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35)

광동수산은 24시간 쉬지 않고 영업하는 횟집이었다. 그 말인즉 그곳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쉴 시간이란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만 해도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고, 날이 새면 일 하러 나가는 인간들의 습성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 했지만 지금에 

와서야 어디 그런가?

24시간 영업하는 속옷집도 있는 마당에 술과 음식을 파는 횟집 장사에 손님 그을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눈치 봐 가면서 재주껏 

쉬라는 파렴치 악덕 사장의 뒷담화만이 버티기 힘든 가혹한 노동량을 견뎌내고 있는 광동수산 종업원들의 유일한 낙이었다.

"다 별하 너 때문이잖아. 이게 뭐야! 내 신세가 이게 뭐냐고! 책임져!"

도마 위로 와르르 생선들을 쏟아낸 수컷 인어 괴생이가 투망을 접으며 툴툴거렸다.

좀 쉴만 하면 찾아오고 또 궁둥짝을 좀 붙일만 하면 들이 닥치는 손님들로 인해 잠시도 한자리 앉아 쉬지 못한 것이 벌써 이틀째. 

괴생의 낯빛은 다시마 색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왁왁대는 괴생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찍 소리도 하지 못한 채 손바닥만한 메모지의 주문표를 확인한 자라 별하는 잠시 괴생의 

불쌍해 눈물 나는 낯빛을 보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잠깐 쉬지도 못하고 죽어라 물고기를 잡아대는 괴생도 불쌍할 노릇이지만 자기 신세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허구헌날 얼굴만 

마주 보면 저 타령이니 해도 너무한다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죄 없는 물고기들을 잡아들이는 괴생의 입장도 

난처하겠지만 그들 모가지를 따서 살점을 발라내는 별하의 심정만 할까.

그는 괴생이 쏟아낸 물고기들 중에 우럭 한 마리를 골라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고놈 대가리를 콱! 내리 찍었다. 엄밀히 말하면 

무관도 아니고 문관 축에 드는 자라 가문의 별하에 이르러 갈 데 없이 물고기 백정이 되었구나 싶은 신세 한탄은 괴생의 투정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처참한 자학으로 이어졌다.

"그래. 다 내 탓이다. 내가 역적이고, 내가 주리를 틀어도 시원찮을 놈이야. 내가!"

탕탕탕!

회를 치는 것인지 난도질을 하는 것인지 살벌하게 도마 위로 시퍼런 식칼을 휘두르는 별하의 곁에 서 있는 괴생의 젖은 

머리카락에서 굵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씨발 놈. 조개 아가씨들 등쳐먹으며 진주 장사 하는 걸 봤을 때부터 눈치 챘어야 했는데. 내가 미쳤지. 내가 돌았어."

이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용왕 놈이 그 한량 짓을 하는데도 눈이 헤까닥 뒤집혀 궁으로 데려온 사람이 바로 자신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닥쳐! 너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돼. 미련한 새끼……. 수틀린다 싶으면 궁으로 돌아와 일단 여론이라도 물어볼 것이지

다짜고짜 계승권까지 가진 새끼를 들이대는 놈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냐. 응? 용정도 질이 있고 품을 따지는 게지. 그게 용이냐? 

응? 니 눈까리에는 그게 용으로 뵈든?"

"……."

그래. 누구를 원망하랴.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고, 염치가 새까맣게 타서 재도 안 남았다.

별하는 버럭 소리를 지르는 괴생의 기세에 움찔거리며 아무 죄 없는 우럭에게만 그 화를 몽땅 풀어내야 했다.

탕탕탕!

이젠 아주 묵직한 통나무 도마를 반 토막이라도 내겠다는 듯 그저 말없이 칼질만 하고 있는 별하의 얼굴로 제 얼굴을 바짝 붙여댄 

괴생은 돈벌레 용왕 성토에 여념이 없었다.

"내가 용 아니면 인어라도 되는 거냐?"

"크억-!"

푸른 연초 연기가 괴생의 창백한 낯빛을 감싸고 돌았다.

"용 맞다. 좀 함량미달이기는 해도 용이 맞기는 하지."

"그, 그게……."

"심심하냐?"

이대로 한많은 인어 생을 마감하는가 싶었던 괴생의 질끈 감긴 두 눈이 개안하듯 번쩍 떠지자 거기 빙글빙글 웃고 있는 광해의 

얼굴이 비췄다. 정말이지 저 돈독오른 악취미 용왕은 언제나 소리 소문도 없이 자신의 뒷담화 자리에 끼어드는데 당하는 

이들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릇 용왕된 자를 그토록 험악하게 까고 있는 

자리에 나타나서도 그가 별반 노여워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일까?

하지만 용을 용도 되지 못한다 나불댔으니 이대로 자신은 죽은 목숨이라 벌벌 떨고 있던 괴생은 이번에도 역시 저 빌어먹을 

용왕놈이 자신을 겁만 줄 뿐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진짜 못된 놈이 아니던가. 그들의 용왕은 자신의 백성들이 

두려움에 발발 떨면서 괴로워하는 것을 심각하게 즐기는 변태였던 것이다.

"아, 아닙니다!"

"아니야? 여기서 노닥거리고 있길래 난 심심해서 그런 줄 알았지. 심심하면 말해라. 밑바닥에서 박박 긁어야 하는 해삼 멍게 따윌 

잡아오게 할테니까. 오케이?"

"예?"

"무식한 놈. 오케이. 알아듣겠냐고!"

"……예."

"뭐해. 가봐. 가오리 한 마리 잡아와라. 주문 들어왔다."

"예……."

별하는 온몸이 푹 수그러든 채 터덜터덜 바다로 향하는 문으로 걸어가는 괴생을 한없이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진짜 성격 

더러운 용왕이 아닌가.

방금만 해도 괴생이 저지른 잘못이라는 것이 삼족을 멸해도 시원찮을 왕에 대한 능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빌어먹을 새끼는 

상대의 약점만 머리속에 새겨 넣을 뿐 결코 응당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그것을 빌미로 재미만 볼 뿐 살살 약 올려 

혼자 미쳐 돌아가시게 만드는 것 이상의 응징을 가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관대한 용왕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관대가 

다 얼어죽었는가? 저 빌어먹을 돈 벌레 용왕이 관대하게 말이다.

"씨발. 방울이라도 달든지 해야지……."

"응?"

별하는 무식하게 내려친 칼질에도 불구하고 예술적으로 회 쳐진 우럭을 접시에 담아 주문표와 함께 움직이는 컨베어 벨트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내가 주방에서 연초 피지 말라고 했죠? 왜 말을 안 들어요 왜!"

"내 맘이다."

"음식에 연초 가루 떨어지면 큰일 나는 거 몰라요? 장사 접어요?"

"거 참……. 알았다. 알았어."

용궁에서 저 안하무인 용왕에게 그나마 대거리를 해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제 1 비서관인 자라 별하였던 것이다.

그게 어찌된 사정인가 하면 말이다.

선대 용왕이 후손 없이 비명횡사를 하고 나자 동해 용궁은 혼란에 휩싸였다. 인자하고 자비로운 성품의 용왕이 아직 창창한 

나이였고, 그렇기 때문에 후사를 정해 후의 일을 도모하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았던 궁의 신료들은 모두 우왕좌왕 어쩔 줄을 

몰라했던 것이다.

온갖 사초와 일지를 뒤져 간신히 전전대 용왕께서 선대 용왕의 아우님 되시는 용정을 남겨둔 일이 있다는 기록을 찾았지만 그런 

기록만 있을뿐 그 용정께서 어디에 살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우직하게 앞으로 나선 것이 별주부의 후손 자라 별하였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정이었다.

바다 일이 얼마나 번다하고 복잡한데 오랫동안 왕의 자리를 비워둘 수 없었던 궁의 신료들은 모두 행적 모르는 용정을 찾기보다는 

덕망 있고 후덕한 용으로 용왕을 추대하자 하였지만 단지 별주부의 후손 자라 별하만이 자신이 그 용정을 찾겠다 말한 것이었다.

모두가 용정을 찾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 했다.

그 용정이 세상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판국에 그를 찾는 일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며 또한 그 용정을 찾는다 

해도 제대로 된 용으로 자라 능히 용왕의 자리를 채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별하는 전전대 

용왕의 용정을 찾아 세상을 헤매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 용정을 찾았다.

비명횡사하신 선대 용왕의 아우님이라면 그 성품과 덕망을 의심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 굳게 믿어버렸던 것이다.

중천의 바다에서 조개 아가씨들을 부리며 검은 진주를 뱉어내게 하고 있던 모습이 그 첫인상이라고 해도 그가 왕의 자리에 오르면

선대 용왕과 같이 후덕하고 자비로운 왕이 되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국 별하와 함께 동해 용궁으로 온 광해는 용왕이 되었고, 별하는 벼슬도 없이 그저 이름만 공신이었던 별주부 가문의 후손에서 

용궁의 제 1 비서관의 중책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별하의 불행이 시작된 사건이고, 더불어 동해 바다의 셀 수 없이 많은 이들 중에 유일하게 광해의 앞에서 이처럼 툴툴 댈 수 

있는 별하의 권리가 되었다.

광해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옥좌로 이끈 별하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이고-이 일에 관해서는 아주 많은 법도와 관례가 있었다.

- 그 일로 인해 용궁 식구들에게 온갖 욕설을 다 듣고 있는 별하의 입장에서는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별하별하(鼈何鼈何) 수기현야(首其現也) 약불현야(若不現也) 번작이끽야(燔灼而喫也) 하하하하."

"……?"

별하는 별 해괴한 말을 씨부렁거리며 흔들흔들 주방을 나가려는 광해를 노려보았다.

"으하하하하. 번작이끽야(燔灼而喫也)라……."

"뭔 소리를 하는 겁니까?"

"구지가 몰라? 구지가 말이야."

저 인간이 별주부 가문의 별하를 뭘로 보고…….

"구하구하(龜何龜何) 아닙니까?"

"구하구하지. 허나 별하별하도 나쁘지 않잖아?"

"거 마음대로 뜯어 고치지 마십쇼. 원래 지은 놈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거야 내 알바 아니지? 별하별하 수기현야 약불현야 번작이끽야. 으하하하하"

시퍼런 식칼을 들고 있는 별하의 손이 살심을 품은채 파들파들 떨었지만 광해는 아랑곳 않고 남의 이름을 갖고 재미지게 웃다 

결국 주방을 나가버렸다.

저 제대로 된 변태 용왕의 속내를 누가 알겠는가. 두꺼운 통나무 도마에 오롯이 서서 꽂혀버린 별하의 회칼만이 발발 떨면서 

울화통 터지는 별하의 심정을 대변할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