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늦어서 미안하다. (1)
붕대를 감던 박철수가 빠르게 무전기 앞으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마이크를 들고 스위치를 눌렀다.
치이잇!
“반둔두 본부다. 606! 현재 상황을 보고 바란다. 반복한다. 현재 상황을 보고 바란다.”
마이크의 버튼을 내려놓은 박철수가 차동균을 힐끔 바라본 직후였다.
치잇!
“기지 외곽 5킬로미터 지점입니다. 바깥으로 특수부대로 보이는 적군 병력 50명쯤이 육안으로 확인되고, 기지를 둘러싼 이슬람 복장의 적들을 확인한 상태입니다.”
무전을 함께 들었는지 바깥쪽에서 “와아-!”하는 함성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다.
치잇.
“606! 지원 인원과 무기를 보고 바란다.”
치잇.
“총인원 170명에 606 인원 60명. 개인화기 무장상태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보고는 박철수조차 맥이 쭉 빠질 만한 것이었다. 잠시 무전기를 내려다보았던 박철수가 다시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갔다.
치잇.
“외곽에서 특수부대를 상대할 수 있겠나? 그들만 제대로 붙잡아도 커다란 도움이 되겠다.”
치잇.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전달 사항이 있습니다.”
치잇.
“말하라. 606.”
박철수가 마이크에 답을 하고 무전기를 바라볼 때였다.
치잇.
“갓 오브 블랙필드의 전갈입니다. 해가 뜰 때까지만 견뎌라. 늦어서 미안하다. 이상입니다.”
무전을 듣는 순간에 박철수와 차동균이 동시에 숨을 들이마셨고, 또다시 바깥에서 “와아!”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치잇.
“고맙다, 606. 적들은 10분쯤 뒤에 공격을 재개할 것으로 예상한다. 참고 바란다.”
치잇.
“606, 이상입니다.”
무전은 그렇게 끝났다.
마이크를 손에 든 박철수가 고개를 돌렸다.
“해가 뜰 때까지 얼마나 남았지?”
“대략 3시간 정도입니다.”
현재 상황을 본다면 끔찍하게 긴 시간이었다.
박철수는 마이크를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치잇.
“모두 들었을 줄 안다. 외곽에 606의 지원이 있고, 동이 틀 무렵, 2차 지원이 있을 예정이다. 힘겹겠지만, 각자 맡은 지역을 철저하게 지켜 다 함께 아침을 맞이하자.”
고함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결의에 찬 음성이 무전기를 타고 퍼졌다.
치잇.
“염려마시라요!”
북한군 소좌 안철호의 다부진 답이 무전기를 타고 먼저 건너왔고,
치잇.
“아프리카에서 태양을 기다릴 줄은 몰랐습니다.”
제라르의 든든한 답도 있었다.
아침은 아직 먼 시간이었다.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랜턴 불빛처럼 암담한 상황에 외로운 희망 한 가닥이 연결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희망은 총알을 막아주지 못하고, 달려드는 적의 숫자를 줄여주지도 못한다.
산의 언덕에 등을 기대고 앉은 제라르는 방금 전의 무전을 프랑스 말로 바꾸어 용병들에게 전해주었다.
치잇.
“아침까지라면 해볼 만하겠군요.”
치잇.
“가능하면 너는 죽지 마라. 덩치가 커서 옮기려면 힘이 배로 든다.”
치잇.
“저녁을 제대로 못 먹어서 그나마 좀 나을 겁니다.”
그 뒤로 말도 안 되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어떡해서든 긴장을 털어내고, 얇은 가닥이지만 희망을 붙들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농담이었다.
우르르.
저 앞에 보이는 적들의 움직임이 다시 빨라졌다.
철컥! 철커덕!
제라르는 반사적으로 탄창을 확인한 뒤에 노리쇠를 당겼다.
백 번이면 백 번 모두 확인하라고 강찬에게 배웠고, 그걸 따른 거였다.
치잇.
“적이 움직입니다. 준비하십시오. 대검을 준비하는 것을 한 번 더 확인 부탁합니다.”
제라르가 한국말로 무전을 보낸 다음이었다.
치잇.
“최악의 상황이 되면 본부로 인원을 집결할 계획입니다. 상황을 판단해서 이동하세요.”
박철수의 비장한 답이 있었다.
우르르.
적들은 또다시 흔들리는 것처럼 움직였다.
“끄응.”
제라르는 몸을 일으켜서 둔덕 아래에 발을 걸치고 섰다.
아프리카다.
죽은 이들이 풍기는 고약한 냄새와 매캐한 화약 냄새, 후덥지근한 바람, 그리고 부서지는 흙.
먼 길을 돌고 돌아서 강찬을 다시 만났고, 말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을 겪은 뒤에 이렇게 아프리카에 홀로 서 있다.
제라르는 볼의 상처를 우그러트리며 웃었다.
“문바키. 오늘 전투에서 살아남으면 한국에 함께 가보자.”
그리고는 느닷없는 말을 꺼내 들었다.
“멋진 음식을 소개해 주마.”
“감사합니다.”
문바키는 음식의 이름을 묻지 못했다.
그나마 최선을 다한 답이 바로 고맙다는 인사였을 거다.
우르르.
적들이 달려들기 직전의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606 특임 교관 임미옥은 어둠 속을 빠르게 움직였다.
60명의 606 대원들이 먼저 적들을 기습한 뒤에 남은 110명이 트럭으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10분쯤 뒤에 전투가 벌어진다고 들었다.
이 밤에, 적을 앞에 둔 아프리카에서 10분 만에 5킬로미터를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최대한 적에게 가까이 이동하는 것이 아군을 돕는 일이고, 기습조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인 거다.
임미옥은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해 빠르게 이동했다.
무기와 장비를 있는 대로 몸에 꽉 묶었고, 허리와 무릎을 최대한 굽힌 자세로 달린다.
허리와 허벅지, 무릎이 끊어져 나가는 것 같았는데 그렇다고 속도를 줄일 수는 없었다.
사박! 사박! 사박! 사박!
숨소리가 거칠게 나올까 봐 복면을 한 상태에서도 이를 악물었다.
한참을 달리던 임미옥이 왼팔을 머리쯤에 들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왼편 언덕을 향해 엄지와 검지만 편 주먹을 세 번 흔들었다.
툭툭.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듯 두들긴 대원 여섯 명이 빠르게 둔덕을 향해 움직였다.
저격수 세 명과 경계병 세 명이었다.
다시 달려야 할 때였다.
벌써 목과 군복 안에는 땀이 흥건하게 배어 나왔는데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 따위 없었다.
앞으로 달리기 전에 임미옥은 뒤를 힐끔 살폈다.
빛이 반사되지 않은 회색 얼룩 군복에 헬멧, 복면을 쓴 허은실이 바로 뒤에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임미옥이 다시 움직였고, 허은실과 대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긴장된 상태에서 소총을 겨누던 차동균이 방아쇠를 당겼다.
푸슝! 퍼억!
RPG를 들었던 적이 뒤로 홱 자빠졌고,
삐이이융-.
포탄이 높다랗게 위로 치솟았다.
투두둑! 퍼서석! 투두두둑! 퍼버버벅! 투둑! 피잉!
그리고 끔찍한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삐이이융! 콰으으응! 삐이이융! 콰으응!
담벼락의 위가 터져 나갈 때마다 북한군 병사 둘셋이 담의 파편들과 함께 뒤로 날아가 떨어졌다.
투두둑! 투두두둑! 투두둑! 투두두둑!
“오라우! 이 간나 새끼들아!”
안철호가 미친놈처럼 고함을 버럭버럭 지르며 총구를 돌려대고 있었는데 제라르가 염려했던 대로 적들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땅의 굴곡과 죽어 자빠진 적의 몸뚱이 틈에서 불쑥 머리가 솟아나고, 그렇게 올라온 적이 방아쇠를 당기고는 다시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투두둑! 퍼버벅! 투두두둑! 퍼버버벅!
밤이다.
총구의 끝에서 번쩍이는 불빛과 형광색으로 날아가는 기다란 총알의 궤적이 전부인 세상.
투두두둑!
시체 틈에서 적이 총을 쏘고 모습을 감추면,
투두둑! 투두두두둑!
북한군 병사도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총알을 죽은 적의 몸뚱이를 터트리는 일이 더 많았다.
홰액!
RPG를 들고 몸뚱이를 일으켰던 적이,
푸슝! 퍼억!
차동균의 사격에 이마를 뚫리고 쓰러졌고,
투두두둑! 퍼서서석!
그런 차동균을 노린 사격이 담벼락을 부쉈다.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투두둑! 투둑! 투두둑! 푸슝! 푸슝! 푸슝!
반둔두 기지의 담벼락이 거칠게 터져나갔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반둔두의 아군 전체가 알았다.
어딘가를 뚫려서 그리로 적들이 들어올 테고, 그때부터 진정한 지옥이 시작된다.
허은실은 복면 아래에서 짐승처럼 숨소리를 죽이며 거칠게 숨을 들이마셨다.
땀은 당연한 거고, 거친 호흡에 따라 입가가 축축했는데 눈앞에 보이는 적들 때문에 그것쯤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임미옥이 소총을 겨눈 것을 보았다.
허은실은 반사적으로 소총을 들어 적들의 이마를 겨누었다.
어찌 된 일인지 특수부대란 놈들은 아직 제대로 나설 생각이 없는 것처럼 여유만만이었다.
투두두둑! 투둑! 투두두둑!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총소리가 어둠을 찢고 달려와 허은실의 옆을 스치고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흐으. 흐흐.”
숨소리를 죽이려 애쓰는 만큼 듣기 거북한 소리가 계속 들렸다.
‘침착해. 침착하게 훈련한 대로 하는 거야.’
허은실은 자꾸만 같은 말을 되새겼다.
사람을 겨누는 일은 처음이다.
방아쇠를 당기면 지금 저 앞에서 태연하게 있던 적은 몸뚱이가 터져서 죽는 거다.
“흐으. 흐으.”
자꾸만 호흡이 가빠져서 훈련할 때처럼 제대로 조준하기 힘들었고, 가슴이 무섭게 쿵쾅거렸다.
“후우.”
허은실이 길게 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임미옥이 왼팔을 들어 커다랗게 돌렸고,
부슈-웅! 부슈-웅! 부슈-웅!
연달아 저격용 소총 소리가 터져 나왔다.
허은실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퍼억! 퍼억! 퍼억!
악착같이 노려본 앞에서 적 세 명의 머리가 커다랗게 터져 나갔다.
푸슝! 퍼억! 푸슈슝! 푸슝! 푸슈슝! 푸슝!
이어서 아군의 사격이 일제히 시작되었다.
허은실은 이를 악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어깨에 전해지는 반동, 코를 파고드는 화약 냄새.
훈련과 똑같다.
다만 다른 것은 소총의 저 앞에 살아있는 적이 있다는 거였다.
타다다당! 타다당! 타다다당!
바닥에 몸을 던진 적들이 반격을 시작했고,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 불꽃이 피어났다.
퍼서석! 퍼서서석! 타다당! 피이잉!
웃기는 일이다.
적들의 사격이 시작되자 허은실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고, 좀 더 편안하게 사격할 수 있는 것은.
푸슝! 푸슈슝! 푸슝! 푸슈슝! 푸슝!
허은실은 훈련한 대로 적을 겨냥했고, 방아쇠를 당겼다.
“탄창 교환!”
옆에서 들린 고함에 그쪽을 향해 총구를 돌리기도 했다.
푸슈슝! 푸슝! 푸슈슝! 푸슝!
밤이다.
총구에서 불이 번쩍일 때마다 앞이 시커멓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처걱!
탄창이 비었는지 방아쇠를 당겼을 때 불꽃도, 화약냄새도 피어나지 않았다.
“탄창 교환!”
허은실은 몸을 돌리고 탄창을 빼낸 뒤에 새 탄창을 끼웠다.
철컥! 철커덕!
다시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타다다당! 퍼서서석!
그녀의 앞쪽이 거칠게 터져나갔다.
푸슈슝! 푸슝! 푸슈슝!
그래도 허은실은 꿋꿋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푸슈슝! 타다당! 타당! 타다다당! 푸슈슝! 푸슈슝!
보인다. 이제 앞이 제대로 보이는 거다.
허은실은 좀 더 상체를 내밀고 연신 방아쇠를 당겨댔다.
제라르는 상체를 들었다.
“물러나! 뒤로! 기지 쪽으로 움직여!”
적들은 아예 이번에 끝장을 내겠다는 양, 총을 맞는 것에 상관없이 달려들고 있었다.
푸슈슝! 타다당! 투두둑! 타다당! 푸슝! 푸슝!
용병들이 소총을 갈겨대며 뒷걸음질 쳤는데 회색의 강이 범람한 것처럼 적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뒤로 가! 가라고!”
투두둑! 퍼버벅!
제라르의 옆에서 총을 쏘던 용병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와락!
제라르는 그에게 달려들어 양쪽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넣었다.
“끄아아-!”
고통을 이기지 못해 비명을 질러대는 그를 제라르는 악착같이 당기며 뒤로 움직였다.
타다다당! 타다당! 타다다당! 타다당!
문바키와 동료들이 앞을 막아선 것처럼 달려들어 총을 쏴댔지만 역부족이었다.
투두둑! 퍼버벅!
또 한 명의 용병이 목과 얼굴이 터진 채 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으아아!”
제라르는 악을 있는 대로 쓰며 동료를 언덕 뒤편으로 당겨갔다.
털썩!
참호처럼 파놓은 곳에 들어선 다음이었다.
푸슝! 푸슝! 푸슝! 푸슝!
제라르가 총을 쏘는 동안, 문바키와 동료들이 연신 몸을 던졌고,
타다당! 타다다당! 타다당! 타다다당!
뒤편에서 네로와 동료들이 지원을 위해 달려왔다.
삐이이이융-. 콰으으응!
앞쪽이 커다랗게 터지며 흙가루가 비처럼 쏘아질 때,
“와아아-!”
“알라후 아크바르!”
소총과 기다랗게 휜 칼을 든 적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스응!
제라르는 결국 대검을 뽑아 들었다.
와락! 핏! 피윳!
달려드는 적을 들이받은 제라르가 빠르게 대검을 휘둘렀다.
피시시시!
적의 몸뚱이에서 피가 쏟아질 때,
콰악! 콱!
“끄아아-!”
용병 한 명의 몸뚱이에 두 개의 칼이 박혔고,
투두둑! 투두두둑!
다른 한 명은 AK소총에 몸뚱이가 터져나가고 있었다.
꽈악!
갈색 머리칼, 파란 눈의 제라르는 적의 목을 움켜쥐었다.
피이이윳! 푹!
그리고는 놈의 목덜미를 가르고 다시 그 자리에 대검을 꽂아 넣었다.
‘가고 있다! 견뎌! 무조건 살아! 살아있어!’
강찬의 음성이 들리는 듯해서 피를 뒤집어쓴 제라르는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