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결심을 한 모양이군요. (3)
그때부터였다.
강찬의 전화기가 울기 시작한 것은.
“강찬입니다.”
[부원장. 이런 발표를 왜 내게 의논하지 않았습니까?]
비통함이 가득 담긴 문재현의 전화가 가장 먼저였다.
[나는 항공모함 필요 없습니다. 돈으로 따질 수 없다는 그 전투기 50대도 부원장과 바꿀 마음 전혀 없습니다.]
“대통령님. 그건 부수적으로 얻은 것입니다. 제가 정말 가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이들 때문이었습니다.”
[후.]
“영국에서 받아낼 것도 있습니다.”
[압니다. 이미 영국 정부에서 통보가 있었습니다. 부원장. 왜 나를 부원장을 팔아먹는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합니까?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합시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아이들 때문입니다. 그 점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절대 물러날 것 같지 않았던 문재현이 한숨을 내쉰 뒤에,
[혹시 이번 일이 무사히 끝난다면 나는 부원장 옆에서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퇴임한 나를 그런 자리에 임명해준다고 약속하세요.]
정말이지 엉뚱한 말로 매달렸다.
“불편하실 텐데요?”
[그 대답이 없으면 지금부터 대한민국 모든 전투비행단의 활주로를 폐쇄하는 한이 있더라도 부원장을 못 보냅니다.]
고맙다. 이런 대통령과 함께 했었다는 것이.
“약속하겠습니다.”
[끝내 고집을 꺾지 않는군요. 나중에 다시 통화하지요.]
그렇게 문재현과 통화를 끝내기 무섭게 다시 전화기가 울었다.
“여보세요?”
[부원장.]
이번엔 고건우였다.
그와 통화를 마치자 다시 전대극이 전화를 걸었고, 이어서 김관식의 전화가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전화기를 귀에서 떼지 못했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서 있을 때는 바실리의 전화번호가 액정에 떠올라 있었다.
“말해.”
[핵융합 시설에 간다더군.]
“확실히 러시아의 정보망이 대단한 모양이네?”
강찬이 농담처럼 말을 건넨 다음이었다.
[정보망보다는 위성 방송 시설이 훌륭하다고 평가해야지. 이미 보도 채널이 속보로 그 사실을 전하고 있다. 설마 방송된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던 건가?]
하여간, 인간들이 그사이 뭘 어떻게 떠벌렸기에 러시아에 있는 바실리까지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몰랐던 모양이군. 바쁠 테니 한마디만 하고 끊지. 그곳에서 죽어버린다면 묘비에 새겨 줄 문구가 떠올라서 전화했다.]
“모처럼 흥미로운데?”
[세상을 다 가질 뻔 한 멍청이가 여기 잠들다.]
강찬이 픽 웃은 다음이었다.
[내게 빚진 것이 많다는 것은 알 테니 죽더라도 이번 말고 그걸 다 갚은 다음에 죽는 게 좋아.]
냉정한 바실리의 음성이 이상하게 강찬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고맙다, 바실리.”
[역시 우리 주연은 멍청한 맛이 있었군.]
전화는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사무실에 들어선 강찬은 멍한 얼굴로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너는 뭐야?”
“뉴스를 봤습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붕대를 칭칭 감은 제라르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창으로 들어온 오후의 햇살을 등에 받은 채 서 있는 제라르는 완벽하게 상처받은 맹수처럼 보였다.
“같이 갑니다.”
강찬은 잠시 제라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그렇게 헤어진 것이 얼마나 마음에 걸렸으면 저러고 있을까?
만약 제라르가 이런 길에 나선다면 더 큰 부상을 입었더라도 강찬 역시 함께 가겠다고 나섰을 거다.
“미친 새끼.”
“같이 갑니까?”
“전투기라 몸이 견딜 수 있겠냐?”
“대장 피가 몸에 있으니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죽더라도 가다 죽겠습니다.”
강찬이 피식 웃자 제라르가 볼의 상처를 우그러트리며 웃었다.
“대장. 방송부터 보십시오.”
그러면서 제라르는 리모컨을 들어 TV의 볼륨을 높였다.
[한국의 갓 오브 블랙필드가 몇 시간 안에 펜실베니아로 출발한다는 보도입니다.]
네 조각으로 나뉜 화면이 각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맙습니다. 갓 오브 블랙필드. 고맙습니다. 코리아.]
새롭게 쓴 종이를 높게 들고 있는 아이, 그리고 밤을 맞은 도시마다 엄청난 인파가 몰려나와 초를 들고 있는 모습도 나왔다.
[뉴욕과 워싱턴 스퀘어에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나와 초를 들고 갓 오브 블랙필드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화면이 다시 바뀌어 이번엔 아랍 복장의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가슴을 두드리는 모습도 나왔다.
[특히, 그가 죽음을 무릅쓰는 대신 가자지구의 평화를 조건으로 걸었다는 말에 이슬람 세계 전체가 커다란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감사합니다! 그가 우리와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구해주었어요! 고맙습니다! 갓 오브 블랙필드! 신의 가호가 당신과 함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곱슬 거리는 머리와 턱수염을 단 아랍 남자가 흥분한 음성으로 카메라를 향해 감정을 전했다.
살다가 알라신의 가호를 기원한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이어지는 보도는 모두 비슷했다.
그리고 강찬이 도착할 지역의 공항과 대피소 등이 마지막으로 나왔는데 그들 역시 ‘갓 오브 블랙필드’라는 이름이 써진 팻말과 초를 들고 고마움과 기대를 표시하는 장면이었다.
“하여간 뭘 하든 대장하고 해야 하는 거요.”
“그게 뭔 소리냐?”
“푸흐흐. 이왕 하는 거, 이렇게 다부지게 해주는 맛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소? 자! 우리 진하게 봉지 커피 한 잔씩 해주고 출발합시다.”
말을 마친 석강호가 테이블로 걸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이번 건 그냥 내가 할 테니까 놔두고, 이거 마시면서 담배나 하나씩 피우자.”
최종일과 이두희를 밀어낸 석강호가 꾸역꾸역 봉지 커피를 세봉씩 붓는 만행을 저지르며 커피를 탔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봉지 커피의 달달한 향이 퍼질 때였다.
전화기가 울어서 들었는데 액정에 ‘김미영’이란 이름이 떠 있었다.
처음이었다.
전화 받는 것이 두렵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렇지만 절대 피해서는 안 되는 전화였다.
“잠깐만.”
강찬은 회의실로 들어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나야.]
“방송 봤어?”
[응.]
평소에 톤이 올라가는 대답과 전혀 다르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하는 답이었다.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봐야겠어. 안 그러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강찬은 잠자코 김미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가 계속 기다려도 되는 거야? 내 말은 혹시 내가 부담스럽거나 불편하면…….]
“미영아.”
강찬은 김미영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나는 여자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몰라. 전에 봤던 강철규라는 양반처럼.”
이제는 분명하게 알려줘야 할 때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김미영이 서운하지는 않게, 그리고 강찬이 후회되지 않게 말이다.
“다녀오게 되면 우리 여행 가자. 일주일쯤. 이런 모습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일 거다.”
한숨을 내쉬는 듯 한 웃음이 건너왔다.
[꼭 돌아와. 못 오면 나 평생 외롭게 살아야 해.]
어쩐지 김미영은 빈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녀올 테니까 좋은 여행지 뽑아놔. 알았지?”
[응!]
역시, 이렇게 대답해야 김미영 같다.
“미영아. 미안하고…….”
[바보. 그런 말은 와서 해. 바쁠 테니까 끊을게.]
전화는 그렇게 끝났다.
잠시 전화기를 바라보던 강찬이 밖으로 나왔을 때, 군복으로 갈아입은 석강호와 제라르, 최종일과 이두희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얼른 오쇼. 미영이요?”
하여간 저놈은 강찬의 일을 알아채는 귀신같은 눈치를 지녔는데, 이럴 땐 적당히 좀 넘어가는 눈치는 왜 없는 건지 모를 일이다.
“미영이가 보살이요, 보살.”
강찬이 픽 하고 웃으며 테이블에 앉자 석강호가 대뜸 담배를 디밀었다.
“술은 어렵고 자, 다 같이 담배나 나눠 피우고 일어납시다.”
석강호의 말대로 더럽게 진한 봉지 커피를 앞에 놓고, 넷이서 담배를 하나씩 입에 물었다.
최종일과 이두희를 두고 먼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었다.
꽤 긴 시간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이거나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여행 말이다.
함께 가자는 말을 꺼낼 상황이 아닌 것을 누구보다 최종일과 이두희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더더욱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려 애쓰는 눈치였다.
“우리 참 많은 작전과 전투를 함께 했었네.”
석강호가 두 사람을 보며 감회에 젖은 말을 던졌고,
“앞으로도 계속하지 않겠습니까.”
최종일이 든든한 말과 함께 커피를 마셨다.
소리를 줄인 보도 방송에서는 우즈만과 벤그리온이 만나 악수하는 모습이 나오고, 기울어진 햇빛이 테이블에 앉은 네 사람의 그림자를 기다랗게 그려 놓은 오후였다.
최종일을 처음 보았던 골목이 떠올랐고, 윤봉섭의 사무실에서 싸우던 모습, 작전에 나서서 강찬의 옆을 따르던 모습도 생각났다.
강찬이 담배를 재떨이에 끌 때였다.
“그런데 참, 삼성동에서 생포한 놈들은 왜 데려가려는 거요?”
어색해진 분위기를 털어내려는 것처럼 석강호가 질문을 던졌다.
“그놈들 분명 블랙헤드의 에너지를 지녔거든. 삼성동에서의 일이 있고, 내가 가진 에너지를 견디지 못해서 놈들이 죽었던 것도 있고.”
석강호가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얼굴로 강찬의 말을 듣고 있었다.
“블랙헤드는 에너지를 하나로 끌어들인다. 그러니까 그놈들을 끌고 가서 결정적인 순간에 헬멧을 벗겨버리는 거지.”
“그럼 그놈들이 뒈지는 거 아니요?”
“아닐 수도 있지만. 대신 그 짧은 시간이라도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은 거지. 블랙헤드가 그놈들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시간. 뭐, 어차피 제거하려고 생각했던 놈들이니까 이럴 때 써먹으며 좋지 않겠냐?”
담배를 꾹꾹 눌러 끄던 석강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뭐, 완전히 보조 배터리 같은 거네.”
강찬이 픽 웃었고, 제라르가 실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으며, 최종일과 이두희가 기가 막힌 듯 한 웃음을 터트렸다.
강찬이 봉지 커피를 입으로 가져갈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전화기가 울어댔다.
“여보세요?”
[김형정입니다.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삼성동에서 생포했던 테러범들은 지금 막 출발한 상태입니다.]
김형정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럼 우리도 지금 출발할게요.”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남은 일 부탁드립니다.”
통화를 끝낸 강찬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요.”
석강호가 검은색 대테러 팀 군복을 강찬에게 건네주었다.
마지막일지 모른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군복을 갈아입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최종일이 옷과 무기들을 하나씩 강찬에게 건네주었다.
“후!”
준비는 다 끝났다.
“가자”
강찬이 앞장섰고, 석강호와 제라르, 그 뒤를 최종일과 이두희가 따랐다. 문을 나섰고, 지하주차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오른 다음이었다.
“돌아오면 가평이나 한번 다녀옵시다.”
석강호의 말에 강찬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뒤로 오히려 먹먹한 침묵이 감돌았다. 지하주차장에 대기하던 요원들과 대원들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강찬과 석강호, 제라르는 최종일, 이두희와 함께 승합차에 올랐다.
승합차만 세 대에 요원들이 탄 승용차가 따르는 길이다.
주차장을 나설 때 늘 허름한 경비원 복장으로 일하는 요원이 차량을 향해 경례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렇게 묵묵하게 제 자리에서 일하는 이들도 있다.
조명이 비치지 않지만, 저들이 있어서 사무실에서만큼은 편하게 지낼 수 있었을 거다.
주차장을 빠져나온 승합차가 한남대교 방향으로 차를 돌릴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또다시 강찬의 전화기가 울어댔다.
“여보세요?”
[무슈 강. 우즈만입니다. 무슈 강이나 한국에 유리한 것을 요구할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내 꿈을 이루어줘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즈만이 뿌린 씨가 바람에 실려 갔을 뿐입니다.”
우즈만 특유의 애잔한 웃음이 전화기를 타고 먼저 달려온 다음이었다.
[무슈 강. 반드시 돌아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강찬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창밖을 보았다.
파란 하늘, 하얀 뭉게구름, 높다란 빌딩,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승합차는 그사이를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또 볼 수 있을까?
피식 웃은 강찬은 승합차의 좌석에 몸을 기댔다.
석강호가 있고, 제라르가 함께한다.
빌어먹을 돌멩이가 무슨 짓을 하던 간에 셋이 있다면 겁날 것도 없다.
염병할, 알제리에서 다시 태어나는 건 아니겠지?
강찬은 고개를 흔들며 나직하게 숨을 토해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빌어먹을 돌멩이가 이따위로 발악하는 것도.
무조건.
저 말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멩이가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오산으로 향하는 승합차가 무서운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