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35)

희한한 횟집이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한 블럭 건너 하나씩 성업 중인 저가의 대중 횟집처럼 보였는데 훤한 조명으로 뻔히 들여다보이는 홀을 지나 

반 층 정도 위로 올라온 곳에는 아늑하게 꾸며진 내실까지 있었다.

조용한 자리를 권해 달라고 했더니 이런 횟집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미모의 아가씨가 그를 이 내실로 안내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내실에서는 반 층 정도 아래에 있는 홀이 내려다보이는 불투명한 유리벽이 있었다.

그저 그렇고 그런 보통의 횟집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인테리어가 아닌가.

어쨌든 동은 그런 기묘한 횟집의 모든 것을 차치하고 얼떨결에 찾아 들어온 이 횟집의 음식이 모두 맛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중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의 몸속에 있는 백혈구들이 맹렬하게 감기 바이러스와 전투를 하기 위해 엄청난 열량을 소모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는 일이겠지만…….

잘 차려진 상 한 켠에 비어가는 접시들을 보면서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으려면 더 이상 주문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단지 생각뿐이었다.

맹렬한 허기는 그를 잠식했고, 아득한 열감이 그의 논리적인 이성을 송두리째 날려버려서 빈 젓가락을 빨고 있던 동은 자신도 

모르게 종업원 호출 벨 위로 손을 가져다 대었다.

우럭 한 접시, 산 오징어 회, 낙지 회, 줄돔…….

거기다 기본 상차림이라며 들어온 해삼과 멍게, 소라 따위의 해산물 회가 두 접시고 매운탕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밥도 두 공기나 먹었는데 어째서 아직까지 배가 고픈 것일까.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잘 걸리지도 않는 감기에 걸리게 되면 인간의 수준이라 할 수 없을 만큼 맹렬하게 먹어대는 자신이 

마치 식욕만 살아있는 짐승처럼 생각되어졌다.

저 많은 음식들을 시키는 동안 단 한 번도 놀란 기색 없이 내도록 방긋방긋 웃으며 내실을 찾아왔던 종업원 아가씨를 

기다리면서 동은 회 접시 아래 깔려 있던 무채를 둘둘 말아 초장을 찍어 먹기 시작했다. 먹어도먹어도 마치 아귀처럼 걸신들린 

이 허기는 도통 가셔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도 없이 열리는 내실의 장지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기대하고 있는 웃는 얼굴의 종업원 아가씨가 아니었다.

반짝거리는 푸른빛의 비단 저고리를 입고 있는 남자는 헤엄치는 것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들어섰다. 방을 잘못 찾았노라는 

당혹감도 없이, 멍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동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채 방안으로 들어선 남자의 등 뒤로 소리 없이 

문이 닫힐 때까지 동은 기묘한 느낌의 남자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비단 자체가 반짝이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보다는 아주 섬세한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는 은색 자수들이 빛을 받아 부서지는 

햇살처럼 반짝이고 있는 것이었다. 움직일 때마다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나지만 남자의 푸른색 비단 저고리와 흰색 바지는 

매끄럽게 남자의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결처럼 부드러운 재질로 보였다. 하느작거리며 움직이는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곰방대에서는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남자는 꼭 중력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어느새 동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누구?"

"여기 사장."

남자의 목소리는 아득하게 먼 바다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 같았다. 울림이 깊고 낮지만 그 뜻을 헤아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만큼 명확한 음성. 동은 정확한 발음의 말소리를 사랑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나운서처럼 딱딱 끊어지는 그런 말은 

선호하지 않지만 불분명한 발음으로 흘려 내뱉듯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남자는 동이 

환장하도록 사랑하는 그런 목소리와 발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의 긴 다리가 쭉 뻗어지며 동의 뒤로 쭉 펴지고 흰 비단 바지 아래쪽으로 삐죽 얼굴을 내밀고 있는 크고 모양 좋은 맨발의 

발가락들이 몇 번 꼼지락 거리는 동안 동은 넋을 빼놓은 듯 그저 남자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동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상 위로 팔꿈치를 기댄 남자가 물끄러미 동을 바라보다 곰방대를 물고는 깊게 그것을 들이마셨다.

담배라고 생각했지만 매운 담배 냄새는 나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풀 향기 같기도 하고 차 향기 같기도 한 냄새가 남자의 

연기 속에서 또 한 번 동을 매료시켰다.

산중 깊은 암자의 법당 안에서나 맡을 수 있을법한 향냄새 같은 것이 남자의 곰방대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통해 맡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에게서 동이 꺼리고 싫어하는 것들은 단 한 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가 아무런 말도 없이 동이 식사하고 있는 내실에 

불쑥 들어온 것이나, 그렇게 들어와서 지금까지 자신의 직책을 밝힌 것 말고는 아무런 말없이 꼭 제집인양 편안한 자세로 동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불편하지가 않았다.

"몸이 아픈가 보군."

"아……."

"열이 내리게 해줄까?"

"……?"

남자는 한참만에야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제안은 아니었지만 동은 그것을 생각할 만큼의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눈알이 타는 것처럼 뜨끈뜨끈 했고, 몸은 허공에 떠 있는 것과 같이 몽롱한 부유감을 헤매는 중이었던 것이다. 맨 정신이라면 

절대로 납득하지 못했을 이런 상황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만큼 감기는 맹렬하게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남자의 제안에 자신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남자의 손이 동의 이마에 와 닿았을 때 동은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크고 마른 손바닥은 차가운 유리 같은 느낌이었다.

저절로 눈이 감기고 그 차가움을 한껏 맛보고 싶은 열망에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동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커다란 손은 천천히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마를 거쳐 뜨거운 눈 위에 머물러 괴로운 열기를 식혀주는가 싶더니 금세 뺨을 쓸어내리며 턱 끝으로 떨어졌다.

닿는 것만으로도 괴로움이 한껏 가셔지는 것 같았던 손을 아쉬워하며 동이 천천히 눈을 뜨자 살짝 미간을 찡그린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삼충이 나간 바람에 기가 흐트러져 버렸군."

"아……?"

"그게 아닌가?"

"……."

몽롱한 정신은 정상적인 사고를 거부했다.

동이 바라는 것은 남자가 저 차가운 유리와 같은 손으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마를 만져 이 괴로운 열감을 사라지게 해주는 

것뿐이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남자의 손에 닿는 동안이라면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을 것도 같았고, 채워지지 않는 공복감도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열망은 욕구를 불러일으켰고, 그 욕구가 마침내 참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해졌을 때 동은 남자의 손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그것을 

자신의 뺨으로 가져다 댔다. 터무니없을 만큼 난감한 행동이지만 정작 그 행동을 하고 있는 동은 아무런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에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한 난감함을 찾을 수는 없었다.

외려 남자는 재미있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손바닥에 얼굴을 비비는 동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 아닌가. 조금이라도 

손을 빼려 하거나 이성을 잃어버린 것 같은 동을 만류하는 기색이 없었다.

"발정기인가?"

"흐음……."

차가운 유리와 같은 온도. 하지만 부드럽고 커다란 손바닥.

동은 너무도 만족스러운 나머지 슬며시 눈을 감은 채 배부른 강아지가 낼 법한 한숨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의 현 상태란 것이

객관적으로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볼 만큼 여유롭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뭐……."

"……."

"용정을 주는 일이야 없겠지만 육보시 하는 것이 무에 어려울까. 이리 오거라."

남자는 그저 손바닥에 얼굴을 비비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생각하지 않는 듯 한 동의 어깨를 잡고 부드러운 힘으로 그를 자신의 

품 안에 가두었다.

매끄러운 비단 저고리가 뺨에 닿았을 때 동은 그 가슴 안쪽의 공간이 터무니없을 만큼 차고 단단하지만 더불어 편안하고 

안락하다는 사실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고란 놈이 가출을 해버려서 사고를 치게 생긴 상황이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당장은 허리를 끊어놓을 듯이 요동치는 굶주림과 열감에서 벗어나는 일이 가장 간절한 동에게 눈앞에 있는 이는 '낯선 남자'가 

아니라 그저 단순한 먹잇감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지독한 열과 헐떡이는 허기에서 그를 해방시켜줄 아주 매력적인 먹잇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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