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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오브블랙필드(2부)-78화 (497/520)

제8장.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거냐? (2)

누군가에게는 간절했을 삶이 태풍에 날려 떨어지는 열매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투두두둑! 퍼버버벅! 투두둑! 퍼버벅!

북한군의 사격에 몸뚱이가 터져나간 적들이 반군기지의 담벼락 앞에 늘어졌고,

“알라후 아크바르-!”

콰으으응!

처절한 외침과 함께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담벼락과 그곳을 지키던 북한군 병사들이 휙휙 날아가 처참한 모습으로 처박혔다.

투두둑! 퍼버벅! 투두두두둑! 파바바박!

북한군만 싸우는 건 아니다.

스응!

적들이 담벼락에 길게 매달리는 위급한 순간이 오면, 증평의 대원들은 대검을 뽑아 들고 그들 사이로 뛰어나갔다.

콰으으응!

그리고 증평의 대원이 앞을 정리하는 도중이면 어김없이 목을 가른 적의 몸뚱이가 폭발했다.

전쟁의 한복판과 다름없는 반둔두의 반군기지다.

“최용갑이-!”

폭발에 휘말려 산화한 증평 대원의 이름을 북한군 병사가 애절하게 불러대는 이곳에, 남한과 북한의 경계 따위 비처럼 흐르는 피에 씻겨 나간 지 오래여서 오로지 아군과 적군만 있었다.

“이 간나 새끼들!”

투두둑! 투두두둑! 투두둑!

증평 특수팀 대원 최용갑의 몸뚱이가 사라졌을 때 북한군 병사들은 완전히 눈이 뒤집혀 방아쇠를 당기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스응!

윤상기는 이를 악물며 대검을 뽑아 들었다.

안다! 지금 대검을 들고 뛰어나가면 마지막에는 자살 폭탄과 함께 손가락 하나 제대로 건져내지 못하는 모습으로 끝난다는 것을!

그러나 죽은 자의 몸뚱이를 밟고 밀려오는 적들을 헤쳐내지 못하면 북한군은 총구조차 제대로 돌리지 못하게 되고, 그다음은 기지의 한쪽이 뚫리는 일만 남는다.

“하지 말라우!”

북한군 소위 곽순동이 고함을 질러댔는데 윤상기는 대검을 들고 적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핏! 피윳! 푹! 피이잇!

지켜주라!

이곳 반둔두를.

아프리카의 한중간이지만, 이곳은 대한민국의 땅이고, 우리의 영토다.

윤상기는 적의 목을 움켜쥐고 옆구리를 찌른 다음,

콰작!

바로 몸을 돌려 또 다른 적의 미간을 사정없이 들이받았다.

핏! 핏! 푹푹! 피윳!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뿜어진 핏줄기가 윤상기의 얼굴을 덮쳤고, 눈과 코를 파고들었다.

지옥은 내가 간다. 아무래도 좋다.

그 덕분에 이 전투에서 반둔두를 지켜낼 수 있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은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진정한 강대국으로 우뚝 설 거다.

콰악! 푹! 푹!

“꺼흑!”

적의 목을 붙잡고 왼쪽 옆구리를 찌르는 순간, 듣기 거북한 비명이 귀를 파고들었다.

여보.

당신이 이 모습을 보지 않아서 다행이다.

혹시 내가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는 마.

나는 조국을 위해 자랑스럽게 싸웠던 군인이니까.

피윳! 핏! 핏! 핏! 피이잇! 피윳!

거침없이 칼을 휘두른 윤상기는 앞에 있던 적의 목을 다시 움켜쥐었다.

푹푹푹!

놈의 목덜미를 세 번이나 찔러댄 그는 어깨로 놈의 가슴을 들이받은 채 앞으로 밀고 나갔다.

“윤상기이-! 돌아오라-! 야, 이 간나야-!”

곽순동의 고함이 아련하게 윤상기에게 매달렸는데 지금은 이 칼질을, 밀고 나가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대장! 나도 이렇게 합니다!’

북한에서 중국에서, 아프리카에서 보았던 강찬의 모습을 떠올리며 윤상기는 악귀처럼 눈을 부릅떴고, 핏물에 절은 이를 세차게 악물었다.

핏! 피윳! 핏! 핏! 핏!

앞쪽 담벼락에 몰렸던 적들을 혼자 밀어냈다.

투두둑! 투두두둑! 투두두두둑!

“돌아오라-! 이 간나야!”

공간이 생기자 북한군 병사들이 윤상기를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총을 쏴주었다.

“헉헉!”

지금껏 몰랐다.

이렇게 숨이 가빴는지, 그리고 어깨와 옆구리, 다리에 부상이 있었다는 것도.

윤상기는 바닥에 떨어진 AK소총을 들어서 적을 향해 갈겨댔다.

투두둑! 투두둑! 투두두두둑!

방아쇠를 당기며 뒤로 물러나는 동안, 북한군 병사들이 오히려 담벼락을 넘어와 윤상기를 감싸고 있었다.

“간나야! 서두르라!”

키는 작지만 감자 농사짓던 농부처럼 눈, 코, 입, 목, 손이 굵직굵직한 곽순동이 윤상기의 옆까지 달려와 미친놈처럼 방아쇠를 당겨댔다.

투두두두둑! 철컥!

윤상기의 소총에서 탄창이 비었다.

들고 있던 소총을 버린 윤상기가 바닥에서 새로운 소총을 집어 드는 순간이었다.

꽈아악!

그의 발목을 쓰러져 있던 적이 붙들었다.

상체를 숙인 윤상기와 엎어져서 고개를 든 적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

“알라후 아크바르.”

기운이 완전히 빠졌는지 적은 속삭이는 것처럼 입만 겨우 움직인 뒤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몸에 폭탄을 감았을 거고, 윤상기와 함께 죽는 것에 만족한다는, 너도 이제 끝이라는 의미의 웃음처럼 보였다.

투두둑! 삐이이융! 콰으으응! 투두둑! 투두두둑!

귀를 멍하게 만드는 소총 소리, 총구가 뿜어내는 불빛, 비명, RPG가 날아가서 터지는 소리 사이에서도 윤상기는 적이 뱉어낸 말을 똑똑하게 들었다.

피식.

그리고 전혀 미련이 남지 않은 웃음을 지었다.

우리에게는 대장이 있거든.

너희는 절대 가질 수 없는 지휘관.

그 양반이 너희를 가만둘 것 같으냐?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세상에서 윤상기와 적은 또렷하게 서로의 눈을 노려보며 버텼다.

움직이면 시간이 돌아올 거다.

어떻게 이런 순간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삶이 끝나기 직전에 신이 던져 준 마지막 배려쯤 되는 느낌이었다.

달칵.

윤상기는 적이 누른 스위치 소리를 분명하게 들었다.

털써-억!

그리고 할 일을 다 했다는 것처럼 적의 대가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도 보았다.

‘여보! 이번만 안 가면 안 돼?’

- 다들 그렇게 빠지면 태극기가 너무 외롭잖아.

‘당신,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살았잖아! 이번만 가지 마.

- 여보.

윤상기는 오른손을 들어 아내의 볼과 귀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 지금 조국이 준 임무를 피하면, 나는 당신과 가정이 주는 행복과 소중함도 피하게 될 거고, 내 자존심도 피하게 될 거다.

윤상기의 아내는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 남들이 몰라줘도 좋다. 당신에게 존경받는 남자로, 태극기가 인정해 주는 군인으로 살고 싶다.

‘당신은 언제나 내가 가장 존경하는 남자야. 미안해, 여보. 대한민국 특수팀 중위님의 아내라는 걸 잠깐 잊었었나 봐.’

느닷없이 머리와 가슴, 어깨를 누군가 들이받은 듯한 충격이 있었고, 눈앞에 보이던 세상이 빠르게 흘렀다.

콰다당!

세상이 삽시간에 쓰러졌고, 시간과 장소가 단숨에 아프리카로 돌아왔다.

콰가가아아아앙!

귀청을 찢는 폭발음과 함께 바닥이 울렁였다.

“끄으-응!”

신음을 터트리던 윤상기는 이를 악물며 눈을 떴다.

어떻게 된 거지?

담벼락을 뛰어나온 북한군 병사들이 윤상기를 둘러싼 채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끄아아-!”

상체를 악착같이 일으킨 윤상기는 앞에 널브러진 북한군 병사를 보고는 덥석 그에게 달려들었다.

“곽순동! 야! 야, 인마! 곽순동!”

“살아났…네?”

“왜 그랬어! 집에 어머니 어떻게 하려고! 송금해달라며! 이십 만원만 보내달라며! 이 멍청한 놈아!”

“더러운 자본주의의 유혹 자꾸 던지지 말라.”

피를 머금은 입으로 곽순동이 억지로 웃었다.

등 뒤가 완전히 날아가서 상체가 얇게 느껴질 정도였다.

“살라우! 남조선은 살기 좋잖네.”

“야! 정신 차려! 야!”

꽈악!

갑자기 힘이 난 것처럼 곽순동이 윤상기의 팔뚝을 꽉 잡았다.

“윤상기-이! 내래 고마웠어야! 따로 준 내복도 고마웠고, 우리 오마니 송금해준다고 기칸 것도 고마웠고…….”

투욱! 털썩!

그냥 말을 하다가 기절한 사람처럼 곽순동의 머리와 팔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투두두둑! 투두둑! 투두두두둑!

“이보라우! 빨리 물러나라-!”

더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반드시 지켜주마!”

이 기지도, 너의 어머니에게 보내 달라는 송금 약속도.

곽순동의 굵직한 눈을 감겨준 윤상기가 담벼락 안쪽을 향해 달렸다.

***

두두두두두두두두!

차가워진 바람이 헬기로 들어왔다가 헬기 내부의 열기를 품에 안고 달려나가는 동안, 강찬은 헬리콥터 아래로 펼쳐진 산맥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알코올 냄새가 풍기는 이상한 물로 머리칼과 얼굴을 씻었고, 옷을 갈아입었다.

[청장님이 홀로 지키고 있습니다.]

고성의 차세대 발전시설을 김관식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고 들었다. 느닷없이 날뛰는 블랙헤드를 통제할 방법이 없었고, 더 견딜 수 없다고 판단되면 폭발시킬 각오라고도 했다.

김형정의 보고를 들은 강찬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강찬입니다. 지금 그리로 출발합니다. 헬리콥터로 이동할 테니 폭파 스위치를 누르지 마세요.”

[부원장은 대한민국을 위해 해야 할 막중한 임무가 있지 않나? 지금도 내가 버튼을 막고 있지 않았다면 이미 중앙통제 장치가 폭파 장치를 가동하고 남았어.]

“청장님!”

답을 하지 않아서 김관식의 고집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폭파하지 않아도 될지 모릅니다. 짚이는 것이 있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자네가 허튼소리를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블랙헤드가 들어있는 시설 내부의 온도가 엄청나다는 것만은 알고 있게.]

“알았습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머릿속이 복잡했다.

절대로 이기지 못할 것 같던 블랙헤드의 에너지를 이겨낸 것도 그렇고, 삼성동에서 생포한 멍청이들도 그렇고.

[대장.]

헬리콥터의 통신시설을 이용해 석강호가 강찬을 불렀다.

[고성에 가도 괜찮겠소?]

블랙헤드에 고통받았던 강찬을 염려하는 게 분명했다.

승합차 정도의 시설에도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는데 아예 발전시설 규모의 블랙헤드 에너지를 상대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쉽게 가자.”

[뭐요.]

두두두두두두두두!

“우리 방식대로 가는 거지! 여차하면 다 죽여버리면 그만이다. 돌멩이야 깨부수면 끝나는 거고.”

[푸흐흐.]

헬리콥터의 앞쪽에 있던 조종사가 모두 들었을 대화였다. 그리고 강찬의 주변에서 함께 날고 있는 두 대의 헬리콥터에서도 분명 들었을 거다.

“조금 더 빨리갈 수 없나?”

[지금도 최대 속도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 헬기의 아래로 새로 뚫은 터널이 보였다.

저길 지나면 고성이다.

강찬은 헬기 근처에서 매달린 것처럼 반짝이는 별을 보며 픽하고 웃었다.

강철규 욕할 것 하나 없는 삶이다.

어쩌면 석강호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이순신 장군 못지않게 가정을 돌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강찬이 나직하게 숨을 내쉴 때였다.

두두두두두두두!

헬리콥터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환하게 빛나는 ‘H’자 표시 위에 내려앉은 헬기로 대원 네 명이 달려왔다.

“상황은?”

[이미 전원 대피 명령이 내려져 있습니다. 청장님이 폭파 장치를 수동으로 변환시킨 채 버티고 있는데 무엇보다 내부 온도가 너무 높게 올라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보고를 들으면서도 강찬은 차세대 발전시설 입구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

입구에 도착했을 때였다.

강찬은 몸을 돌려 함께 온 대테러 팀 대원들을 보았다.

“내부는 이미 대피령이 내렸다. 폭파나 기타 위험한 상황이 있을지 모르니 대원들은 이곳에서 대기한다.”

“부원장님! 저희는 괜찮습니다.”

“이건 일반적인 테러와 달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서 밖에 있는 게 좋겠다.”

강찬이 단호하게 뜻을 밝혔고, 석강호가 대원들의 어깨를 두드려준 다음에 입구의 문을 열었다.

“다예.”

“얼른 들어오쇼! 청장님이 위급하담서요!”

입구에 반쯤 몸을 넣은 석강호가 강찬을 돌아보았다.

처음 프랑스의 지하 술집에서 보았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두들길 게 아니라면 지금은 저놈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멋진 새끼.”

“푸흐흐흐.”

강찬은 석강호가 지키고 있는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콰앙!

석강호가 입구의 문을 커다랗게 닫았다.

입구의 복도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갔고, 다시 녹음실 부스에나 설치할 법한 두꺼운 문앞에 섰다.

이 문을 들어서서 다시 또 한 개의 두꺼운 문을 통과하면 그 바로 앞에 중앙 통제실이다.

덜컥! 끼이익!

석강호가 그 문을 당긴 직후였다.

띠익! 띠익! 띠익! 띠익!

[경고합니다. 주 시스템을 모두 차단합니다. 전 직원은 발전소 바깥으로 대피하세요.]

중앙시설에서 띄운 경고음이 먼저 들렸고,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그 사이에서 블랙헤드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강찬의 귀로 곧장 파고들었다.

석강호는 이미 삼성동에서 경험했던 것이 있다.

“괜찮소?”

그래서 그는 독기 가득한 눈으로 강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빨리 치우고 제라르에게 가야지.”

“알았소.”

석강호가 강찬의 앞에서 걸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몸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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