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누가 시킨 일 아니다. (2)
투두두둑! 퍼버버벅! 투두! 퍼벅!
소총을 제대로 맞으면 살이 터져나간다.
관통을 하든, 탄알이 박히든, 어쨌든 살은 터진 것처럼 찢겨서 벌어지고, 거짓말처럼 쭉 피가 올라온다.
달려오던 북한군 병사 둘의 몸뚱이가 위에서 아래로 열 곳쯤 터져나간 뒤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푸슝! 퍼억! 푸슝! 퍼억!
그리고 그 옆에서 피로 흥건해진 붕대를 목에 감은 곽철호가 소총을 겨눈 자세로 계속해서 달려오고 있었다.
“선배니-임!”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포기하지 말라는 외침이었다.
이 전쟁이 어떻게 결말나든, 그때까지 버텨달라는 당부 가득한 고함이었다.
“뭐하네! 선생님을 이대로 죽일 거이야!”
투두둑! 퍼버벅! 투두둑! 퍼버벅! 투두둑! 퍼버벅!
북한군 소위가 AK소총의 총구를 좌우로 휘두르다시피 하며 방아쇠를 연신 당겨댔다.
피가 끓어서였다.
적의 저격수를 향해 달려나간 늙은 전설이 외롭게 죽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남조선의 영웅이면 어떻고, 비무장의 전설이었으면 또 어떠냐.
젊은 병사들과 후배들을 지키기 위해 적진에 홀로 달려간 늙은 군인이 죽어가는데 말이다.
와락!
강철규에게 달려든 북한군 소위가 그를 번쩍 들어서 어깨에 얹었다.
“가자우-! 철호! 뒤를 부탁해!”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푸슝! 퍼억!
곽철호가 북한군 소위의 뒤에 붙어서 방아쇠를 당기며 물러났고,
투두둑! 투두두둑! 투두둑! 투두두둑!
북한군 병사들이 다시 그 주변에서 뒷걸음치며 소총을 마구 갈겨댔다.
“헉헉! 헉헉!”
북한군 소위는 키가 작았다.
푸슝! 투두둑! 푸슝! 투두둑! 투두둑! 푸슝!
그러나 그는 다부진 자세로 달렸고, 그의 뒤에서 뒷걸음질 치는 곽철호와 북한군 병사들이 악착같이 방아쇠를 당겼다.
“으아-아!”
담벼락에 도착한 북한군 소위가 강철규를 위로 들었다.
와락! 와라락! 와락!
세 명의 병사가 담벼락에서 손을 뻗어 강철규를 받아 당길 때, 북한군 소위는 다시 바닥에 떨어진 소총을 들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투두둑! 퍼버벅!
그러나 그는 옆구리가 터지며 바닥에 그대로 엎어지고 말았다.
“야! 정신 차려! 받아! 받으라고!”
곽철호가 달려들어 그를 들어서 위로 올렸고, 또다시 손이 내려와 북한군 소위를 받았다.
“올라가! 서둘러!”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투두둑! 퍼서석!
총알이 날아와 벽에 박히는 건 무섭다.
저것 중 하나라도 몸뚱이에 박히면 살이 터지고 피가 튀는 거고, 자칫하면 배가 뚫려서 끔찍한 장기가 밀려 나온다.
“서둘러!”
푸슝! 퍼억! 투두둑! 퍼서석! 푸슝! 퍼억! 투둑! 피이잉!
그런데도 곽철호는 끝까지 버티면서 북한군 병사들이 올라갈 때까지 적들을 상대했다.
“올라오시라요!”
담벼락에서 고함이 들렸고, 그때야 곽철호는 홱 몸을 돌려 담에 매달렸다.
투두둑! 퍼버벅! 투두둑! 퍼서석!
북한군 병사의 손을 잡고 오르던 곽철호의 몸과 주변 담벼락이 거칠게 터져나갔고, 그와 동시에 곽철호의 몸뚱이가 축 늘어졌다.
“당기라우! 날래 당기라!”
병사들은 악착같이 곽철호의 팔을 놓지 않았다.
투두둑! 퍼버벅!
곽철호를 당기던 병사 한 명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뒤로 날아가도,
투두둑! 퍼버벅!
거의 다 올린 곽철호의 등을 잡기 위해 상체를 내밀었던 병사의 목덜미와 팔이 터져나가 담벼락 밖으로 떨어져도, 그들은 곽철호를 끝내 놓지 않았다.
투두두둑! 퍼버버벅! 투두둑! 퍼버벅!
몸을 감추고 다시 총격전이 벌어졌다.
“날래 오라! 여기야!”
북한군 병사들의 손짓을 받은 용성부대 대원 셋이 허리를 숙인 채 달려왔다.
투두두둑! 피이이이융! 콰으으응!
RPG가 날아와서 커다란 폭발이 있었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머리를 감싼 용성부대 대원 셋이 그 자세로 강철규와 곽철호, 북한군 소위를 덮쳤다.
부스스스!
벽이 깨진 가루가 비처럼 깔린 다음이었다.
붕대를 꺼낸 대원 셋이 세 사람의 중요한 상처를 급하게 묶기 시작했다.
“끄으-으!”
곽철호가 이를 악물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붕대를 찢어! 찢어서 상처에 넣어줘!”
“위험합니다!”
“여기가 지금 뚫리면 바로 백병전이다! 그럼 정말 다 죽어! 그러니까 얼른 붕대를 찢어서 상처에 꽂아넣어!”
독이 잔뜩 오른 곽철호가 무섭게 으르렁거린 거다.
이글거리는 그의 눈과 볼, 어깨, 목, 등이 온통 피로 물든 그의 몸뚱이를 본 용성부대 대원이 이를 악물고 붕대를 찢었다.
“넣습니다!”
“서둘러! 끄아아! 아아-악!”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비명이 나오는 것만은 견디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의 비명은 아군의 독기를 끝까지 올리는 역할을 했다.
“허억! 허억!”
붕대가 박힌 곽철호보다 붕대를 찔러넣은 용성부대 대원이 오히려 질린 얼굴이었다.
“선배님을 빨리 병동으로 옮겨! 얼른!”
철컥!
곽철호는 소총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견디자! 강 선배님이 저격수를 잡았으니까! 적들도 함부로 들어오지는 못한다! 버티자! 버텨서 이겨내자!”
곽철호가 고함을 버럭버럭 지르자,
“와아-!”
“걱정마시라요! 이런 종간나 새끼들에게 굴하지 않갔소!”
북한군 병사들이 함성으로 답을 했다.
투두둑! 투두둑! 투두두둑! 투두둑!
용성부대 대원 둘이 들것에 강철규를 싣고 움직인 다음이었다.
곽철호는 북한군 소위에게 다가갔다.
“무슨 엄살을 그렇게 피워? 얼른 일어나!”
북한군 소위가 아프게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야! 총알을 박아넣은 나도 일어났어! 그러니까 너도 일어나라고! 형이 나이 많은 거 다시는 말 안 할게. 그러니까 일어나.”
“내래 사실은 임자가 형이라 기래서 좋았어.”
곽철호가 피와 흙가루 범벅인 얼굴을 숙여 북한군 소위를 들여다보았다.
“내래 형이 없거든.”
“야! 야, 인마!”
“졸려야. 이상하게 고향에 임자랑 한번 가고 싶었어야. 만두랑 먹여주고 싶은 것도 있었고.”
“기운이 빠져서 그래. 얼른 일어나서 씨레이션이라도 하나 더 먹자. 야!”
곽철호를 향해 한 번 더 웃어준 북한군 소위의 머리가 옆으로 툭 떨어졌다. 목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는데도 곽철호는 애꿎은 침만 자꾸 삼켰다.
투두둑! 퍼서석! 투두두둑! 피이잉! 투둑! 피잉!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철컥! 철커덕!
탄창을 교환한 곽철호는 다시 담장으로 움직였다.
“적들이 물러나고 있습네다!”
그리고 그때 북한군 병사가 커다랗게 지른 고함이 곽철호를 향해 다가왔다.
눈가가 찢어진 차동균과 볼의 살점이 파인 북한군 지휘관 안철호는 완전히 악귀의 모습이었다.
푸슝! 퍼억! 푸슝! 퍼억!
차동균이 RPG를 든 적이나 자살 폭탄 테러가 우려되는 적들을 상대한다면,
투두둑! 투두둑! 투둑! 투두둑!
안철호는 이리저리 기회를 엿보는 적들의 머리통을 제대로 터트리고 있었다.
“사격 중지 하라우! 사격 중지!”
안철호가 왼손을 들고서 좌우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적들이 물러나고 있었다.
대가리들이 일렁이고 있지만, 분명 적들은 뒤로 물러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어케 된 거이지?”
“기도 시간이나 전열을 가다듬는 것일 수 있고, 아니면 다른 쪽에서 뭔가 특별한 상황이 있었을 수도 있고.”
“기렇군.”
차동균의 설명을 들은 안철호가 고개를 끄덕인 직후였다.
치잇.
“적들은 분명 휴식을 위해 물러난 걸 겁니다. 20분 정도 시간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제라르의 무전이 들어왔다.
차동균을 힐끔 본 안철호가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치잇.
“다음번 공세에 반드시 한곳을 뚫을 겁니다. 전 대원은 대검을 준비하고, 직접 맞서 싸울 준비를 하는 게 현명합니다.”
암담하기 그지없는 제라르의 무전이 추가로 들어왔다.
“간나 새끼들! 염통을 갈라주갔어!”
안철호가 이를 북북 갈며 담벼락 너머를 노려보았고,
“장군님께 잠시 다녀오겠다.”
차동균은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제라르는 산의 언덕에 등을 기댔다.
“끄으-응!”
어깨와 옆구리에 총상을 입었는데 두 곳 모두 만만치 않았다.
“문바키! 손바닥 길이로 붕대를 잘라와.”
“Oui!”
문바키가 붕대를 대검으로 자르는 동안, 제라르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씨익.
그러면서 그는 볼의 상처를 우그러트리며 웃었다.
멋지게 보낸다고 온갖 폼 다 잡았는데 문바키를 보내지 못했다.
포위망의 한구석을 지켰어야 할 용성부대 대원들이 너무 쉽게 밀려버린 탓이었다.
철컹! 치익!
“후우-!”
담배를 향해 달려들던 불빛이 죽은 용병들의 모습을 비춰주고는 곧바로 라이터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여기 가져왔습니다.”
“그걸 말아서 어깨에 있는 총상에 구겨 넣어라. 검지 한마디가 다 들어갈 정도로 깊숙하게 찔러 넣으면 된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문바키가 결심한 것처럼 붕대를 말아서 어깨의 상처에 가져갔다.
“합니다.”
입술만 움직여 웃는 제라르의 어깨로 문바키가 검지를 밀어넣었다.
“끄으-!”
끔찍한 일이다.
사람의 상처로 붕대를 밀어 넣는 것은.
“옆구리에 하나 더.”
얼굴이 하얗게 질렸는데도 문바키는 제라르의 말에 따라 갈비뼈와 배 사이에 붕대를 찔러넣었다.
“끄으으.”
검지와 중지에 끼워놓았던 담배가 꺾일 정도로 제라르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허억! 허억! 이제 붕대로 상처 부위를 꽉 묶어. 서둘러.”
문바키가 붕대를 두어 번 감은 뒤에 힘껏 묶었고, 그동안 제라르는 뻔뻔스럽게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다음번에 적의 공세에는 반드시 칼을 들고 맞붙는 싸움이 시작된다. 그때에 대비해서 대검을 허리와 발목에 하나씩 걸어두고, 반드시 내 근처에 있어라.”
“알겠습니다.”
답을 한 문바키가 제라르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라르가 힐끔 돌아보았을 때 문바키는 분명 웃고 있었다.
“갓 오브 블랙필드와 대장은 이렇게 살아왔던 거지요.”
말을 하는 문바키는 제법 전투 경험이 생긴 대원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런 전투에서 함께 의지하며, 서로를 지키려고 애쓰면서요.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갓 오브 블랙필드가 왜 그렇게 대장에게 신경을 썼는지요.”
“전투를 앞두고 너무 감상적이 되는 건 안 좋아.”
“멋진 전투입니다. 대장.”
“미친놈.”
제라르가 볼의 상처를 우그러트리며 웃었고, 문바키가 흉내 내는 것처럼 따라 웃었다.
담배가 다 타버렸다.
그래서 제라르는 다시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고, 불을 붙였다.
“후우-!”
제라르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을 때였다.
쩔걱. 쩔걱.
피투성이가 된 네로가 거친 걸음으로 제라르에게 다가왔다.
“다음 공세가 있으면 아무래도 백병전이 벌어지지 않겠소?”
“그럴 거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인사하러 왔소. 멋진 전투에 불러줘서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소.”
얼핏 들으면 비꼬는 것 같은데 말을 하는 네로나 듣는 제라르나 진지한 얼굴이었다.
제라르가 팔씨름하는 사람처럼 오른손을 들었고,
꽈악!
비슷한 자세로 네로가 그 손을 맞잡았다.
“Legio patria nostra(부대가 나의 조국)!”
그리고 둘이서 동시에 외인부대의 구호를 나직하게 읊조렸다.
제라르에게 고개를 끄덕인 네로가 이번엔 문바키를 향해 똑같이 손을 내밀었다.
꽈악.
문바키가 그의 손을 맞잡은 다음이었다.
“너와 같은 동료와 함께해서 더 멋진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내가 살아난다면 언제고 너의 부름에 한번은 답하마.”
“감사합니다.”
멋진 인사를 남긴 네로가 특유의 거친 걸음으로 제자리를 향해 움직였다.
“물이 있나?”
“예.”
문바키가 얼른 물병을 건네주었고, 제라르가 그걸 받아서 시원하게 들이켰다.
후회는 없다.
보고 싶은 사람은 강찬, 석강호. 그리고…….
제라르는 씨익 웃으며 어두운 하늘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차동균이 막사로 들어갔을 때 박철수는 오른쪽 가슴과 어깨를 붕대로 싸매고 있었다.
급한 치료가 분명해서 감고 있는 붕대 중간에 시뻘건 피가 벌써 배어 나왔다.
“장군님!”
“희생된 대원들이 적지 않다. 그러니 이런 부상으로 호들갑 떨지 마라.”
박철수는 완벽하게 야전 사령관의 눈빛으로 차동균을 맞았다.
“무슨 일이냐?”
“외인부대 용병들이 맡고 있는 지역으로 지원을 보낼 병력이 있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박철수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맡은 지역은 진입로여서 담도 없지만, 만약 그 넓은 지역으로 인원을 빼면 담으로 둘러싸인 다른 곳이 바로 뚫린다.
“백병전이 벌어질 거라고 했으니 그쪽도 이미 각오한 모양이다. 최악의 상황이 되면 이곳으로 병력을 모을 생각이다. 그때에 대비해.”
명령을 내린 박철수가 고개를 들었고,
“알겠습니다.”
차동균이 답을 했다.
한 번의 전투가 더 벌어지면 진정한 지옥이 펼쳐진다.
대검과 기다랗게 휜 칼의 대결일 텐데, 백병전만큼은 능력보다 숫자가 많은 쪽이 월등히 유리한 싸움이기 때문이었다.
막말로 한 놈 찌를 때 뒤에서 날아드는 칼을 막을 방법은 없는 거다.
먹먹한 침묵이 흐를 때였다.
치이잇.
“606입니다. 현재 반둔두 외곽 5킬로미터 지점입니다. 적을 확인하고 대기 중입니다. 반복합니다. 606입니다. 응답 바랍니다.”
다부진 여자의 음성이 무전기를 타고 막사 안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