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60화 (479/520)

제9장. 오래 기다렸지? (2)

독이 잔뜩 오른 표정으로 들어선 제라르를 프란다스의 개가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본 직후였다.

날카롭게 빛나는 눈, 으르렁대는 볼의 상처, 다부진 자세로 서 있는 제라르는 완벽하게 특수팀 지휘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리마, 에코, 위스키를 우리가 공략한다.”

“예에-!”

불끈 주먹을 쥔 네로의 함성과 동시에,

철컥! 철커덕! 철컥!

주변의 대원들이 노리쇠를 당기며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제라르는 구석에 앉아 있던 문바키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번 작전은 지금까지와 다르다. 너는 무리할 필요 없다.”

“가겠습니다.”

소총 총구를 앞으로 내린 대원들과 탄창을 조끼에 넣던 대원들이 일제히 문바키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왜 대장이 작전에 나서고 싶어 하는지, 어째서 이곳에 있는 분들이 작전 지시에 환호하는지를 이제야 겨우 알 것 같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문바키가 쥐어짜듯 의지를 표현해 냈다.

“의지와 의지가 맞붙는 전투를 외면하면, 앞으로 나는 그 어떤 충돌에서도 물러나게 될 겁니다. 지고 싶지 않습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이뤄야 할 것들,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해 나서고 싶습니다.”

네로가 입 끝에 미소를 그려내며 제라르를 힐끔 바라보았고, 대원들이 비슷한 표정으로 문바키와 제라르를 살폈다.

“네로! 결정은 네가 해라.”

제라르가 던진 지시를,

철커덕!

네로는 거칠게 노리쇠를 당기는 것으로 먼저 받았다.

“저런 동료를 두고 가면 작전 내내 등이 근질거립니다.”

그리고 그가 답을 뱉은 다음이었다.

“지옥으로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문바키.”

“지옥이 아니라 아프리카지! 진정한 전투의 땅, 아프리카!”

“이봐, 문바키! 검은 대륙의 위대한 신을 위해 함께 가자!”

대원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그를 맞아들였다.

“준비해!”

말을 던진 제라르가 소총을 집어들 때,

철커덕!

문바키가 다부지게 노리쇠를 당겼다.

차동균이 급하게 왼손을 들었다.

뒤따르던 대원들이 좌우로 납작 자세를 낮추며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차동균은 왼손을 구부려 든 채로 세 바퀴를 돌린 뒤에 검지와 중지를 붙여 앞을 두 번 가리켰다.

적으로 판단되는 인원 두 명이 앞에 있다는 의미였다.

후욱후욱. 후욱후욱.

차동균은 무엇보다 숨소리를 들으려 애썼다.

“지휘관은 자신의 숨소리를 놓치면 안 된다. 긴장될수록, 빠른 판단이 필요할수록, 숨소리를 들어라. 잘 배웠다. 다만, 의식하지 않은 순간에 너의 귀로 숨소리가 들릴 때까지 노력하고 노력해라.”

숨소리 저 너머에서 강철규의 당부가 들려오는 듯싶었다.

등 뒤로 바싹 다가온 대원 한 명이 차동균의 왼쪽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가 놓았다.

뒤쪽 대원들은 언제고 전투를 치를 준비가 끝났다는 의미였다. 그동안의 치러왔던 처절했던 전투를 통해 익힌 것들이 이런 순간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거였다.

처절한 전투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아래로 내려가면 그때야 제대로 강해진 특수팀이 된다는 말의 의미를 이렇게 분명하게 느끼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후욱후욱. 후욱후욱.

“흥분하지 마라. 숨소리를 들을 줄 아는 적을 만났을 때도 지휘관은 절대 흥분해서는 안 된다. 날카롭고 냉정하게. 너의 그런 모습이 대원들을 지킨다는 것을 잊지 마라.”

차동균은 북한 땅의 전투와 아프리카에서의 처절했던 전투를 떠올렸다.

그 어떤 순간에도 강찬은 가장 위험한 곳을,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처리하며 대원들을 이끌었었다.

차동균은 검지와 중지로 눈을 가리킨 뒤에 앞쪽의 두 곳을 차례로 알려주었다.

방심하지 말자. 마지막까지 침착하게 주변을 살피자.

아직 강찬이나 강철규만큼은 빠르게 알아챌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자.

차동균은 자꾸만 속으로 자신을 다독였다.

잘하고 있다, 차동균.

그러니까 악착같이, 끝까지, 혹시나 있을지 모를 저격수나 다른 경계병이 숨어 있는지를 살펴라.

나뭇가지 틈으로 AK 소총을 내민 반군들 외에 저놈들을 미끼로 삼아 뒤편에서 총구를 노리고 있을지 모를 다른 적들 말이다.

후욱후욱. 후욱후욱.

햇살을 부수며 매달려 있는 이파리들 사이를 다시금 천천히 살피는 순간이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놀라운 것이 그 이파리들 사이에 있었다.

유난히 뒤엉킨 나무들 아래로 몸을 숨긴 녹색과 거무튀튀한 흙색을 덮어쓴 총구였다.

적의 위치를 알려준 차동균이 오래도록 다음 지시를 내리지 않는데도 대원들은 끈덕지게 웅크린 자세로 기다렸다.

차동균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그보다 느긋하게 뱉어냈다.

이 이상은 발견하지 못한다.

더는 시간을 끌기도 어렵다.

좌우의 대원들을 둘러본 차동균이 조심스럽게 소총을 겨누자, 두 명의 대원이 비슷한 동작으로 맡은 적을 노렸다.

목표는 저격수의 총구 바로 위, 아마 저기쯤에 저격수의 이마나 목이 걸려 있을 거다.

잘 가라.

그리고 다시는 대한민국의 특수팀 앞에 설 생각하지 마라.

우리는 아프리카의 위대한 신과 함께 뛰었었고, 특수팀의 전설과 함께하는 세계 최고의 특수팀이니까.

차동균은 방아쇠에 건 검지를 천천히 당겼다.

푸슝! 퍼어억!

저격용 총구 바로 뒤에서 피가 퍽하고 튀어나왔고,

푸슝! 퍼억! 푸슝! 퍼억!

반군 두 명의 머리통이 퍽퍽 터져나가며 몸뚱이가 뒤로 널브러졌다.

두 번의 손짓에 다시 뒤편의 대원 둘이 바닥에 붙다시피 쪼그린 자세로 움직여 앞을 살폈다.

상황이 종료됐다는 의미로 적들을 살핀 대원 둘이 무릎을 구부리고 나아갈 방향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차동균은 검지와 중지를 들어 앞을 향해 가리켰다.

이렇게 나아간다.

반둔두의 반군기지 까지.

그리고 그렇게 나아가 아프리카의 중심에 태극기를 꽂을 때까지.

나의 피로 태극기를 꽂을 수 있다면.

후욱후욱. 후욱후욱.

이파리에 걸려 부서진 햇살이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차동균과 대원들을 안쓰럽게 다독이고는 따라오지 못한 채 뒤편으로 남았다.

크르르릉! 철컹! 크으으으응!

트럭의 엔진음이 커다랗게 터지고 난 뒤에 컨테이너는 조금 더 속도를 높였다.

“위원장!”

철컥!

의자에 걸쳐진 도이슨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가 최종일이 디민 총구를 보고는 꿀꺽 침을 삼켰다.

차민정이 우희승의 어깻죽지를 있는 힘껏 누른 채 버티는 옆에서 강찬은 붕대를 길게 펴 송장명의 배에 찔러 넣고 있었다.

“좀 더 세게 눌러!”

송장명의 허벅지를 신일국이 붕대로 감고서 피가 뿜어지는 자리를 악착같이 눌러댔다.

“끄윽!”

“견뎌! 조금만 참아!”

이를 악문 사람처럼 강찬은 송장명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멋지게 해치웠다! 다 같이 돌아간다! 그러니까 참아!”

“끄으윽!”

견디기 힘들었나 보다.

미칠 것처럼 고통스러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터억!

송장명이 강찬의 손목을 움켜쥐고 부들거리며 떨어댔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우희승, 그의 어깻죽지를 누르며 피를 막고 있는 차민정, 허벅지를 올라타다시피 한 신일국이 독이 잔뜩 오른 얼굴로 송장명과 강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으으응!

컨테이너는 빠르게 달렸다.

멀리서 사이렌이 들렸고, 커다랗게 커브를 도는 순간에, 바로 뒤편에서 또 다른 컨테이너 트럭이 끼어드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부원장님……!”

강찬의 손목을 움켜쥔 송장명이 쥐어짜는 것처럼 부르는 소리였다.

“견뎌! 얼마 안 남았어! 가자! 우리 함께 돌아가는 거다!”

덜컹! 덜커-엉!

“모시게 돼서 정말…….”

커다란 엔진음과 바닥이 울리는 소리 사이에서 힘겨운 송장명의 음성이 피어났다.

“장명아! 야, 이 새끼야!”

마음 급한 신일국의 욕이 튀어나왔을 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송장명은 입술을 길게 늘이며 웃었다.

투욱.

그리고 강찬을 붙들고 매달렸던 그의 손이 컨테이너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크으으으응. 크르르릉!

강찬의 손과 바지, 손일국의 앞쪽이 송장명의 붉은 피로 온통 물들어 있었다.

이를 꽉 깨문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운전석 쪽으로 걸었다.

“위원장……!”

퍼어어억! 철퍼덕!

강찬이 냅다 걷어찬 발길질에 볼을 얻어맞은 도이슨이 컨테이너 한쪽에 널브러진 직후였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강찬은 놈이 감싸 안은 대가리와 가슴, 구부려서 어떡해서든 막아보려고 버둥대는 배를 닥치는 대로 걷어찼다.

이 개새끼야!

그냥 핵융합 발전 시설이 있으니까 만들겠다고 말을 하지!

퍼억! 퍼억! 퍼억! 퍼억!

너희도 좋은 거 가졌으니까 알아서 경쟁하겠다고 하면 되는 거지!

퍽! 퍽! 퍽! 퍽!

온몸을 구부린 채 헐떡거리는 도이슨을 강찬은 아예 자근자근 밟아댔다.

그깟 게 뭐라고!

사람을 4만 명이 넘게 죽인 것으로도 모라자서 이 지랄을 떨다가…….

퍽! 퍽! 퍽! 퍽!

스웨이든이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얼른 반대쪽으로 돌렸을 만큼 처절한 모습이었다.

“대장!”

보다 못했는지 석강호가 강찬을 뒤에서 붙들었다.

“이 개새끼! 너는 반드시 서울을 구경시켜 주마!”

강찬이 우리말로 뱉어낸 말뜻을 아는 대원들이 쓰러진 도이슨의 대가리를 살벌하게 노려보았을 때,

크르르릉! 크으으응!

경마장을 커다랗게 돈 컨테이너가 공항으로 달리고 있었다.

강철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방향으로 산을 가로질렀다.

저긴 길이 없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곳을 그는 그대로 뚫고 나갔고, 거짓말처럼 길을 만들어냈다.

하긴, 보통 사람 같으면 절대 상상하지 못할 길인 건 맞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넘어가는 특수팀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로프를 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바위틈을 잡고 건너가는 길을 말이다.

높이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면, 죽음처럼 끔찍한 훈련이 없었다면, 절대로 따를 수 없는 길을 강철규가 앞섰고, 대원들이 묵묵히 뒤따랐다.

매킨지는 입술을 핥으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좌우로 살폈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이리 바로 온다고? 그 늙은이가?

심장은 이제까지와 다르게 위험하다고,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라고 악을 써대고 있었다.

이런 정도로 본능이 경고했던 적이 있었나?

“아이-후-오아!”

그는 나직하게 적을 맞이하는 주문을 외웠다.

지금껏 만나지 못했던 강적이 다가온다고 악을 써대는 본능의 경고를 이겨내기 위해서였다.

뜨거운 태양이 정수리 위에서 반둔두를 비추는 시간이었다.

매킨지는 강철규란 한국의 전설이 다가오리라 짐작되는 방향을 천천히 살폈다.

치잇.

“적이 다가오고 있다. 저격수는 모두 긴장해라.”

그와 오랫동안 함께 했던 대원들이다.

그러니 지금 무전의 의미를 모두 알아들었을 거다.

이마에서 코로 볼록 나온 듯한 곡선이 입과 턱을 따라 다시 들어가는 둥그런 인상의 매킨지는 다리에 매달아놓은 대검을 뽑아 들었다.

스으응.

언제나 그와 함께 했던 대검이 손에 착 달라붙어 얼른 적의 심장을 가르자고 그에게 속삭였다.

“캄온! 코리안!”

매킨지는 아래를 향해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

이 대검으로 그의 심장을 가르고 머리 가죽을 벗겨낸다.

그리고 한국의 꿈을 이곳에 함께 잠재운다.

매킨지의 위대한 전설이 시작될 이곳에 말이다.

아찔한 절벽을 두 팔에 의지한 채 건너는 일은 힘겹다.

밑이 저렇게 섬뜩한 절벽이 아니라면 누구나 쉽게 건널 거리이긴 했는데, 이상하게 까마득한 아래와 몸을 흔드는 바람을 느끼면 팔에 힘이 쭉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끄응!’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쭉 올라왔고, 바람이 등과 목을 스치고 지날라치면 죽음이 목덜미에 숨을 불어넣는 것만 같았다.

터억! 터억! 터억! 터억!

양동식은 악착같이 매달렸다.

손가락이 부러질 듯 아프고, 어깨와 옆구리가 찢어지는 것처럼 짜릿했는데 그 따위 고통 무시한지 오래였다.

전에는 이런 순간이면 이상하게 눈물도 났었다.

견디고 싶어서, 버텨내고 싶어서였는데, 그럴 때면 누군가에게 매달리는 심정에서 눈물이 쏟아지곤 했었다.

양동식이 절벽의 반대편에 발을 걸었을 때였다.

터억!

이번에도 강철규가 그의 등을 당겨주었다.

아버지, 이 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생각입니다.

허락하실 런지는 몰라도, 이미 제 마음속에서 이 분은 저의 또 다른 아버지입니다.

조국이, 대한민국이 보내준 군인 양동식의 아버지 말입니다.

터억!

뒤따라 온 윤상기의 등을 당겨준 양동식은 물을 꺼내 강철규 옆에서 마셨다.

이미 출발했을 강철규다.

그런데도 그는 대원들이 모두 건너와 물을 마시고 났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휘이이이이이!

바람은 꾸준히 달려와서는 태양에 맞서겠다는 것처럼 계속해서 위로 솟구쳤다.

“얼마 남지 않았다. 적을 만나게 되면, 어떤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절대 흥분하지 마라.”

강철규가 무서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적이 있는 곳을 아는지, 왜 이런 말을 하는지는 아직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강철규는 본능이 주는 경고를 피식 웃는 웃음으로 넘겼다.

검은 대륙의 절대자가 바라는 반둔두를 앞에 두었는데 그 따위 경고에 돌아설 수는 없잖은가.

내가 돌아서면 이 후배들이 본능이 이토록 악쓰는 위험에 달려들 텐데 그걸 알면서 이곳에서 물러선다는 것은 말이 안 되잖나.

강철규는 힐끔 고개를 돌려 어깨에 매단 대검을 보았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

좌절 속에 빠져 있던 그 긴 시간을 묵묵하게 기다려주었던 이 대검과 함께 하는 날이 말이다.

강철규는 정수리에 올라온 태양을 무시한 채 산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금처럼 내가 가장 앞에 선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심장이 이번만큼은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악을 써댔다.

“두 명씩 움직인다. 교전이 벌어지면 훈련처럼 앞쪽부터 맡아 사격하고, 만약 내가 지휘하지 못할 경우가 생기면, 윤상기가 판단해서 다음 목표로 이동한다.”

대원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강철규를 바라본 직후였다.

소리하나 내지 않고 강철규가 움직였다.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는데, 지금의 그는 완벽하게 독이 잔뜩 오른 표범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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