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72화 (491/520)

제6장. 쇼가 시작될 시간이군. (1)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원장과 부원장이 주차장에 설치된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다.

그것도 밤이 깊은 시간에 말이다.

이미 라면을 먹은 대원들이 먹먹한 표정으로 원장과 부원장, 깍두기처럼 끼어있는 석강호를 바라보았다.

못할 말로 이 두 사람이 권력 좀 누린다고 그걸 고깝게 생각할 요원이나 대원은 없을 거다.

요원을 부려도 되고, 국가정보원 조금만 팔면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이 시간에도 폼나는 거 먹을 수 있다.

그런데도 강찬은 대원들이 잠시나마 차에서 내려 쉴 수 있게 해달라고 주차장에 자리 잡았고, 그런 강찬의 뜻을 이해한 고건우는 컵라면을 간이 테이블에서 먹는다.

“석 선생은 한 그릇 더 할 걸 그랬지요?”

“이 정도가 좋습니다.”

석강호가 점잖게 사양하며 물을 마셨다.

아는 거다.

지금 강찬의 눈빛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 커피 한잔 얻어 마시고 출발해야 할까 봅니다. 윤 팀장! 우리 커피도 좀 줄 수 있나?”

고건우의 요구를 들은 윤장훈이 종이컵 세 개를 가지고 다가왔다.

“여길 안 왔으면 서운할 정도로 지금 바람은 위로가 되는군요. 커피 냄새도 좋구요.”

종이컵을 든 고건우가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강찬의 심장이 느닷없이 뛰기 시작했고,

쿵. 쿵. 쿵. 쿵.

곧바로 크게 울리고 있었다.

얼마나 엄청난 놈이길래 이렇게 난리지?

강찬은 날카로운 눈으로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프리카냐? 아니면 대한민국? 그것도 아니면 양쪽?

와라. 모조리 죽여서 저 어둠 속으로 던져 주마.

고건우가 고개를 기울이며 안색을 살폈을 정도로 지금 강찬은 적을 바로 앞에 둔 것처럼 독기 가득한 눈을 하고 있었다.

강찬이 천천히 시선을 내려서 고건우를 보았다.

“원장님. 죄송하지만 청와대로 이동하실 때 승합차를 이용하면 어떻겠습니까?”

고건우야 당연하게 유라시아 철도 발표회장의 일과 말라위 대통령의 방한에서 문재현을 구해낸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하지요.”

강찬의 눈을 본 고건우가 고개까지 끄덕이며 답을 했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강찬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휴식 중인 대원들과 요원들을 향해 움직였다.

석강호가 바로 뒤를 따르고 테이블에서 고건우가 바라보는 앞이었다.

“최종일! 라노크 대사님과 우즈만이 있는 호텔에 있는 경호 책임자를 연결해!”

“예!”

최종일이 빠르게 전화기를 들었고, 지금껏 편안하게 있던 대원들이 소총을 들고서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이지 눈 깜깜할 사이였다.

편안하던 주차장이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인 것이.

“윤장훈!”

“예, 부원장님!”

“원장님을 모시고 이동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불안한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사격해! 그리고 이 시간부터 원장님은 대테러 팀 대원들과 함께 승합차 뒤쪽에 이동한다.”

엉뚱한 지시일 수 있었는데 이유는 모르지만 그만큼 상황이 급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윤장훈은 바로 “알겠습니다.”하고 답을 했다.

“승용차 뒷좌석에 요원 한 명을 태우고 움직인다. 이 경계는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끝나서 출국할 때까지다.”

“알겠습니다.”

고건우의 경호를 책임진 요원들과 대원들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쿵. 쿵. 쿵. 쿵.

심장은 여전히 위기가 바로 코앞까지 닥쳤다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때 최종일이 전화기를 들고 다가왔다.

“여보세요?”

[호텔 경호팀장 이한덕입니다.]

“지금부터 경호 수준을 최고로 높인다. 자살 폭탄 테러, 휴대용 미사일, 관광객으로 위장한 난입에 대비해서 권총을 장전한 채로 대기하고 필요하다면 소총을 소지해도 좋다.”

[알겠습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바로 보고할 수 있도록!”

이한덕의 답을 들은 강찬은 전화기를 최종일에게 넘겨주었다.

“날이 밝으면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다. 이 기회를 노리는 테러 세력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고 있을 거다.”

국제호텔, 리비아에서 강찬과 함께 작전을 뛰었던 대원들이 지금 최고참이 된 대테러 팀이다.

강찬의 눈빛만으로도 이미 상황이 어떤지 짐작하는 눈치였다.

“그들이 누구든, 어떤 짓을 하든, 지금까지 우리가 손님을 맞았던 그대로 돌려준다.”

말을 마쳤을 때 강찬의 옆으로 고건우가 다가왔다.

강찬을 믿고 의지한다는 것을 그는 단지 옆에 서는 것만으로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제는 출발할 시간이었다.

쿵. 쿵. 쿵. 쿵.

심장이 아직 뛰고 있지만 말이다.

***

라우드는 비행기 안에서 보좌관들과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국방부 정보국 국장, 국가안전국 국장과 연달아 통화를 마쳤다.

10시간은 꼬박 비행기 안에서 보내야 한다.

그렇다고 미국의 대통령이 어디 한가하게 지낼 시간이 있겠나.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 중에서 그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보고가 계속 들어와서 보좌관들이 줄줄이 그에게 다가왔다가 돌아가곤 했다.

“커피를 좀 주겠나?”

라우드의 요청에 직원이 빠르게 다가와 탁자 위에 있는 잔에 커피를 가득 채워주었다.

띠르르르. 띠르르르. 띠르르르.

그때 그의 전화기가 울었다.

“5분만 시간을 주지?”

테이블 건너편에 앉았던 보좌관이 익숙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뒤쪽으로 움직였다.

주변을 둘러본 라우드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이지?”

[타겟을 놓쳤습니다.]

라우드는 엄지와 검지로 눈 사이를 꼭 잡고서 눈을 찌푸렸다.

“원인은?”

[위원장과 급하게 만났고, 그 뒤에 함께 나와서 다시 문재현을 만나기 위해 청와대로 들어갔습니다.]

“이럴 때 보면 마치 우리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 것 같군. 아무튼, 그곳에서 잠을 잘 게 아니라면 다시 나올 게 아닌가?”

[타겟이 나오는 시간이면 한국은 인적이 뜸해져서 목적한 바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그때 또 다른 보좌관이 다가왔다가 라우드의 얼굴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뒤쪽으로 움직였다.

“우리 말에 오직 신만이 아신다는 말이 있지.”

전화기 너머에서 긴장한 그라펠트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렇더라도 완벽하게 준비되었다는 일이 이따위로 엉뚱하게 틀어진다면 너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나?”

[죄송합니다.]

“아프리카의 상황은?”

[준비가 완전히 끝났습니다.]

“숨 막히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단숨에 해치우는 거다. 놀라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나서 어찌할 도리가 없게. 알았나?”

[분명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좋아.”

통화를 마친 라우드가 고개를 들자 기다리고 있던 보좌관 둘이 빠르게 다가왔다.

“아프리카와 중국 중에서 어느 쪽을 먼저 들으시겠습니까?”

“아프리카가 더 흥미를 끄는군.”

보좌관이 사진이 올라온 태블릿을 라우드 앞에 내밀었다.

비행기 내부의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태블릿 화면에 기다랗게 행렬을 이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올라와 있었다.

“이슬람 병력의 이동으로 보입니다.”

“평범해 보이는데?”

“안쪽에 무기를 감춘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전에 없는 인원입니다. UIS 병력이 이동했던 것과 연관 지으면 최소 20만에서 40만 이상의 병력일 수도 있습니다.”

라우드는 검지로 사진을 넘겨 몇 장의 사진을 연속해서 보았다.

“여자와 아이들이 아닌가?”

“극단주의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무기를 이렇게 옮긴 뒤에 여자와 아이들은 자살 폭탄 공격에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목표는?”

주변을 둘러본 보좌관이 상체를 좀 더 숙인 뒤에 “한국이 이번에 점령한 반둔두 지역으로 보입니다.” 라고 속삭이듯 보고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국에 대한 통보, 아프리카에 주둔 중인 그린베레의 파견, 마지막으로 침묵이 있습니다.”

보좌관은 검지부터 중지, 그리고 약지를 차례로 세우며 세 가지 방안을 꺼냈다.

“나는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지.”

“알겠습니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보좌관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물러났다.

“중국 쪽은?”

“이번에 복귀한 양범이 화이트 울프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수송기와 항모를 포함한 것으로 봐서 한국을 지원하며 아프리카에서의 기득권을 인정받으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라우드는 픽 하고 웃었다.

“기가 막히는군. 지도를 펼쳐놓고 땅덩어리를 비교해도 그렇고, 기축통화국의 위치를 노린다는 중국이 한국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말이야. 후! 이건 정말……. 그래서 대안은?”

“대서양과 인도양의 항모 이동, 일본을 통한 긴장 조성, 그리고 관망이 있습니다.”

“이것도 일단 지켜보자. 러시아의 바실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방법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보좌관이 물러가자 라우드는 그제야 커피를 들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달각.

그는 잔을 내려놓고 팔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쇼가 시작될 시간이군.”

그리고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그려냈다.

***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반둔두 기지 전체를 엄청난 인원들이 감싸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대놓고 너희 어쩔 건데 하는 식으로 기자를 둘러쌌다.

말이 삼십만, 사십만이다.

저들 중 여자와 아이는 몸에 폭탄을 두르고, 남자들은 기다랗게 휜 칼과 소총을 앞세우고 달려든다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몰려드는 수십만의 사람들을 보자 용병 중에도 마른 침을 삼키는 이들이 있었다.

어둠이 완전히 짙어지는 시간이었다.

묵묵하게 반군 기지를 향해 있던 이들이 일제히 절과 같은 동작을 보이며 기도를 시작했다.

내내 몰려든 이들을 지켜보던 제라르가 이를 악물어서 그의 볼에 난 기다란 칼자국이 무섭게 꿈틀거렸다.

“저건 살라트가 아니다!”

하루에 다섯 번 하는 이슬람식 기도 살라트와 달리 지금 둘러싼 이들이 보이는 것은 성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드리는 의식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지금 엎드려 올리는 기도가 끝나면 곧바로 들이닥친다는 의미였다.

“문바키! 본부로 움직여! 그곳에 있다가 총소리가 들리면 바로 외인부대에 지원을 요청해라. 서둘러!”

철커덕!

말을 마친 제라르는 소총의 노리쇠를 당긴 후에 무전기에 손을 올렸다.

치잇.

“제라르다. 기도가 끝나면 적이 움직인다. 다들 대기해. 네로! 탄창과 박격포탄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준비해라!”

먼저 프랑스 말로 무전을 마친 제라르는 이어서 바로 무전기의 버튼을 다시 눌렀다.

치잇.

“요리사이다. 지금 보이는 기도가 끝나면 적이 달려들 거다. 교전이 벌어지면 문바키가 외인부대에 협조를 요청하겠다. 외곽이 무너지지 않도록 병력 배치 바란다.”

무전을 마친 제라르가 별이 박힌 하늘과 그 아래 펼쳐진 반둔두 기지를 들러보았다.

우르르.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상체를 들었던 이들이 다시 팔을 앞으로 하고 바닥에 몸을 낮췄다.

어둠에 싸인 지평선 저 끝까지 이어진 사람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기도하는 거였다.

저 기도가 끝나면 달려든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을 때까지.

“와라. 아무렴 내가 이곳을 뺏길 것 같나?”

우르르.

제라르는 다시 물결처럼 움직이며 몸을 일으키는 적들을 노려본 채 각오를 뱉었다.

“대장.”

그리고 언제나 그에게 용기를 주던 주문을 나직하게 뱉어냈다.

박철수는 외곽 담장 위에서 분명하게 무전을 들었다.

그 밖에도 제라르의 지금 무전은 무전기를 지닌 증평의 특수팀 전원과 북한의 지휘관급 인원 모두 들었을 게 분명했다.

우르르!

수십 만의 사람들이 기침 소리 하나 없이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상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35만? 40만?

저렇게나 많은 숫자가 마치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어둠과 함께 나타나서는 삽시간에 기지를 감싸버렸다.

정말 지금 눈앞에 보이는 여자와 아이들이 제라르가 염려할 정도의 전투 능력을 지니고 있을까?

우르르르!

또다시 물결치듯 양팔을 든 이들이 앞으로 몸을 숙였다.

믿는다. 믿어야 한다.

지금 이곳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한 이는 제라르고, 그래서 강찬이 그를 보냈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그의 판단을 믿고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었다.

박철수는 들고 있던 무전기의 마이크의 버튼을 다시 눌렀다.

치이잇.

“상황실이다. 지금부터 기지로 접근하는 이들이 있다면 1차 경고 사격 이후, 그래도 지시를 듣지 않는다면 곧바로 사살해도 좋다.”

만약 저들이 정말 민간인이라면 이 지시는 박철수의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정도로 위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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