안합니까?"

"이렇게 답답한 데 들어가는 거 질색이야."

"식사 안하셨습니까? 룸 서비스라도 시킬까요?"

광해는 여전히 푸른 비단 옷을 입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야 워낙 정신이 없어 그의 옷차림을 자세히 살피지 못했지만 지금보니 

광택이 나는 푸른 비단에 은사로 용이 수놓아진 그런 아름다운 옷이었다. 동은 긴 머리카락과 푸른 비단 저고리가 저 남자만큼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저런 체격에 바지 저고리를 입혀 놓으면 외국인이 한복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기 십상인데 

광해에게는 맞춘듯이 어울려 그가 와이셔츠와 양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았던 것이다.

부드러운 비단 자락이 사르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광해는 객실 소파로 걸어와 앉았다. 호피를 걸친 북극의 왕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동은 눈을 즐겁게 하는 남자의 전부를 핥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보다 먼저 이리 좀 와 보지?"

"그쪽 무릎 위에 말입니까?"

"내 무릎 말고 더 좋은 자리를 알고 있나?"

"지금은 생각이 안나는데요?"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듯 냉큼 광해의 무릎팍에 앉은 동은 그의 품 안에 안겨있는 자세로 차가운 음료수를 마셨다. 급하게 들이킨 

음료가 입가로 흘러 턱과 목을 타고 욕의 안쪽에 숨겨진 가슴으로 숨어들자 서늘한 느낌이 드는 광해의 입술이 그 뒤를 따랐다.

피부를 적신 음료를 핥는 척하며 습기를 머금은 동의 목덜미와 가슴에 몇 번이고 입을 맞추던 광해는 한참만에야 고개를 들고는 

새침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동을 바라보았다.

"이름은 재롱동이고 나이는 몇 살이냐."

"재갈동입니다. 나이는 올해 스물 다섯이 됐습니다."

"한창인 나이로군. 젊어서 좋을 때다."

"그쪽은 몇 살……. 아!"

욕의 섶으로 기어들어간 서늘한 손이 머뭇거리지도 않고 바로 낭심을 움켜쥐자 동은 짧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글쎄다. 너희들 기준으로 하면 서른 몇쯤 되었을까? 부모님은 다 생존해 계시고?"

마른 손가락이 주름진 구멍을 쓰다듬어 불편한 것인지 아니면 광해의 물음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동은 잠깐 동안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되물었다.

"연애라도 하자는 겁니까?"

"연애라……. 그것도 나쁘진 않군. 어때. 우리 연애 할까?"

심각하게 질이 나쁜 동네 노는 형님같은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름을 꼬집듯 움직이는 손가락들의 행태에 동은 새파란 웃음을 

웃어야 했다.

간지럽기도 하고 야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숨이 더워졌던 것이다.

"당신과 연애를 하면 명이 줄어들 거 같은데요?"

"어째서?"

"정말로 좋아서 이대로 죽어도 좋다 싶은 기분이 자꾸만 중복되면 정말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아……."

"그만 좀 보채라.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요 구멍은 왜 이렇게 진저리를 치며 옴찔거리는 거냐."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닌 거 같은데요? 그런데 정말 연애를 하자는 말입니까?"

"싫으냐?"

마른 손가락이 슬금슬금 균열을 헤집자 동은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나쁘지는 않을 거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건조해서 좀 아픕니다."

"핥아줄까? 탁자 위에 올라가 엎드려 봐라."

거만한 고양이 같은 얼굴을 하고도 어쩌면 그토록 발칙할 수 있는지 광해는 자신의 무릎에서 내려가 테이블 위로 냉큼 올라가는 

동의 모습에 고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것이 광해로 하여금 그를 기대하게 했고, 그것이 광해가 구천을 헤매면서도 결코 찾을 수 없었던 바람이었다. 도도한 겉모양을 

하고 있지만 부실한 껍질을 열어젖히면 뜨겁고 진득거리는 꿀물이 잔뜩 흘러나오는 기묘한 과일처럼 제갈동이라는 인간은 거죽과 

속이 판이하게 다른 종류의 물건이었던 것이다.

욕의를 걷어 올려 흰 볼기짝 사이에 숨어있는 비문을 열어젖힌 광해의 손이 허벅지 안쪽을 잔뜩 벌려 발씬거리는 구멍이 훤하게 

드러나도록 하였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동의 음경이 바짝 곤두서 파르르 몸을 떨기 시작하는데 한번 손길조차 받지 못했음에도 

아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

다른 모든 신수가 들으면 말도 안 된다며 체머리를 흔들 일이겠지만 어찌되었건 동해 용왕의 연애가 시작되어 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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