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56화 (475/520)

제7장. 대한민국에도 있었다. (2)

살육과 고통스러운 죽음이 다른 생명의 삶이 되는 땅 아프리카다.

이마 높이로 떠오른 태양이 콩고민주공화국의 반둔두와 그 중심에 선 강철규를 경이로운 빛으로 내려다보았다.

강철규는 눈앞에 널따랗게 펼쳐진 막사들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상상조차 못했다.

아프리카에서 10만이 넘는 북한군의 막사를 보게 될 줄은, 더구나 저 엄청난 인원을 통솔하는 이가 한국군의 장군 박철수인 거다.

강철규는 좌측에 있는 증평 특수팀의 막사와 그 맞은편에 외인부대 출신 용병들의 막사를 둘러보았다.

자랑스럽다.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태극기를 왼팔에 달고 이렇게 서 있는 오늘이.

‘대원들을 반드시 살려서 돌아오마.’

강철규는 강찬을 떠올리며 각오를 다졌다.

외롭게 떠났을 아들의 모습은 흐릿했고, 그만큼 한국에 있는 강찬의 모습은 또렷했다.

‘불행한 과거는 내가 모두 지옥으로 가져가겠다. 너는 새로운 시대를 꽃 피워라.’

살아 돌아오는 것이 그 어떤 임무보다 앞에 있다는 것쯤 아는 군인이다.

가슴에 담긴 대원들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던 시절을 살았던 슬픈 특수팀 지휘관이었다.

강찬은 대원들을 가슴에 담는다.

오늘 아프리카의 검은 땅이 희생을 원한다면 그건 온전히 강철규의 몫인 거다.

새로운 삶을 선사해 준 강찬을 위해서, 외롭게 먼저 떠났을 아들에게 사죄하기 위해, 그리고 지금껏 강철규를 있게 한 대한민국을 위해서.

피식.

강철규는 조만간 만나게 될지 모를 양동식과 남일규를 떠올리며 간단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이 햇살에 녹아 아프리카의 시간 속으로 흘러들어간 다음이었다.

쩔걱쩔걱.

헬멧 아래로 두건까지 뒤집어쓴 차동균이 강철규의 옆으로 다가왔다.

“준비 끝났습니다.”

든든하다.

이런 후배가 있는데 더 무슨 걱정이 남고, 그 어떤 두려움이 있겠나.

먼저 간 대원들, 양동식, 남일규도 그랬을 거다.

헬멧과 두건 사이에서 빛나는 후배들의 이 눈빛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강철규를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차 대위.”

“말씀하십시오.”

“오늘 함께 작전에 나서게 된 것에 감사한다.”

차동균의 시선이 강철규의 심장에 닿는 것처럼 강렬하게 다가왔다.

“저는 우리를 지켜주시던 최 장군님을 잃었습니다.”

군인의 눈은 저래야 한다.

언젠가 비무장 지대에 들어설 때 강철규의 눈이 그랬었던 것처럼.

“양동식 선배를 지켜드리지 못했고, 남일규 선배님을 아프게 보냈습니다.”

강쳘규는 묵묵하게 차동균의 말에 집중했다.

“선배님을 잃으면 저는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차 대위는 나 같은 군인보다 백배쯤 훌륭한 선배가 되어다오.”

“그 말씀은 돌아오셔서 제가 못난 모습을 보일 때 무섭게 해주십시오.”

강철규는 입 끝으로만 웃었다.

쩔걱쩔걱. 쩔걱쩔걱.

대원들이 강철규와 차동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강철규는 말없이 두건을 올려 헬멧 아래의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차동균의 헬멧을 툭툭 두드려주었다.

“전에 보니까 자네도 부원장의 헬멧을 두드려 주던데?”

눈가에 웃음을 묻힌 차동균이 강철규의 헬멧을 두드렸다.

“선배님과 함께 작전에 나가게 돼서 영광입니다.”

다가온 대원들이 모두 들었다.

그때부터 강철규와 차동균, 그리고 대원들이 돌아가면서 마주선 동료들의 헬멧을 두드렸다.

출발할 순간이었다.

차동균은 대원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비무장 특수팀 선배들의 의지를 잊지 마라.”

대원들의 시선이 확인하는 것처럼 강철규에게 달려갔다가 얼른 돌아왔다.

“오늘은 우리 차례다. 우리가 흘릴 피가 대한민국을 지키고 발전시킨다. 조국이 준 임무다. 기쁘게 받고 완벽하게 수행하자.”

말을 마친 차동균이 검지와 중지를 펴 보인 다음, 막사의 옆길을 가리켰다.

쩔걱쩔걱. 쩔걱쩔걱.

2조 대원들이 차동균과 함께 임시기지를 출발했고, 1조 대원들은 강철규의 뒤에 섰다.

눈과 눈이 마주친 것으로 충분했다.

쩔걱쩔걱. 쩔걱쩔걱.

선배에게 자랑스러운 후배들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말이다.

***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 지휘관 신일국은 잔뜩 날이 선 채로 승합차의 뒤편에 앉아 있었다.

치잇.

“사무실로 이동.”

부으응.

차량이 출발했다.

국가정보원에서 일을 마친 강찬이 다시 사무실로 향하는 길인 거다.

밖으로 향한 창이 모두 막힌 승합차다.

대신 앞과 뒤로 모니터가 있어서 승합차의 앞쪽과 뒤쪽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길면 12시간 이상을 버틸 때도 있었다.

인제에 다녀올 때는 7시간을 꼬박 이 창고 같은 승합차의 뒤편에서 견뎠다.

전투만 힘겨운 건 아니다.

이렇게 승합차의 뒤편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주는 고통 역시 그 어떤 훈련만큼이나 힘겹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신일국을 비롯해서 누구 한 사람 이 임무에서 빠져나가려는 대원은 없었다.

라노크를 호위하라는 지시에 프랑스를 날아갔던 대테러 팀이다. 그때 강찬이 질러준 고함을 대원들 모두 또렷하게 기억한다.

강대국의 틈에 들어가 큰 소리로 호령하기 위해서 너희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손을 내미는 시기였다.

그동안 엄청난 작전을 뛰었고, 그 와중에 전 국가정보원장황기현과 대테러 팀 지휘관 강명구, 그 외에도 많은 대원과 요원들을 잃었다.

이름조차 없이 국가정보원 벽에서 빛나는 별을 볼 때마다 언제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쯤 한다.

그러나 별이 되어도, 그렇게 되더라도, 임무를 온전히 수행하는 대원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부으으응.

코너를 돌았던 승합차가 속도를 올릴 때였다.

치잇.

“부원장이다.”

느닷없이 강찬의 음성이 무전기를 타고 들렸다.

“두 시간 뒤에 이동한다. 대상은 영국 정보국 국장과 CIA 전 국장이다.”

대원들이 고개를 홱 돌려 신일국을 바라볼 만큼 엄청난 인물들이었다.

“지휘관은 인원을 선발해라. 총 8명이 필요하다.”

승합차에 함께 타고 있던 대원들의 고개와 어깨가 모조리 신일국을 향해 움찔하고 움직였다.

뽑아달란다. 이 임무에서 절대 빼지 말아달라고 달려드는 거다.

무전이 끊기고 잠시 날카로운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치잇.

“어려운 임무다. 그렇더라도 너희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고맙다.”

무전은 그렇게 끝났다.

턱없이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고민하실 게 없네요.”

맞은편에 있던 송장명이 흔들리는 상체를 이겨내며 말을 건넸다.

부으응.

모니터에 지하주차장이 보이고, 곧바로 커다랗게 돌았던 승합차가 그리로 들어갔다.

“여기 딱 8명입니다.”

“뒤쪽에 한 대 더 있잖아?”

“왜이러십니까? 팀장님과 함께 있는데 이런 혜택도 좀 있어야지요.”

죽음을 각오해야 할 임무에 달려가는 것을 혜택이라고 표현하는 대원들이라니.

송장명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처럼 시선을 돌린 다음이었다.

“장명이는 팀장님과 있는 게 불편했던 모양이지만, 저는 무척 기쁘고 행복합니다. 이 점을 깊게 헤아려 주십시오!”

끼이익.

그때 승합차가 지하주차장의 입구에 멈췄다.

문이 열리고,

쩔걱. 쩔걱. 쩔걱. 쩔걱.

대원들이 뛰어 내려서 입구를 지켰다.

강찬이 힐끔 눈빛을 준 뒤에 씩 웃고 들어간 직후였다.

“팀장님!”

뒤에 도착한 승합차의 조장이 급하게 걸어오는 게 보였다.

“공평하게 차 한 대당 네 명씩입니다! 그렇게 합의 봤습니다.”

2조 조장은 무척이나 크게 인심 쓴다는 듯한 음성이었다.

“미친놈들.”

신일국은 툭 거친 말을 뱉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검은색 헬멧에 두건, 소총, 권총, 방탄복, 마지막으로 왼팔에 선명하게 태극기를 단 미친놈들이 별이 될지 모를 임무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날카롭게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대한민국이 내민 손을 서로 부여잡겠다고 말이다.

사무실로 들어선 강찬에게 달려드는 것처럼 석강호가 다가섰다.

“다예.”

“예.”

“전투복으로 갈아입어. 두 시간 뒤에 출발이다.”

“푸흐흐흐!”

“스웨이든과 도이슨을 치고 돌아와서 라노크 대사님과 우즈만을 맞이한다.”

“알았소.”

석강호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답을 했을 때였다.

먼저 들어갔던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가 바퀴 달린 커다란 상자를 밀고 나왔다.

덜컹.

문을 열자 행거에 군복이 걸려 있었고, 그 아래로 소총과 권총, 방탄조끼, 탄창 등의 무기가 쭉 있었다.

“최종일.”

“예.”

“차민정이 606 출신이랬지?”

“그렇습니다.”

전투복의 상의에 팔을 넣은 최종일이 단단하게 답을 했다.

차민정은 오늘도 멍하니 베란다 바깥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털어내야 한다.

이런 감정을 녹여내야 제대로 된 요원이고, 또 새로운 임무가 내려온다. 지금 이 상태라면 강대경과 유혜숙이 돌아왔을 때에도 그녀는 절대 경호 업무를 맡을 수 없다.

안다.

강찬 역시 작전에 나설 때마다 가슴에 담겼던 대원들을 잃고 돌아오고, 눈빛을 번들거리며 희생된 요원 때문에 무너지지 않으려 애쓴다는 것을.

그 어떤 작전이 희생 한 명 나지 않고 성공한다고 장담할 수 있겠나.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마지막 순간에 시선이 마주쳤던 요원의 눈빛이 자꾸만 차민정의 가슴에서 살아나고 있는데 그걸 잊을 방법이, 그 눈빛을 위로할 방법이 없는 거다.

달려드는 차량을 제대로 막지 못한 상태에서 자살 폭탄 테러에 요원들을 잃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살아남아서 남편과 아들의 보살핌을 받는다.

먼저 간 요원들의 가족이 안고 있을 슬픔이 진하게 피어나서, 차민정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을 때였다.

띠르르르. 띠르르르. 띠르르르.

그녀의 전화기가 울었다.

관심 없다. 이제 전화 따위는.

“여보. 전화 왔어.”

띠르르르. 띠르르르. 띠르르르.

남편이 애처로운 눈으로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힐끔 번호를 보았던 차민정의 얼른 전화기를 당겨갔다.

그리고는 혹시 끊어질 새라 급하게 버튼을 눌렀다.

“차민정입니다.”

[두 시간 후 출발이다. 목적지는 홍콩. 제거 대상은 미국 CIA 전 국장과 영국 정보국 국장. 멋진 임무 같은데 참여할 생각 있어?]

“감사합니다.”

차민정은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꿀꺽 삼키며 꿋꿋하게 답을 했다.

[울 줄도 알아?]

강찬이 건네는 농담을 들으며 차민정은 그날 이후 처음으로 숨을 제대로 쉬는 것처럼 속이 후련했다. 코로 들어온 공기가 지금에서야 폐로 들어오는 느낌인 거다.

[늦으면 우리끼리 출발한다.]

“한 시간 내로 가겠습니다.”

차민정이 전화를 끊었을 때였다.

“동현아! 엄마 이제 일이 생겼나봐! 우리 박수!”

아들을 안고 있던 남편이 여전히 애처로운 눈으로 아들의 손을 잡은 채 박수를 쳐주었다.

“미안해, 여보.”

“대신 이번에 돌아올 땐 반드시 웃는 얼굴로 와. 알았지?”

차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엄마 안아줘야지.”

“아프지 마요.”

남편이 밀어주자, 아들 동현이가 차민정의 목을 꼭 안아 주었다.

비행기가 성남 공항 활주로를 떠오른 건 밤 11시였다.

대테러 팀 복장을 한 강찬과 석강호, 최종일부터 대테러 팀 대원들과 차민정이 타고 있었다.

“이들의 위치는 프랑스 정보총국에서 밝혀냈고, 이 위성사진은 디지털 분석실에서 잡아낸 거다.”

강찬은 몇 장의 사진을 들어서 대원들에게 건네주었다.

“이틀 뒤에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있다.”

사진을 보던 대원들이 모두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 일정에서 끔찍한 테러가 있으리라고 짐작한다. 테러의 목표는 우리나라 대통령이다.”

대원들 앞에 적을 세워 놓으면 눈빛에 질려 죽을 정도로 번들거리는 눈들이 강찬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홍콩의 사정상 우리에게 주어진 작전 시간은 정확하게 5분이다. 그 안에 안가에 있는 적의 요원들과 스웨이든을 모두 사살하고, 도이슨을 생포해서 데리고 나온다.”

차민정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강찬이 다시 입을 열었다.

“동선은 조금 뒤에 신일국 대테러 팀장이 설명해줄 거다. 예행연습을 하지 못해서 실수가 생기는 순간 동료를 잃는다. 맡은 임무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질문?”

“시간을 넘기면 어떻게 되는 거요?”

두건을 목에 내린 석강호가 투박한 음성으로 질문을 들고 나섰다.

“홍콩 정부 보안국과 교전이 벌어질 거고, 이어서 중국과 마찰이 있겠지.”

석강호가 고개를 끄덕인 후에 더는 답이 없었다.

“신일국! 시작해!”

“예.”

이번엔 신일국이 일어서서 안가에 침입할 방법을 설명했다.

홍콩을 향해 빠르게 날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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