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57화 (476/520)

제8장. 저 분을 지키고 싶습니다. (1)

태양이 내리쬐는 반둔두의 산은 딱딱한 돌과 부서지는 흙, 그리고 그 척박한 땅에서도 녹색을 피워내는 나무들이 전부인 세상이었다.

목표 지점은 모두 여섯 곳, 강철규와 함께 출발한 대원은 12명이었다.

조를 나눠 공격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강철규는 12명을 모조리 이끌고 가장 앞쪽의 목표지점을 향해 움직였다.

부스슥! 부스스!

산의 옆으로 삐죽이 튀어나온 돌을 밟고 우둘투둘한 돌의 끝을 잡고 움직이는 길이다.

소총을 뒤로 돌린 강철규가 가장 앞에서 길을 열었다.

양동식은 이를 악물고 앞서 가는 강철규의 발이 디딘 자리와 그가 움켜쥔 돌들을 기억하려 애썼다.

박철수와 차동균을 의심했었다.

강철규 정도의 부상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이번 작전에 나서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쩔걱. 부스스! 부스슷!

그러나 능선을 타고 길을 여는 강철규를 보며 양동식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실감하고 있었다.

터억! 터억! 터억!

심지어 강철규는 돌을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린 자세로 산의 끝을 돌았다.

그의 어깨 너머로 반둔두의 기지가 멀리 보이고, 허공에 떠 있는 발 아래로 건조한 아프리카의 땅이 먹이를 기다리는 괴물처럼 펼쳐져 있었다.

몸에 걸친 무기의 무게만 해도 장난이 아니다.

고통스러운 자세였다. 특히나 강철규에게는.

그가 입은 회색 군복의 가슴에 시뻘건 피가 배어난 것이 양동식의 눈에 들어왔다.

터억! 터억!

양동식은 이를 악물고 바위에 매달렸다.

‘끄응!’

해낸다! 식은땀을 비처럼 흘리면서도 고통스러운 표정 하나 짓지 않는 강철규를 위해서,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임무를 맡긴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도.

터억! 터억!

무릎을 반쯤 구부린 자세로 양동식은 강철규가 잡았던 돌들에 매달려 그의 뒤를 따랐다.

아버지! 보이세요?

사진 속에서 보았던 아버지처럼 군복을 입고 있어요.

대한민국 최고, 세계 최고라는 증평의 특수팀 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아들을 한번만 봐 주세요!

그리고 앞에 가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설인 분도요.

저분을 지키고 싶습니다.

더 바라지 않습니다.

그동안 훈련한 것들을 제대로 펼칠 수 있게만 도와주세요.

저분이 있어야 오늘 작전을 성공합니다.

터억! 터억!

두 번만 움직이면 된다.

돌을 움켜쥔 손가락이 끊어질 것처럼 아팠고, 어깻죽지가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훈련했었다.

부스스! 부스슷!

돌을 붙잡을 때마다 흙가루가 강렬한 햇빛과 함께 양동식의 얼굴로 쏟아져 내렸다.

아버지! 당신이 지켰던 대한민국입니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한 번도 먼저 간 아버지를 원망한 적 없습니다.

‘끄으응!’

그 대한민국이 반둔두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제발! 제가 훈련한 만큼 제몫을 다하게 도와주세요.

터걱!

양동식이 강철규의 앞쪽에 발을 걸치는 순간이었다.

꽈아악!

그가 양동식의 등을 붙잡아 힘껏 당겨주었다.

산의 옆구리를 손날로 때려 만든 듯한 공간이 양동식의 눈에 들어왔을 때였다.

휘이이이이!

바람이 달려왔다가 화들짝 놀란 것처럼 맴돌고는 산의 정상으로 솟구쳤다.

양동식의 헬멧을 툭 쳐준 강철규가 조그마한 공간으로 몸을 뺏다. 그리고 허리춤에 달아놓은 비닐 팩을 꺼내 물을 마셨다.

꽈아악!

이번엔 양동식의 차례였다.

윤상기의 등을 당겨준 그는 조용하게 강철규의 옆으로 움직여 물이 담긴 비닐 팩을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 꿀꺽.

살 것 같다. 바싹바싹 타들어갔던 몸이 단번에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휘이이이잉! 휘이이이!

바람은 지치지 않고 달려왔다가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위로 솟구쳤다.

저 멀리 반군 기지가 보였고, 그리로 연결되는 도로가 뱀처럼 몸을 뒤튼 채 반둔두 땅에 늘어져 있었다.

윤상기가 다가와 물을 꺼내 입에 물었다.

이런 루트를 한번 보고 바로 알아내는 사람이 있다니.

양동식이 했던 것과 똑같은 감탄을 떠올린 윤상기의 눈이 반군 기지를 향했다.

바위에 몸을 붙인 차동균은 소총을 좌우로 돌리며 앞을 살폈다.

완벽한 루트라고 해도 언제 어디서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

칼날처럼 갈라져 떨어지는 햇살 틈으로 소총을 돌렸던 차동균이 왼손을 높게 들어서 한 바퀴를 돌린 다음, 앞을 가리켰다.

쩔걱쩔걱! 쩔걱쩔걱!

대원 둘이 있는 힘을 다해 달려오고 있었다.

처벅! 철퍽!

좌우를 다시 살핀 차동균은 두 번째로 팔을 크게 저은 다음, 앞을 가리켰다.

쩔걱쩔걱! 쩔걱쩔걱! 처벅! 철퍽!

이번에도 대원 두 명이 무사히 도착했다.

됐다. 이제부터는 산으로 들어가 숲길을 따라 걷는 일만 남았기 때문에 지금보다는 이동속도가 확실하게 올라간다.

산으로 올라가는 이동경로를 확인한 차동균은 곽철호를 떠올리고는 두건 아래 감춰진 입술을 살짝 올리며 웃었다.

“형님! 저도 데려가세요!”

얼마나 마음이 급하고 간절했던지 곽철호는 차동균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매달렸었다.

안다. 그 마음. 그리스에서 강찬에게 절박하게 매달릴 때 그랬으니까.

차동균은 검지와 중지로 눈을 가리킨 후에, 손을 돌려 산으로 뛰어드는 길을 분명하게 가리켰다.

대원 둘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이었다.

‘하나, 둘!’

와락! 쩔걱! 쩔걱!

차동균은 산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렸다.

철호야.

네가 남아 있는 덕분에 내가 이렇게 달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손에 넣으마.

그러니 혹시 내가 돌아가지 못하거든 대한민국과 반둔두를 지켜다오.

철퍼덕! 철컥! 철컥!

산에 몸을 던진 차동균은 확인하지 못한 방향을 향해 소총의 총구를 이리저리 돌렸다.

후욱. 후훅.

차동균은 숨소리를 들으며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대원들을 돌아본 차동균이 오른손을 들어 한 바퀴 돌린 뒤에 산을 향해 뻗었다.

와락! 쩔걱! 쩔걱!

대한민국 증평 특수팀 대원 두 명이 있는 힘을 다해 달려오고 있었다.

강렬한 햇살을 뚫고 말이다.

10만이 넘는 병력이 총공세를 준비하는 모습은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새로운 보급품이 신기한 듯, 북한군 병사들은 자꾸만 방탄조끼와 군화, 탄띠들을 확인했다.

안철호는 알았다.

강철규와 차동균이 이미 작전에 나섰다는 것을.

널따랗게 펼쳐진 막사 앞에서 북한군 병사들이 무기와 장비들을 점검한다.

안철호는 고개를 돌려서 언덕 위에 서 있는 박철수를 보았다.

위험한 임무에 새끼들을 보낸 지휘관의 심정쯤 그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미칠 것 같을 거다.

차라리 함께 나가서 뛰면 뛰었지, 멀쩡히 서서 혹여나 소총소리가 날까 노심초사하는 심정이라니.

안철호는 굳은 얼굴로 북한군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보라우-!”

목에 핏대가 불쑥 튀어나왔고, 얼굴이 금세 시뻘겋게 변할 정도로 그는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어수선하던 막사로 물이 달려가는 것처럼 침묵이 뻗어나갔다.

박철수가 시선을 돌렸고, 장비를 챙기던 북한군 병사들이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몸을 일으켜서 안철호를 보았다.

“내래 한 가지만 말 하갔어!”

그는 지금껏 참아왔던 사투리를 마음껏 쏟아냈다.

“아프리카야! 내래 이 아프리카에서 총을 들고 싸울 거라는 기! 전혀 생각 못했어! 니네도 그렇지 않네-!”

악에 받친 사람의 눈과 얼굴, 그리고 고함이 북한군 병사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오늘 말이야! 우리는 중앙아프리카의 최대 반군 기지를 향해 달리는 위대한 전투를 맡았어야! 알간! 내래 가장 앞에서 달린다! 그러니 니네도!”

안철호가 오른손 검지를 들어 북한군 병사들을 콕 찍듯이 가리켰다.

“저 반군 종간나들에게 우리 군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주라! 알갔나!”

“우와-아!”

계곡을 타고 터져 나오는 물줄기처럼 함성이 일제히 울려나왔다.

새로운 보급품, 한번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나오는 제대로 된 식사와 간식, 거기에 안철호의 독기 어린 함성이 북한군 병사들의 사기에 불을 질러댄 것처럼 보였다.

안철호는 시선을 돌려 박철수를 보았다.

‘새끼를 보낸 장군 선생님의 의지를 내래 분명 봤지요! ?맡겨 주시라요! 내래 어카든 반둔두를 손에 넣갔소!’

안철호의 눈빛에 담긴 의지를 박철수는 분명하게 알아본 눈치였다.

그가 다부지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꼭 그랬다.

홍콩 국제공항에 내린 비행기는 언젠가 라노크와 만나 차를 마셨던 곳을 향해 천천히 활주로를 달렸다.

철컥! 철컥! 철커덕!

자리에서 일어난 대원들이 무기들을 확인했고, 강찬을 시작으로 일제히 두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밤이다.

비행기 바깥은 캄캄한 어둠이 차지했고, 그 틈에서 공항 건물과 활주로의 불빛이 존재를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띵. 띵. 띵. 띵.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가 경고음을 네 번 울렸다.

후우우우-우웅!

그리고는 엔진음을 커다랗게 울린 뒤에 움찔하면서 멈춰 섰다.

크르르릉!

인도차량도 없이 거대한 컨테이너 트럭이 수송기를 향해 다가왔다.

“다예. 내가 최종일과 먼저 내려간다. 뒤를 지켜주고 가장 마지막에 내려와.”

“알았소.”

트럭이 수송기 앞에 멈춰선 다음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안심하거나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강찬이 날카롭게 지켜보는 가운데, 트럭의 조수석에서 남자 한 명이 뛰어내리더니 컨테이너의 뒤를 반쯤 열었다.

강찬은 신일국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달칵.

그가 버튼을 누르자,

그으으응.

비행기의 문이 옆으로 밀리며 계단이 내려왔다.

강찬은 최종일에게 시선을 주었다.

‘가자!’

최종일과 눈이 마주친 직후였다.

와락! 쩔걱쩔걱! 쩔걱쩔걱!

강찬은 최종일과 비행기에서 달려 나가 콘테이너를 향해 있는 힘껏 달렸다.

홍콩 국제공항이다.

프랑스 정보총국이 이곳을 알아냈고, 한국 국가정보원 디지털 분석실이 미친 듯이 뒤져서 도이슨과 스웨이든의 이동경로와 그들의 최종 목적지를 찾아냈다.

터억! 와락! 터엉!

컨테이너로 뛰어 오르자 빈 공간이 강찬과 최종일을 요란스럽게 받아들였다.

후욱. 후욱.

강찬은 소총을 겨눈 자세로 주변을 날카롭게 둘러보았다.

치잇.

“청소부 이동.”

강찬이 무전을 보낸 직후에 비행기에서 또다시 두 명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우희승과 차민정이었다.

쩔걱쩔걱.

한눈에도 악착같이 달리는 것이 보인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만드는 걸까?

이렇게 싸워서 반둔두를 차지한다고 해도 저들에게 손바닥만큼도 나눠주지 않는데, 프랑스 정보총국이 제공한 이 트럭을 타는 순간부터 죽음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말이다.

와락! 터엉! 철컥! 철컥!

우희승과 차민정이 컨테이너에 뛰어오른 뒤에 소총을 앞으로 겨눴다.

치잇.

“청소부 이동.”

강찬이 무전을 보냈고, 또다시 대원들이 달려왔다.

눅눅한 바람과 짙은 어둠이 어깨를 끼운 것처럼 달려드는 홍콩 국제공항 활주로에서였다.

이동은 순조로웠다.

마지막에 석강호가 컨테이너로 뛰어올랐고, 우희승과 송장명이 문을 닫았다.

쩔겅. 쩔겅.

강찬은 곧바로 운전석이 있는 컨테이너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퉁퉁.

강찬이 두 번 문을 두드린 다음이었다.

불쑥 동양인 남자의 얼굴이 나왔다.

“출발해.”

“Oui.”

프랑스 정보총국 홍콩 담당 요원의 답이 있었고,

크르릉! 철컹! 크르르릉! 철컹! 크르르르릉!

거친 엔진음과 진동을 터트리며 트럭이 출발했다.

크르르르릉.

공항을 빠져나온 트럭은 곧바로 공항 고속도로에 올랐다.

강찬은 운전석을 향해 난 작은 틈으로 앞을 살폈다.

보고 싶었다. 스웨이든.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그걸 전해줄 시간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거 하나쯤 먹고, 모가지 잘 보관하고 있어.

크르르르르릉.

트럭은 공항 고속도로의 커브를 기분 좋게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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