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대한민국에도 있었다. (1)
짐작했던 대로 전대극의 전화가 있었고, 이어서 고건우의 전화가 이어졌다.
국가정보원 회의실에서 만나자는 연락이었다.
“우리 사무실에 군복과 무기는 있어?”
“안쪽에 있습니다.”
강찬의 질문에 최종일이 바로 답을 꺼내 들었다.
누구보다 석강호가 기대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앞이었다.
“내곡동에 다녀올게.”
“알았소. 한숨 자고 있겠소.”
석강호가 뜬금없는 답을 꺼내 들었다.
잘 수 있을 때 자두겠다는 의미였다.
피식 웃은 강찬은 최종일 일행과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움직였다.
밤이 내려앉은 시간이었다.
화려한 조명을 두른 건물들과 그 앞을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이 강찬의 시선에 들어왔다.
거창하게 세계 평화를 원하는 거 아니다.
그렇다고 전 세계를 이리저리 흔들 힘을 얻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었다.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뱉어냈다.
그저 저 사람들처럼 저녁이면 집에 들어가서 강대경, 유혜숙과 함께 웃고 즐기며 살고 싶은 거다.
강철규와 다르게 평범한 삶을 즐기고 싶었던 건데…….
화려한 조명과 자동차의 불빛에 밀려 하늘은 더 어두워보였다.
증평이나 인제에서는 그토록 찬란하게 빛나는 별들이 이곳에서는 힘을 잃고 존재마저 희미했다.
애초에 이런 건지 모른다.
송창욱, 황기현, 엄지환, 해군특수전 대원, 양동식, 남일규, 북한 땅에서 희생된 이유슬의 아버지까지, 어려울 때 빛을 발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곳에서는 모습을 감춰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염병할!
그렇게 별이 된 이들이, 혹은 별이 되겠다며 오늘도 저 어둠 어딘가에서 목숨을 걸고 있을 대원들과 요원들이 가슴에 담기는 걸 어쩌겠나.
두 가지만 알면 끝났다.
핵융합 에너지라는 정말 멋진 것을 발견하고도 왜 차세대 발전 시설을 파괴하려고 저 지랄들인지와 스웨이든, 도이슨의 뒤에 있는 개새끼가 어떤 놈인지.
피식.
강찬은 내곡동 건물로 들어서며 웃었다.
이쪽은 마음에 담기는 사람들 정말 많다.
죽는 걸 기쁘게 받아들이는 미친 인간들이, 비참하게 내쫓겼어도 마지막 순간까지 태극기의 부름을 기쁘게 생각하는 멍청이들이 진짜 드글드글한 거다.
당장 길을 걸어가는 저 사람들 중에도 태극기가 부른다는 고함 한 마디면 앞뒤 안 재고 달려들 이들이 바글바글한 나라.
남은 가족들이 엄지환의 모친처럼 해군특수전 대원의 모친처럼 피눈물을 흘린다는 것을 다 알면서 말이다.
붙어!
그게 미국이든, 영국이든, 이스라엘이든, 일본이든.
끝까지 해주마.
너희가 진심으로 대가리를 숙일 때까지.
저들이 가슴에 담겼는데, 그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들고 있는데 어떻게 여기에서 그만두자고 하겠나.
그럴 거였으면 이미 전생에서 프랑스의 장교로 떵떵거리고 살았을 강찬이었다.
강찬은 강철규를 떠올리며 두 번째로 피식 웃었다.
전생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강철규는 군복을 입었고, 왼쪽 어깨에 대검을 걸었다.
창백한 얼굴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눈이 더욱 강렬하게 빛났는데, 그런 만큼 몸에 달린 무기들 또한 평소와 다르게 비장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장군님께서 계획한 작전 시간은 오늘 17시 45분이다.”
박철수가 앞줄 중앙에 앉았고, 그의 좌우와 뒤편으로 증평의 특수팀 대원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강철규에게 집중했다.
“작전을 펼칠 지역을 먼저 보겠다.”
강철규는 앞에 놓인 걸개의 앞장을 뒤로 넘겼다.
“적은 이곳의 4개 지점, 그리고 우리 병력이 지나야하는 이 도로의 양쪽에 매복해 있으리라고 보인다.”
손가락으로 지도의 위치들을 가리켰던 강철규가 대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장군님과 의논해 본 결론은, 적이 이 지역에 미리 특수부대 출신의 병력을 매복시켜 놓았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윤상기가 박철수와 차동균의 뒤통수를 힐끔 바라본 다음이었다.
“앞에서의 경험으로 봐서 만약 예상대로 적이 두 겹으로 매복해 있다면 그들의 목표는 분명 우리 특수팀이다. 나와 이곳에 있는 대원 12명이 적의 매복을 수색한다.”
묵직한 침묵과 긴장이 천막으로 만들어놓은 임시 회의실을 뒤덮었다.
“명심해라. 이건 통상적인 수색이나 기습과 다르다. 완벽하게 우리를 노리는 특수부대 출신을 상대하는 거다. 그리고 적의 실력은 우리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봐야한다.”
설명을 끝낸 강철규가 “질문?”하고 말을 건넨 직후였다.
“윤상기?”
윤상기가 손을 들었고, 강철규가 그를 지명해주었다.
“그렇다면 12명으로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적절한 질문이었다.
다들 궁금해 하던 것처럼 대원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기다렸다.
“적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리고 우리는 철저하게 우리를 노리는 적을 상대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곳의 대원들을 둘로 나누었으면 한다.”
말을 마친 강철규가 차동균에게 눈짓을 보냈다.
차동균이 앞으로 나오자 강철규가 박철수 옆에 비워두었던 자리에 앉았다.
그의 볼과 목, 귀 주변에 솟아난 식은땀을 박철수와 대원들 모두 보았는데 당장 누구도 그에 대해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전체 지도를 우선 보자.”
차동균이 걸개에 걸린 지도를 넘겼다.
“이곳이 적의 본진이다. 강 선배가 매복한 적을 해결하는 동안, 나와 남은 대원들은 적의 본진을 바로 공격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작전이다.
쉽지 않은 임무다.
그런데 누구도 놀라는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박격포나 혹은 더한 무기들이 우리 병력을 기다리고 있을 거다. 우리는 그것들을 부순다.”
지도에서 몸을 돌린 차동균이 대원들을 향해 섰다.
“어제 부원장님과 통화했었다.”
구호를 외치기 직전처럼 다부진 자세와 표정으로 차동균은 대원들을 쭉 훑어보았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존폐를 가를 중대한 발표를 앞둔 상황이다. 이대로 지금껏 이룬 것들을 지켜내면서 발전하느냐, 아니면 모든 것을 잃고 강대국의 틈에 끼어 눈치를 보느냐!”
강철규만큼이나 날카로운 눈을 한 차동균이 볼을 씰룩이며 대원들과 차례로 눈을 마주쳤다.
“그 모든 것이 중앙아프리카를 차지하느냐, 못하느냐로 갈린다. 조국이! 너희 팔에 달린 태극기가! 우리를 믿고 맡긴 임무다! 대한민국이 나와 너희를 키웠다!”
잠시 숨을 들이마신 차동균이 비장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어깨에 건 대검에 부끄럽지 않게 싸운다! 그래서 강대국이 된 대한민국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준다!”
멋진 말이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토해낸 차동균이 마무리를 도와달라는 것처럼 박철수를 보았다.
박철수가 일어서자, 차동균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한 가지 당부만 하겠다.”
박철수가 당당하게 선 자세로 입을 열었다.
“중앙아프리카를 차지해야 한다. 그리고 중앙아프리카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반둔두가 있어야 한다.”
강철규를 흘깃 바라본 박철수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선배들이 짊어졌던 힘겨운 싸움을 우리 손에서 끝내자. 그리고 우리는 후배들에게 강한 대한민국을 물려주자!”
떠오르는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의지가 임시 회의실 안을 서서히 메워나갔다.
“너희가 왜 증평의 특수 팀인가를 증명해야할 작전이다. 이 작전이 끝났을 때 대한민국은 중앙아프리카를 움켜쥐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런 중요한 작전에 너희와 함께 참여한 것에 감사한다. 이상!”
말을 마친 박철규가 고개를 끄덕이자, 차동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상!”
대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군님께 경례!”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손을 올렸을 때였다.
박철수는 강철규를 향해 경례했다.
계급을 떠나 선배에 대해 보이는 그의 예우였다.
착!
박철수가 손을 내렸고,
“바로!”
차동균의 구령에 따라 강철규가 손을 내렸으며, 이어서 대원들이 뒤를 따랐다.
‘아직 선배님의 어깨에 매달린 짐을 받아들지 못했습니다. 조국과 대원들을 부탁드립니다.’
‘조국이 준 임무를 기쁘게 받겠습니다.’
박철수의 바람을 강철규가 단단한 눈빛으로 받았다.
김형정의 안내로 지하 회의실로 들어선 강찬은 문재현, 고건우, 전대극과 인사를 나누었다.
“앉읍시다.”
문재현의 권유에 다 함께 자리에 앉았다.
“부원장의 의견을 모두 전해 들었습니다. 그중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직접 보자고 했습니다.”
문재현 역시 피곤을 떨쳐내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강찬을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진 사람처럼 옅은 미소를 담고 있었다.
“부원장. 중앙아프리카에 차세대 발전 시설을 지으려면 우리가 그만한 권리를 확보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시간으로 내일 새벽에 반군 최대 기지에 대한 공격이 있을 거라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만에 하나, 만족한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콩고민주공화국의 정부와 공식 발표하는 형식을 취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재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국이 실제로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프랑스 정보총국 수련 과정에서 이미 경험했었던 일입니다. 이 발표가 늦어질수록 고성이나 서울에 지진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집니다.”
“흐음.”
깍지 낀 손을 책상에 올려놓은 문재현이 신음 같은 숨을 내쉬었다.
“부원장을 믿습니다. 그렇더라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를 만나서 최소한의 협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이건 개인적으로 발표할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줘야 합니다.”
“라노크 전 대사와 우즈만 역시 새벽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시간을 정해주시면 바로 대통령님과 면담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어려운 질문에 막힘없이 답이 건너간 다음이었다.
“새벽이 내겐 더 편합니다. 가능하다면 오찬을 함께 해도 좋구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문재현이 무거운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부원장. 미국과 영국, 일본과 중국이 정말 우리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기회를 노린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합니까?”
기껏 말을 전해달라고 했었던 일이다.
심지어 앞전에 테러가 있었고, 차세대 발전 시설의 가동이 확실해진다면 지진이 발생한다고도 했었다.
그런데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강찬은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내 말은 그들이 실제로 행동을 하는 순간이면 우리는 당장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왜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며 방한까지 하느냐? 그 점을 알고 싶은 겁니다.”
강찬은 김형정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나나 우리 부원장을 노리고 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부원장이 프랑스 정보총국의 부총국장 지위를 지니고 있어서 그 복수가 두려워 기회를 노린다는 말도 들었구요.”
그럼 더 궁금한 게 뭐가 있지?
강찬이 내심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만약 내가 미국의 통치권자라면 적당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으로 모든 것이 정리된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문재현의 의견을 듣는 순간, 강찬은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미국이 우리를 노린다면 대통령이 그런 일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테러가 일어났던 우리나라를, 그들이 노리는 한국을 왜 방문할까요?”
이거였구나!
두통약의 광고처럼 머리 주변이 확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강찬의 변화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문재현의 의미심장한 미소가 그랬다.
“미국 대통령이 스스로 미끼가 되는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돌려 말하지 않는 강찬의 스타일대로 묵직하게 나온 질문에,
“우리나라에는 정보총국이 있습니다. 그걸 밝혀내고 대비하는 건 정보총국의 몫입니다.”
문재현이 알 듯 모를 듯한 답을 내밀었다.
“아프리카에 차세대 발전 시설을 설립하겠다는 발표는 내일 정오 전후로 준비하겠습니다. 그 전에 반둔두의 결과가 나오겠지요?”
전대극과 고건우가 문재현과 강찬을 번갈아 보는 앞이었다.
“반둔두 점령에 성공하면 그대로, 실패하면 우리는 그치지 않고 아프리카에 투자하겠다는 명분을 달겠습니다.”
덤덤하게 말을 하던 문재현이 갑자기 말을 잠시 멈추었다.
“어떤 경우라도 우리 대원들의 희생이 더는 없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발전 시설을 설립하는 것으로, 훗날에 슬픔을 안아야 하는 대원들과 요원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문재현은 강찬의 생각과 의도를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을 마쳤다.
대한민국에도 있었다.
프랑스의 라노크, 러시아의 바실리처럼 강찬의 생각을 읽고 도와주는 사람이 말이다.
“실장.”
“예, 대통령님.”
강찬에게서 시선을 돌린 문재현이 전대극을 찾았다.
“경호 업무 전반에 관해 국가정보원 정보총국과 긴밀하게 협조했으면 합니다. 특히, 정보총국장의 지시가 있다면 그것이 납득하기 어렵더라도 일단 받아주세요.”
“알겠습니다.”
문재현은 다시 고건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의 임기가 끝나더라도 지금껏 희생한 대원들과 요원들, 그리고 지금도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있을 그들이 값싸게 평가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고건우가 속을 읽기 어려운 표정으로 문재현의 말을 듣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국민만이 자원입니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행복한 나라가 되었을 때, 그분들의 노력이 그만한 보상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진정한 강대국이 될 것입니다.”
어쩐지 퇴임 연설처럼 들렸다.
“아프리카는 그것들을 보장할 가장 확실한 담보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국가정보원은 정보총국장의 계획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지원해 주세요.”
“예.”
굵직한 답을 들은 문재현이 강찬을 향해 미소지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남자가 보여주는 정말 멋진 미소여서 강찬은 고개만 가볍게 끄덕였다.
“부원장.”
“예, 대통령님.”
“지금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주눅 들지 말고, 굽히지 말고, 부원장의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해주세요.”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들이켰다.
어쩐지 조금만 기운이 빠지려고 하면 그 순간마다 꼭 이런 일이 생긴다.
다시 태어나 돌아온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