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하 오빠! 별하 오빠!"
광해가 주방을 나간지 오분도 되지 않아 사색이 되어 주방으로 뛰어 들어온 삼번-빌어먹을 용왕은 부려먹는 인어 아가씨들에게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아이를 보며 별하는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싶었다.
"왜."
"별하 오빠 큰일 났어."
"뭐가 큰일인데. 또 인어회 주문 들어왔냐?"
"아니. 오빠는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고 그래."
광동수산에서는 별에별 물고기를 다 회 쳐서 팔고 있었다. 사람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바다 백성들 입장에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따로 없고 학살이라는 말 말고는 어떤 것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외눈 하나 끔뻑하지 않는
용왕의 돈 욕심으로 인해서 말이다. 그런 광동수산의 메뉴판에는 분명히 인어회도 포함되어 있었다.
쎄가 빠지게 헤엄쳐 다니며 횟감을 잡아오는 일 뿐만 아니라 미색을 보아 뽑은 인어 아가씨들이 꼬리지느러미가 부르트도록 홀을
돌아다니며 서빙을 시키는 것으로 모자랐던 모양인지 광해는 인어들의 살점 일부를 잘라서 팔 것을 강요했던 것이다. 물론,
횟감을 제공한 인어들은 부역에서 제외된다든지 세금을 감면해 준다든지 하는 혜택이 있기는 했다. 쥐꼬리만해서 그렇지.
"그거 말고 삼번이 네가 시퍼런 얼굴을 하고 살벌하고 끔찍하다는 주방에 뛰어들어 올 일이 뭔데."
"아이 오빠두……. 아직까지 그 때 잠깐 말실수 한 것을 꽁하게 마음에 담고 있었던 거야?"
말실수? 죽지 못해 이 짓 하는 것을 뻔히 아는 처지에 몸서리까지 치면서 원한을 담아서 씹어 내뱉던 말실수?
당장에 저 반반한 얼굴을 확 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별하는 으드득 이를 갈아붙이며 정신 나간 인어 아가씨를 독촉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뭐냐."
"아?"
"오두방정을 떨면서 뛰쳐 들어온 이유가 뭐냐고."
"아! 맞다. 엄마 나 어떡해……. 사장님한테 난 죽었다. 어떡해!"
별하는 이 정신 나간 인어 아가씨 비늘을 다 벗겨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체 저런 정신머리를 갖고 홀 서빙은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지…….
광동 수산이 개업한지 어언 6개월. 별하는 이제 스스로 알아서 가게 영업을 걱정하고 있는 스스로가 끔찍했지만 자신이
아우슈비츠에 버금가는 이 횟집의 영업을 걱정했다는 사실에 대해 잊어버리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다. 백정 노릇도 오래하면 이력이
난다더니 자신이 딱 그 짝 아닌가. 더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떴어! 떴다구."
"뭐가."
"그러니까 떴다구요오---."
"아 그러니까 뭐가! 자꾸 열 뻗치게 할래?"
시퍼런 칼을 들고 있는 손을 치켜들며 별하가 그 특유의 왈칵증을 참지 못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삼번 인어 아가씨는 눈에
보이지도 않게 빠른 몸놀림으로 후다닥 별하에게서 멀어졌다.
"오, 오빠! 날 죽일 셈이야?"
"으아아악! 진짜 저걸……. 하으---. 제발 부탁이니까 다른 데로 새지 말고 네가 여기 들어온 이유나 말하고 꺼져라. 응?"
"아! 그러니까……. 음……."
"음 다음에 뭔데."
삼번 인어 아가씨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야 별하가 듣고자 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별하는 삼번 인어아가씨보다 더
파래진 낯짝으로 게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그는 게가 아니라 자라인데 말이다.
"구청 위생과에서 단속 떴어. 사장님이 한 개라도 걸리면 메뉴에 용봉탕 추가시킨대."
내 팔자가 왜 이런가!
그냥 봐서도 공무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멀끔하게 차려입은 남자 둘의 방문은 별하가 시원찮은 도술로 주방 전체를
말끔하게 치운 직후의 일이었다.
남자들이 들어오기 직전에 괴생이 도마 위로 가오리 한 마리를 던져 놓고 사라졌고, 평소라면 건조한 뭍 공기에 적응하지 못해
흐느적거리며 주방 바닥을 기고 있을 오적어(烏賊魚) 장군 가문의 팽준이도 깨끗한 타이와 앞치마를 두른채 신기에 가깝도록
무채를 썰고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광동 수산에 메뉴판에 용봉탕이 올라가는 일만은 막아야 겠다는 별하의 노력은 가히 살인적인 지경에 이르러 있었지만 주방으로
들어선 남자들도 심상치는 않았다.
더군다나 두명 중 키가 작은 쪽은 흰장갑까지 끼고 들어온 데다 생김새가 여간 까다로와 보이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방이 지하에 있다니 좀 독특하군요."
"……땅값이 비싸서요."
별하는 남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준비되어 있는 대사를 읊었다. 금싸라기 같은 강남 지역의 땅값 때문에 광동수산은
주방과 수족관이 지하에 설치되어 있었다. 물론, 매장 앞에 작은 수족관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흔해 빠진 오징어나 해삼, 멍게
같은 것이 있을뿐 그 정도 규모의 수족관으로는 횟집 장사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실상을 알고 보면 동해로 가는 문을 남들의 이목이 잦은 곳에 설치할 수 없다는 이유였지만 명목상의 이유로 들고 있는 땅값 운운은
영업을 개시한지 육개월이 지나는 동안 그럴싸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매장 앞에 있는 수족관에는 생선이 많지 않던데……. 따로 수족관이 있습니까?"
"예. 그것도 여기 있습니다. 보시려구요?"
"시료를 채취해 가야겠습니다."
"그러십시오."
역시 저런 얼굴의 남자가 더럽게 쪼잔하지 않을리 없었다.
지금까지 별하의 주방을 방문한 구청 위생과 직원들이 모두 건성건성 주방을 들러본 후 거하게 한상 대접 받고 돌아간 것과
비교하자면 제대로 된 위생 검열을 당하게 생겼다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별하는 주방 안쪽을 돌아 들어가게 만들어 놓은 수족관으로 남자를 안내한 뒤 남자가 시료로 쓸 수족관 물을 시험관에 담는 것까지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가 동해로 통하는 지름길이었다.
수질 검사를 위해 시료를 채취해 간다고 해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가장 깨끗한 바닷물이 있을테니 걸릴 것이 없지만 별하를
조마조마하게 만든 것은 눈치 없는 인어놈들이 언제 불쑥 나타날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수족관이 굉장히 크군요."
"취급하는 ……횟감 종류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사용하지도 않는 뜰채와 뜰채가 걸려 있는 벽면은 물론이고 수족관 근처의 바닥까지 꼼꼼히 살피는 남자의 행동에 제동을 건 것은
동행한 구청 위생과 직원이었다.
"이봐 동이씨. 여긴 내가 지난달에도 와봤지만 정말로 하나 걸리는 게 없는 완벽한 시설에 위생 상태였다고. 너무 갑갑하게 그러지
말고 대충하지?"
"……동입니다."
"아……."
"제 이름은 제갈동. 입니다."
"미안. 미안. 그게 입에 붙질 않아서 그래. 아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정색을 하고서……."
껄껄 웃는 중년의 남자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별하는 수족관 입구쪽 문턱에 기대서서 곰방대를 물고 있는 사장을 죽일듯이
노려보아야 했다.
그만큼 주방에서 연초 태우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도 저놈에 곰방대가 손에서 떨어질 줄 모르니 화상도 저런 화상이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위생 검열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혹시나 밉보여서 어거지라도 잡히면 고생하는 게 누군데 사장이라는
놈이 저따위로 밖에 행동을 못하는가 싶었던 별하의 시선을 동이라 불린 남자의 눈길이 쫓고 있었다.
"주방에서 흡연이……."
"사장님은 열외입니다."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별하가 다급하게 외쳤다.
빌어먹을 용왕놈!
"……?"
"주방에서 근무하는 자들은 모두 담배를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주방 근무 조건이 그렇거든요. 사장님이야……. 워낙에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니까 딱히 주방에서만 저러시는 것도 아니구요."
"그렇……습니까?"
동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고, 별하는 간이 쪼그라들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도 광해만이 빙글빙글 웃는 낯짝으로 뻔뻔하게 곰방대를 입에 문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개업한 이후 내도록
광동수산의 위생검열을 담당해 왔던 중년의 사내만이 그런 광해의 곁에 붙어 서서 한갓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마와 식기 등에서 시료를 채취하겠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예. 뭐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동은 털 한오라기도 빠져 나오지 않도록 긴 머리를 잘 묶고 있는 주방장이 마음에 안들었고, 별하는 송곳으로 찔러도 송곳이
부러지지 피 한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위생과 직원이 탐탁찮았다. 그런들 어쩌겠는가. 한쪽은 위생검열을 해야 하는 입장이고,
또 한쪽은 그 위생검열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니 말이다.
반면 광해와 또다른 위생과 직원은 저쪽의 살벌한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느긋하고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저희 가게가 마지막입니까?"
"예. 그렇지요."
"월말이라 바쁘시겠습니다."
"하하하하. 늘 그렇죠 뭐."
"식사 하고 가십시오. 오늘 생물 고등어가 들어왔는데 펄펄 뛰며 살아있는 놈은 제법 맛이 그럴듯하죠."
"번번히 그런……."
"내실로 안내하라 하겠습니다."
위생과 안과장은 여느 식당의 사장과는 달리 딱히 청탁을 하거나 금품을 건네는 일은 없지만 위생검열을 나올 때마다 제법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는 광동수산의 사장을 꽤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차려입은 것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남자들로서
결코 따라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융통성 있고 화통한 성격도 그렇거니와 사실 이 광동수산은 위생 검열에서 걸릴 부분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깨끗하고 위생적인 설비도 그렇거니와 온갖가지 산해진미를 두루 섭렵한 위생과 안과장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싱싱한 횟감은 결코
허접한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사무실에서도 아예 내놓은 제갈동씨가 신사역 인근 업소 검열을 따라 가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분위기로
제대로 된 만찬을 즐길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안과장은 제갈동씨가 아무리 지랄을 해도 이 업소만큼은 걸릴 것이
그리 많지 않을 거라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궁금한게 있습니다."
"무슨……."
"여기 메뉴판에 왜 광어회는 없는 겁니까? 보통 횟집에서는 제일 인기있는 품목이 아닙니까?"
도마와 식기 그리고 조리대 등에서 꼼꼼하게 시료를 채취하던 동의 의문은 별하를 얼빠지게 만들었다. 저렇게 심각한 얼굴로
그런게 궁금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가끔 손님들 중에 광어회를 찾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특별히
맛있어라기 보다는 가장 싸고 보편적인 메뉴이기 때문임을 아는 별하였다. 그는 제갈동이라는 남자 생긴 것과 다르게 꽤나
엉뚱한 면이 있구나 하면서 우물쭈물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가 생각했다.
"그건 내 이름이 광해라서 그럽니다."
"……?"
하지만 위생과 안과장과 노닥거리고 있던 사장이 길게 연초 연기를 내뿜으며 대답할 줄은 몰랐다.
"기분이 나쁘거든. 광어회 한접시! 하는 주문이 들어오면 대단히 불쾌할 거 같아서 말이죠……."
"아하하하하. 김사장님. 뭡니까. 그런 이유였습니까?"
"달리 뭐 있겠습니까? 팔 횟감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빈정 상해가면서 내 이름자와 비슷한 횟감을 메뉴판에 올려놓겠습니까."
"하하. 김사장 보기보다 위트가 있으시구만. 그래서 광어회는 안판다라……. 멋지지 않아 제갈동씨?"
별하는 저 빌어처먹을 용왕놈이 가끔은 기특한 짓도 한다 싶었다. 그의 그 한마디로 살벌하기 그지 없었던 주방 분위기는
봄날 꽃밭처럼 화사하게 풀어져 버렸던 것이다. 물론, 그런 화사한 분위기에서도 꿋꿋하게 쌀쌀맞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제갈동의
얼굴은 여전히 북풍한설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말이다.
"……제가 횟집 사장이래도 동이회 같은 건 안 팔 겁니다."
"……?"
"으응? 으하하하하하. 제갈동씨. 왜 이러는 거야. 날 죽일 셈이야?"
별거 아닌데 웃겨 죽는 위생과 안과장과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언으로 별하를 황당하게 만든 제갈동은 금세 시료채취를
마치고 내실로 안내되어 갔다.
시종일관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광해마저도 주방을 나가자 별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방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으며 긴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아이고……. 명줄이 삼백년은 줄어든 것 같네. 삼번이 이년 아주 요절을 내야지. 정신머리를 어디다 빼먹고 다니며 위생 검열
삼분 전에야 그 말을 해주는 건지. 아이고 내 팔자야……."
"형님이 참으쇼. 삼번이 그게 언제 제 정신이었던 적이 있소?"
맥 빠지는 것은 마찬가지인지 팽준이도 별하의 옆에 주저앉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용오……. 아니, 사장님 표정 봤소?"
"응? 뭔 소리냐."
"못봤소?"
"뭔 소리냐니까?"
매끈매끈 잘생긴 얼굴의 볼떼기를 북북 긁으며 팽준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별하는 큰 눈을 끔뻑거렸다.
"거 오늘 처음 온 그치를 보는 사장님 표정이……."
"엥?"
"왠지 낯설지가 않아서 말이오. 그게……."
"응?"
팽준은 한참 볼떼기를 긁고나서야 짝! 하며 손뼉을 쳤다.
"아! ……딱! 마감 전에 돈 셀 때 그 표정이었소."
"엥?"
"왜 용ㅇ……. 아니, 사장님이 돈 셀 때 그 표정 말이오. 평소 때야 제석천님이 오셔도 시큰둥 별반 흥미 없다는 얼굴 하고 있는
사장님이잖소. 그런데 오늘 우리 용왕님 표정은 그게 아니었……. 헉! 별하 성! 못들은 것으로 해주오."
"……돈 셀 때 표정?"
광동 수산에서 일하는 바다 백성들은 용왕을 용왕이라고 불러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반드시 용왕 광해를 사장님이라고
불러야 했는데 그 규칙을 어긴 자는 무시무시한 벌칙을 감당해야 했으니 부지불식간에 용왕님 운운했던 팽준은 까마득하게
정신이 가출하는 것 같았지만 별하의 생각은 지금 거기 없었다.
"돈 셀 때의……. 표정이라고?"
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돈 때문에 백성들의 등골을 뽑아먹는 악덕 용왕의 얼굴에 돈 셀 때의 표정이 드러나게 만드는
인간? 그게 대체 뭔 소리란 말인가.
별하는 잘 다듬어 놓은 머리를 북북 긁어대면서 팽준의 말을 곱씹어야 했다.
뭔가 불길하기는 한데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광동수산의 공기 속으로 끈적끈적하게 들러붙기 시작하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