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동이 정신을 차린 것은 게걸스럽게 음식을 주워 먹던 밥상 위에 누워 한차례 격한 절정을 맞이하고 난 직후였다.
그것은 마치 썰물이 빠져나가는 모래사장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넘실거리며 심신을 사로잡던 열감과 허기가 와르르
소리를 내며 빠져나가 버린 자리에는 엄청난 당혹스러움이 알몸을 드러낸 채 납작 엎드려 무너지고 있었다.
셔츠의 단추는 모두 어디로 갔는지 훤하게 드러난 가슴팍 위로 느슨하게 풀어진 넥타이가 외설스러운 모양새로 널브러져 있었다.
바지와 속옷은 벗겨져 아랫도리가 허전한데 양말 한 짝은 반쯤 벗겨져 발등에 걸쳐져 있었지만 나머지 한 짝은 얌전히 신겨져
있는 상태로 다리를 쩍 벌리고 있는 모양새는 그야말로 난잡하기 그지없는 꼬라지였다.
그는 차가운 상 위에서 눈을 끔뻑이며 방금 전까지 몸을 섞던 남자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일단은 쪽팔림이 먼저였지만 저쪽의 옷매무새도 그리 음전하지는 않으니 통과하자. 더군다나 섹스라는 것이 한쪽만 하고 싶어
한다고 성사되는 개인플레이가 아니니 식당 내실에서 질펀하게 몸을 섞은 일에 어찌 자신의 책임만 있다 할 수 있겠는가.
완고하고 깐깐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실상은 나사가 한 두 개쯤 빠져 있는 그런 인간인 제갈동은 자신의 다리사이에 앉아
흥미진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부끄러움 없이 마주 보면서 몇 번 마른 침을 삼켰다.
그런데 대체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감기로 정신이 나가서 난생 처음 보는 당신이지만 그냥 덮쳐버렸다?
그건 좀 무리가 있는 발상이었다. 덮친 쪽은 엄밀히 말해 푸른 비단옷을 입은 요상한 사내 쪽이었으니까 말이다.
"후후후……."
"……?"
서로 얼굴 마주보기 민망한 상황에서 나지막하게 웃기 시작한 남자를 보며 제갈동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내도록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원래 이런 성격인가?"
"……?"
"처음 보는 수컷 앞에서 함부로 다리를 벌리는 성격인가 말이다."
"원래는 그런 성격이 아닌데요?"
정확하게 말하면 아무한테도 다리를 벌려본 기억이 없는 제갈동이 정직하게 대답하자 사내는 상 위에 내려놓았던 곰방대를
물고 깊게 빨아 당긴 후에 푸른 연기를 내뱉으며 다시 한 번 짧게 웃어버렸다.
풀어 헤쳐진 저고리 앞섶으로 진주처럼 희고 매끄러운 남자의 가슴이 보였지만 정좌하고 앉아있는 그의 아랫도리 쪽은 동의
시선에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하아…….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자조적인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제갈동은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려 땀에 젖은 이마 위에 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 아니면
정신 나간 행동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섹스를 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가 남자라니…….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성정체성에
관해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육체관계까지는 없었다 할지라도 교제한 사람은 모두 사지육신 멀쩡한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러한 교제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거기다 더 엄청난 문제는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마치 아련한 과거 속의 일처럼 몽롱하게 느껴지는 이 섹스가 그를 엄청나게
흥분시켰다는 것이었다. 섹스란 것이 이렇게 훌륭한 유희라는 사실을 예전에 미리 알았더라면 지금쯤 자신은 색주가에 청춘을
바치며 세상의 모든 밤놀이에 심취해 있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억울함까지 생겨날 정도로 말이다.
그 증거로 사정한 뒤에 밀려오던 허탈감 대신 생기 넘치는 활력으로 평상시보다 두 배는 빠르게 생각들이 정리되고 있지 않은가.
뭐 어쨌든.
열이 내렸고, 허기도 잠잠해 졌다. 섹스는 즐거웠고, 아쉬운 마음까지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나쁜 일이 하나도 없는데 괜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닌가.
물론, 고풍스러운 곰방대로 뭔지 모르는 연초를 빨아대고 있는 남자 쪽의 정체라든지.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기는 해도 이왕 벌어진 일에 울상을 지으며 걱정부터 싸짊어지는 것도 동의 성격은 아니었다.
이 일을 빌미로 뭔가를 요구해 온다면 적당한 선에서 끊어줄 뒷배도 있었다. 물론 추문을 만들어낸 아들에 대해 지겹도록
끈질긴 고문을 가할 모친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것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컨디션은 좀 어때?"
"아주 좋은데요?"
"후후훗. 정말로 원래부터 그런 성격인 겐가?"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다리 벌리는 성격은 아니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남자는 유쾌하게 보였다.
자신이 이처럼 개운하고 말끔한 기분이니 남자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경험이었던가 보다고 속편하게 생각해 버린 동이 상 위에서
네 활개를 펴고 누워버리자 남자는 조금 더 즐거운 웃음 소리를 잠시 동안 내더니 슬그머니 동의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었다.
"내 이름은 광해라고 한다. 네 이름은 뭐지?"
"……동."
"흐응?"
"제갈동."
"갈동이?"
예민해진 피부를 쓰다듬는 남자의 손길이 마음에 들어 나른하게 한숨을 내쉬던 동의 미간이 슬그머니 찡그려졌다.
"동입니다."
"동이? 재롱동이?"
"제갈. 동입니다."
"뭐든……. 여력이 남아있다면 조금 더 유희를 즐기는 게 어떠냐."
"……?"
남자의 요청이 없었다면 동이 먼저 남자를 유혹하는 게 아닌가 싶었을 정도였다. 나른하게 그의 다리와 골반을 거쳐 움직이고
있는 손길이 아직 노골적인 성희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동의 욕구를 자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부터 동이라는 인간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이 뭐든 오랫동안 고민하거나 걱정하는 유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이런
예기치 못한 사고가 한번이면 어떻고 두 번이면 또 어떠냐는 생각을 하였다.
이 횟집의 사장이고, 이름이 광해라는 것 밖에 알지 못하는 상대라고 해서 지금 당장 바르작거리며 타오르기 시작하는
즐거운 유희를 멈추게 할 만한 것은 못되지 않은가.
동은 고개를 끄덕였고, 남자는 잠시 동안 바람 소리 같은 웃음을 웃다 동의 허벅지 안쪽으로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