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아직 해결해야 할 적들이 많아. (1)
죽음이 또 다른 강자의 삶이 되는 아프리카라고 해도 50만에 육박하는 시체를 한순간에 감당하는 것은 무리였다.
휘이이잉.
바람이 한번 불 때마다 반둔두 전체에 가라앉아 있던 역겨운 냄새들이 훅 올라오곤 했는데 어지간한 훈련을 마친 특수팀 대원들도 이를 악물며 그 순간을 견디곤 했다.
강찬은 양범, 최종일, 이두희와 함께 밖에서 기다리는 외인부대 대원들을 향해 걸었다.
시체들을 양쪽으로 밀어놓고 그 사이로 길을 만든 데다, 양쪽에 무장한 대테러 팀 대원들과 화이트 울프 대원들이 버티고 있어서 이건 뭐 딱 지옥으로 통하는 입구처럼 보였다.
쩔걱쩔걱.
강찬은 곧바로 외인부대원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왼편에 양범, 오른편에 석강호가 섰고, 그 뒤를 최종일과 이두희, 대테러 팀 대원, 그리고 화이트 울프 대원 둘이 소총을 아래로 내린 자세로 지켰다.
“갓 오브 블랙필드다.”
강찬을 본 외인부대 대원들이 눈알을 좌우로 굴리며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제9연대 지휘관 프로랑은 조금 전에 외인부대 명예를 실추시킨 점과 명령 불복종의 죄목으로 총살에 처했다.”
마른 침을 삼키는 놈, 갓 오브 블랙필드가 진짜인지 확인하려는 놈, 그리고 긴장한 놈, 반응은 여러 가지였다.
“다음 지휘관은 누구냐?”
능숙한 프랑스 말이다.
가장 앞줄, 강찬의 왼편에 서 있던 대원이 두 걸음쯤 앞으로 나왔다.
“쟈베크입니다.”
덩치가 커다랗고 이마에서부터 머리가 벗겨진 40대 초반의 프랑스 남자였다.
“나는 외인부대의 명예를 그 무엇보다 존중한다. 선택은 너희의 몫이다. 지휘관에게 충성하기 위해 전투를 원한다면 모두 죽여줄 테고, 명예를 찾을 기회를 원한다면 명령을 주겠다.”
마른침을 삼킨 쟈베크가 대원들을 돌아보았다가 시선을 가져왔다.
“부총국장님. 우리가 외인부대의 명예를 저버렸다는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우리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부대에 대기했을 뿐입니다.”
피식.
강찬은 쟈베크를 바라보며 특유의 웃음을 보냈다.
“부지휘관인 네가 프로랑이 한 짓을 몰랐다는 거냐?”
보병으로 구성된 외인부대 제9연대의 현재 인원은 모두 500명쯤 되었다.
물론 안과 밖으로 화이트 울프 대원들이 쭉 깔렸고, 저 먼 곳에 헬리콥터가 앉아 있지만, 당장 전투가 벌어지면 강찬은 위기를 모면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도 달랑 댓 명과 함께 나타난 강찬이 완벽하게 무장한 외인부대 보병 500명을 앞에 두고, 말 한마디에 싹 죽여버리겠다는 듯한 미소를 보이는 거였다.
“쟈베크.”
“Oui.”
답을 하는 쟈베크는 강찬의 눈빛과 태도에 완벽하게 기가 죽은 얼굴이었다.
“외인부대의 명예냐, 아니면 지휘관에 대한 충성이냐?”
“우리는…….”
말꼬리를 잇지 못했던 쟈베크가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우리는 부대의 명예를 위해 외인부대에 지원했습니다. 정보총국장님께 명예를 지킬 기회를 부탁드립니다.”
“너의 각오를 말해봐.”
“Legio patria nostra(부대가 나의 조국)!”
강찬이 픽 하고 웃었다.
“좋아. 지금부터 제 9연대 2선 외곽을 경계한다. 지휘는 쟈베크가 맡는다.”
“감사합니다!”
외인 부대식 경례를 마친 쟈베크가 부대원을 인솔해서 뒤쪽으로 움직였다.
“외인부대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전혀 엉뚱하게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양범의 질문에 강찬은 먼저 픽 하고 웃었다.
“장교는 프랑스인입니다. 그들은 승진과 안정된 노후를 원합니다. 그 외에 외인부대에 지원한 대원들은 늘 같습니다. 영주권과 도전, 그리고 명예.”
도대체 강찬은 어떻게 저들의 바닥 심리까지를 꿰뚫고 있을까?
고민하던 양범은 내심 고개를 젓고 말았다.
이런 일은 늘 고민으로 끝났다는 알았기 때문이었다.
기지로 돌아온 강찬이 양범과 테이블에 앉기 무섭게 또다시 무전이 들어왔다.
치잇.
“콩고 민주공화국 깃발을 단 승용차, 지프, 트럭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무장 병력과 일반인이 섞여 있습니다.”
강찬은 바로 무전기 버튼에 손을 올렸다.
치잇.
“상황을 판단해서 대처하도록.”
치잇.
“알겠습니다.”
이미 날이 훤하게 밝은 날이었다.
“병동에 잠시 들어갔다 나오겠습니다.”
“방문객도 있는 모양이니 나는 여기에 있겠습니다.”
양범에게 양해를 구한 강찬은 병동으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아직 임미옥과 허은실이 소총을 앞에 든 자세로 서 있었다.
허은실이 아직도 석강호를 볼 때마다 놀라는 눈치였다.
“교대할 인원이 없나?”
“한 시간 뒤에 교대입니다.”
임미옥이 하는 답을 들은 강찬이 허은실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는 척은 좀 하고 지내지?”
“얼른 들어가!”
임미옥이 당황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앞에서 픽 하고 웃은 강찬이 병동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박철수였다.
그는 의식을 잃은 것처럼 잠이 들어 있었다.
“상태는?”
“오늘이 고비일 것으로 보입니다.”
강찬은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차동균이었다.
온몸에 붕대를 감아서 맨살이라고는 눈과 손가락, 그리고 발가락 끝이 전부였는데, 그는 눈을 뜨고 있었다.
“왜 안 자?”
차동균이 눈 끝으로 웃었다.
그런데 그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울어서가 아니라, 약물과 통증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눈물처럼 보였다.
“나를 보는 게 그 정도로 감격할 일이야?”
이번엔 좀 더 분명하게 웃었다.
“고생했다. 미안하다.”
차동균의 손가락을 잡아준 강찬은 이어서 곽철호와 대원들을 쭉 돌아보고 마지막에 강철규의 침대로 움직였다.
차동균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몰골로 붕대를 감은 강철규는 그나마 왼손과 얼굴의 절반쯤은 내놓고 있었다.
“잠깐만 자리 좀 피해줘.”
석강호가 눈치껏 최종일과 이두희를 데리고 병동 바깥으로 나갔다.
강철규가 힘겹게 강찬을 보았다.
“안 죽을 거 알지?”
강찬의 말을 들은 강철규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넣었어. 제일 많이.”
“너는……?”
“걱정해주는 척하지 말고, 얼른 일어나. 아직 아프리카에 해결해야 할 적들이 많아.”
강철규가 입술을 움직여 힘겨운 미소를 그려냈다.
부상 때문인지 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얼굴과 손이 퉁퉁 부어서 살이 잔뜩 찐 사람처럼 보였다.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처음으로 강철규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낯간지럽지 않았다.
진심이어서, 워낙 간절해서 그랬던 모양이었다.
“저녁쯤 다시 올게. 한숨 자.”
손을 뻗어서 잡아주려 했다.
그런데 강철규의 왼손이 오히려 강찬의 손가락을 꽉 잡았다.
강찬은 손에서 시선을 들어 강철규를 보았다.
둘이서 그렇게 똑바로 바라본 채 잠시 있었다.
“자고 일어나. 좋아질 거야.”
고개를 끄덕인 강철규가 강찬의 손을 놓았다.
이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강철규와 이토록 오래도록 손을 잡고 있었던 것도.
제라르는 기다란 속눈썹이 한껏 돋보이는 모습으로 눈을 감은 채 잠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문바키 역시 비슷한 모습이었다.
악착같이 싸웠을 제라르가 지금은 몰락한 가문을 위해 맞서 싸우다 쓰러진 귀족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였다.
잠시 제라르와 문바키를 바라보던 강찬은 밖으로 몸을 돌렸다.
병동을 나섰을 때, 테이블에서 세 명의 아프리카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갓 오브 블랙필드 입니까?”
뚝딱이는 억양의 프랑스 말이었다.
“콩고 민주공화국의 음부투 대통령이십니다.”
그가 시선을 돌린 곳에서 프로레슬링 선수 같은 덩치의 음부투가 강찬을 향해 두꺼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이미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양범을 소개하려던 강찬은 “앉으시죠.”하고 테이블을 권했다.
부서진 담, 시선을 돌린 곳에 쌓인 시체들, 그리고 핏자국이 그대로 엉겨있는 처참한 현장 한가운데에 놓인 탁자였다.
이두희가 눈치껏 차를 준비했는데 역시나 봉지 커피였다.
다들 형식적으로 커피를 마신 다음이었다.
강찬은 시선을 들어 음부투를 바라보았다.
“우선 2천 명의 인력을 데려왔고, 곧 장비와 추가로 2만 명의 인원이 도착할 예정입니다. 비용은 전부 우리가 부담합니다. 이곳을 가장 능숙하게 정리할 인원이라고 자부합니다.”
강찬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갓 오브 블랙필드. 한 가지 특별한 제안을 하기 위해 이곳에 들렀습니다.”
강찬의 반응을 살핀 음부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아프리카가 깨어날 시기가 되었습니다. 나는 아프리카 연합을 각국에 제안했고, 그에 대한 답을 들었으며, 우리는 초대 아프리카 연합 총통에 갓 오브 블랙필드를 추대하기로 하였습니다.”
강찬의 뒤에 있는 대원들은 프랑스 말을 모른다.
그래서 덤덤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양범은 놀란 표정을 감추기 위해 나직하게 숨을 들이켰다.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인데 이렇게 급하게 나선 이유가 있습니까?”
“한국이 이곳에 발전시설을 건설하겠다고 할 때 이미 나왔던 제안입니다. 또한, 우리는 반둔두의 전투 결과에 따라 당신을 만나기로 했었습니다.”
강찬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음부투는 못 본 척 외면한 채 다시 말을 이었다.
“서운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 역시 국가의 안위와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요.”
“그런 내용은 내가 아니라 한국 정부와 상의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당신이 없다면 이 아프리카에서 어제와 같은 반군의 기습을 막아낼 나라는 전 세계에 그 어느 곳도 없습니다.”
“내가 맡는다면 권한은?”
“아프리카 전체의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화폐의 통합, 치안, 안보, 그 외에 어떤 것도 당신의 뜻에 맡기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칠 관료들이 적지 않을 텐데?”
“속도를 조절해주는 미덕 정도는 발휘해 주시겠지요?”
대화를 시작하고 어색하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음부투가 웃음을 그려냈다.
“갓 오브 블랙필드. 어쩌면 이 대륙이 지금껏 당신과 같은 절대자를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유럽과 미국의 영향에서 온전히 우리를 지켜줄 절대자 말입니다.”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갓 오브 블랙필드가 아니라면 누가 40만의 반군을 감당하겠습니까? 우리를 지켜줄 힘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오늘 모두 증명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당신의 약속입니다.”
오전의 태양이 내리쬐는 반둔두의 기지 안에서 나온 제안이었다.
강찬은 묵묵한 얼굴이었고, 양범은 기대하는 표정이었으며, 음부투는 답을 기다렸다.
아프리카 연합이라는 선물이다.
이 엄청난 제안에 대해 지분을 들고 돌아가면?
양범은 어쩐지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것 같아서 자꾸만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두 가지 전제 조건이 붙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아프리카의 발전에는 막대한 투자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전기는 발전시설로 충당할 수 있지만, 도로를 비롯한 주택, 저소득층 지원 등을 생각하면 얼마가 들어갈지 모를 정도입니다.”
“총통께서 생각하신 바를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음부투는 강찬을 아예 총통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 프랑스,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대대적인 투자가 있을 예정입니다. 그에 대한 수익의 분배는 전적으로 내 권한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남은 한 가지는 어떤 건가요?”
“연합에 참여하는 모든 국가의 군대에 대한 지휘권입니다.”
양범은 음부투의 표정을 살피고 싶은 것을 참으려 애써 커피 잔을 노려보았다.
모든 군대의 지휘권이라니!
유럽 연합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엄청난 세력의 탄생을 직접 바라보는 심정은 정말이지 그 어떤 긴장과도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 점은 다시 의논드리고 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전에 한 가지 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강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음부 투가 얼른 입을 열었다.
“두 가지 모두가 전제되어야 당신이 총통의 자리를 받아들일 것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문 부투.”
“예, 총통.”
삽시간에 대화가 쭉 한계치를 넘어간 느낌이었다.
양범은 차라리 프랑스 말을 모른 채 서 있는 대원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아프리카의 노동력을 가장 확실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곳이 군대입니다. 월급이 나오고, 그 군대가 유럽이나 미국의 야욕을 저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반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군요.”
“그 뒤에 자긍심을 지닌 교육받은 군인들이 새로운 일터로 나가야 합니다. 그들이 앞으로 아프리카를 이끌 청렴하고 깨끗한 주역이 될 것입니다.”
이를 깨물었는지 볼을 씰룩한 음부 투가 비장한 얼굴로 강찬을 바라보았다.
“총통의 뜻을 반드시 관철시키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새로운 아프리카를 부탁드립니다. 총통.”
그는 처음과 달리 공손한 자세로 강철의 손을 잡은 뒤에 몸을 돌렸다.
덤덤하게 그를 보내는 강철을 보며, 양범은 쿵쾅거릴 정도로 심장이 커다랗게 뛰고 있었다.
갓 오브 블랙필드.
양범은 아프리카의 절대자 가장 근처에 서 있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