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76화 (495/520)

제7장. 이것이었나 보군요. (3)

세상이 온통 붉게 물든 것처럼 보였다.

“대-애애자-아앙!”

찌그러진 렌즈를 낀 것처럼 사물이 온통 일그러졌고, 석강호가 부르는 소리가 길게 늘어진 채 강찬의 주변을 흘렀다.

‘끄으-응!’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강찬을 움켜쥔 이 힘이 빌어먹을 돌멩이에서 나온 것만은 분명했다.

지금은 빠져나가자! 빠져나가야 한다!

꽈아악!

강찬은 석강호의 목 쪽 재킷을 움켜쥐었다.

‘다예! 지금은 피해야 돼! 너라면……!’

핏발이 곤두서서 그런지 석강호의 얼굴이 좀 더 붉게 보였다.

‘다예!’

눈을 보았을까?

석강호가 강찬의 상체를 안다시피 하고 움직였다.

‘끄아-아!’

몸뚱이가 갈래갈래 찢기는 고통이었다.

그리고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 기운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석강호는 완전히 눈이 뒤집혀 전에 없이 하얗게 빛났다.

강찬이 재킷을 움켜쥘 때 알았다.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석강호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는 것을.

눈가로 핏물을 흘리면서도 악착같이 시선을 주는 강찬을 보며 석강호는 다시 또 한 번 눈빛을 하얗게 빛냈다.

“일단 방지병원으로 간다! 서둘러!”

강찬의 상체를 꽉 안은 석강호가 나무를 뽑듯이 들고는 자동차로 움직였다.

쩔걱쩔걱! 쩔걱쩔걱!

상황을 알아챈 대테러 팀 대원들이 달려와 강찬과 석강호를 둘러싼 채 현관 쪽으로 움직였다.

철컥! 철컥!

최종일과 이두희마저 권총을 뽑아서 아래로 뻗은 채 함께 움직이는 길이다. 그 짧은 순간에도 목덜미를 움켜쥔 강찬의 손이 떨리는 것을 석강호는 분명하게 알았다.

“대장! 참아요! 일단 병원으로 갑니다! 그러니까 악착같이 참아보쇼!”

끼이익!

승합차가 발레파킹 에어리어 앞으로 달려왔고, 강찬을 안은 석강호가 뒷문을 향해 달렸다.

와락!

석강호만큼이나 다급한 얼굴로 승합차의 뒤로 뛰어 올라간 최종일이 위쪽에서 강찬을 받았다.

강찬을 아는 요원들과 대테러 팀 대원들이다.

철컥! 철컥! 철커덕!

여차하면 무조건 발사하겠다는 것처럼 대원들이 승합차의 뒤에서 바깥을 향해 소총을 들었고, 그들의 등 뒤에서 강찬을 올려준 석강호가 몸을 실었다.

“출발해! 방지병원!”

석강호가 외친 고함이 떨어진 직후에,

부아앙! 끼기기긱!

헛바퀴가 돌 정도로 거칠게 승합차가 달려나갔다.

호텔 주차장의 코너를 돈 승합차가 바로 앞 도로에 합류할 때 뒤편의 승합차 두 대가 동시에 출발했다.

주차장을 나서면 오른쪽으로 일방통행이다.

작은 도로를 타고 오른쪽으로 돈 승합차가 좌우 갈림길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 때였다.

부우우웅! 콰작! 콰자작!

왼쪽에 있던 트럭이 달려들어 강찬이 탄 승합차의 운전석 문을 세차게 들이받았다.

콰자작! 콰다다당! 철퍼-억!

평소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앞쪽에 승합차가 먼저 움직이기도 하고, 사방을 충분히 살필 때라면 이런 단순한 공격에 당하지도 않았을 거다.

끼이익!

뒤쪽을 따르던 승합차가 급하게 멈춰서는 순간에,

치잇.

“부원장님 차량 피습이다! 반복……!”

부아아아앙! 콰아아-앙! 콰가가-가강!

강찬을 따르던 두 대의 승합차 역시 덩치가 커다란 트럭에 연달아 부딪치고는 좁은 도로의 한쪽에 처박혔다.

“꺄아악!”

엠블런스로 이동하던 투숙객들이 비명을 질러댈 때, 외곽을 담당하던 606 대원들이 달려왔다.

투두두두두두둑! 투두두두둑! 투두두두둑!

그 순간에 트럭의 뒤편에서 그들을 향해 섬뜩한 사격이 쏟아졌다.

퍼버벅! 퍼벅! 퍼버버벅! 퍼버벅! 파사사삭!?

사격은 606 대원들을 맞추고, 이어서 엠블런스 차량을 뚫었으며, 근처에 있던 투숙객들과 의료진을 쓰러트렸다.

치잇!

“606 김수도다! 주차장 지원해! 투숙객 뒤로 빼고! 부원장님을 지켜! 전대원 주차장으로 이동해!”

와락! 와라락!

갈림길 왼쪽에서 한 떼의 남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동양인들이었다.

투두두둑! 투두둑! 투두두두둑! 투두두둑!

아예 대놓고 소총을 갈겨대면서 호텔과 승합차를 향해 그들이 달려들었고,

타다당! 타다다다당! 타앙! 타앙! 타다다당!

로비와 주차장 건너편에서 달려온 606과 35여단 대원들의 대응 사격도 있었다.

치잇.

“특수 요원! 대원들 뒤쪽에 투숙객 보호해! 투숙객을 계단 앞으로 옮기라고!”

호텔 경호팀 이한덕의 고함이 연이어 무전으로 들어왔다.

완벽한 시가전의 모습이었다.

좁은 도로에서 터져 나온 총소리가 주차장과 주변 건물에 메아리쳐 하늘로 솟구치고, 테러범들과 대원들이 악착같이 방아쇠를 당기다가는 하나둘 바닥에 쓰러졌다.

엄청난 충격 뒤에 세상이 옆으로 빙글 도는가 싶었고, 이어서 다시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커다란 충격이 이어졌다.

“끄으응. 대장!”

대원들과 한쪽에 처박힌 석강호가 이마와 볼, 턱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악착같이 몸을 움직였다.

최종일과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진 대원들 틈에서 석강호는 억지로 손을 뻗어 강찬의 상의를 잡아당겼다.

“끄으!”

차가 옆으로 자빠진 것을 알았다.

처박힌 것도 느꼈다.

콰아아아-앙! 콰가가-가강!

바깥에서 또다시 승합차가 처박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고, 이어서 AK 소총 소리가 들렸다.

아직 털어내지 못한 잿빛 가루에 피가 엉긴 손이다.

마침내 강찬을 발견한 석강호는 그 손을 뻗어 구석에 쓰러진 강찬의 어깨를 붙들었다.

“으아아!”

석강호는 이를 악문 채 악착같이 강찬의 상체를 당겨서 무릎 위에 두었다.

치잇!

“606 김수도다! 주차장 지원해! 투숙객 뒤로 빼고! 부원장님을 지켜! 전대원 주차장으로 이동해!”

그때 강찬이 당한 것을 알아챈 것처럼 지원하라는 무전이 들어왔다.

털썩!

석강호는 옆으로 자빠진 트럭의 운전석 쪽으로 등을 기대고는 옆에 쓰러진 대원의 소총을 집어 들었다.

철컥!

“걱정하지 마쇼! 내가 누구요! 나 알제리의 가부장이라고 불렸던 다예루 압둘 카림 아자르요! 난 그때부터 대장을 따라서 여기까지 온 놈이요!”

치잇.

“특수 요원! 대원들 뒤쪽에 투숙객 보호해! 투숙객을 계단 앞으로 옮기라고!”

바깥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들려오는 무전이 그랬다.

그리고 그 순간에 강찬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것을 석강호는 분명히 느꼈다.

“대장! 대장이 지옥에 가든! 또 훌쩍 다른 세상으로 가든 꼭 대장과 함께 있을 거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만 참으쇼!”

바깥쪽에서 들리는 총소리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

고성의 차세대 발전시설 전체에 붉은 등이 번쩍였다.

띠이! 띠이! 띠이! 띠이!

[경고. 경고. 발전시설이 통제를 벗어났습니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주 조종실 정면은 전체가 커다란 화면이었다.

화면의 왼쪽에서 블랙헤드가 반복적으로 섬뜩한 붉은색을 뿜어냈고, 그 불빛에 맞춰 오른쪽의 수치들이 널뛰듯 이해할 수 없는 간격으로 오르내렸다.

띠이! 띠이! 띠이! 띠이!

[경고. 경고. 발전시설이 통제를 벗어났습니다.]

“원인을 도저히 알 수 없답니다.”

띠익! 띠익! 띠익! 띠익!

[경고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비상 3호를 가동합니다.]

한국 연구원이 주 종조실 중앙을 향해 외친 고함을 잡아먹는 것처럼 알람이 좀 더 빠르고 강하게 울렸고, 안전시스템이 비상 가동을 알렸다.

“비상 3호입니다. 발전 장치 근처의 직원들은 모두 대피하세요.”

김관식은 매뉴얼에 따라 마이크에 대고 블랙헤드 근처의 직원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비상 3호 가동은 발전 장치 근처의 직원들이 대피하고, 블랙헤드에 들어가는 모든 연결을 메인 컴퓨터가 끊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띠익! 띠익! 띠익! 띠익!

[경고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비상 2호를 가동합니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비상 조정 장치가 연결을 끊어낼 수 없다는 의미였다.

화면에 올라와 있는 발전 장치 내부의 블랙헤드는 아직도 피처럼 붉은빛을 번쩍이고 있었다.

“비상 2호입니다. 각 부서 담당자는 연결 장치를 수동으로 내린 후, 대피하세요.”

김관식이 관리할 수 있는 상황은 여기까지였다.

[주발전 장치 차단.]

[보조발전 장치 차단.]

[연료 송출 장치 차단.]

김관식의 지시와 동시에 연달아 보고가 들었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수동으로 연결을 모두 끊었다.

그런데도 모두가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는 앞에서 블랙헤드는 마치 연결을 끊은 것에 분노하는 것처럼 좀 더 붉고 강하게 번쩍였다.

띠익! 띠익! 띠익! 띠익!

[경고합니다. 주 시스템을 모두 차단합니다. 전 직원은 발전소 바깥으로 대피하세요. 경고합니다. 주 시스템을 모두 차단합니다.]

비상 1호 발령이었다.

그와 동시에 화면 바로 앞에서부터 칸칸이 달려오는 것처럼 전원이 나가기 시작했다.

어둠에 싸인 주 상황실이 블랙헤드의 깜박이는 붉은빛에 물들어 갈 때 연구원들이 놀라고 당황한 얼굴로 김관식을 바라보았다.

“주 상황실 대피하세요!”

마이크가 꺼져 있어서 김관식은 커다랗게 외쳤다.

그리고 오히려 전원이 들어와 있는 노란 스위치 두 개와 빨간 스위치를 바라보았다.

최악의 상황에 블랙헤드가 있는 발전 장치를 폭파하는 스위치였다.

매뉴얼에는 김관식도 대피하게 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희망이 걸린 차세대 발전시설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의 상황을 확인할 때까지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그가 없을 때 비상 가동 장치가 블랙헤드를 폭파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띠익! 띠익! 띠익! 띠익!

[경고합니다. 주 시스템을 모두 차단합니다. 전 직원은 발전소 바깥으로 대피하세요.]

연구원들이 좌우로 있는 문을 통해 훈련했던 대로 빠져나갔다.

단숨에 홀로 남은 김관식은 자세를 단정하게 하고 스위치에 손을 올린 뒤에 화면을 주시했다.

지금의 경고가 한 번 더 바뀌면 그때는 인위적으로 폭파해야 한다.

그의 안위 따위 생각조차 없었다.

다만 대한민국의 미래와 희망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무거운 짐만 어깨에 짊어졌다.

스위치에 올린 그의 오른손가락이 뜻밖에도 잘게 떨렸다.

알고 있는데도 그는 떨림을 멈추지 못했다.

만약 강찬이 여기 있었다면 독기 가득한 눈으로 화면을 노려보며 버텼을 거다.

강찬과 똑같이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흉내쯤은 내고 싶었다.

김관식은 굳은 의지를 담은 눈을 하고서 블랙헤드를 노려보았다.

***

트럭이 무언가에 거세게 받쳤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았다.

몸이 붕 떠올랐고, 이어서 세상 전체가 강찬에게 달려든 것처럼 거센 충격이 있었다.

그때부터 세상이 천천히 흘러갔다.

팔과 다리가 의지와 다르게 흩날렸고, 충격을 이기지 못해 다시 떠오른 몸뚱이가 자동차의 벽에 부딪힌 뒤에 대원들과 뒤엉켰다.

콰아-앙!

자동차의 한쪽 벽일 거다.

고압 전류가 흐르는 듯한 고통 속에서 강찬의 머리가 바닥에 세차게 부딪혔다.

그렇게 널브러진 직후였다.

일그러져 보이는 강찬의 시선에 옆으로 쓰러진 최종일과 대원의 얼굴이 들어왔다.

충격이 컸던 모양이었다.

최종일은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의식이 없었고, 어슴푸레하게 마주친 대원의 눈에서는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끄으으!’

견디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어떤 고통이라도 참을 테니까 너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외쳐주고 싶었다.

그때였다.

“끄으응. 대자아장!”

괴물이 내뱉는 듯한 석강호의 신음이 들렸고, 잠시 뒤에 비슷한 느낌의 음성이 귀를 파고들었다.

석강호는 강찬을 당겨 길게 편 다리 위에 상체를 올려놓았다.

들었다.

괴물이 울부짖는 것처럼 들렸지만, 놈이 하는 말을 전부 알아들었다.

‘끄으! 병신아! 내가 이대로 죽을 것 같냐! 그것도 빌어먹을 이따위 돌멩이에게!’

최종일과 대원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승합차의 뒤에서 지내던 대원들이고, 일본에 가서도 늘 강찬의 옆을 지켜주었던 이 대원들을 말이다.

강찬이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이었다.

서글플 정도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그 직후였다.

찌이이이이이-잉!

직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이 새롭게 밀려왔다.

‘끄아아아-! 해봐! 더 해보라고! 이 개……! 돌멩이야!’

질 줄 알아? 내가 어떤 놈인지 몰라서 그래?

흐려져 가는 의식을 붙잡기 위해서 강찬은 볼의 안쪽을 빨아들였고, 곧바로 힘껏 깨물었다.

꽈지직!

눈이 번쩍 뜨일 통증이었다.

그래도 아직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개새끼야! 내가 누군지 알아! 알제리의 가부장 다예루 압둘 카림 아자르와 프랑스 귀족 제라르 드 미르미에가 따르는 사람이고!’

꽈지직!

강찬은 반대편 볼을 또다시 깨물었다.

‘끄으으!’

핏물이 주르륵 목으로 넘어왔지만, 지금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특수팀 전설 강철규의 아들이며!’

꽈직!

‘강대경과 유혜숙의 아들이기도 하고!’

꽈지직!

‘갓 오브 블랙필드라고 불리는 아프리카의 절대자란 말이다!’

꽈악!

강찬은 악착같이 허리쯤에 놓인 석강호의 발을 붙들었다.

일어난다! 일어날 거다!

그래서 어떤 개새끼들이든 다 죽여줄 거다!

석강호의 바지 끝단이 손에 걸렸고, 피범벅인 놈의 발목이 손아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푸후!”

강찬은 입에 잔뜩 고인 핏물을 위로 뿜어냈다.

“대장!”

석강호가 놀라서 고함을 지를 때,

“이 개새끼들이!”

움켜쥔 손에 힘을 준 강찬이 상체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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