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94화 (513/520)

제6장. 우리를 살려주세요. 코리아. (2)

성남공항에 도착한 것은 한국 시각으로 새벽 5시였다.

강찬과 함께 석강호, 최종일, 이두희, 대테러 대원들이 내렸고, 이어서 들것에 실린 채 제라르가 구급차로 옮겨졌다.

고건우와 김형정이 마중 나와서 인사를 나눈 뒤에 모두 여객기 화물칸 앞으로 움직였다.

의장대가 대기하는 앞으로 희생된 대원들이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관에 담겨 레일을 타고 내려왔다.

그들이 철제 배지를 관에 받고, 태극기에 덮여 공항을 빠져나가는 데만 한 시간쯤 걸렸는데 강찬은 그 시간을 묵묵하게 비행기 앞에서 지켰다.

아침 6시가 다 되어서야 강찬은 공항을 나섰다.

성남공항 앞쪽의 널따란 도로가 아직은 한적한 시간이었다.

강찬은 고건우, 김형정과 함께 한남동 안가로 향했다.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에서 요청한 면담을 모두 거절했습니다. 공식적인 우리의 입장은 인도적인 차원의 지원 외에 추가로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한남동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고건우가 현재 상황을 빠르게 설명해 주었다.

“대략적인 보도는 오는 비행기 안에서 봤습니다.”

“그렇군요.”

강찬의 말에 고건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답을 했다.

살려달라고 쪽지를 쓴 채 울먹이는 이들의 모습을 보았을 강찬의 심정이 염려되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출근 시간이 시작되기 전이어서 막히지 않고 한남동에 도착했다.

강찬은 우선 샤워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에 몸을 씻었다.

혼돈의 시기였다.

핵융합 발전시설이 폭발하면 얼마나 큰 피해가 있을지 가늠하지 못한다는 보도도 보았다.

맞는 말일 거다.

빌어먹을 돌멩이가 지닌 에너지를 핵융합 시설에 실어서 뿜어낸다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지 강찬 역시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푸후!”

샤워 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강찬은 벽을 짚은 채 생각에 잠겼다.

살려주세요, 코리아.

그들과 전혀 상관없는 삶이고, 관계다.

그런데 말이다.

오는 비행기 안에서 두꺼운 안경을 쓴 그 조그마한 아이의 눈에 담긴 눈물과 공포를 본 이후에 자꾸만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본 아이들과 그 영국 아이가 다르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반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UIS의 총구에 질려 몸에 폭탄을 두르고 울며 다가오던 사람들을 한 번도 외면해 본 적 없었다.

“염병할!”

이것이 어쩌면 더는 달려들지 못하는 그 빌어먹을 블랙헤드의 마지막 발악이란 생각도 들었다.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이 해당 지역의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전쟁만큼이나 급한 상황인 것도 보도를 통해 보았다.

만약 그 폭발이 필라델피아를 삼키는 것 이상이라면?

그저 남들처럼 열심히 살았을 그 덩치 큰 남자와 가족들은 한국에서 전쟁을 일으키려던 음모 따위 전혀 몰랐을 거다.

그들에 대한 생각이 자꾸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강찬을 붙들었다.

샤워를 마친 강찬은 미리 준비해 둔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향했다.

“부원장.”

벌써 도착했던 모양인지 문재현이 거실에서 일어나 강찬을 맞아주었다. 그의 뒤편에 서 있던 전대극과 짧게 눈인사도 주고받았다.

“피곤할 텐데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아닙니다. 오는 비행기 안에서 충분히 쉬었습니다.”

“그럼 얼른 아침을 들지요.”

문재현과 함께 움직인 강찬은 고건우와 함께 셋이서 식탁에 둘러앉았다.

“전 실장도 이리 오세요.”

“저는 요원들과 함께 아침을 먹었습니다.”

문재현이 두 번이나 권했지만, 전대극은 식사 시간도 방심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한사코 자리를 거절했다.

오랜만에 보는 집밥이었다.

어쩐지 유럽을 떠돌고 있을 강대경과 유혜숙이 생각나는 아침 식사이기도 했다.

“들지요.”

문재현이 숟가락을 들며 권했고, 강찬과 고건우까지 세 사람이 식사를 시작했다.

“차세대 발전시설의 가동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마치 강찬이 없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보고하는 사람처럼 문재현은 식사하는 내내 청와대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단하게 알려주었다.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식사가 빠르게 끝났고, 바로 커피가 나왔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피곤할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시간을 내달라고 했습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문재현이 사소한 것을 당부하는 모양으로 강찬에게 말을 건넸다.

“첫 번째는 내가 퇴임하면 아프리카에 일할 자리를 하나 마련해 달라는 것입니다.”

잔을 내려놓던 강찬이 고개를 들 정도로 놀라운 부탁이어서 진심인지, 농담인지 솔직히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남은 인생을 값지게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능력은 부족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꼭 일해보고 싶습니다.”

뜻밖에도 문재현은 진심을 전하는 눈빛으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두 번째 당부도 있습니다. 앞으로 아프리카의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그곳을 통해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부원장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 들었다.

“보도에 나오는 모습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부원장이 염려되었습니다.”

이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문재현의 눈빛과 말투가 딱 그랬다.

“그동안 희생된 대원들과 그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던 부원장의 모습,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했었는지에 대한 보고들이 떠올랐습니다.”

고건우와 김형정은 이 내용을 짐작하고 있었던 눈치였다.

문재현과 비슷한 표정으로 강찬을 바라보는 그들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흔들리지 마세요.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우리에게는 부원장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문재현의 뒤편에 서 있는 전대극이 뜻을 함께 전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도 보였다.

“우리 두 사람 중에 누군가 한 명이 꼭 가야 하는 일이었다면, 내가 가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지난 그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부원장과 같은 인재를 기다려 왔고, 이제야 그 기회를 잡았습니다.”

말을 마친 문재현이 잠시 강찬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부원장. 절대로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을 하려고 일찍 보자고 했습니다. 오늘 나는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에서 온 이들을 만날 생각입니다.”

경호 요원들이 거실에 서 있었는데 문재현의 말이 끊기면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처럼 한남동의 안가는 고요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단호하게 뜻을 전할 예정입니다.”

강찬은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문재현과 그 뒤에서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는 전대극, 그리고 같은 심정으로 바라보는 고건우에게 뭐라고 답을 하기 어려워서였다.

“부원장?”

그리고 문재현이 답을 원하는 것처럼 강찬을 불렀다.

“말씀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을 끝까지 외면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문재현이 아픈 얼굴로 바라보는 앞이었다.

“대통령님께는 말씀드리지 못한 개인적인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차세대 발전시설을 안정시킨 것과 같은 일입니다. 어쩐지 지금 이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한다면 반드시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흠.”

깊은 신음이었다.

그러면서도 문재현은 그 개인적인 문제가 무어냐는 질문 따위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보고는 들었습니다. 삼성동에서 있었던 테러 사건에서도 이해 안 되는 점이 있었구요. 하지만 마지막 결정을 내리기 전에 내가 한 말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만은 꼭 듣고 싶습니다.”

“그 점은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란 얼굴로 문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바를 다하겠습니다. 실제로 핵융합 발전시설의 폭발을 막을 능력이 내겐 없고, 그 일을 부원장이 나서는 것도 반대이니까요.”

말을 마친 문재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일어나겠습니다. 피곤할 부원장을 붙들고 이 말을 꼭 전해야 하는 내 입장을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문재현이 악수를 원하는 것처럼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뜻을 잊지 말라는 듯 마주 내민 강찬의 손을 오래도록 붙들었다.

문재현과 헤어진 강찬은 일단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석강호와 최종일, 이두희가 아침을 먹고 난 다음이었다.

“역시 옷이 날개인 거요. 커피 드시겠소?”

“주라. 담배도 좀 주고.”

강찬은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유리 앞에 놓인 테이블로 걸었다.

“여기 있소.”

커피를 가져온 석강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강찬에게 건네주었다.

둘이서 불을 붙이고 난 다음이었다.

“뭔 일 있었소?”

“핵융합 발전시설에 갈 생각 말라는 당부였다.”

석강호가 던진 질문에 강찬이 있는 대로 답을 했다.

“에이, 대장이 멍청이도 아니고, 아무렴 거기에 갈까 봐 그런 소리를……?”

말을 하던 석강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강찬을 들여다보았다.

“혹시 엉뚱한 생각하는 거 아니지요?”

“그냥.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아이들이 자꾸만 눈에 치인다.”

“에효! 그거 병이요, 병! 그리고 그런 병은 내 말이 약인 거요. 대장. 우리도 한번 제대로 살아봅시다. 아니, 잘 오다가 고작 영상 한번 본 거로 뭘 그런 고민을 해요?”

석강호가 고개를 저어가며 말을 쏟아냈다.

“우리가 만들라는 것도 아니고, 그거 만든답시고 온갖 염병 떨었던 놈들 아니오? 남 선배나 희생된 대원들을 생각해요. 그들이 진정 바랐던 것이 뭔지도 생각하구요.”

그리고는 전혀 대꾸조차 할 수 없게 강찬의 고민을 틀어막았다.

“모르겠다. 피곤한데 한숨 자고 생각하자.”

“생각할 게 없다니까요. 그냥 자요. 자고 일어나서 매콤한 낙지볶음에 밥 비벼 먹으면서 땀 쭉 빼면 끝나는 일인 거요.”

피식 웃은 강찬이 일어나자 석강호가 회의실까지 졸졸 따라왔다.

“같이 자려고?”

“꿈에 쓸데없는 것들이 나타나서 대장 꼬드길까 봐 옆에서 지키려고 그렇소.”

“미친놈.”

하여간 어떤 상황에서도 석강호가 있으면 웃게 된다.

강찬은 회의실로 들어가 소파에 길게 누웠다.

“두 시간 있다가 일어날 테니까 너도 좀 자 둬.”

“알았소.”

회의실의 불을 끈 석강호가 문을 닫았다.

두 시간을 푹 자고 일어났다.

아프리카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태양일 텐데, 창으로 들어온 볕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강찬에게 다가왔다.

이런 걸 못 잊고 그리워하면 향수병이란 고상한 이름의 병을 앓는 걸 거다.

한남동에서 샤워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워서 그런지 강찬의 머리가 이리저리 눌려서 볼만했다.

문을 열고 나온 강찬은 픽 하고 웃고 말았다.

어지간해서는 벌떡 일어났을 최종일과 이두희가 죽은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무실에 돌아온 것이 안심돼서 저럴 거다.

지하주차장은 물론이고, 창 건너의 건물까지 완벽하게 지켜준다는 믿음이 두 사람에게 담겨있던 피곤함을 있는 대로 끌어낸 게 분명했다.

어쩐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라서 강찬은 물끄러미 최종일을 보았다. 많은 작전을 함께 치르고, 이렇게 함께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했다.

“어흑!”

강찬의 추억을 석강호가 내뱉은 소리가 쫓아버렸고, 마법의 주문처럼 최종일과 이두희를 깨웠다.

강찬은 테이블로 움직여 물병을 들어서 석강호에게 가져다주었다.

빨갛게 충혈된 눈, 삐죽삐죽 사방으로 뻗친 머리칼, 찌부러진 눈까지, 정말이지 인상 더러웠다.

“가르르르!”

에이, 더러운 새끼.

강찬은 얼른 샤워실로 향했다.

물이 풍부한 나라에 사는 건 정말 큰 복이다.

간단하게 씻고 나온 강찬은 전화기를 들고서 번호를 찾은 뒤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무슈 강.]

반가운 라노크의 음성이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두 시간쯤 자느라고 전화가 늦었습니다.”

[나는 저녁쯤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내가 무슈 강에게 소중한 사람은 되나 봅니다.]

라노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기 저 너머에서 [무슈 강! 나를 잊어서는 곤란합니다.] 하는 우즈만의 넉넉한 음성이 들렸다.

[에르완을 만나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점심 무렵에 도착한다던데 그때로 약속을 잡아도 될까요?]

“저는 지금 위원장님을 찾아뵈려고 했는데요?”

[전 세계를 통틀어서 가장 바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방문한다는데 그것이 싫을 수가 있나요? 그렇다면 점심은 셋이서 해도 되겠군요.]

“20분쯤 뒤에 출발하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강찬은 석강호에게 라노크를 찾아갈 거라고 알려주었다.

“나도 같이 가서 그곳에 있어도 되지요?”

“지루하지 않겠냐?”

“혼자서 있는 거보다 그게 백번 낫소.”

강찬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세 사람이 바쁘게 움직였다.

어차피 씻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은 기다려줘야 한다.

먼저 옷을 갈아입은 강찬이 리모컨을 들어서 보도 방송 채널을 선택한 다음이었다.

[강도 7.2의 강진입니다. 이 상태라면 핵융합 시설의 폭발이 아니더라도 이곳은 이미 전쟁터와 다름없습니다.]

먼지를 뿌옇게 뒤집어쓴 기자가 보도를 전하는 뒤에서 축 늘어진 아이를 부여안은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울부짖고 있었다.

[God of Blackfield! Save us! Please!]

[갓 오브 블랙필드! 제발 우리를 구해주세요!]

그리고 흙가루를 흠뻑 뒤집어쓴 아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닉네임과 한글로 된 종이를 든 채 서럽게 우는 장면이 흔들리는 화면에 또렷하게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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