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절대 흥분하지 마라. (2)
멀리서 터져 나온 장갑차의 거친 엔진 소리가 막사 안으로 사정없이 뛰어들었다.
오후 4시였다.
출발까지 한 시간쯤 남았다.
장갑차를 이겨보겠다는 것처럼 트럭들의 엔진 소리가 힘을 합쳐 달려들곤 했는데 오래가지는 못했다.
안철호는 볼을 씰룩이며 몸을 일으켰다.
작전에 실패했다고 증평의 특수팀을 비난하거나 얕잡아 볼 마음 손톱 끝만큼도 없다.
남조선의 전사들이 풍요로움에 나태해져 있다는 말, 지겹게 들었었다.
그런데 그런 거 전혀 아니란 것을 알았고, 당장은 그저 같은 말, 같은 생각을 하며, 목표가 같은 동료라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는 이제 준비하갔습니다.”
흥분하면 사투리가 심하게 튀어나온다.
그러나 어쩐지 총지휘관인 박철수에게는 바른말을 건네고 싶었다. 그래서였나 보다. 그의 말은 어딘가 어색했다.
안다. 알고 있다.
특수팀이 실패하면, 그렇지 않아도 힘겨울 전투를 감당해야 하는 북한군 병력의 피해가 얼마나 클지.
‘부탁합니다.’
‘염려마시요! 내래 무슨 일이 있어도 반둔두를 가져와 장군 선생님의 손에 넣어드리갔습니다!’
안철호는 단단하게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박철수는 감정을 알 수 없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철호가 막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치잇.
“수색대다. 본부. 수색대다. 본부. 응답 바란다.”
안철호의 뒤통수를 움켜쥐는 것처럼 무전이 들어왔다.
박철수가 퍼뜩 움직여 무전기의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치잇.
“본부다. 수색대!”
치잇.
“전망대 네 곳을 모두 인수했다. 반복한다. 전망대 네 곳을 모두 인수했다.”
얼마나 이를 깨물었는지 박철수의 입이 앞으로 몰려나왔고, 귀 바로 아래까지 부러질 것처럼 꿈틀거렸다.
치잇.
“알았다. 수색대. 상황 보고 바란다.”
치잇.
“아버지의 부상이 심각하다. 그 외는 가벼운 부상이다. 그리고 전망대의 폭죽을 주인에게 돌려줄 계획이다. 승인 바란다. 본부.”
윤상기의 무전을 들은 박철수가 고개를 돌렸을 때, 안철호는 처음 보는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치잇.
“알았다. 수색대. 요청을 승인한다. 아버지의 귀환은?”
치잇.
“고집 센 아버지를 이길 아들이 이곳엔 없다. 함께 돌아가겠다.”
기가 막힌 일이다.
윤상기의 무전을 듣자 웃음이 나왔는데 그와 동시에 눈물이 함께 솟구치는 것이 말이다.
치잇.
“수색대의 판단에 맡긴다. 이상.”
마이크를 내려놓은 박철수가 커다랗게 숨을 내쉬고는 시선을 돌리자, 안철호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막사를 나섰다.
북한군 병력의 출발이 20분쯤 남았을 때였다.
치잇.
“요리사이다. 본부.”
이제는 익숙해진 제라르의 음성이 무전기를 타고 들어왔다.
치잇.
“본부다. 요리사.”
치잇.
“리마, 에코, 위스키의 청소가 끝났다. 중상 1명을 바로 후송하겠다.”
박철수는 들고 있던 마이크의 버튼을 꾹 눌렀다.
치이잇!
“고생했다, 요리사. 이상.”
이 무전으로 박철수가 우려했던 진입로의 위험은 완벽하게 제거되었다.
남은 것은 차동균이 이끄는 반군의 본진이었다.
‘장군님. 이렇게 외롭게 싸우셨었습니까?’
마이크를 내려놓은 박철수는 문득 고집스럽게 야전에서 버티던 최성곤을 떠올렸다.
새끼들을 내보내고 나면 돌아올 때까지 막사 앞에서 서성이던 최성곤을 말이다.
차동균과 대원들 아래로 반군기지가 거대한 몸뚱이를 눕힌 채 뒤통수까지 기운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개새끼들!
차동균은 독하게 빛나는 눈으로 박격포탄이 산더미처럼 쌓인 곳을 노려보았다.
몸을 잔뜩 웅크린 대원들이 그를 둘러싸듯 모여서 비슷한 눈빛으로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좌측의 경계병 지점부터 세 명씩 나눠서 맡는다. 포탄에 C4를 설치하면 그때부터 정확하게 20초다. 설치했다는 무전을 들으면 무조건 몸을 빼라.”
이런 순간에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훈련한 그대로 세 명씩 조가 나뉘었고, 차동균의 뒤를 받칠 두 명이 기쁜 얼굴로 시선을 나누었다.
‘미친놈들.’
차동균은 뒤에 있는 대원 둘을 보며 결국 픽 웃고 말았다.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은 것이 웃을 일이라는 놈들이라니.
이상하게 낮에는 그렇게 멀쩡하던 태양이 서쪽 하늘에 걸리면서부터는 붉은색을 띄운다.
아프리카의 하루는 그렇게 핏빛으로 물드는데, 마치 오늘 하루 있었던 죽음을 애도하는 느낌처럼 느껴졌다.
‘경미야. 조국이 준 임무다.’
차동균은 오늘 처음으로 집에서 마음 졸이고 있을 한경미를 떠올렸다.
핏빛으로 변해가는 햇살을 눈에 담으며 차동균은 숨을 들이마셨다.
스스슥! 부스럭!
그리고 그와 대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라르는 발목에 걸어둔 대검을 꺼내 들었다.
적을 제압할 왼손이 10시 위치, 거꾸로 든 대검이 2시의 위치여서 양손이 바로 턱 아래쪽에 있었다.
땀 많고 냄새 진한 거인의 겨드랑이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역겨운 냄새 가득한 아프리카의 산이었다.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 이 냄새를 견디게 해준 사람이 강찬이었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심장을 내맡겼었던 사람, 죽어가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손날의 살점이 움푹 뜯겨나가도록 손을 물어뜯었던 남자.
그가 원하는 땅이 아프리카이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곳이 이곳 반둔두다.
제라르는 볼의 상처를 잔뜩 우그러트리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움직였다.
스슥. 스스슥.
제라르는 강찬처럼 소리를 완전히 죽이지 못한다.
그렇다고 얕잡아보면 목이 갈라져 뒈지는 일밖에 없다.
막말로 강찬이 없었다면 전설은 되었을 정도의 실력은 되는 거다.
- “야, 이 개새끼야!”
사람이 살다가 욕이 반갑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움직이던 제라르가 동작을 멈추고 앞을 노려보았다.
뱀이 쥐를 낚아챌 때처럼 숨을 죽이고, 몸을 웅크린 다음,
화아아악!
제라르의 몸이 삽시간에 앞으로 튀어 나갔다.
터억!
적의 입과 코를 왼손으로 움켜쥐었고,
서거억!
오른손의 대검으로 단숨에 목을 갈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제라르는 있는 힘껏 적의 대가리를 아래로 누르며 끌어안았다. 피가 뿜어지는 것을 막고 되먹지 않은 끄르륵 소리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뒤를 돌아본 제라르의 눈에 문바키의 얼굴이 들어왔다.
문바키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제라르의 시선을 피하지 않기 위해 온몸에 힘을 꽉 주었다.
평소에 대원들과 킬킬거리던 제라르는 어디 가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그는 완벽한 살인 무기처럼 보였다.
‘이런 것이 전투다. 우리는 이런 지옥에서 살아왔다.’
그의 눈이 외치는 소리가 문바키의 가슴에 또렷하게 박혀 들었다.
‘할 거예요! 내가 피하면 적이 나를 그렇게 할 테니까요. 갓 오브 블랙필드와 제라르 대장이 살아온 삶이라면, 나도 그걸 이기고 함께 나갈 거예요!’
문바키의 답을 들은 것처럼 제라르의 눈 끝이 움직였다.
웃었나? 정말 그런 건가?
반군을 미끼로 숨어 있던 저격수의 목을 갈라버린 제라르는 이미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검지와 중지를 세워 방향을 가리켰고, 대원들이 곧바로 그의 지시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땅 아프리카다.
대화보다는 칼이 더 빠른 해결책이고, 살아남는 자가 정의가 되는 세상에서 문바키는 몸을 일으켰다.
지옥을 살아왔다는 것은 안다.
이전에 이미 경험했었고, 그 지옥에서 그를 꺼내준 사람이 바로 강찬이다.
‘나도 들어갈 겁니다.’
문바키는 강찬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죽음이 난무하는 그곳에서 허리를 굽혀 눈을 바라보고 말을 건네준 사람, 지금은 피해 있으라고 부탁해주는 사람.
문바키는 그런 남자가 되고 싶었다.
강찬 앞에 다시 섰을 때는 말이다.
대원 셋이 바닥에 엎드려서 소총을 앞에 두고 사격 자세를 취했다.
왼쪽과 오른쪽을 돌아본 차동균은 숨을 한번 훅 들이마시곤 그대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푸슝! 퍼억!
20미터쯤 되는 거리다.
푸슝! 퍼억! 푸슝! 퍼억!
첫 번째 경계병의 머리통이 커다랗게 터진 뒤에 곧바로 두 놈의 대가리가 동시에 피를 뿜어댔다.
쭉 튀어나온 피 주변으로 피보라가 옅게 피어날 때 차동균과 두 명의 대원은 담벼락 앞에 있었다.
와락!
담 끝을 손으로 잡아챈 차동균은 그대로 몸을 웅크린 자세로 담을 뛰어넘었다.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철커덕!
뒤로 돌렸던 소총을 앞으로 빼냈고, 홱 고개를 돌린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푸슝! 퍼억!
셋이 몸을 흔들며 무너질 때 함께 달려온 대원 둘이 앞쪽으로 달렸다.
투두두둑! 푸슝! 투두둑! 투둑! 퍼서석! 투두두둑!
적들이 내지르는 다급한 고함과 AK 소총 소리, 벽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한꺼번에 달려들고 있었다.
철컥!
소총을 뒤로 돌린 차동균은 허리 뒤에 두었던 C4를 꺼내 산처럼 쌓인 박스에 붙였다.
투두두둑! 푸슈슝! 푸슝! 투두두둑! 투두둑!
전선을 꽂았다.
이제 발파장치를 연결하고.
숨이 턱턱 막힌다.
이럴 때 긴장하면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투두두둑! 퍼서서석! 푸슝! 푸슝! 투두둑! 피이잉!
전선을 꽂아넣은 차동균은 한 번에 30초 설정인 타이머 스위치를 누른 뒤에, 곧바로 발파 스위치를 눌렀다.
푸슝! 푸슈슝! 푸슝! 푸슈슝!
뒤따라 달려온 대원들이 담벼락에 매달려 지원사격을 하는 사이, 디지털 숫자가 보인 뒤에 이어서 파란 불빛이 깜박였다.
치잇.
“돌아간다!”
그의 무전을 못 알아들을 대원들은 없다.
앞을 지켜주던 대원 둘이 뒷걸음질로 물러날 때,
푸슝! 푸슈슝! 푸슝! 푸슝! 푸슈슝!
담에 올라온 대원들이 나타나는 적의 머리와 심장을 향해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미로처럼 생긴 담벼락이었다.
입구에 나타난 적들이 대원들의 총알을 머리에 맞고는 흐물흐물 고꾸라지거나 뒤로 날아가는 것처럼 처박히고 있었다.
와락! 와락!
차동균을 지켜주던 대원 둘이 담벼락을 붙잡고 매달렸고, 이어서 차동균이 담을 잡고는 몸을 웅크렸다.
휘이익! 휘익! 휘이익!
셋이 담을 넘는 순간에 지원사격을 하던 대원들이 모두 담에서 뛰어내렸다.
“달려!”
이를 악물고 미친 듯이 달렸다.
투두두둑! 푸슝! 푸슝! 투두둑! 푸슈슝! 푸슈슝!
노을이 더 많은 피를 원하는 것처럼 붉디붉은 색을 뿌려대는 속에서 대원들은 미친 사람들처럼 처절하게 달리고 있었다.
크르르릉! 부으으응! 크르릉! 크르르릉!
지프의 조수석에 선 안철호는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는 장갑차와 트럭들을 돌아보았다.
선두에 선 5천 명만 트럭으로 이동한다.
남은 병력은 결국 달려올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전투에 지칠 만큼 먼 거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새로운 보급품에 제대로 먹고 나서는 길이다.
“보라우! 위대한 과업을 위해 가열차게 싸워서!”
장갑차의 거친 엔진음을 이겨보겠다는 것 마냥, 고함을 지르는 그의 목에 핏대가 불쑥 튀어 올랐고, 눈이 시뻘겋게 변했다.
“위대한 북조선의 위엄을 반둔두에 제대로 보이라!”
“우와-아!”
AK 소총을 머리 위로 흔드는 북한군 병사들이 일제히 고함을 질러댔다.
“출발하라우!”
크르르릉! 부으으응! 부으응! 부으으응! 부르릉!
흙먼지가 길게 올라오며 트럭들이 장갑차를 앞질렀고, 장갑차의 뒤로 걸어오는 병력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박철수가 적의 기습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증평의 특수팀이 그들을 제거하지 못했더라면, 이 중 절반은 시체가 되었을 전투였다.
지프가 달리기 시작했는데도 안철호는 서서 앞을 노려보았다.
태극기? 조국이 주는 임무?
사명감이 아무리 좋아도 지휘관이 지랄 같으면, 대원들의 눈에 그런 거 담기지 않는다.
막말로 썩어빠진 지휘관이 지휘할 바에야 사명감 투철한 대원들이 알아서 전투를 벌이는 게 훨씬 더 효과 있는 거다.
안철호는 강철규와 박철수, 차동균과 제라르를 떠올렸다.
다른 거 다 치우고 제라르만 해도 그렇다.
용병 출신이 대한민국의 임무에 무슨 관심이 얼마나 있겠나.
‘대체 남조선의 인물은 어케 전사들의 가슴에 이렇게까지 과업을 확실히 심어주는 기야?’
안철호는 고개를 흔들며 앞을 노려보았다.
그를 만나기도 전인 데도 안철호가 과업을 이루기 위해 불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반둔두를 손에 넣고 보자우!
안철호는 지프의 앞유리를 움켜쥐고 소총을 어깨에 걸쳤다.
그가 반군 기지를 향해 시선을 돌릴 때였다.
쿠으으응!
귀를 감싸야 할 정도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고,
쿠으응! 쿠으응!
두 번의 폭발음이 연속해서 터져나왔다.
지프가 흔들릴 정도의 커다란 폭발이었는데 고개를 든 안철호는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차동균이! 내래 질 줄 알아! 기다리라우! 와하하하하!”
운전병이 힐끔 그를 보았다가는 얼른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미치갔구만! 가라우! 내래 이 반군 새끼들을 완전히 섬멸해 주갔어!”
지금의 안철호는 정말 미쳐버린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