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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오브블랙필드(2부)-61화 (480/520)

제1장. 절대 흥분하지 마라. (1)

특수팀의 전투란 인간의 상식을 얼마나 벗어나느냐로 승패를 가른다.

짐작하지도 못한 곳에서 나타나, 상상도 하지 못했던 능력을 발휘할수록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

지금의 강철규를 뒤따르는 열두 명의 대원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적혀있던 교본을 떠올렸다.

남일규고, 양동식이고, 저런 지휘관을 어떻게 따르지 않을 수가 있을까?

몸을 웅크리고 움직이는 강철규다.

다 좋다. 적을 향해 다가가는데 뻣뻣하게 서 있을 건 아닌 거다. 그런데 그를 보고 있으면 마치 소리를 완전히 제거한 영상을 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휘이이이이!

미칠 일이다.

바람 소리, 그 바람에 가볍게 날리는 잔돌들의 소리는 계속 들리는데 그걸 밟는 강철규의 발걸음 소리만은 완벽하게 제거돼서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

강철규는 기껏 올라왔던 산의 정상을 비틀 듯이 돌아내려 갔다.

똑바로 내려가는 것도 아니었다.

위에서부터 빙빙 도는 것처럼 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태양이 정수리를 지나 뒤통수로 기우는 시간이었다.

오후 5시가 넘으면 북한군 병력의 진군이 시작될 예정이어서 어쩌면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원들은 묵묵하게 강철규를 따랐다.

지휘관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특수팀의 전설이다.

양동식과 남일규라는 양쪽 날개를 다 꺾이고도 대한민국을 위해, 후배들을 위해 아프리카를 누비는 남자.

가슴의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와 지금은 앞섶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는데도 가장 앞에서 대원들을 이끄는 우리의 전설인 거다.

휘이이이이!

지겹게 불어대는 바람이 이제는 솟구치는 게 힘이 부친다는 것처럼 아래로 뚝 떨어지며 멀어졌다.

징그럽도록 강렬한 태양, 아프리카 특유의 노릿한 냄새, 터무니없을 정도로 기다란 날개를 활짝 펴고 연처럼 하늘에 떠 있는 독수리.

강철규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감각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심장이 본능을 통해 지금이라도 제발 돌아가자고 계속 악을 썼지만, 강철규는 감각에 의지해 길을 나아갔다.

후욱. 후욱.

숨소리가 점점 진하게 강철규의 귀를 파고들었다.

적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커다란 바위로 된 모퉁이를 돌기 전이었다.

잠시 움직임을 멈춘 강철규는 고개를 돌려 대원들을 돌아다 보았다.

‘이제부터 교전이 벌어질 수 있다. 준비해!’

‘알겠습니다.’

눈과 눈으로 충분히 뜻을 주고받았다.

볼이 씰룩하도록 이를 한번 깨물었던 강철규가 모퉁이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이었다.

뚝 끊어진 것처럼 심장의 두근거림이 단숨에 사라졌다.

후욱. 후욱.

그리고 진하디진한 숨소리만 들렸다.

적이 바로 앞에 있다!

강철규는 왼손을 들어 대원들을 세웠다.

그리고 검지와 중지를 붙여서 좌우로 한 번씩 움직였다.

강철규를 중심으로 양쪽에 나뉘어 몸을 숨기라는 의미였다.

이어서 그는 엄지와 새끼만 편 손 모양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교전이 벌어진다.

사격을 준비해라.

준비는 모두 끝났다.

지시를 마친 강철규는 오른손을 돌려 어깨에 걸어둔 대검을 뽑아 들었다.

스으응.

묵직한 무게가 익숙한 감각을 통해 강철규에게 의지를 전해왔다.

매킨지는 검은 동자가 완벽하게 흰자위 사이에 뜨는 사백안이 되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커다랗게 뛰던 심장이 한순간에 멈추더니 이어서 미칠듯한 긴장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럴 때 그에게 달려들었던 적은 늘 심장을 뚫린 모습으로 최후를 맞는다.

“컴온!”

그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런 지형에서 아래쪽에만 저격수와 병력을 심어두는 건 정말 멍청이들이나 할 일이다.

세 개의 팀을 아래에 숨기고 매킨지가 이렇게 위를 지키고 있으면, 그 어떤 적도 이곳을 차지하지 못한다.

매킨지는 오래도록 함께했던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그의 오른편 바위에 몸을 숨긴 동료들은 언제나처럼 그의 지시를 기다린다.

휘이이이이!

바람이 달려왔다가 산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강철규는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후욱. 후욱.

나와라.

어떤 적이어도 상관없다.

태극기를 달았을 때 나를 이길 수 있는 적은 없다!

그는 완벽하게 표범처럼 움직였다.

작은 바위를 타고 넘을 때도 머리와 어깨가 전혀 요동치지 않았고, 단 한 톨의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바위 모퉁이 앞에 도착한 직후였다.

후욱. 후욱.

몸을 돌리던 강철규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하아-!”

매킨지가 하얗게 변한 눈을 하고서 대검을 들고 서 있었다.

목에서 턱 걸린 듯한 탄성을 지른 놈이 좌우로 몸을 흔들다가,

쉿! 쉬잇!

빠르게 대검을 휘둘렀고, 강철규가 상체를 두 번 뒤로 젖혔다.

휘이이이이!

코너를 도는 자리다.

이쪽도 저쪽도 대기하는 대원들은 두 사람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증평의 특수팀은 강철규의 뒷모습만 보였고, 저쪽은 매킨지의 커다란 덩치만 확인할 수 있었다.

“컴온!”

하얗게 빛나는 눈을 한 매킨지가 으르렁거렸고,

“와라!”

파랗게 독이 오른 눈을 한 강철규가 입술 끝만 움직였다.

두 사람 모두 대검의 날이 아래로 가도록 잡았다.

움찔!?

달려들 것처럼 주춤했다가는,

쉿! 피잇! 핏! 쉑! 쉬잇!

단숨에 서너 번씩 대검을 휘둘렀다.

다시 자세를 잡았을 때, 강철규는 손목을 베였고, 매킨지는 팔뚝이 갈라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움찔!?

쉿! 쉑! 쉐엑! 핏! 피잇! 핏!

또다시 대검이 빠르게 뒤엉킨 직후였다.

와락!

매킨지가 강철규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피윳! 피잇! 콰작! 쉑! 피잇! 퍼억!?

강철규가 놈의 목 근처를 가르고 왼쪽 팔꿈치를 내질렀을 때, 매킨지는 강철규의 어깨를 가르고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턱! 터억! 타닥! 핏! 피윳!

춤을 추는 사람들처럼 상대의 손목을 때려내고, 대검을 휘둘렀으며, 다시 대검을 든 상대의 손목을 빠르게 쳐냈다.

콰작!

강철규의 왼쪽 팔꿈치가 매킨지의 턱을 갈겼고,

퍼억!

매킨지의 왼쪽 주먹이 또다시 강철규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지금이 승부다!

강철규도 매킨지도 모두 알았다.

이번의 칼질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을!

이 바위를 차지하는 쪽이 이 산을 가져간다는 것도.

“하악-!”

매킨지가 둥그렇게 내려간 주둥이를 커다랗게 벌리며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피윳! 핏! 피윳! 피윳!

대검이 네 번이나 번쩍였다.

그리고 세상이 멈춘 것처럼 두 사람 모두 꼼짝도 하지 않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피시시시시시!

매킨지의 목에서 뿜어진 시뻘건 피가 입구를 조인 고무호스의 물처럼 아프리카의 허공에 뿌려질 때,

“끄아-아!”

코와 입이 뭉개져서 피범벅인 매킨지가 커다란 고함과 함께 대검을 높게 쳐들었다.

믿을 수 없어! 이건 악몽일 뿐이야!

인디언의 전사가 한낱 동양인 늙은이에게!

피이윳!

파랗게 눈을 빛내던 강철규가 오른손을 왼쪽으로 돌리는 것처럼 날카롭게 휘둘렀다.

거꾸로 잡은 그의 대검이 매킨지의 턱 바로 아래를 깊숙이 지나갔고,

“커헉! 꺽! 꺼으윽!”

목을 부여잡고 비틀거리던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강철규를 보기 위해 애썼다.

강렬한 햇살 아래에서 벌어진 일이다.

비틀거리던 매킨지의 몸뚱이가 커다랗게 기울더니 그대로 절벽 아래로 날아가듯 떨어져 내렸다.

강철규는 잠시 말없이 서 있었다.

그런 뒤에 그는 왼손의 검지와 중지를 모아 앞을 가리켰다.

쩔걱쩔걱. 쩔걱쩔걱.

자세를 낮춘 양동식과 윤상기가 곧바로 다가왔고, 그제야 강철규는 바위에 기대는 자세로 몸을 기울였다.

“저쪽에……, 적이 있다. 전부 사살해라. 이 바위가 기점이다. 이곳을 지키면 남은 세 곳은 움직이는 순간 모두 드러난다. 서둘러. 저쪽의 적이 몸을 감추면 그만큼 힘들어진다.”

“선배님!”

강철규의 손목과 옆구리, 그리고 목의 바로 아래가 벌어져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떤 전투가 벌어져도……, 절대 흥분하지 마라. ”

힘이 빠져가는데도 그의 눈은 매섭게 빛나며 대원들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잠시만 계십시오.”

윤상기가 검지와 중지를 붙인 손가락을 앞으로 가리켰다.

쩔걱. 쩔걱. 쩔걱. 쩔걱.

대원들이 바위에 의지해 총구를 내밀었고,

푸슝! 피잉! 푸슈슝! 퍼석! 푸슝! 퍼억! 푸슈슝!

양쪽 모두 비슷한 총소리를 내며 사격이 있었다.

강철규는 퍽퍽 터져나가는 바위의 옆에 기대 멀리 펼쳐진 반둔두를 보았다.

아들은 어떤 모습으로 최후를 맞았었을까?

그 마지막에 얼마나 외롭고, 원망스러웠을까?

피식.

그는 입술을 길게 늘이며 웃었다.

남일규도, 양동식과 그의 딸 양소미도 불행한 시대를 함께 살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강철규는 강찬 덕분에…….

멀리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점을 보며 강철규는 강찬을 떠올렸다.

정말 굉장하지 않나?

이 아프리카를 하나로 만들 계획을 세운 것만으로도.

휘이이이이!

달려왔던 바람이 총소리와 피에 놀란 것처럼 아래로 내려갔다.

푸슝! 푸슝! 푸슈슝! 푸슝!

사격은 아직 이어지고 있었다.

허리 뒤쪽 군복에 피를 닦아낸 대검을 강철규는 천천히 어깨에 매단 칼집에 꽂았다.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남은 모양이었다.

철컥!

강철규는 뒤로 돌려두었던 소총을 앞으로 당겼다.

대한민국과 태극기, 그리고 강찬이 원하는 것들을 이룰 때까지 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크르르릉! 철컹! 크으으응! 크아아앙!

활주로에 들어선 컨테이너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방향을 틀었다.

끼기기기기긱!

타이어가 지르는 비명이 컨테이너 안으로 들려왔고,

치잇.

“부총국장님!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운전을 하던 현지 요원과 뒤쪽을 막아주던 요원들의 다급한 무전이 연속으로 들어왔다.

“다예! 최종일! 입구를 맡아! 이두희! 신일국! 저 두 새끼 챙기고!”

차민정은 아직 우희승의 목덜미와 어깨 사이를 누르고 있었다.

왼손을 대고 오른손을 겹쳐서 누르는 일이다.

손목이 끊어지는 것처럼 아팠고, 고통스러워하는 우희승의 얼굴을 보는 것이 힘겨웠다.

그런데 우희승의 얼굴에서 고통이 점점 옅어지는 것을 보자 차민정은 어디서인지 모를 힘이 솟아났다.

치잇!

“이륙 준비해!”

치잇!

“이륙 허가 상태입니다!”

치잇!

“도어 오픈!”

치잇!

“수송기 도어 오픈!”

강찬의 무전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컨테이너가 거칠게 멈춰 섰다.

처컹! 처컹! 끼이익! 끼이익!

대원 둘이 컨테이너의 문을 열었다.

더컹. 더컹. 휘익! 더컹. 더컹. 휘이익!

석강호와 최종일이 뛰어내려 입구를 경계하는 동안, 이두희와 신일국이 스웨이든과 완전히 퍼진 도이슨을 어깨에 지고 비행기로 달렸다.

쩔걱! 쩔걱!

“서둘러! 다예!”

강찬이 내려서자 석강호가 달려와 우희승을 어깨에 받았다.

“가! 가!”

쩔걱! 쩔걱!

최종일이 송장명을 어깨에 받았다.

비행기로 달려가는 대원들의 가장 마지막에서 강찬은 소총을 들고 뒷걸음치듯 비행기로 향했다.

치잇.

“부총국장님. 멋진 작전에 함께 참여하게 돼서 영광이었습니다.”

현지 요원의 무전에 답도 하지 못했다.

강찬이 비행기에 뛰어든 다음이었다.

휘우우우우웅!

엔진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비행기가 바로 몸을 틀었다.

길게 늘어진 활주로의 불빛과 공항 건물의 조용한 불빛이 강찬과 대원들이 탄 비행기를 묵묵하게 지켜보는 밤이었다.

띵띵띵.

후아아아아앙! 드드드드드드드!

거친 진동이 비행기를 뒤흔든 뒤에, 마침내 앞이 번쩍 들렸고, 이어서 활주로와 공항 건물, 그리고 컨테이너 트럭이 저 아래에 있었다.

강찬은 헬멧과 두건을 벗어 던지고, 우희승에게 향했다.

링거와 혈액팩을 꽂은 대원이 테이프로 바늘 자리를 눌러주는 것도 보았다.

그으으으응.

비행기가 완전히 고도를 잡은 것처럼 편안한 자세를 취한 다음이었다.

우희승의 상태를 확인한 차민정이 그제야 헬멧과 두건을 벗었다. 돌돌 말아 망을 씌워 붙잡은 단발머리 아래로 이마와 볼, 그리고 목이 온통 검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차민정은 고개를 비틀고 강찬을 보았다.

석강호와 둘이 물을 마신 그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고 있었다.

- “멋지게 해치웠다! 다 같이 돌아간다! 그러니까 참아!”

송장명을 향해 외치던 강찬의 음성과 그때의 표정, 눈빛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차민정은 갑자기 목이 말라서 물이 담긴 팩을 꺼냈다.

이제 어떤 작전이든, 얼마나 힘겨운 임무든, 모두 해낼 자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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