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58화 (477/520)

제8장. 저 분을 지키고 싶습니다. (2)

매킨지는 대통령 직속 비밀 임무 기관 ‘더 미션’의 특수팀 출신이다.

최근 십 년.

델타포스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작전들은 모두 그의 활약덕분에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그 공로로 ‘더 미션’의 지휘관으로 활동했으며, 은퇴한 직후에 바로 스웨이든을 만났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긴장이 필요했다.

가족들은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해 떠났지만, 그래도 그는 돈과 명예보다 필드에서 작전을 뛰는 게 좋았고, 그럴 때 유일하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흔 아홉이다.

거인형의 체구에 백인과 미국 인디언의 혼혈인 그는 이마에서 코, 그리고 턱까지 둥그런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강렬한 태양, 피를 말리는 듯 날카롭게 달려드는 긴장, 언제 맡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아프리카의 냄새 속에서, 그는 천천히 산의 정상과 반군 기지, 그리고 산의 아래쪽을 둘러보았다.

완벽한 작전이었다.

이렇게 짜 놓으면 적의 특수팀은 절대 매킨지의 대원들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

워낙 요지를 차지하고 있어서 이 상태에서는 10만이 넘는 북한군 병사들이 달려온다고 해도, 그들은 이곳에서 모두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다.

“후우.”

매킨지가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담을 때였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그의 심장이 불현 듯 커다랗게 뛰었다.

인디언 특유의 감각이 알지 못할 위기가 다가온다고 알려주는 신호였다.

그 자가 이정도로 위험한 인물이었던가?

코리아의 특수팀이 최근 이름을 날린다고 하더니 이 정도였다고?

매킨지는 눈빛을 번득이며 무전기의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치이잇.

“적이 다가오고 있다. 각 팀은 주변을 확실하게 경계해라. 증평 팀을 절대 만만하게 생각하지 마라.”

무전을 마친 매킨지는 잔인한 미소와 함께 그가 예상하는 한국 특수팀의 진입로를 노려보았다.

‘어서 와라.’

강철규에 대해 들었다.

위기를 감각으로 알아채는 특수팀 대원.

꽤 잘 짜놓은 저격수의 총구를 한눈에 알아보는 남자.

그리고도 그것을 피하지 않은 채 수류탄을 던져 동료들을 지켜내는 군인이라니.

‘한국의 전설 따위 이곳에서 끝이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그의 심장이 계속해서 위험하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이런 능력을 통해 그는 지금껏 엄청난 작전들을 완벽하게 성공해냈고, 아직까지 그가 목표로 했던 적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너무 쉽게 쓰러지지는 말아라.’

늙어빠진 그를 상대하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강한 적을 상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그를 한껏 흥분시키고 있었다.

휘이이이이!

멀리서 달려오는 바람을 맞으며 매킨지는 입술 한쪽 끝을 혀로 핥았다.

강철규의 심장에 대검을 꽂아 넣는다.

그래서 그의 몸이 축 늘어질 때 또 하나의 전설이 탄생하는 거다.

한국의 꿈은 이곳에서 끝난다.

“아이-후-오아!”

매킨지는 나직하게 조부에게서 배운 인디언의 주문을 외웠다.

전사가 적을 맞이하기 전에 외치는 주문이었다.

강철규만큼은 머리 가죽을 벗겨서 그가 위대한 전사였음을 하늘에 알려줄 거고, 목을 분명하게 그어서 그의 피가 대지로 돌아가게 해 줄 생각이었다.

인디언이 적의 용사에게 보이는 최고의 예우쯤 늙은 한국의 전설을 위해 한번은 해줄만한 것이었다.

차동균은 산을 타고 걸었다.

앞쪽에 선 그는 NP5SD를 겨눈 자세로 길을 열었다.

부서지는 흙과 깨진 돌, 그리고 아프리카의 험난한 삶을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들이 널브러진 산길이다.

그런데도 차동균은 그 흔한 부스럭 소리 하나 내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대원들이 두 명씩 좌우를 경계하며 차동균을 따랐다.

휘이이이!?

바람이 불 때마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고,

부스스스스!

나무와 이파리들이 그려낸 그림자에 총구가 돌아간다.

뼈에서 진이 빠져나와 그 힘으로 견뎌내는 느낌이었다.

반둔두를 손에 넣어야 한다.

조국이, 대한민국이 발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소총의 앞을 받치고 있는 왼팔 팔뚝에 선명하게 달린 태극기가 차동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임무를 누가 해야 하나?

태극기가 물었고,

‘우리가 합니다!’

차동균이 이를 깨물며 속으로 답했다.

최성곤이 끌어주었고, 박철수가 중심을 잡아주었으며, 대원들이 뒤를 따른다.

강철규 같은 선배가 앞장서서 피를 흘리는 전투다.

어려운 임무다.

이 대지에 너의 피를 흘릴 수 있는 작전이다.

‘나의 피로 조국을 지킬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합니다.’

차동균은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섰다.

대한민국이 손을 내밀고 있다.

그동안 수없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날이었다.

강철규는 왼손을 위로 짧게 들었다.

윤상기, 양동식이 몸을 움찔 아래로 낮췄고, 그 뒤로 차곡차곡 대원들이 몸을 움츠린 채 다가왔다.

휘이이이이!

멈출 줄 모르는 바람이 흙과 돌가루를 이곳저곳에 뿌려대고는 자꾸만 위로 치솟는 산의 중턱이었다.

강철규가 숨어있는 적을 날카롭게 노려볼 때였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그의 심장이 느닷없이 위기를 알려왔다.

그리고 그 직후에 저 멀리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날아드는 것처럼 섬뜩한 느낌도 달려들었다.

어딘가에 또 다른 함정이 있나?

산 저 건너편을 힐끔 보았던 강철규는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후욱후욱. 후욱후욱.

호흡소리를 들으며 강철규는 눈앞의 적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당장은 눈앞에 있는 적을 해치우는 게 가장 급했다.

그는 검지와 중지로 눈을 가리킨 후에 앞쪽 아래의 한 지점을 검지와 중지를 붙여 가리켰다.

고개를 슬쩍 들었던 양동식이 반 템포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다! 저곳에 저렇게 있는 줄 정말 몰랐다.

바위 색과 비슷한 장막을 뒤집어써서 혼자 이곳에 도착했다면 뱀의 대가리 앞을 지나는 다람쥐처럼 조심조심 총구 앞을 걸었을 게 분명했다.

양동식의 반응을 확인한 강철규는 다시 윤상기에게 한 지점을 가리켰다.

끄덕.

그래도 아프리카에서의 전투에서 얻은 경험이 있다고, 윤상기는 바로 알아보았다.

강철규는 지루해하지 않고 대원 여섯 명에게 일일이 목표를 지적해 주었고, 이어서 남은 여섯 명에게 한 지점을 둥그렇게 가리켰다.

그냥 나무가 좀 많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산을 올라가면 유독 좀 그런 곳, 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는데 강철규는 분명하게 그곳을 가리켰다.

그것도 여섯 명에게.

목표는 알아들었다.

그래서 대원 여섯 명이 고개를 끄덕인 직후였다.

강철규가 엄지와 새끼손가락만을 펴서 대원들과 나무가 무성한 지점을 가리켰다.

작전이 시작되면 그곳을 향해 일제히 사격하란 의미였다.

특수팀의 전설이자 이번 작전의 지휘관 강철규의 지시다.

당연하게 대원들 모두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강철규는 본능이 던져대는 경고를 누르며 어깨에 매달았던 대검을 꺼내들었다.

왜?

목표 지점을 모두 알려주고서?

명령만 내리면 적들의 대가리를 한방에 뚫어줄 실력이 되는데?

대원들이 의아한 눈으로 강철규를 바라볼 때였다.

강철규가 고개로 앞을 가리켰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명령이다.

대원들이 각자 맡은 목표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발사 명령을 기다렸다.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강철규가 앞으로 몸을 날렸다.

산 아래를 향해 엎어진 자세로 뛰어내려서 마치 자살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찌이이익! 콰자자작!

왜? 도대체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하는 겁니까!

양동식이 이를 악문 직후였다.

철컥! 철커덕! 철컥!

적의 총구가 번쩍 들리며 강철규를 향할 때,

콰아아악!

미끄러져 내려가던 강철규가 돌 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휘이익! 콰아악!

세상에! 저런 곳에 저격수가 숨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그 짧은 틈에 저격수의 목에 칼을 박아 넣은 강철규는,

피잇!

이어서 목을 제대로 그어버렸다.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푸슝! 퍼억!

윤상기와 양동식, 남은 네 명의 대원들이 목표로 삼았던 적의 이마를 뚫었고,

푸슈슝! 푸슈슈-슝! 푸슈슝! 푸슈슈-슝!

여섯 명의 대원이 나무가 무성한 지점을 향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퍼버벅! 퍼버버벅! 퍼버벅! 퍼버버벅!

나무 틈에서 몸뚱이가 터진 반군들이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푸슈슈-슝! 푸슈슝! 푸슈슈-슝!

미칠 일이다.

코앞에 있는 저격수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나무 틈에 반군이 저렇게나 숨어 있는 것도 찾지 못하다니!

반드시 배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실력을 키운다.

이 경험이 헛되지 않게, 그래서 더는 나이든 선배가 홀로 위험을 감당하지 않게 만들 거다.

상황은 단숨에 끝났다.

일제히 달려가서 죽은 적들을 확인했고, 간간이 확인사살을 위한 총소리가 들렸다.

수색을 마친 윤상기와 양동식이 다가섰을 때 강철규는 길 건너의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님. 다음번에 저런 식으로 저격수가 또 있다면 제가 나서겠습니다.”

윤상기가 말을 건네자 등에 칼을 꽂아 넣은 강철규가 눈 끝을 늘이며 웃었다.

“선배님!”

강철규의 가슴에 배어난 피와 허리와 허벅지에 가득한 긁힌 자리들을 보며 윤상기가 재차 그를 불렀을 때였다.

“대검으로 해치우려 했는데 총소리가 났다. 적들이 알아챘을 거다. 작전을 수정한다.”

말을 마친 강철규는 또다시 먼 곳을 무섭게 바라보았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강철규의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을 모르는 윤상기와 양동식은 이해하기 어려운 답이었다.

매킨지는 고개를 돌려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치잇.

“진입로 맞은편입니다. MP5SD 소총 소리였습니다. 짧게 끝난 것을 보면 상황 종료된 것으로 보입니다.”

치잇.

“알았다. 다음 목표는 너희가 될 거다. 경계를 분명하게 하고 있도록.”

치잇.

“알겠습니다.”

무전을 마친 매킨지는 볼이 씰룩이도록 이를 깨물었다.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건가?’

두근두근. 두근두근.

어지간하면 이곳을 빠져나가라고 본능이 악을 바락바락 써대는 느낌이었다.

‘얼른 와라. 얼른.’

강철규가 있으리라 짐작되는 산을 향해 시선을 준 매킨지는 나직하게 숨을 들이켰다.

제라르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분명 안내와 지원까지는 우리가 맡기로 했었습니다.”

저 심정을 왜 모르겠나?

위험한 작전을 온전히 증평 팀에게만 던진 것이 안타까워 나서는 아군의 심정을.

“지금이라도 지원 나가게 해주십시오.”

외인부대 특수팀 사령관까지 지냈던 제라르의 진심어린 요청이 박철수의 가슴에 깊게 담기는 순간이었다.

치잇.

“수색대다. 본부. 수색대다.”

뜻밖의 무전에 박철수는 몸을 날리다시피 무전기에 매달렸다.

치잇.

“리마, 에코, 씨에라 지점을 확보했다.”

강철규의 음성이 분명하게 들렸다.

치잇.

“알았다. 수색대.”

한국어 교신이다.

어지간한 놈들은 알아듣기 어려운 데다, 증평 특수팀의 무전기는 주파수를 뒤지기 쉽지 않은 장비다.

치잇.

“작전 변경이 불가피하다. 리마, 에코, 위스키는 요리사에게 부탁한다. 반복한다. 작전 변경이 불가피하다. 리마, 에코 위스키는 요리사에게 부탁한다.”

치잇.

“알았다. 수색대. 확인하고 답하겠다.”

마이크를 내린 박철수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 않아도 독이 잔뜩 오른 눈을 한 제라르가 기다리던 참이었다.

“들으셨지요?”

“우리가 갑니다.”

고개를 끄덕인 박철수가 다시 마이크를 당겼다.

치이잇.

“수색대. 요리사가 출발한다. 반복한다. 요리사가 출발한다.”

치잇.

“고맙다. 본부. 이상.”

무전이 끝났다.

“출발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박철수의 말이 떨어지자 제라르가 볼의 상처를 우그러트리며 웃었다.

아프리카에서 UN군으로 함께 전투를 치렀던 남자다.

그가 강찬을 얼마나 좋아하고 따르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박철수다.

이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고개를 짧게 끄덕인 제라르가 막사를 나서는 것을 본 박철수는 탁자 위에 펼쳐진 지도에 시선을 주었다.

반둔두가 한 장의 종이 위에서 그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강찬은 저곳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었다.

심지어 어쩐 이유에서인지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둔두를 꼭 손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박철수는 주먹을 꼭 쥐고 지도를 노려보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손에 넣는다.

대한민국이, 태극기가, 그리고 강찬이 원하는 것이라면.

강철규와 증평 특수팀, 10만이 넘는 북한군 병사와 외인부대 특수팀 용병들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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