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이것이었나 보군요. (2)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도는 있는 대로 눈을 찌푸리며 박상식을 노려보았다.
주석의 집무실이다.
김정도가 가장 신뢰하는 호위대 대원 여덟 명이 장전한 소총을 들고 문 앞을 지키고 있어서 명령만 떨어지면 박상식은 단숨에 너덜너덜한 시체로 변하고도 남을 분위기였다.
“내래 정말 화딱지가 나는 건 핵시설과 미사일을 공동 관리하고 있다는 기야.”
김정도는 당장에라도 죽이라고 명령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는 눈빛이었다.
“당장 관리하는 남조선 아새끼들을 다 죽여도 그 간나들이 만들어 놓은 암호를 풀라믄 사흘이 걸려. 알간? 그 안에 미제와 남조선이 쳐놓은 덫에 걸려서리 내래 죽어 자빠져 있갔지. 그렇지 않네?”
박상식은 말이 없었다.
“안철호를 빼돌렸으니 충분하다?”
화아악! 콰다당!
결국, 김정도는 냅다 자리에서 일어나 자개 상자와 재떨이를 책상에서 옆으로 밀어버렸다.
“자. 이제 말해보라우. 정말 할 말이 읍는 기라면 내래 인민무력부장이 원하는 바대로 죽여 주갔어.”
“지도자 동지.”
“말하라우! 기냥 말하라! 할 말이 읍으믄 살려달라고라도 하라! 이 종간나야!”
“내래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을 지냈던 경험과 인민무력부장으로 분명하게 말씀드리갔습네다.”
책상을 두 손을 짚은 김정도가 상체를 앞으로 밀며 박상식을 노려보았다.
“이번 사태는 남조선 당국도 몰랐던 일인 게 분명합니다. 기카면 우리 북조선에 오는 것은 남조선에 있는 미제의 병력이지, 당장 남조선 병력을 올라오지 않을 겁네다.”
“그걸 말이라고 하네? 우리 핵심 병력이 아프리카에서 싹 날아가게 생겼는데 미제들이 쳐들어올 때 남조선이 가만있을 거라고 어케 믿느냐 말이야!”
김정도는 멍청이가 아니다.
이런 순간에 인민무력부장 박상식을 사살하는 것이 당장 절대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쏘라는 한 마디를 참기 위해 김정도가 이를 악물고 있을 때였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그의 책상에 있는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어댔다.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라면 절대 연결되지 않을 전화였다.
김정도는 전화기 아래에 있는 네모난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눌렀다.
“말하라우.”
[남조선의 대통령 전화입네다.]
박상식을 힐끔 본 김정도가 전화기에 대고 입을 열었다.
“연결하라우.”
답을 한 그가 의자에 앉은 다음이었다.
[문재현입니다.]
스피커에서 문재현의 음성이 또렷하게 들렸다.
“김정도요. 말씀하시라요.”
[일본에서 일어난 테러가 북한의 공작이라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김정도가 기가 막힌 얼굴을 할 정도로 문재현은 아픈 문제를 바로 꺼내 들었다.
[서울에서도 테러가 있었고 현재 진압 중입니다. 나는 이번 일련의 사태들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원하는 세력들의 음모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김정도는 당장 대꾸조차 못 했다.
[데프콘 1을 발령했습니다. 이는 북한을 침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순 세력이 한반도에서 군사적 행동을 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남조선에 있는 미 괴뢰들이 북침을 한다믄 대통령은 어카갔습네까?”
듣고 있던 김정도가 참을 수 없다는 것처럼 질문을 꺼내 놓았다.
[한미연합사는 어떤 군사적 행동도 상호 논의하에 시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나의 승인없는 그 어떤 군사적 도발도 단호하게 대처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북조선을 노린 공격인데도 말입네까?”
[북한의 미사일 기지와 핵시설에는 우리 직원들과 요원들이 파견되어 있습니다. 나는 우리의 국민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흐음.”
김정도가 신음처럼 한숨을 쏟아냈다.
[혹여 군사적 침략 행위가 있더라도 우리는 이 도발이 한반도 내의 전쟁으로 번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걸 어케 믿느냐는 말이디요? 이런 말을 믿었다가 남조선의 병력이 올라오믄 그때는 어카갔소? 보시라요. 기카지 말고 내래 믿을 수 있게 미사일의 암호를 주시오.”
[미사일이 서울로 날아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는 한, 불가능한 일입니다.]
“기 거이…….”
무언가 말을 하려던 김정도가 입을 다물었다.
미사일이 날아가지 않는 확신을 주려면 결국 암호를 남한이 쥐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결국, 누군가는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팽팽하게 맞선 꼴이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결국, 우리의 피를 대가로 누군가의 배를 불려주는 일이 됩니다. 나는 나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문재현의 말을 끝으로 전화기 아래 들어왔던 불이 꺼졌다.
“흠.”
김정도는 입을 비트는 것처럼 고약한 얼굴을 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남조선에 인물이 참 많구만.”
혼잣말을 쏟아낸 그는 화가 어느 정도 풀린 눈을 하고 있었다.
***
라노크와 우즈만은 물론이고, 문을 여느라 가장 먼저 복도로 나온 라파엘까지 다행히 위급한 상황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투두둑! 타앙! 타아앙! 타다당! 투두둑! 투두두둑!
치잇.
“35여단과 606이 외곽에 도착했습니다. 대원들을 위로 올려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아래에서 울리는 총소리 틈에서 최종일의 무전이 들어왔다.
테러란 늘 기습적으로 나타났다가 통상 그렇듯이 짧은 시간에 정리된다. 이런 방식으로 공포감과 사회불안을 만들 수 있다면 성공한 테러겠지만, 그건 나중 문제였다.
타다다당! 타다당! 타다다당!
확실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총소리가 호텔 바깥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강찬은 조명등이 밝히는 복도를 바라보았다.
몇 명이 이마나 볼에서 피를 흘리고 있지만, 쓰러져 있는 요원은 없었다.
“방을 확인해!”
강찬의 지시에 요원들이 맞은편 문을 열었고, 우즈만의 수행원 열 명가량을 데리고 나왔다.
강찬은 무전기 버튼에 손을 올렸다.
치잇.
“부원장이다. VIP와 함께 계단으로 내려가겠다. 상황실, 계단 상황은?”
치잇.
“상황실입니다. 요원들과 대원들이 층별로 투숙객들을 복도와 엘리베이터 앞에 모아놓은 상태입니다. 2층에 내려오시면 대원들이 합류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내려갈 만한 여건이었다.
“대사님. 우즈만. 계단을 통해서 아래로 내려가겠습니다.”
“무슈 강의 판단에 따르겠습니다.”
라노크의 답을 들은 강찬은 요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앞에 두 명이 먼저 내려가고, 두 명이 뒤를 지킨다! 계단으로 움직여!”
다들 꼴이 말이 아니었다.
회색 가루를 온통 뒤집어쓴 강찬과 비슷한 몰골의 요원들이 라노크와 우즈만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두 명의 요원이 권총을 손에 든 채로 벽에 붙어 한 칸씩 빠르게 내려갔고, 이상이 없다는 신호를 번갈아 보내주었다.
투두둑! 타다다당! 타다당! 타다다당! 투두둑!
층의 입구를 돌 때마다 권총을 아래로 내린 요원들이 얼핏 보였다.
타겟이 라노크와 우즈만인 게 확실하고, 로비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투숙객을 이렇게 보호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강찬은 요원들과 함께 신경을 곤두세운 채 아래로 움직였다.
타다다당! 타다다당! 타아앙! 타앙!
그리고 마침내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2층 계단에 도착했다. 계단 입구에서 기다리던 대테러 팀 대원 네 명과 최종일, 이두희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상황은?”
“호텔 내부는 정리된 것 같고, 바깥쪽에서 아직 총성이 있습니다.”
치잇.
“606 김수도 입니다. 외부 상황 정리되었습니다.”
최종일의 보고가 있을 때 그나마 반가운 무전이 들어왔다.
치잇.
“병원으로 이동한다. 대테러 팀과 606은 대원을 선발하고, 이 대원들은 병원에 계속 상주한다. 주차장! 차량 준비되면 보고해.”
치잇.
“알겠습니다.”
무전이 끝난 다음이었다.
“대사님. 대원들이 병원으로 모실 겁니다. 우즈만, 이런 일을 겪게 해서 죄송합니다.”
“우리가 확실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그리고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아는 계기도 될 것이구요.”
잿더미 속에서 살아남은 얼굴을 하고도 우즈만은 평소의 여유를 잃지 않고 있었다.
“무슈 강. 우즈만의 말씀대로 우리는 괜찮습니다.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라노크 역시 잿빛 얼굴 아래에 감정을 감추고 태연한 모습으로 말을 전했다.
“그러고 보니 무슈 강에게는 참 여러 번 목숨을 얻게 되는군요.”
날카로운 인상의 라노크가 오늘은 참 힘들어 보였다.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예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까? 아니면 강찬이 없어서 더 위험했을까?
라노크과 잠시 눈을 마주쳤던 강찬은 라파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라파엘. 이제는 병원에서 대사님을 모셔야겠는데?”
“저는 언제고 대사님의 곁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나이 든 라파엘이 회백색의 가루를 뒤집어쓴 채 라노크의 모습을 따르려 애쓰고 있었다.
치잇.
“차량과 대원 대기 중입니다.”
그리고 그때 무전이 들어왔다.
치잇.
“이동한다.”
무전을 마친 강찬은 “주차장으로 가시죠.”라고 말을 건넸다.
요원들이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라노크와 우즈만 일행을 빙 둘러싼 채 주차장으로 움직였다.
로비는 엉망이었다.
조각 난 유리들이 바닥에 깔렸고, 군데군데 페인트 통을 자빠트려 놓은 듯한 피가 뭉쳐 있었으며, 그 주변에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35여단 대원들이 쓰러진 요원들과 대원들을 들어서 빠르게 밖으로 옮기는 것을 보며 강찬은 일행과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쪽입니다!”
대테러 팀 대원이 소총을 앞으로 들고 강찬을 안내했다.
지금까지 봐왔던 것과는 달리 트럭의 뒤를 개조한 듯한 특수차량이 현관 앞 주차장에 일렬로 서 있었다.
“대사님. 병원으로 가 계시면 그쪽으로 움직이겠습니다.”
라노크는 답을 대신해 강찬의 손을 꼭 쥐었다가 놓고 바로 특수차량의 뒤로 올라갔다.
이어서 우즈만이 올라탔고, 라파엘과 수행원들이 줄줄이 특수차량의 뒤에 자리를 잡았으며, 마지막으로 대원 두 명이 올라가 가장 바깥쪽에 앉았다.
강찬은 라노크와 우즈만에게 고개를 짧게 숙여 인사한 뒤에 특수차량의 문을 닫았다.
“출발해!”
치잇.
“출발.”
짧은 무전과 함께 승합차와 두 대의 특수차량, 그리고 다시 승합차가 움직였다.
“푸후!”
석강호는 그제야 머리에 쌓인 가루들을 손으로 털어댔다.
“그나마 두 양반이 무사해서 다행이오.”
혼잣말처럼 던진 말이어서 강찬은 달리 대꾸하지 않은 채 호텔의 로비를 향해 몸을 돌렸다.
최종일과 이두희가 한쪽으로 비켜선 뒤쪽으로 35여단 대원들이 테러범들의 시체를 옮기고 있었고, 606 대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지켜섰다.
그렇더라도 아직은 투숙객들을 내려오라고 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강찬은 최종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우리 쪽 피해는?”
“중상 세 명 포함 부상 일곱 명입니다.”
“미사일을 발사한 놈들은?”
“건너편 건물이었는데 대테러 팀이 바로 사살했습니다. 동양인 두 명이었고, 대략 서른 살 내외, 군사훈련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최종일이 빠르게 답을 주었다.
“테러범 전원이 동양인이고, 무기는 모두 북한에서 사용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대테러 팀 대원들이 있어서 진압이 빨랐습니다.”
최종일의 보고를 들은 강찬은 날카로운 눈으로 호텔 내부를 바라보았다.
“아직 뭐가 남은 거요?”
함께 보고를 듣고 있던 석강호가 강찬의 반응이 궁금하다는 것처럼 질문을 던졌다.
“북한의 소행으로 몰고 가기 위해서라면 할 말은 없는데, 국제호텔 테러 이후로 우리가 어느 수준인지 빤히 알 만한 놈들이거든. 그런데 어쩐지 허술한 거 같아서.”
“대장이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면 휴대용 미사일 한 방에 다 끝을 일 아니오? 거기에 최종일 말대로 대테러 팀이 있어서 진압이 빨랐던 거고.”
석강호가 말을 막 마쳤을 때였다.
치잇.
“로비 정리가 끝났습니다. 엠블런스 투입과 투숙객들의 이동을 신청합니다.”
기다렸던 것처럼 무전이 들어왔다.
“엠블런스 들어오게 하고 투숙객 이동시켜.”
강찬은 최종일에게 지시하고 주차장 한쪽으로 움직였다.
공연히 외국인이 포함된 투숙객들 앞에서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지간하면 몰라도 지금처럼 잿빛 가루를 잔뜩 뒤집어쓴 몰골이라면 자연히 시선을 끌 수도 있었다.
강찬은 현관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발레파킹 전용 주차구역으로 움직였다.
조금만 더 지켜보면서 투숙객들이 안전하게 이동하는 것을 확인한 뒤에 떠날 생각에서였다.
주차장 쪽 현관 앞에서 발레파킹 전용 주차구역까지는 20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차양막이 있어서 바깥에서 강찬을 보기도 어려운 구조였다.
잠시 후에 특수차량의 바깥쪽으로 엠블런스들이 줄줄이 늘어섰고, 의료진들이 로비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염병!
워낙 이런 꼴을 당하니까 이제는 엠블런스 차량과 의료진까지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게 된다.
테러가 이런 불안함과 의심을 노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지시를 마쳤는지 최종일이 강찬을 향해 다가왔다.
“이곳이 정리되는 대로 청와대로 와 주었으면 한다는 원장님 말씀이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지켜보다가 출발하지.”
답을 한 강찬은 의료진들과 함께 나오는 투숙객들을 보았다.
이 정도면 강찬이 떠난다고 해도 문제없을 수준이었다.
강찬이 출발하자는 의미로 석강호를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찌이이-잉!
220볼트 콘센트에 양손 검지를 넣은 듯한 느낌, 그리고 온몸의 기운이 쭉 빨려 나가며 피가 마르는 듯한 느낌이 훅 달려들었다.
‘끄으응!’
“뭐요? 왜 그래요!”
석강호가 놀라서 강찬의 양쪽 팔뚝을 붙잡고 달려들었을 때,
“염병할 돌멩이!”
강찬은 이를 악문 채로 대뜸 거친 말을 뱉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