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74화 (493/520)

제7장. 이것이었나 보군요. (1)

작전명은 ‘새로운 역사’였고, 작전 시작 명령은 ‘쇼를 시작할 시간(It’s a show time)’이었다.

그라펠트는 전화기 두 개를 번갈아 받았다.

[반둔두 기지 공략이 시작되었습니다.]

“상황은?”

[완전 무장 상태로 대기 중입니다. UIS 극렬주의자들의 성과가 상상 이상입니다.]

그라펠트는 오랜만에 입가에 웃음을 달았다.

“일본의 쇼는 성공적이다. 아프리카에서도 기쁜 소식을 전해줄 수 있도록.”

[맡겨주십시오.]

통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라펠트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의 통화버튼을 엄지로 꾹 눌렀다.

신호음이 두 번 흘러간 다음이었다.

“일본에서의 두 번째 쇼를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가와구치의 영혼이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그를 위로해줄 멋진 쇼가 제대로 펼쳐지길 기대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일본 정보국의 새로운 수장은 가와구치보다는 확실히 현명했고 듬직했다.

“후!”

통화 종료버튼을 누른 그라펠트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거칠게 숨을 뱉어냈다. 그리고 다시 왼손에 들었던 전화기에서 번호를 찾아 엄지로 눌렀다.

신호음이 한 번밖에 울리지 않았는데 전화는 바로 연결되었다.

[관광객입니다.]

“지금 상황은?”

[타겟이 호텔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라펠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한국에서의 쇼를 시작한다. 15분 뒤에 위성에서 에너지를 발사하겠다.”

[알겠습니다.]

흥분을 이기지 못해 으르렁대는 괴물의 답처럼 거친 들렸는데, 그라펠트는 그게 또 마음에 들었다.

“시간을 확인해. 지금부터 정확하게 15분 뒤에 위성을 발사할 테니 그 점을 명심하고, 선발대에게 명령을 하달하겠다.”

[감사합니다.]

더는 참기 어렵다는 것처럼 이를 악문 듯한 인사로 통화는 끝났다.

그라펠트는 책상 앞에 있는 전자시계의 버튼을 꽉 눌렀다.

15분에서 거꾸로 내려가며 시간이 줄어들고 있어서 정확하게 15분 뒤에 알람이 울린다.

이번엔 오른손에 든 전화기에서 번호를 찾은 그라펠트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관광객이 대기하고 있다. 쇼를 시작해라.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

[알겠습니다.]

이로써 모든 것이 끝났다.

고건우에게 테러를 가하면 강찬은 라노크와 우즈만에게 가게 될 거라는 계산에서 작전이 시작되었다.

뜻밖에도 고건우를 놓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강찬이 알아서 함정으로 걸어간 꼴이니 지금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 고비마저 이겨낸다면 인정해 주마.”

말을 잘못 뱉었다.

이런 일은 생각에서조차 여지를 두면 안 되는 거다.

“당신은 절대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어.”

그라펠트는 가빠지는 숨을 차분히 가라앉히려 애썼다.

시간은 이제 14분 20초 남았다.

시계의 버튼을 누른 순간, 동시에 저쪽에도 신호가 넘어가는 거라서 따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왼편으로는 인천, 오른쪽으로는 차세대 발전시설이 있는 고성까지 모두 포함되는 범위에 핵융합 발전시설에서 얻어낸 에너지를 발사한다.

“당신은 이제 정말 끝났어!”

그라펠트는 주먹을 움켜쥐고 남은 시간을 노려보았다.

강찬은 삼성동 호텔의 뒤편 주차장으로 움직여 바로 현관으로 들어섰다.

로비에는 강찬의 지시대로 십여 명의 요원들이 곳곳에 서서 있었고, 엘리베이터와 계단 앞에는 각각 두 명의 요원들이 정장 차림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최종일. 우리와 함께 온 대원들을 입구와 로비에 배치해. 시선 신경 쓸 것 없어. 언제고 발사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요원들은 나와 같이 올라간다.”

쿵. 쿵. 쿵. 쿵.

최종일이 이두희와 함께 승합차로 움직였다.

석강호와 함께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강찬의 심장은 전쟁터에서 울리는 북처럼 두껍고 커다랗게 울려댔다.

때앵.

강찬이 기다렸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주머니 속에 든 전화기가 울었다.

급한 소식인 게 분명했다.

손을 들어 잠시 기다리라고 한 강찬은 얼른 통화버튼을 눌렀다.

“말해.”

[아프리카 반둔두 기지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들어오는 정보로 봐서 UIS 극렬주의자로 보입니다.]

“35만에서 40만이 모두?”

[그보다는 확실히 많은 숫자입니다.]

위고가 숨 가쁘게 상황을 전해주었다.

“총국장은?”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테오를 찾아. 만약, 그마저도 연락이 안 된다면 한 마디만 그의 전화기에 문자로 보내. 이번 판단에 따라 프랑스의 영광이 결정될 거라고.”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강찬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움직였다.

엘리베이터 내부는 빛을 삼키는 듯한 검은색 거울이었다.

긴장을 있는 대로 처먹은 석강호와 독이 잔뜩 오른 강찬, 그리고 함께 움직이던 요원 네 명의 모습이 그 거울 속에 또렷하게 올라왔다.

“아프리카에서 교전이 벌어졌단다. UIS 극렬주의자로 40만이 넘는 인원이다.”

“푸흐흐.”

강찬 말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석강호의 웃음이었다.

긴장을 처먹다 못해 광기에 사로잡힐 때나 나오는 웃음이라서 그렇다.

“다예.”

요원들이 눈만 돌려서 강찬을 바라보았다.

“늘 그랬지만 일이 벌어지면 무조건 죽여.”

“알았소.”

때앵!

석강호의 답과 동시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요원 두 명이 엘리베이터를 정면으로 바라본 자세로 서 있다가 강찬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쿵. 쿵. 쿵. 쿵.

그리고 복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에 심장이 완벽하게 전투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강찬은 무전기에 손을 올렸다.

치잇.

“부원장이다. 전 대원과 요원은 장전된 무기를 손에 들어라. 투숙객, 호텔 직원, 누구라도 상관없다. 조심만 수상하면 경고 사격하고 반항하면 곧바로 사살한다.”

엘리베이터 앞에 있던 요원 두 명과 함께 움직인 요원 네 명이 석강호를 따라 권총을 꺼내서는 노리쇠를 당겼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치잇.

“우리의 적은 국제호텔에서 테러를 일으켰던 UIS 극렬주의자들일 확률이 높다. 아랍인만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라. 방심하지 말고 수상하면 경고, 반항하면 사살이다. 이상.”

명령을 마친 강찬은 엘리베이터를 돌아 복도로 들어섰다.

우즈만과 라노크가 사용하는 층이다.

복도에 길게 방이 이어졌는데 5미터 간격으로 권총을 손에 든 요원들이 서 있었다.

강찬은 독이 잔뜩 올라 번들거리는 눈으로 복도를 걸었다.

후욱. 후욱.

완벽한 전투모드였다.

요원들의 머리칼에 떨어지는 조명, 창밖으로 반짝이는 옆 건물의 반짝임이 모두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이었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본능이 주는 경고가 또렷하게 바뀌었다.

멈칫.

강찬이 걷던 걸음을 멈추고 엘리베이터 방향을 바라보았다.

꽉 막힌 벽이다.

석강호와 요원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가 강찬에게 시선을 주었다.

강찬은 고개를 돌려 엘리베이터 반대편 복도를 보았다.

유리다.

그리고 아까처럼 옆 건물에서 넘어온 간판의 불빛이 붉고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저 복도 정면이 어디지?”

“사거리 중앙입니다.”

복도에 서 있던 요원이 바로 답을 했다.

“대사님은?”

“오른쪽 중간 방에 우즈만 왕세자와 함께 계십니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염병할!

강찬은 바로 요원이 알려준 방을 향해 달렸다.

이유도 모른 채 석강호와 요원들이 권총을 아래로 향한 자세로 강찬을 따라서 달렸다.

고작 10미터 남짓이다.

방에 도착한 강찬은 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쾅쾅쾅쾅쾅. 쾅쾅쾅쾅쾅.

“대사님! 강찬입니다!”

달칵.

“무슈 강?”

문은 라파엘이 문을 열어주었다.

와락!

안으로 뛰어든 강찬은 거실 맞은편을 보았다.

그럴 줄 알았다.

저렇게 건물이 있을 것 같았다.

네모난 유리 바깥으로 제법 높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무슈 강?”

무겁고 놀란 표정의 라노크와 우즈만이 소파에서 일어나 강찬을 바라보았다.

“대사님과 왕세자를 보호해! 엘리베이터 앞으로 이동한다!”

와락!

역시 석강호였다.

강찬이 라노크에게 달려드는 틈에 석강호는 우즈만을 향해 몸을 날리다시피 다가서고 있었다.

“라파엘! 나가! 나가!”

요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서 라노크와 우즈만을 겹겹이 감싸며 문을 향해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거실 창으로 섬뜩한 그림자가 훅 달려들었다.

와락! 와락!

강찬은 고개를 숙인 라노크와 함께 문을 나섰고, 석강호와 요원들이 그 바로 뒤에서 문을 돌아 복도로 방향을 틀었다.

그 직후였다.

퍼석!

사기그릇을 밟는 듯한 소리가 먼저 들렸고,

꽈으으응!

둔탁한 충돌음이 이어졌다.

“엎드려! 엎드리고!”

강찬은 라노크의 발을 걸다시피 넘어트리고 그 위를 덮쳤다.

뒤편에서 넘어지는 소리는 듣지도 못했다.

화아아아악!

화끈한 불기둥이 문을 뚫고 나와 복도 양쪽으로 후끈 달리는가 싶더니,

콰아아아아아아앙!

심장과 폐를 터트릴 듯한 폭발음이 귀를 찢다시피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직후에,

투두두두둑! 타아앙! 타앙! 투타타타탕! 타아앙! 투두두둑!

아래쪽에서 튀어 올라온 총소리가 시커멓게 변한 호텔 복도로 뛰어 올라왔다.

파란색 네모 칸의 비상등이 비추는 복도에 요원들이 쓰러져 있었고, 아래쪽에서 계속해서 총소리가 올라왔다.

틀림없이 대테러 팀도 사격을 하고는 있을 텐데 총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푸후!”

강찬은 파편과 복도 천장에서 떨어져 내린 가루들을 털어내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끄응!”

몸을 일으킨 강찬은 아래에 있는 라노크의 목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한국에서만 벌써 세 번째 테러를 당하는 라노크였다.

매번 이런 식이다.

투두두둑! 타앙! 타앙! 타앙! 투두둑! 투두둑!

테러라는 게 사전에 모조리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지만, 정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피하지 못하는 숙명 같은 일이라지만, 이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아직 그의 맥박은 뛰고 있었다.

강찬은 몸을 일으켜 라노크의 상체에 팔을 끼웠다.

“끄으응!”

부스스! 부스스스!

그때 석강호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지이이이익!

강찬이 라노크를 엘리베이터 앞으로 끌고 갈 때쯤 서너 명의 요원들이 몸을 일으켰고, 석강호가 우즈만의 상체를 끌고서 뒤따라 움직였다.

“개새끼들이! 전쟁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석강호가 뱉듯이 내뱉는 거친 말이 복도를 울렸다.

머리카락과 얼굴에 파편과 시멘트 가루를 온통 뒤집어써서 눈이 유독 시뻘겋게 보였다.

***

문재현은 청와대 지하 벙커에 있었다.

[일본 경시청은 이번 사무엘 미국 부통령의 테러가 북한의 공작팀 소행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화면에 처참하게 부서진 호텔이 나오는 동안, 미국의 보도방송에서 나온 앵커의 멘트를 동시통역이 억양 없는 음성으로 전해주었다.

[미국 정부는 이번 테러를 완벽하게 주권을 침해한 행위이며, 용서할 수 없는 범죄로 규정하고, 즉각적이며, 확실하고, 적극적인 군사적 응징을 감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엄청난 보도였다.

[또한, 한국으로 향하던 라우드 미대통령은 지금 현재 백악관으로 방향을 돌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라우드 대통령의 도착 이전에 군사 작전이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섬뜩한 보도가 연달아 올라오는 동안, 문재현은 삼성동 호텔 테러에 집중하고 있었다.

[35여단과 606이 이미 출동했습니다.]

“전군에 데프콘 1을 발령합니다.”

[알겠습니다.]

스피커에서 나온 보고에 문재현은 마이크에 대고 지시를 내렸다. 전략이나 전술적 적대행위 징후에 따른 군 최고준비태세를 선택한 거였다.

“결국, 이것이었나 보군요. 한반도에서의 전쟁.”

고건우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북한 지도자와 긴급 통화를 연결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고건우가 시선을 돌리자 대기하던 차장이 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그 와중에도 군과 각 부서의 책임자들이 바쁘게 들어와 자리를 메웠다.

테이블에 놓인 마이크에 들어온 붉은색 불빛이 상황이 긴박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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