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98화 (517/520)

제8장. 갓 오브 블랙필드를 만나야 합니다. (1)

오산 비행장 입구로 들어선 승합차가 경계병의 수신호에 따라 곧바로 활주로를 향해 달렸다.

기이이이이잉.

전투기의 엔진 소리는 확실히 수송기나 여객기와는 달라서 승합차 안에서 듣는데도 가슴이 뻑뻑하게 느껴지는 위력이 있었다.

활주로의 끝으로 달린 승합차가 멈춘 다음이었다.

대테러 대원들과 고건우, 김형정, 그리고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승합차를 향해 다가왔다.

드르륵.

가장 먼저 석강호가 내렸고, 다음으로 강찬이 내렸으며, 마지막으로 제라르의 순서였다.

“부원장.”

고건우는 행정부의 총리를 지냈던 사람이다.

깔끔하게 넘긴 머리에 늘 빈틈없는 눈빛이 그의 특징이었는데 오늘만큼은 붉어진 눈을 하고서 강찬의 앞에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부원장을 누가 말리겠습니까? 다만…….”

말을 하던 고건우가 감정을 삼킨 뒤에 애처로운 미소를 지었다.

“부원장이 없다면 아프리카의 미래도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건 어쩐지 입 밖으로 꺼내면 부정을 탈 것 같아서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하신 것 같은데요?”

“그것과 이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억지로 농담을 건넨 고건우가 강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강찬의 손을 꽉 잡았고, 그마저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왼손을 뻗어 손등을 덮어주었다.

“늘 받기만 합니다. 고맙습니다.”

마지막까지 안타까운 감정을 전한 고건우가 물러나자 이번엔 김형정이 다가왔다.

“삼성동에서 생포한 테러범 세 명은 이미 전투기에 탑승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형정은 일부러 사무적인 음성으로 말을 전하는 느낌이었다.

“다녀올게요.”

“몽골에서 저를 구해주었던 것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만약 못 돌아오시면 제가 구해드리러 갈 겁니다. 그곳이 어디든 간에요.”

픽 웃은 강찬이 손을 뻗었고, 김형정이 다부지게 그 손을 잡았다.

“대통령님은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과의 회담으로 오시지 못했습니다.”

손을 놓기 직전에 김형정이 전해준 말이었다.

전투기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옷을 덧입어야 한다.

한쪽에 준비된 버스에 올라가 옷을 입는 동안, 최종일과 이두희는 그곳까지 함께 움직였다.

버스에서 내렸고, 이제는 정말 출발할 시간이었다.

강찬이 몸을 돌렸을 때, 최종일과 이두희는 붉어진 눈을 하고 있었다.

“왜들 이래? 내일이라도 아프리카로 돌아오라고 할지 몰라.”

“지옥이더라도 부르시면 갑니다.”

강찬이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가 마주 내민 최종일의 손을 슥 당겼다.

오른쪽 어깨가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는 순간에 강찬은 최종일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돌아온다. 반드시.”

왜 남자의 감정은 이렇게 가슴 저 깊은 곳에 담기는 건지.

눈매 매섭고 날카롭게 생긴 최종일의 감정이 마주잡은 손과 바싹 붙은 어깨를 통해 강찬의 가슴에 담겼다.

이어서 이두희와의 인사였다.

“다녀올게.”

“예.”

입을 삐죽이지 않으려고 힘을 꽉 준 이두희와도 어깨를 부딪치고 서로 등을 두드렸다.

“종일아.”

석강호가 최종일의 이름을 부르고는 다른 말을 하지 못한 채 끌어안았고, 이두희에게는 “이 자식.”하는 이상한 인사말을 남겼다.

제라르와도 인연이 적지 않다.

“초이. 내가 가니까 걱정하지 마.”

미쉘에게서 배운 우리말이라 어딘가 나긋나긋한 느낌의 인사를 건넨 뒤에 제라르가 강찬의 뒤에 섰다.

“다녀오겠습니다.”

“차렷!”

고건우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 직후에 대테러 팀 지휘관이 커다랗게 구령을 외쳤다.

“부원장님께 경례!”

척!

지평선에 가까이 다가 선 태양을 등에 진 대원들이 강찬에게 단단한 인사를 전했다.

강찬과 석강호, 제라르가 답례를 하고 손을 내린 다음이었다.

“바로!”

대원들과의 인사가 끝났다.

“가자.”

강찬을 시작으로 석강호와 제라르가 각각 전투기의 뒷자리로 올라갔다.

헬멧을 쓰고, 벨트를 채우자 캐노피가 천천히 내려와 파일럿과 강찬을 덮었다.

강찬은 고건우와 김형정, 그리고 활주로에 서 있는 요원과 대원들을 향해 오른손 엄지를 세웠다.

‘반드시 돌아온다.’

기이이이이이잉.

전투기가 곧바로 앞으로 움직였다.

한국의 보도 방송이 이토록 빠르게 해외로 퍼져나간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닉네임 갓 오브 블랙필드가 조금 전 오산공항을 통해 미국 펜실베니아로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상득 기자.]

[네. 이상득입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오산 공군작전사령부와 활주로 근처로 평소보다 삼엄한 경계가 펼쳐진 가운데, 약 5분 전에 전투기가 이륙한 것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통상적인 훈련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다만, 상황이 급박한 상태이고, 짙은 썬팅을 한 차량들이 들어간 직후에 이륙한 것으로 봐서 갓 오브 블랙필드가 탑승한 전투기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기자의 음성이 나오는 동안, 화면에는 기지 철조망 위로 전투기가 연달아 떠오르는 모습이 올라왔다.

[또한, 전투기가 이륙한 것과 거의 동시에 갓 오브 블랙필드가 출국했다는 공식 발표가 있는 것으로 봐서도 이번에 이륙한 전투기에 그가 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화면은 다시 앵커를 잡아주었다.

[우리나라에서 핵융합 시설의 폭발을 막기 위해 출국했다는 발표가 있고나서 해당 세 개 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많은 도시에서 환호성이 울려나오고 있습니다.]

앵커가 화면의 오른쪽 아래로 시선을 돌린 다음이었다.

매직으로 쓴 종이와 커다란 피켓을 든 사람들이 열광하는 모습이 바로 화면에 올라왔다.

[프랑스의 에펠탑입니다. 한국에서 폭발을 막기 위해 출발했다는 보도가 있고나서 이곳의 프랑스인들과 관광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에펠탑 근처의 상황과 인터뷰가 이어진 다음이었다.

화면이 바뀌어서 초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끌어안고 펄쩍펄쩍 뛰거나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는 장면이 이어졌다.

[우리는 살았어! 우리가 살았다고!]

커다란 덩치의 노동자가 딸을 끌어안고 외치는 고함이 TV를 통해 고스란히 나왔다.

[코리아에서 출발했다는데요! 소감이 어떻습니까?]

[당신들 모두가 영웅입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살려줬어요!]

[아직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요?]

[그는 영웅입니다! 갓 오브 블랙필드는 분명하게 영웅이에요! 누가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핵시설에 들어가겠습니까! 그는 반드시 이번 폭발을 막을 겁니다!]

다른 말을 했다간 기자고 뭐고 당장 주먹을 휘두를 것처럼 덩치 큰 남자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화면이 또 바뀌었다.

[코리아! 코리아! 코리아!]

공연장의 무대에서 바라본 것처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인 사람들이 손을 치켜들며 ‘코리아’를 외치는 장면이었다.

[펜실베니아의 공군 기지 앞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와서 연신 코리아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절망을 던져버린 대신 희망을 외치고 있으며, 코리아는 이들에게 희망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보도는 그렇게 영국의 그란섬과 이스라엘의 아라드까지를 차례로 보여주었다.

이어지는 보도는 전문가들이 나와 핵융합 시설이 어떤 구조인지를 추측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며, 폭발을 막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런 뒤에 갓 오브 블랙필드의 정체에 대해 추측하는 보도도 따랐는데 국가정보국 소속이라는 예상 말고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따라 안가에 있던 그라펠트에게 콧수염이 진하게 난 중년 남자와 말끔한 차림의 건장한 남자 셋이 들이닥쳤다.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무슨 일이오?”

소파에 앉아 보도 방송에 집중하던 그라펠트가 불안한 얼굴로 질문을 던진 다음이었다.

“갓 오브 블랙필드를 만나야 합니다.”

콧수염의 중년 남자가 나직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무슨 소립니까? 나는 미국 국가안전국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따라 보호 중인 사람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른 준비하십시오.”

“말도 안 돼! 내가 누굴 피해서 국가안전국에 정보를 넘긴 줄이나 알고 그러는 거요! 테드를 연결해 줘요!”

그라펠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급하고 당황한 얼굴로 콧수염의 사내에게 고함을 질렀다.

“테드를 연결해달라니까요! 지금! 당장!”

“미스터 그라펠트. 이 명령을 내린 분이 테드국장입니다.”

“뭐요……?”

그라펠트는 완전히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콧수염의 남자가 고갯짓을 하자 건장한 남자 둘이 그라펠트의 양쪽 팔을 잡았다.

“이봐! 잠깐만! 그를 만나면 나는 죽어! 죽는다고! 여기는 미국이잖아! 나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 정보원이라니까!”

끌려 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라펠트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통화를 마친 라우드가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금융조직인 다윗의 별에게 가장 아쉬운 것은 무력이었는데 그나마 준비하던 무력조직마저 뤽상베르에서 강찬에게 부러진 뒤여서 믿을 건 경호원들뿐이었다.

충성심 따위 라우드는 믿지 않는다.

그가 경험했던 모든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거액을 제시했을 때, 혼이라도 팔겠다고 나섰으니 말이다.

중요한 건 상상조차 못하는 금액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라우드는 대통령 별장을 경호하는 인원을 살폈다.

저들의 손에 각각 모두 오백만 달러를 쥐어준다면?

바깥에 준비한 차를 타고 라우드가 사라진 뒤에 별장이 폭파 된다면, 그는 세상에서 없어진 인물이 된다.

라우드가 수석 경호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 뒤에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막 부르려는 참이었는데 그가 먼저 라우드에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인가?”

“잠시 외출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외출이라니? 어디로?”

“갓 오브 블랙필드를 만나셔야 한답니다.”

라우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시커멓게 변하는 놀라운 순간을 경험했다.

그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것은 각진 빌리의 얼굴뿐이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이봐. 나는 이 별장을 절대 나설 수가 없어. 그리고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약속을 잡은 멍청이에게 전해! 나는 절대로 이 약속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이야.”

라우드가 단호하게 외출을 거절한 다음이었다.

“이럴 경우는 강제로라도 모시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빌리가 고개를 돌리고 검지를 치켜들자 요원 둘이 빠르게 다가와 라우드의 양팔을 껴안듯이 붙들었다.

“도대체 누구냐! 누가 나를 이렇게 대하라고 했는지부터 말해! 이런 말도 안 되는 납치가 아무런 일 없이 덮어지리라고 생각하나! 빌리! 하원의장에게 연락해보면 알 것 아니냐!”

끌려가면서도 라우드는 마지막까지 기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빌리! 하원의장에게 전화만 한 통 하게 해주면 오백만 달러를 제공하겠다! 이곳에 있는 요원들 전체에게 말이다!”

라우드의 유혹이 떨어진 직후였다.

빌리가 라우드를 붙들고 움직이던 요원 두 명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래! 현명한 선택이다! 전화 한 통이면 너는 당장 미국에서 1퍼센트 안에 드는 부자가 되는 거다. 그러니 지금 전화기를 꺼내서 하원의장의 번호를 눌러! 간단하지? 그게 전부다!”

빌리는 쓰다 달다 말없이 라우드를 바라보기만 했다.

“고민할 것 없어, 빌리. 전화기를 꺼내서 하원의장의 번호를 찾은 다음, 통화버튼을 누르는 것이 전부야. 기회를 잡으라고. 부자가 되면 세상이 달라 보이지. 어때? 멋지지 않나?”

“미스터 프레지던트.”

“금액이 부족한가? 보기보다 욕심이 있었구만. 그래! 누구에게나 기회를 잡을 권리는 있지. 원하는 금액을 말해 봐.”

그나마 여유를 되찾은 라우드가 말을 마친 다음이었다.

“미국은 다윗의 별이 주는 돈이 아니라, 갓 오브 블랙필드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빌리……?”

당황한 얼굴이 보기 싫다는 것처럼 빌리가 고갯짓을 했고, 요원 두 명이 라우드를 끌고 대기하던 승합차로 움직였다.

펜실베니아 공군 기지 주변에 전투기가 내릴 때는 새벽 3시 경이었다.

군부대 주변으로 경계를 위한 라이트가 훤하게 켜져 있었고, 그린베레 대원들이 주변을 삼엄하게 둘러싼 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했다.

기아아아아아앙.

전투기가 내려앉는 소리는 정말이지 귀를 찢는 것처럼 파고들어서 폐에서 울리는 느낌이었다.

“와아아-!”

그런데도 몰려든 수만 명의 사람들은 양손을 높게 든 채로 전투기의 엔진 소리보다 더 커다란 함성을 토해냈다.

방송용 조명이 기지 앞길을 낮처럼 밝혔고, 전투기가 내려앉을 때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강찬을 태운 전투기는 활주로 끝에서 천천히 방향을 틀었다.

“펜실베니아 공군기지입니다. 부원장님과 함께 비행할 기회를 얻은 것에 감사합니다.”

강찬을 맞이하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 쪽으로 움직이는 전투기 안에서 파일럿이 무전을 통해 전한 말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가운데 활주로 위로 줄줄이 등이 박혔고, 서서히 움직이는 전투기의 날개 끝에서 빨간 등이 반짝였다.

“대한민국이란 이름이 이렇게 자랑스러웠던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부원장님이 무사히 귀환해서 한국으로 함께 돌아갈 기회가 있기를 희망합니다.”

기이이이잉.

파일럿의 말이 끝났을 때 전투기가 멈춰 섰다.

캐노피가 위로 올라간 다음이었다.

“혹시 전에 전투에 참여한 적이 있나?”

내리기 직전에 강찬이 질문을 던졌고,

“박승용 소령과 두 번 참여했었습니다.”

파일럿이 예상했던 답을 전했다.

강찬은 픽 웃으며 헬멧을 벗었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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