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79화 (498/520)

제8장.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거냐? (3)

안쪽 문을 통과한 강찬은 석강호와 함께 주 통제실로 들어섰다.

좌우로 나뉜 화면에서 블랙헤드가 숨을 쉬는 것처럼 붉은색을 뿜어댔고, 오른쪽의 수치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간격으로 날뛰고 있었다.

“청장님.”

그 외는 조명이 모두 꺼진 주 통제실에서 김관식은 꼿꼿한 자세로 버튼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부원장.”

고개를 돌린 김관식을 보고 알았다.

그가 얼마나 힘겹고 고독한 싸움을 견디고 있었는지 말이다.

띠익! 띠익! 띠익! 띠익!

[경고합니다. 주 시스템을 모두 차단합니다. 전 직원은 발전소 바깥으로 대피하세요.]

“블랙헤드가 있는 곳으로 가보겠습니다.”

“온도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강찬은 잠시 화면에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가져왔다.

“영국에서 이미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접근할 때 입는 특별한 옷이 있나요?”

“블랙헤드 발전실 앞에 있기는 하지.”

김관식의 말을 들은 강찬은 석강호를 보았다.

“여기에 있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무전기 열어두고.”

“말이 되는 소릴 하쇼! 삼성동에서 대장을 구해낸 게 누구요? 나는 프랑스에서부터 대장과 떨어져 본 적 없는 놈이요!”

황당하다 싶을 정도의 대꾸였다.

삼성동에서처럼 고통받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거리에 있겠다는 놈의 의지가 쭉 찢어진 눈 안에 가득 담겨 있었다.

“가자.”

“알았소.”

대강은 알고 있었지만, 강찬과 석강호가 나누는 대화를 김관식은 이해하기 어려울 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설명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가보겠습니다.”

“부원장. 무리하지 말고 위험하면 바로 나와.”

“그렇게 할게요.”

강찬은 석강호와 둘이서 주 통제실 화면 앞쪽으로 움직였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화면의 왼쪽에 있는 통로로 걸었다.

강찬에게 으르렁대는 것처럼 블랙헤드는 특유의 진동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달칵.

문을 열고 복도를 나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분위기 죽여줍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석강호가 뱉어낸 말이었다. 그러면서 놈은 강찬을 자꾸만 살폈다.

“왜?”

“아직은 괜찮소?”

강찬이 고개를 끄덕일 때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문이 열렸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철제 계단이 울릴 정도로 요란한 소리가 가장 먼저 귀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내려서자 후끈한 열기가 강찬과 석강호를 덮쳤다.

다캉. 다캉. 다캉. 다캉.

그런데 영국에서도 그러더니 왜 블랙헤드에 다가가는 시설물은 쇠로 만든 통로와 계단을 사용하는 건지.

강찬은 통로를 걸어 블랙헤드가 담겨 있는 구조물을 바라보았다.

높이가 20미터쯤 되는 둥그런 시멘트 구조물이었는데 우주선처럼 네 곳에 창이 있었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불빛이 밝아질 때마다 요란한 진동이 강찬이 서 있는 철제 통로를 흔들었다.

강찬은 통로에 설치된 안전바를 붙들고 블랙헤드를 바라보았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블랙헤드가 달려들었어야 맞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저건가 보우!”

강찬의 옆에 서 있던 석강호가 손가락으로 한쪽에 걸려있는 옷을 가리켰다.

자꾸만 강찬이 걱정돼서 놈은 어떡해서든 지켜줄 만한 것들을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적당히 해!”

“내가 뭐랬소?”

둘이서 이런 숨 막히는 순간에 짧게 킬킬거렸다.

아프리카에서도 이랬다.

그 긴박한 전투 속에서 셋이 앉으면 꼭 이렇게 한 번씩은 킬킬거리곤 했다.

“이곳에 오면 저 돌멩이가 에너지를 뺏으려 달려들었어야 했거든.”

블랙헤드가 담긴 구조물을 바라보며 강찬은 설명처럼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지금은 멀쩡하다. 이게 이렇게 아무 일 없으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거, 참. 어떻게 단 한 번을 도움을 안 주나, 그래?”

구조물에서 반복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붉은빛을 받아서 얼굴이 붉게 보이는 석강호가 툴툴거린 다음이었다.

“가까이 가보자.”

“정말 괜찮겠소?”

“여차하면 네가 여기까지만 나를 데려오면 되지 않겠냐.”

“그럽시다.”

결심한 것처럼 석강호가 답을 했고, 강찬은 구조물 앞으로 걸었다.

그라펠트는 브레이크가 터진 스포츠카의 운전석에 앉은 심정이었다.

“5분이 한계치라고 했잖소?”

[지금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만, 어쨌든 통제가 전혀 되지 않습니다!]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도 그라펠트와 비슷하게 당황한 음성이었다.

“전원을 내려봐!”

[통제가 안 됩니다! 발전시설의 비상 전원을 블랙헤드가 빨아들이는 데다 위성조차 통제가 안 돼서 한국과의 연결을 끊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라펠트는 앞쪽 벽에 걸린 지도에 시선을 들었다.

“만약 에너지가 필요 이상으로 응축되면 차라리 지진을 발생시키시오!”

[목표는 어디로 합니까?]

“한국!”

[알겠습니다.]

통화는 일단 그렇게 끝났다.

다캉. 다캉. 다캉. 다캉.

강찬은 구조물의 바로 앞으로 움직였다.

붉은빛이 아프리카의 석양처럼 강찬과 석강호를 물들였고, 그때와 비슷한 후끈한 열기가 몸을 파고들었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유리 안에서 블랙헤드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맹수를 붙들어서 묶어놓으면 아마 저러지 않을까?

잘 지내고 있던 놈을 이 세계에 끌어들여 저렇게 가둬놓고 에너지를 내놓으라면 누구라도 화를 내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블랙헤드가 강찬에게 눌린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렇게 마주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강찬은 블랙헤드를 보며 피식 웃었다.

“적당히 해, 이 새끼야.”

석강호가 힐끔 보았을 정도로 강찬은 엉뚱한 말을 꺼내고 있었다.

“술탄의 전설로 시작해서 나나 여기 다예까지. 우리도 너 때문에 이렇게 뒤엉켰어. 아프리카에서 시작했다. 여기까지 와서 지진으로 사람들 죽이는 것 보다는 아프리카의 그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게 좋잖아!”

말을 하고 난 강찬은 또 한 번 피식 웃었다.

“얼마든지 덤벼라. 영국에서도 그랬고, 아프리카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난 절대 안 물러난다. 내가 물러나면 이 일을 위해 죽어간 대원들과 요원들의 희생이 너무 헛된 것이 되니까.”

강찬의 말이 끝난 다음이었다.

우웅. 우웅. 우웅.

블랙헤드에서 쏟아지던 진동이 조금은 가라앉은 느낌이 바로 들었다.

말을 알아들었다고?

강찬마저 고개를 갸웃할 정도였으니, 석강호가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왕 시작한 거다.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덤벼! 볼을 씹고, 피를 삼켜서라도 안 물러날 거니까.”

강찬의 말이 떨어진 직후였다.

띠이! 띠이! 띠이! 띠이!

[발전시설의 통제를 시작합니다.]

자동 통제시설의 안내가 바뀌어 나오고 있었다.

“뭐요? 진짜! 내가 모르는 뭔가를 또 익힌 거요?”

띠이! 띠이! 띠이! 띠이!

[중앙통제실의 전원을 공급합니다.]

석강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자동 통제실의 안내가 대신했다.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푸슝! 퍼억!

강철규는 기계처럼 방아쇠를 당겼다.

상체를 왼쪽, 오른쪽으로 돌려댔는데 방아쇠를 당기는 속도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적들은 이마를 뚫린 채 널브러졌다.

철컥! 철커덕!

그는 소총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왼손만으로 탄창을 갈았다.

부상자 병동에서 나온 길이다.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목발을 짚는 대원 한 명이 강철규의 옆에서 빈 탄창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탄창을 꽂아 주었고, 강철규를 엄호하는 힘겨운 사격을 맡았다.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푸슝! 퍼억!

적들 역시 악착같았다.

“와아악-!”

콰으으으응!

고함과 함께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부서진 담벼락, 파편들이 날았고, 이어서 피와 화약 냄새가 뒤엉킨 거친 바람이 휩쓸고 지났으며, 동시에 북한군 병사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폭발은 강철규도 피하지 못했다.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파편에 맞아 길게 찢어진 그의 이마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미간을 타고 눈 안쪽과 코를 타고 흘러내렸다.

탄창을 갈아주던 대원은 언제 맞았는지 모를 총알을 맞은 채 모로 쓰러졌고, 그가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모아둔 탄창들이 강철규의 옆에 그를 대신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푸슝! 퍼억! 푸슝! 퍼억! 철컥! 철커덕!

강철규의 왼쪽 눈을 타고 들어간 핏물이 눈 바깥쪽에서 눈물처럼 길게 흘러내렸다.

다들 알았다. 북한군 병사들은.

강철규가 이마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저렇게 쉴 새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이유를 말이다.

투두둑! 투둑! 투두두둑! 투두둑!

처음 공격을 받았던 이 자리의 담벼락이 부잣집 대문만큼 무너져서, 강철규의 사격이 없었다면 벌써 이곳이 뚫렸을 거다.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한쪽 무릎을 꿇고 총을 쏘는 일은 힘겹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야 하고, 소총의 무게를 온전히 왼팔로 버텨야 하며, 몸을 전혀 감추지 못한다.

그래서 강철규는 이미 죽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대신 담벼락 위로, 혹은 겨우 쌓아놓은 흙자루 위로 불쑥 나온 적의 대가리만큼은 절대 놓치는 법이 없었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악착같이 디미는 적의 대가리가 터져나가는 동안, 북한군은 무너진 담벼락 자리에 연신 흙 주머니를 던져댔다.

투두둑! 퍼서석! 투두두둑! 파바박!

당연하게 적의 사격은 그리로 집중되었다.

투두두둑! 투두두두둑! 투두둑!

흙 주머니와 담벼락이 적의 사격을 받았을 때 북한군 병사 둘이 슬프게 늘어졌고, 강철규의 상체가 짧게 휘청였다.

강철규가 어깨에 총을 맞은 것을 북한군 지휘자는 분명하게 보았다.

“뭐하네! 선생님을 감싸라!”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푸슝! 퍼억!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북한군 병사 둘이 강철규의 총구 아래쪽에 쪼그려 앉아 자세를 잡았고, 한 명은 탄창에 탄알을 집어넣었다.

탄창이 두 개쯤 새롭게 찼을 때였다.

투두둑! 퍼버벅!

슬픈 총소리와 함께 강철규의 왼쪽을 지켜주던 대원이 옆으로 힘없이 넘어갔다.

털썩!

아프게 쓰러진 병사는 꺼지기 직전의 불꽃 같은 눈으로 악착같이 강철규의 시선에 매달렸다.

아직 서른이 채 되지 않은 것처럼 앳된 얼굴이었다.

죽어가는 병사의 입 끝이 힘겹게 떨렸다.

웃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웃는 모습으로 떠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총을 맞아 죽어간다.

돈으로 팔려온 용병과 같은 모습일 텐데, 무엇이 죽어가는 이 병사를 웃게 하는 걸까.

‘아버지. 맛난 것도 먹었고, 좋은 군화도 신어봤고, 내래 여한 없시요. 기카니까 슬퍼 마시라요. 내래 아버지께 드리는 마지막 당부입네다.’

죽어가는 병사의 간절한 바람을 보며 강철규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핏물이 진득하게 엉긴 손바닥으로 그의 이마와 볼을 감쌌다.

이 이름조차 모르는 앳된 병사는 강철규가 아니라 그가 고향에 두고 온 아버지를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너나 나는 군인이다. 우리가 적으로 만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병사의 입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투욱.

그리고 강철규의 손바닥이 전해주는 온기를 더 느끼고 싶다는 것처럼 감싸준 손을 향해 고개를 떨어트렸다.

투두둑! 투둑! 투두두둑! 투두두둑!

“날래! 조금만 더!”

뻥 뚫려 있던 벽이 흙자루로 거의 막혔다.

북한군 병사들이 그걸 타고 위로 올라가고 있어서 이곳을 파고들었던 위기의 반 꺼풀을 겨우 밀어낸 느낌이었다.

스응!

지금껏 오른쪽에서 적을 맡았던 곽철호가 마침내 대검을 뽑아 들었다.

흙자루를 밟고 넘어오는 적을 밀쳐내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야, 이 간나 새끼야!”

그런데 그런 곽철호의 어깨를 북한군 소위가 붙들었다.

“우리래 환자를 내보낼 만큼 부족해 보이네!”

고함을 버럭 지른 그는 대뜸 대검을 뽑아 들고 곽철호보다 앞서서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푹푹! 푹푹! 핏! 피윳!

확실히 칼 쓰는 법이 다르다.

그리고 적을 상대하는 모습도 다르고.

그러나 그의 눈에 담긴 의지와 뜨거운 피는 곽철호와 다르지 않았다.

저대로 두면 죽는다.

증평의 특수팀보다 떨어지는 저 실력으로는 몇 명 더 상대하기 전에 분명 죽게 된다.

곽철호는 망설이지 않고 그의 곁으로 달려들었다.

피윳! 핏핏핏! 피잇! 푹!

“뭐하네! 돌아가라 하지 않네!”

“시끄러! 나이도 어린놈이!”

곽철호가 버럭 고함을 지른 다음이었다.

“에이, 썅! 한 살 가지고!”

대꾸할 말이 없었던 것처럼 북한군 소위는 거친 욕을 뱉어냈다.

“내래 자본주의는 싫어도!”

적이 몸뚱이에 칼을 박아넣으며 뱉어낸 말이었다.

“남조선의 군관 동무들은 좋아진 기야!”

죽음이 코앞에서 휘몰아치는 가운데 오간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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