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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오브블랙필드(2부)-87화 (506/520)

제3장. 아군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2)

타다당! 타다다당!

멀리서 화이트 울프가 도주하는 적을 향해 발사하는 소총 소리를 배경으로 날이 밝아왔다.

전투가 얼마나 처절했는지는 보여주는 반둔두의 모습이 잔인한 햇볕을 아래로 드러났다.

대테러 팀이 외곽 경계를 맡았고, 병동을 임미옥이 이끄는 606이 경계했다.

물론 임미옥 역시 목덜미에 두꺼운 거즈를 붙이고 있었는데, 이곳 반둔두에서 그 정도 상처는 경계를 그저 누구나 지닌 소총 같은 느낌으로 보였다.

병동으로 들어간 강찬은 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다음에야 밖으로 나왔다.

얼굴이 워낙 창백해서 번들거리는 눈이 아니었다면 죽은 사람이 걸어 나온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찰칵.

“후우-!”

강찬은 가장 먼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당장 아군의 희생자와 적군의 시체를 치우는 일만 해도 엄두가 안 날 지경이어서 주변이 무척 어수선했다.

강찬이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이두희가 나무로 된 테이블을 가져왔고, 연달아 의자 세 개를 들어서 그 앞에 놓았다.

입구를 지키던 허은실이 강찬을 돌아보았을 때였다.

화이트 울프 복장에 권총만 허리에 매단 남자 한 명이 강찬에게 다가왔다.

그는 강찬의 안색을 살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까?”

양범의 질문에 강찬은 픽 하고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앉으시죠.”

“고맙습니다.”

자리를 권한 강찬이 고개를 돌리자 이두희가 안으로 들어가서 봉지 커피를 탄 종이컵을 가져와 두 사람의 앞에 놓아주었다.

“현재 사망자와 생존자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다만, 부상자의 치료와 적군의 시체 처리 등에 병력을 우선 투입해서 당장은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전투를 마친 병사들과 대원들의 아침 식사와 휴식할 공간도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짧게 답을 한 양범이 오른손을 들자 화이트 울프 대원이 빠르게 다가왔다.

중국어 지시다.

양범이 몇 마디를 건네자 대원이 굵고 짧게 답을 하고는 몸을 돌렸다.

“이미 준비 중이랍니다. 2차 지원군은 내일 아침에 도착 예정입니다.”

양범이 말을 마쳤을 때, 석강호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강찬의 뒤에 섰다.

그리고 그때였다.

치잇.

“미확인 트럭 수십 대가 다가옵니다.”

외곽을 맡은 대테러 팀의 무전이 들어왔다.

강찬이 힐끔 석강호를 돌아본 직후였다.

치잇.

“외인부대 깃발입니다.”

다시 대테러 팀 대원의 무전이 들어왔다.

강찬은 무전기의 버튼을 눌렀다.

치잇.

“모두 외곽에 대기시키고, 지휘관과만 병동으로 보내.”

치잇.

“알겠습니다.”

무전을 마친 강찬이 양범에게 내용을 설명하고는 담배를 다시 하나 꺼내 물었다.

중국의 대원들이 커다란 박스를 들고 와 아침 식사용 씨레이션과 물을 병동 앞에 놓아주었다.

“최종일. 대원들에게 교대로 식사하라고 지시해.”

“예.”

강찬이 고개를 돌려 지시했고, 최종일이 빠르게 답을 했다.

그때 허은실은 병동의 앞에서 소총을 앞으로 들고 총구를 왼쪽 아래로 내린 자세로 서 있었다.

최종일에게 지시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던 강찬이 허은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다른 대원들과 같이 헬멧에 복면을 썼고, 여기저기에 피가 얼룩진 군복을 입은 대원이다. 그런데 어쩐지 다리 한 쪽을 삐딱하게 하고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 혈색이 돌아오지 못해 창백한 얼굴의 강찬이 시선을 들어 허은실의 눈을 보았다.

저 눈을 왜 모르겠나?

반항기 가득하고,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저 눈을.

아직 이런 전투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했으면서 그래도 제 몫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담은 병아리 대원의 눈빛이었다.

‘괜찮냐? 다친 곳은 없어?’

‘나 신경 쓰지 마. 너 위험해 보여. 쉬어야 하는 거 아냐?’

고개를 짧게 끄덕여준 강찬이 양범에게 시선을 돌릴 때, 최종일이 임미옥에게 대원들의 식사를 지시하고 있었다.

“비행이 힘겨우셨을 텐데 좀 쉬셔도 됩니다.”

“그래도 내가 백랑대와 흑랑대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전투기 좀 탔다고 쓰러져서야 대원들 볼 낯이 없지요.”

“바실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지요?”

“그러는 게 아무래도 좋지 않겠습니까? 물론 투박하게 받겠지만요.”

강찬과 양범이 우리 말로 대화를 나눈 뒤였다.

대테러 팀 대원 한 명과 프랑스 외인부대 복장의 군인 한 명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식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두 명씩 서 있던 자리에서 한 명은 식사를 하고, 남은 한 명은 그대로 자리를 지킨다.

동료에게 먼저 식사를 권한 허은실은 다가오는 대원과 외인부대원, 그리고 강찬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까지의 강찬은 허은실이 알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외인부대원이 나타난 순간부터 눈앞에 있는 강찬이 삽시간에 변해 버렸다.

어지간한 특수팀 대원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는데 당장 허은실은 그게 뭐라고 딱 짚어서 표현하지는 못했다.

억지로 표현하자면, 정장을 입은 국가대표 축구 선수가 축구공을 발로 밟은 것처럼, 이런 상황을 골백번쯤 경험해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강찬은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외인부대원을 바라보았다.

양범의 뒤편에서 다가왔다.

그래서 양범은 앉은 자세 그대로 뒤를 향해 몸을 돌렸다.

쩔걱쩔걱. 쩔걱쩔걱.

대테러 팀 대원이 테이블에서 5미터쯤 떨어진 곳에 멈췄고, 양범을 호위하던 화이트 울프 대원 둘이 소총을 단단하게 붙잡고 노려보는 앞이었다.

“외인부대 9연대 지휘관 프로랑입니다!”

그는 강찬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외인부대 특유의 경례를 강찬에게 올렸다.

프랑스 말이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는 강찬과 양범만 알아듣는다.

“지원 요청을 무시한 이유는?”

“상부에 보고했고, 명령을 받는 순간에 서둘러 도착했습니다!”

피식.

강찬이 웃는 것을 본 프로랑이 긴장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프로랑.”

“Oui!”

“이곳에 나 말고 정보총국 소속 문바키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내 이름을 대고 지원을 요청했지. 그럼 하나만 묻겠다. 네가 보고했다는 그 상부가 어디냐?”

“외인부대 통합 지휘부입니다.”

어쩐지 자신 없는 답변을 한 프로랑이 마른 침을 삼킨 다음이었다.

“최종일!”

강찬이 부르자 최종일이 대뜸 허리에 걸었던 권총을 뽑아서 프로랑의 귀 위에 바싹 붙였다.

고작 이름 한 번 부른 거다.

그런데도 최종일이 곧바로 강찬의 뜻을 알아차린 거라서, 양범조차 놀란 눈으로 보았을 정도였었다.

“부총국장님!”

“지금부터 헛소리를 지껄이면 부대원 전체와 네 가족 전부가 죽는다. 그러니까 알고 지껄여.”

프로랑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앞에서 강찬은 통화버튼을 눌렀다.

“프로랑. 반둔두의 지원 요청을 외인부대 제9연대 지휘관인 네가 거부한 진짜 이유를 말해봐.”

잠시 후, 강찬이 피식 웃는 순간이었다.

“정보총국장의 지시였습니다!”

프로랑의 답과 동시에 서늘한 긴장이 강찬의 주변에 흘렀다.

“주변을 돌아봐라. 네가 외인부대의 명예와 자긍심을 버리고 정치적인 놀음을 하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비록 프랑스 말을 못 알아들었지만, 주변에 있는 모든 대원이 충분히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맞은편에서 강찬을 보고 있던 양범은 이번에 함께 아프리카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 강찬은 이전에 양범이 보았던 그 어떤 모습보다 강렬하게 느껴졌다.

‘갓 오브 블랙필드란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양범이 아프리카에 오지 않았다면 결코 느낄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가 내심 감탄하는 앞에서 강찬이 프로랑에게 시선을 주었다.

“프로랑. 나는 외인부대의 자긍심을 그 누구보다 존중한다.”

왼쪽 관자놀이에 최종일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투를 거부하고 정치 놀음을 즐기는 지휘관은 내가 아는 한 외인부대원이 아니다.”

프로랑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렇게 확실하게 나왔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강찬이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이에 대한 내 처벌은 총살이다. 대신 부대원과 가족은 남겨주지. 그 정도면 되겠나?”

찰칵.

강찬이 라이터를 켜느라 떨궜던 시선을 들어 프로랑을 바라본 직후였다.

“감사합니다! 부총국장님!”

40대 중반의 얼굴에 마른 체형을 가진 프로랑이 대뜸 답을 뱉어냈다.

“좋아.”

고개를 끄덕인 강찬이 최종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치워.”

타아아앙! 털썩.

마치 옆으로 무너지는 것처럼 바닥에 고꾸라진 프로랑의 관자놀이에 엄지손톱만 한 구멍이 있었고, 그 두께만큼은 피가 쭉 뿜어져 올라왔다.

“바깥에 있는 부대원들이 반발하지 않겠습니까?”

걱정된 표정으로 양범이 질문을 던진 다음이었다.

“후.”

강찬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정치 놀음에 빠진 지휘관을 위해 죽겠다는 놈들은 모조리 죽여주는 게 좋습니다. 어차피 정보총국장을 제거할 때까지 피할 수 없는 싸움이기도 하구요.”

“강찬 씨는 정말 많이 변했군요.”

피식 웃은 강찬은 남은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만들 겁니다. 중국의 4만 명이 턱없이 희생되었고, 내 사람들이 엉뚱하게 죽어 나갔습니다.”

양범이 또렷하게 바라보는 앞이었다.

“중국에서는 양범 씨가 구금되었고, 한국에서는 말도 되지 않는 테러가 있었구요.”

담배를 한 모금 더 피운 강찬이 먼 하늘로 시선을 주었다.

“정보국의 세상이 아프리카에서 싸웠던 전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새삼 배웠습니다. 악수를 청하는 상대의 손에 늘 총이 들려있었다는 것도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강찬의 말을 양범은 반박하지 못했다.

실제로 정보국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더라도 궁금하고 염려되는 것은 있었다.

“미국 대통령 라우드가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피식.

양범의 염려를 강찬은 웃음으로 답했다.

웃기는 일이다.

강찬의 웃음을 본 양범이 ‘라우드가 죽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는 것이 말이다.

***

라우드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본 뒤에 전화기를 귀에 가져갔다.

“시설에 관련된 자들을 모조리 제거해.”

[그렇게 되면 지금 겨우 견디고 있는 것조차 불가능해져서 바로 폭발로 이어집니다.]

“테러로 발표해. 미국과 영국에 이어 이스라엘까지 그런 폭발이 일어난다면, 세상의 눈이 누구를 의심할지 답이 나오잖나?”

[미국은 몰라도 이스라엘은 이번 폭발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더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됩니다. 지금은 그에게 매달리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문을 슬쩍 보았던 라우드가 냉정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수천 년을 떠돌던 민족이다. 대신 이전과는 달리 자본이라는 무기를 쥐고 있으니 너무 염려할 것 없다. 바로 지시를 수행해.”

말을 마친 라우드는 전화를 끊고는 지도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당장 있을 폭발을 피할 곳이 필요했다.

통화를 마친 그라펠트는 입술을 모으고 눈앞에 올라와 있는 디지털 수치를 살폈다.

이렇게 폭발하고 나면 정말 라우드의 바람대로 테러로 결말지어질까?

기자, 정보기관들이 의심스러운 정황을 파헤치기 위해 달려들 거고, 반드시 이 일의 주동자를 찾아 나설 것이며, 그렇게 되면 라우드와 그라펠트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띠르르르. 띠르르르.

그때 그의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가 울었다.

“무슨 일입니까?”

[방금 미국과 영국에 강도 5.3의 지진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경고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제는 아예 지친다는 듯한 보고가 올라왔다.

[연구원들 대부분이 대피한 상황입니다.]

“그들이 어디로 갔습니까!”

그라펠트의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느꼈던 모양이었다.

잠시 침묵했던 상대방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엉뚱한 계획을 세우기에는 이곳과 관련된 인원이 워낙 많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끝났다.

“후우-!”

전화기를 내려놓은 그라펠트는 책상에 올린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강찬밖에 답이 없다.

그 무서운 인간이 모든 것을 손에 쥔 상황이었다.

그라펠트는 어쩐지 하늘의 저주를 받아 황야에 버려진 느낌이 들어서 서글픔과 눈물이 동시에 왈칵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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