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70화 (489/520)

제5장. 난 잘 지낸다. (1)

강찬을 우습게 알고 칼을 들었던 이들의 최후가 그렇듯이 아프리카에서 제라르를 만만하게 보았던 이들의 마지막 역시 비슷했다.

반둔두 기지를 베이스로 삼겠다는 박철수의 지시였다.

북한군 병사들이 외곽을 경계하는 한편, 미로처럼 생긴 담벼락 안쪽에 본부와 의무실, 통신실, 식당, 그리고 숙소 등을 만들었다.

그동안 제라르는 용병 대원들과 함께 기지 바깥을 살폈다.

프랑스인 특유의 훤칠한 키, 수많은 전투 경험이 녹아든 눈빛, 처절한 삶을 증명하는 볼의 상처.

소총을 앞으로 들어서 총구를 왼손으로 받쳐 든 제라르가 먼 곳을 향해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태양이 던져대는 창날 같은 빛이 온 대지에 꽂히는 오전이었다.

“문바키.”

“Oui, capitaine!”

“정보총국에서 저 앞에 보이는 이동에 관한 정보가 있었나?”

“없었습니다.”

제라르는 프란다스의 개, 네로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의미였다.

“라마단 축제를 앞둔 이동이라고 해도 여자와 아이들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그 외에도 무엇보다 도로를 가득 메운 채 걸어오는 인원 중 부르카를 입은 여인의 숫자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것도 마음에 걸렸다.

아프리카에서 덮어쓰듯 온몸을 완전히 가리는 부르카를 입는 여성은 정말이지 극단주의자가 거주하는 지역 외에는 보기 어려운 광경인 거다.

결론은 대강 섰다.

그렇지만 여자의 몸을 벗기거나 아이들을 먼저 사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문바키. 정보총국에 이번 이동에 관해서 문의하고 답을 들어. 무리하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궁금한 척만 해라.”

제라르가 문바키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건넨 지시였다.

긴 속눈썹에 숨었던 제라르의 날카로운 눈빛이 분명하게 뜻을 전하고 있었다.

“절대 우리가 의심하는 부분을 들키지 않겠습니다. 맡겨주세요.”

제라르가 잠시 볼을 우그러트리며 웃었다.

“네로!”

“Oui!”

“대원을 두 명씩 나눠서 저 앞쪽 언덕 세 곳에 배치해! 탄창을 충분히 준비해주고, 의심스러우면 바로 사격해라!”

“Oui, capitaine!”

“이곳에 있는 북한군은 아직 저들의 무서움을 모른다. 코리아의 특수팀도 여자와 아이들을 제대로 상대하거나, 저들이 비열하게 나오는 전투를 경험한 적은 없다.”

용병들은 소총을 앞으로 든 자세로 제라르의 말에 집중했다. 편안한 자세였으나 그들의 표정만큼은 처절한 전투를 앞둔 대원들의 모습이었다.

“기억해라. 갓 오브 블랙필드라 불리는 아프리카의 주인이 내린 명령이다. 여기에서 진정한 갓 오브 블랙필드의 신화가 시작된다. 너희는!”

제라르가 오른손을 들어 검지로 대원들을 콕 찍듯이 가리켰다.

“신화의 가장 앞에 선 대원들이다. 용병답게 결정한다. 이 전투에서 물러나고 싶은 사람은 지금 말해라.”

네로가 별 시답잖은 소리를 들었다는 것처럼 픽 웃은 다음이었다.

철커덕!

문바키가 요란스럽게 노리쇠를 당겨서 시선을 훅 당겨갔다.

“대장. 누가 아프리카의 주인이 주는 명령을 거부하겠습니까? 얼른 움직이지요.”

단단하게 말을 뱉는 문바키를 제라르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꽈악!

그리고는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감아 옆구리에 끼웠다.

“이제는 아프리카의 주인이 와도 내놓을 정도의 대원이 됐구나. 그렇지만 아직 실력은 부족해.”

“오-호호호호!”

“대장을 제대로 한 방 먹였는데!”

“문바키! 오늘부터 난 너를 정말 좋아할 거다! 그리고 마음 놓고 뒤를 맡기마!”

과장된 웃음 뒤로 대원들의 농담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간다! 준비해!”

“Oui!”

웃음은 제라르의 지시 한 마디에 싹 사라졌다.

쩔걱쩔걱. 쩔걱쩔걱.

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는데 그들 모두 지나가면서 문바키의 등을 한 번쯤 다독여주고 있었다.

제라르는 박철수의 막사를 향해 곧장 움직였다.

막사 앞을 가린 휘장을 걷어놓아서 안쪽이 훤히 보였다.

들어서는 제라르에게 박철수가 시선을 주었고, 함께 있던 차동균과 안철호가 궁금한 눈빛을 건넸다.

“수색은 어땠습니까?”

탁자에는 이제 외울 지경인 반둔두의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세 사람이 탁자의 한쪽을 차지하고 서 있어서 제라르가 마지막 남은 한쪽 면 앞에 섰다.

“여기, 이곳으로 라마단 축제를 앞둔 순례 행렬이 이동 중입니다.”

제라르는 지도에 나와 있는 선을 따라 검지를 움직여 보였다.

“그런데 그들의 이동이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부르카를 입은 여자들과 아이들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그것이 가장 이상한 점입니다.”

제라르의 보고를 들은 세 사람이 보다 많은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선 여자들이 입은 부르카를 알아봅니다. 히잡이나 차도르는 얼굴을 내놓습니다. 니캅은 눈만 겨우 내놓습니다. 부르카는 머리에서부터 완전히 뒤집어쓴 형태입니다.”

한국말로 설명하는 것이 답답한 것처럼 제라르가 양손을 펼쳐서 머리에서 목으로 움직였다.

“눈이 있는 자리만 보이는 천으로 시야를 확보합니다. 겉에서 봐서는 절대 남자, 여자를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옷 안에 무기를 숨겨도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이번엔 제라르가 팔을 길게 펴서 허리 주변으로 둥그렇게 움직였다. 옷의 폭이 어느 정도인지를 동작으로 알려준 건데, 어색한 한국말보다 훨씬 이해가 빨랐다.

“그것들을 검사하면 어떻습네까?”

안철호가 질문을 던지고 제라르의 눈을 바라보았다.

“검사? 조사? 안에 뭐가 있는지 세워놓고 살펴보자는 말입네다.”

억양에 적응이 안 되었던 제라르가 이제야 그의 말을 이해했다.

“아랍 여자들은 주로 속옷을 예쁜 것을 입습니다. 그리고 이슬람 여자를 손대는 건 어떤 이유에서건 저들이 달려들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박철수와 차동균, 안철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제라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수색을 당한 여자는 더러워졌다고 또 죽게 됩니다.”

“간나 새끼들! 여자를 보는 것만으로 더러워진다믄 얼굴을 드러내고 다니는 남자들은 아예 때투성이겠구만.”

혼잣말처럼 나온 안철호의 불평을 제라르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조심할 필요는 있겠는데 아이들과 여자가 많은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도 설명해 주겠습니까?”

박철수의 질문을 들은 제라르가 할 말이 떠올랐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통상 아프리카의 행렬에 저 정도 인원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극단주의자들은 여자와 아이들에게 다이너마이트나 C4를 몸에 감아둡니다. 소총이나 RPG를 숨긴 여자들도 많습니다.”

“흠. 그 정도라면 정보국에서 알아채지 않았을까요? 조심하라는 연락 정도는 있었을 텐데요?”

“아무래도 그 점이 수상합니다.”

박철수와 차동균은 제라르와 함께 전투했던 경험이 있다.

그가 이 아프리카에서 어느 정도 경력인지, 어떤 모습으로 싸우는지를 충분히 알 정도는 되는 거다.

“어떤 준비가 필요하겠습니까?”

“경계병들에게 충분히 알리고, 정지 신호를 무시한 여자와 아이들을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이 필요합니다.”

박철수가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아프리카에서 제라르가 저런 눈빛으로 내놓은 의견이라면 일단 따르는 게 옳다고 여겨서였다.

“들은대로 외관의 경계병에게 전해주십시오.”

“장군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갔습네다.”

안철호가 다부지게 답을 했고,

“국가정보원에 연락해서 추가로 정보가 들어온 것은 없는지 확인해.”

“알겠습니다.”

차동균이 분명하게 명령을 받았다.

“나는 바깥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부탁합니다.”

박철수에게 필요한 말을 전한 제라르가 막사를 나섰고, 이어서 차동균과 안철호도 각자의 임무를 위해 막사를 벗어났다.

사무실로 돌아온 강찬은 아까 보았던 건물들을 떠올리며 지도를 또다시 들여다보았다.

이렇게 외우고 외운 지도와 지형이 결정적인 순간에 남은 마지막 한 발의 총알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커피요.”

경호실과 통화하는 최종일을 대신해서 석강호가 봉지커피를 가져다주었다.

똑같은 봉지에서 꺼낸 커피인데 왜 이놈이 타면 조금 더 단맛이 나는 느낌일까?

찰칵.

강찬의 왼편에 앉은 석강호가 담배를 입에 물고는 건성으로 지도에 시선을 주었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강찬의 전화기가 테이블 위에서 울어댔다.

“알로?”

[제라르입니다.]

오전의 음성에 웃음이 묻어있었다면 지금의 목소리는 날카로운 칼끝에 찍어서 건네주는 느낌이었다.

“말해.”

[라마단 축제 행렬입니다. 그런데 숫자도 평소와 전혀 다르게 많고, 특히 여자와 아이들의 숫자가 절반을 넘을 정도입니다.]

“기지 근처를 지나는 거냐? 전혀 보고가 없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문바키를 시켜서 슬쩍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눈치 채이지 않게요.]

다른 사람 아닌 제라르다.

놈이 의심할 정도라면, 그래서 이렇게 날카로운 음성으로 전화할 정도라면 절대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흠. 짚이는 놈은 하나밖에 없다.”

[정보총국장 놈이 끝내 다른 생각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프리카는 원래 프랑스의 앞산이었으니까. 그들의 사냥터를 우리가 움켜쥐는데 가만 지켜보기는 어려웠겠지.”

[대장. 이쪽은 내가 잘 알아서 할 겁니다.]

제라르가 말을 꺼낼 때 알았다.

놈이 위기를 느끼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설 정도의 위험이라는 것을 말이다.

“제라르.”

[Oui, capitaine.]

“나흘이다. 나흘만 견뎌라.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때면 대장이 옵니까?]

강찬이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도 놈이 픽 하고 웃는 소리가 넘어왔다.

[올 때 돌대가리는 좀 놔두고 오십쇼.]

“물어보고.”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고 느꼈을 때였다.

“제라르.”

[Oui, capitaine.]

강찬이 다시 불렀고, 제라르가 똑같이 대답했다.

“난 잘 지낸다.”

먹먹한 무언가가 전화선을 타고 굵직하게 건너갔고, 또렷하게 넘어왔다.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강찬은 담배를 집어 들었다.

찰칵.

석강호가 얼른 라이터를 들어서 불을 붙여준 다음이었다.

“제라르와 반둔두 쪽이 함정에 빠진 모양이다.”

“뭐요? 무슨 함정이요?”

강찬은 지금 있었던 통화를 석강호에게 전해주었다.

“그 새끼, 그거, 거기에서 뒈지면 내가 무덤 앞에서 얼마나 약 올릴지 아는 놈이니까 잘 견딜 거요. 그놈보다는 박 장군이랑 애들이 걱정인데?”

강한 척하고는 있지만 석강호의 눈 깊은 곳에서 빛나는 피어오르는 독한 눈빛이 놈의 심정을 더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강찬은 우선 전화기를 들어서 번호를 찾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위고? 아프리카에서 왜 라마단 이동에 관한 보고가 안 들어오지?”

[아프리카에서의 이동에 관한 특별한 보고는 없었습니다. 확인해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아프리카 분실에서 아예 보고하지 않은 사항을 확인할 방법이 있나?”

[저는 아직 아프리카에 개별적인 라인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총국장인 강찬이 한국에 묶여 신경을 못 쓰고 있으니 위고가 힘을 얻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쪽에서 눈치채면 곤란하니까 일단 조심스럽게 알아보고 절대 무리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강찬은 다시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양범입니다.]

“양범 씨. 의논할 일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구금이 풀렸다는 것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군요.]

강찬은 양범과 한참을 통화했다.

아프리카의 상황을 설명했고, 움직일 수 있는 병력과 이번 일로 양범이 감당해야 할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도 함께 의논했다.

이번에는 한국말이어서 옆에 있던 석강호와 조금 떨어져 있는 최종일, 이두희도 모두 알아들었다.

[최대한 서둘러서 확인하고 정확한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양범 씨.”

통화를 마친 강찬은 “물을 좀 줘.” 하고는 가져온 작은 물병을 단숨에 마셨다.

수정 동굴로 변한 것처럼 사무실 곳곳에서 뾰족뾰족한 긴장감이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는 느낌이었다.

“경호실은?”

“아까 지시하신 건물에 대원들을 투입하고 완료된 이후에 연락 주기로 했습니다.”

강찬은 지도에서 지적했던 건물 일곱 곳에 동그라미를 쳤다.

“원장님. 현재 위치 좀 알아봐.”

“예.”

최종일이 얼른 전화기를 드는 동안, 강찬은 또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고 난 직후였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최종일이 강찬을 향해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과의 면담을 끝내고 지금 막 출발하셨답니다.”

강찬은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간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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