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늦어서 미안하다. (2)
악귀 같이 달려든 적들이 단숨에 제라르와 문바키, 네로와 용병들을 뒤덮었다.
터억! 피윳! 핏!
기다랗게 휜 칼의 손목을 때려낸 제라르가 놈의 목을 두 번 가르는 동안,
푸욱! 푹! 푹! 푹!
저 앞쪽에서는 쓰러진 용병을 향해 끔찍한 칼질이 수없이 떨어져 내렸다.
눈이 뒤집힌 거다.
적이고, 아군이고, 이 지옥에서 완벽하게 눈이 뒤집혀 가능하면 잔인하게 상대를 죽이기 위해 발악하고 있었다.
콰악! 피잇! 피잇!
어깨로 적을 들이받은 제라르가 옆에서 달려드는 두 놈의 목덜미를 깊게 가르고 난 다음이었다.
쉐엑! 피잇!
대놓고 휘두른 적의 칼에 등을 맞은 네로가 휘청거렸다.
와락!
제라르는 잽싸게 몸을 움직였다.
터억!
그리고는 네로를 노렸던 놈의 손목을 잡아 기다란 칼을 비틀었고,
쉐엑! 피이잇!
그걸로 놈의 목을 그대로 갈랐다.
“물러나! 문바키!”
이대로는 위험하다.
쉑! 피잇!?
고함을 지르는 사이, 왼쪽 팔뚝을 커다랗게 베였는데 그래도 제라르는 멈추지 않고 대검을 휘둘렀다.
피윳! 핏!
사방이 시커멓게 물든 밤이었다.
죽음 같은 어둠이 주변을 꽉 누르는 그런 밤 말이다.
“알라후 아크바르!”
쉐에엑!
적들의 고함과 함께 기다란 칼이 허공을 섬뜩하게 가르고,
핏! 피윳! 핏! 핏!
제라르의 대검이 적의 목이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끄아아-!”
처절한 비명이 어둠을 찢어발기고 사라지는 옆에서 적들은 마치 회색의 물결처럼 계속 밀려들었다.
헐렁한 셔츠, 조끼, 이슬람 특유의 옆이 터진 원피스에 허름한 바지를 입은 적들이 계속해서 제라르를 노렸다.
푸욱! 쉐엑! 쉑! 푹!
누군가 칼을 맞으면 단숨에 잔인한 칼질이 그의 몸뚱이에 집중됐다.
광기에 가까운 칼질이었다.
40만이 넘던 인원이 반 넘게 줄어든 것에 대한 분노,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들의 칼질에 담겨 있었다.
피잇! 핏! 피윳!
“문바키!”
제라르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네로를 누군가 끌어서 본부 쪽으로 옮겨야 했는데 신기하게도 문바키가 네로보다 더 잘 견디고 있었다.
콰악! 피잇! 피윳! 핏! 핏!
제라르는 칼을 휘두르는 적의 손목을 때려내고 놈에게 불쑥 달려들었다.
피윳!
먼저 놈의 목덜미를 베었고,
푹푹!
연달아 옆구리를 찔렀다.
지옥이었다.
악귀처럼 달려드는 누군가의 목을 가르고, 심장을 찔러야 삶을 연명할 수 있는 곳, 반두두는.
적의 목에서 뿜어지는 피가 얼굴을 덮칠 때, 제라르는 옆에 있던 또 다른 적의 목을 갈랐고, 거짓말처럼 그 순간에 강찬을 떠올렸다.
피식 웃는 거, 정말 멋진 거다.
이런 지옥을 뚫고 났을 때 생기는 죄의식을 씻어주는 웃음이었고, 살아있는 것이 정의라는 그 단순한 논리를 제대로 보여주는 웃음이라 그렇다.
쉑! 피윳!
적의 칼날이 제라르의 등으로 떨어졌다.
왼쪽 등에 둔탁한 통증이 먼저 달려들었고, 이어서 그 자리를 불로 지지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밀려들었는데,
꽈악! 피잇! 핏!
몸을 돌린 제라르는 그 적의 목을 움켜쥐고 목덜미를 두 번이나 갈랐다.
“커억! 컥!”
목덜미를 움켜쥔 적의 손가락 틈으로 시뻘건 피가 쭉 뿜어져 나올 때, 제라르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살아있어! 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까 살아있어라! 제라르!’
강찬이 오고 있다.
세 시간만 버티면 그를 볼 수 있는 거다.
“으아아-!”
벼락처럼 고함을 지른 제라르는 기다란 칼날을 휘두르는 적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휘이익! 콰작!
그리고 이마로 적의 콧잔등이를 세차게 들이받았다.
온통 피를 뒤집어쓴 상태라 제라르의 눈이 더욱 잔인해 보였는데 본인은 그걸 몰랐다.
“대장!”
문바키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렸을 때,
쉑! 쉐엑!
제라르는 적들에게 완벽하게 둘러싸여 있어서 문바키를 볼 수 없었다.
차동균은 이를 악물고 소총을 뒤로 돌렸다.
스응!
그리고는 어깨에 걸어둔 대검을 뽑아 들었다.
“와아아-!”
“알라후 아크바르!”
담벼락을 타고 올라온 적들을 향해,
투두둑! 투두두둑!
뒷걸음질 치는 북한군 병사들이 소총을 갈겨댔는데, 그래도 살아남은 적들은 담 아래로 뛰어내렸고, 그대로 아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와락!
대검을 거꾸로 든 차동균은 적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피윳! 핏! 핏!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특수팀 대위다.
콰악! 핏! 핏! 피잇!
너희가 믿는 신만큼이나 소중한 조국과 태극기가 내게, 우리에게 있다.
쉐에엑! 쉑! 쉐에엑!
그깟 칼날쯤…….
휘익! 콰자작! 핏! 피잇! 핏!
그 칼날에 갈라져 내 몸에서 쏟아지는 피쯤…….
콰악! 피윳! 핏! 피잇! 핏!
나의 이 피로 조국을 지킬 수 있다면,
쉑! 터억! 피윳! 핏! 핏!
나는 행복한 거다!
차동균의 등과 옆구리를 향해 적들이 럭비 선수처럼 달려들었다.
쓰러트릴 욕심인 것 같았다.
그렇게 쓰러트리고 난 뒤에 일제히 달려들어 기다란 칼을 꽂아넣고 싶은 모양이었다.
콰아악!
기회를 노리던 적 한 명이 상체를 숙인 자세로 달려들어 차동균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멍청아! 나는 아프리카의 절대자와 함께 작전을 뛰었고, 대한민국의 전설에게 배운 특수팀 대위라니까!
콰악! 콱!
팔꿈치로 적의 목덜미를 두 번이나 찍어댄 차동균이,
휘익! 콰자작!
무릎으로 놈의 얼굴을 걷어 올렸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사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라도 좀 더 잘 사는 대한민국을 전해주고 싶어서라고 답하고 싶다.
동료가 쓰러져 바로 눈앞에서 기다랗게 휜 칼에 찍히는 것쯤 그들이 몰라도 상관없다.
콰악!
또다시 옆구리를 들이받는 적의 목덜미를 팔로 감싸고,
휘익! 으드득!
놈의 목을 부러트려 죽이는 것쯤 얼마든지 한다.
쉐에엑! 피잇!
등에 칼을 맞고,
쉑! 쉐엑!
다시 옆구리와 팔뚝을 베어도 괜찮다.
“나는!”
이렇게라도 해서 우리 후손들이 세계 어디를 가든 대우받고 살 수 있다면,
“대한민국의!”
우리의 여권이 곧 안전이고, 신변을 보호하는 증빙이 되는 세상이 온다면,
“특수팀 대위다!”
이곳에서 죽는 것은 전혀 억울하지 않다.
쉐에엑! 콰악! 핏! 피이잇!
차동균은 칼을 휘두르는 적의 손목을 때려내고 대검을 빠르게 그었다.
퍼뜩 눈을 뜬 강철규는 피식 웃었다.
알코올로 대강 닦은 얼굴은 핏기가 부족해 죽은 사람처럼 하얗게 보였는데 그런 것쯤 상관없었다.
그는 귀신처럼 상체를 일으켰다.
소리로 알 수 있었다.
병동을 지키며, 다급한 병사들에게 매달린 용성부대 대원들의 얼굴을 보고서 확실히 짐작했다.
“누워계셔야 합니다!”
피를 양동이로 뿌려놓은 것처럼 늘어진 병사의 심장을 꾹꾹 누르며 용성부대 대원이 외친 고함이었다.
강철규는 손목에 걸린 링거와 혈액 바늘을 뽑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침대에서 일어났다.
휘처-엉!
웃긴다. 고작 이따위 상처로 몸이 비틀거리는 것이.
“선배님! 그 몸으로는 정말 안 됩니다!”
침상에 올라탄 대원이 악을 바락바락 쓰며 강철규를 붙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피와 땀이 범벅인 얼굴로 쉴 새 없이 늘어진 대원의 가슴을 눌러대고 있었다.
저 간절함을 어떻게 모르겠나.
네가 그 대원을 살리고 싶은 것처럼, 나는 이 반둔두를 지키고 싶다.
조국이 늙어버린 내게 준 감사한 임무이고, 강찬이 바라는 일이며, 후배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지켜내려는 땅이라서 그렇다.
어울리지 않지만, 강철규는 용성부대 대원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고 병실 문을 향해 움직였다.
강철규의 오랜 친구, 대검은 입구에 얌전히 누워 있었다.
이제 우리의 마지막을 장식해야지?
달각.
강철규는 그걸 거꾸로 집어 들고 병동을 나섰다.
“와아-!”
적들의 고함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그런다고 강철규가 겁을 낼 사람은 아닌 거다.
피식!
별 같잖은 것들이 감히 대한민국의 땅을 처먹겠다고.
그것도 숫자를 믿고서.
병동의 간이 막사를 나간 강철규는 대뜸 곽철호가 있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후회는 없다. 마지막까지 임무를 준 조국에 감사한다.
이미 오래전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와락! 피잇! 핏! 핏! 피잇!
트럭이 거칠게 지나간 옥수수밭처럼, 강철규가 달려들자 적들 사이로 길게 통로가 열렸다.
“와아-!”
그러나 그 통로는 또 다른 적들로 인해 곧바로 사라졌다.
티잉! 티잉!
임미옥이 수류탄의 안전핀을 제거했고,
티잉! 팅!
그녀의 뒤에서 허은실이 연달아 수류탄의 핀을 제거했다.
휘익! 휙! 휙! 휙!
“수류탄!”
거친 음성과 함께 임미옥과 앞쪽에 있던 대원들이 상체를 숙였다.
콰으응! 콰응! 콰으응! 콰으으응!
이 뒤는 망설임 없는 돌격이다.
와락! 와락! 와락! 와락!
비록 아군의 희생이 있더라도, 이 순간을 놓치면 대치가 길어지고 지금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아군에 도움되질 못한다.
푸슈슝! 푸슝! 푸슈슝! 푸슝! 푸슈슝!
회색 헬멧과 두건 사이에서 독한 눈빛을 번들거리며 대원들은 적의 막사 안으로 뛰어들었다.
왼팔에 달린 태극기가 명령한 일이다.
아군을 도와서, 이 반둔두를 사수하라.
푸슈슝! 푸슝! 푸슈슝! 푸슝! 푸슝!
엄청난 성과였다.
어쩐 일인지 방심하고 있던 적의 특수 부대원을 상대로 임미옥과 606 대원들은 완벽하게 작전을 수행했다.
치잇.
“출발해! 서둘러!”
치잇.
“출발합니다.”
멀리서 트럭의 불빛이 보였다.
“탄창 교체하고 바로 본부를 향해 들어간다! 명심해라! 적의 숫자가 아직 17만 이상이다! 우리는 그들을 가르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아군에게 합류한다!”
철컥! 철커덕!
허은실이 독기 가득한 눈으로 노리쇠를 당기고, 저 멀리 있는 기지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소총을 앞으로 들고, 왼쪽 다리를 삐딱하게 꺾고 서 있었는데, 이상하게 허은실은 그런 자세일 때 더 다부지게 보였다.
그르르릉! 부으으응! 부으응!
“올라가! 서둘러!”
트럭은 멈추지 않는다.
임미옥이 악을 바락바락 써댔고, 천천히 달리는 트럭의 뒤로 대원들이 뛰어올랐다.
“아군이 위험하다고! 서둘러!”
임미옥의 고함이 아니어도 기지의 경계선이 무너진 것쯤 이미 보았다.
탕탕!
임미옥이 운전석의 지붕을 때리자,
부아아앙!
트럭이 있는 대로 속도를 높였다.
치잇.
“우리 인원으로 포위되면 끝이다! 이대로 트럭을 이용해서 담까지 밀고 들어간다.”
부아아앙! 덜컹! 덜커덩! 덜컹!
치잇.
“지프에서 사격을 시작하면 일제히 사격을 시작한다! 담에 도착하면 명령 기다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 606은 지금 입고 있는 군복이 우리의 수의다!”
임미옥의 결의에 찬 무전이 대원들 모두의 귀에 분명하게 들어왔다.
치잇.
“팔에 달린 태극기가 우리를 지켜본다! 조국이 준 임무에 감사하고! 이 임무를 너희와 함께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투두둑! 피이이잉!
임미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적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투타타타타타타타! 투타타타타타타타!
지프에 걸어놓은 기관총이 불을 뿜으며 형광색 조각들이 적들을 향해 날아간 직후였다.
푸슈슝! 타다다당! 푸슈슝! 타당! 타다다당!
606과 함께 온 대원들의 소총이 어둠을 찢어내며 적들에게 죽음의 불꽃을 쏟아내고 있었다.
문바키의 활약은 대단했다.
투두두둑! 투두두두둑!
녀석은 바닥에 떨어진 AK소총을 집어 들고 적들을 향해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당연하게 제라르와 용병들이 악착같이 몸으로 막아주었기에 만들 수 있었던 공간이었는데, 그렇다고 쳐도 몸을 사리지 않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큼은 충분히 칭찬받을 만했다.
투두둑! 투두두두둑! 투두둑!?
담 근처에 오자 북한군 병사들이 지원사격을 시작했고,
“이쪽이다! 서둘러!”
상체를 감은 붕대가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피범벅인 박철수가 직접 달려 나와 네로를 받아들었다.
투두두둑! 투두두두둑! 투두둑!
그나마 지원 병력이 일제히 사격을 가하자, 적들은 아까 제라르가 몸을 숨겼던 구덩이에 처박혀 잠시 뜸을 들였다.
임미옥이 전하는 각오는 이미 들었다.
그렇더라도 저 앞 참호에 몸을 처박고 기회를 노리는 적들이 달려들면 이곳도 더는 버티기 어렵다.
“허억! 허억!”
제라르는 처참한 몰골이었다.
어깨와 등, 옆구리, 팔뚝이 군복째 갈라져서 살이 그대로 드러났고, 꾸역꾸역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담벼락 안쪽에 등을 기대고 앉은 제라르에게 박철수가 물병을 건넸다.
“고맙습니다.”
제라르가 인사를 전했고,
“내가 고맙지요.”
박철수가 알 듯 모를 듯한 대꾸를 건넸다.
“들어올 모양입니다.”
박철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지 대각선 지역에서 기관총 소리가 요란하게 달려왔다가 저 멀리 날아갔다.
“끄으응!”
담벼락에 등을 문대는 것처럼 제라르가 몸을 일으켰다.
안다. 알고 있다.
이번에 적이 밀고 들어오면 여기에서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두 사람과 주변에 있는 모두가 말이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에 박철수가 고개를 끄덕였고, 제라르가 씨익 웃었다.
“멋진 전투입니다.”
“단체 손님 전문이니까요.”
제라르의 말에 박철수가 대꾸를 마쳤을 때였다.
회색의 물결이 둑을 넘을 것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철컥! 철컥!
제라르는 소총의 노리쇠를 당기고는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다.
마지막이다. 이번 전투가.
와라! 끝까지! 한 놈이라도 더!
이를 드러내는 맹수처럼 제라르가 독한 표정을 그려낸 직후였다.
“와아-아!”
“알라후 아크바르!”
둑이 무너진 것처럼 회색의 물결이 몰려들었고,
치이잇!
“견뎌! 견…치이이…있어!”
말도 안 되는 무전이 바람결을 탄 것처럼 제라르와 박철수, 대원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치이이잇!
“제라…치이이. 내가…치이…곧…치이이이….”
분명 독이 잔뜩 오른 강찬의 음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