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지금은 위험합니다. (2)
버스는 서울로 향하는 국도를 빠르게 달렸다.
앞쪽에 대테러 팀 대원들이 탄 승합차가 보였는데 뒤편에도 분명 따르는 차가 있을 거였다.
“무슨 일이요?”
통로 건너편에 있던 석강호가 궁금함을 참지 못한 얼굴로 질문과 시선을 동시에 던졌다.
“대사님과 우즈만이 한국으로 온단다.”
그렇구나 하는 얼굴로 석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놈은 분명 답답한 얼굴이었다.
이해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토막토막 잘라서 필요한 부분만 말을 전했으니까.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그때 강찬의 전화기가 울렸다.
“일단 사무실에 가서 얘기하자.”
“알았소.”
석강호도 궁금한 것들과 알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을 거다.
그런데도 강찬의 지시나 설명이 있을 때를 기다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니까, 제대로 준비하는 게 좋겠지?
강찬은 일단 전화를 받았다.
***
전대극은 보고를 꼼꼼히 살폈다.
대통령이 지나는 동선 주변에는 맨홀 뚜껑 하나에도 일일이 테이프를 붙인다. 결로 조그맣게 칼집이 나 있기 때문에 한 번 떨어지면 반드시 흔적이 남는 테이프인 거다.
테이프를 붙인 기관의 이름까지 있어서 위조조차 쉽지 않다.
경찰이 1차로 붙이고, 35여단이 2차, 그리고 707에서 3차로 붙이면, 마지막에 대통령 경호실에서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배전반, 천장의 환풍기, 하여간 손으로 열거나 뜯을 수 있는 모든 곳을 확인하고 테이프를 붙이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미치겠군.”
전대극은 미국 대통령이 머물겠다는 국제호텔의 위치도를 보며 짜증을 뱉어냈다.
국제호텔 주변이야 이미 수색과 테이핑 작업이 들어갔다.
그런데 이곳에서 어디로 갈 건지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마치 테러범을 유혹하는 듯한 일정이 아닌가 말이다.
전대극은 입술에 힘을 꾹 주고 다시 상황을 살폈다.
***
“알로?”
[위고입니다. 부총국장님. 도이슨이 홍콩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 직전에 스웨이든이 홍콩에 입국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강찬은 피식 웃으며 창밖으로 보았다.
이건가 싶었다.
이래서 심장이 그렇게 지랄 맞게 뛰었구나 싶기도 했다.
“다른 정보가 더 있나?”
[급한 것은 이것뿐이고, 다른 정보는 국가정보원을 통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위치를 찾아. 스웨이든과 도이슨이 묵는 장소. 그리고 발견하는 즉시 시간 구애받지 말고 바로 알려줘.”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강찬은 바로 김형정에게 전화를 넣었다.
“팀장님. 사무실로 와주실 수 있나요?”
[언제쯤 도착하십니까?]
“세 시간? 그 정도 걸릴 테니까 오후 7시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통화는 간단했고, 원하는 대로 김형정이 오기로 했다.
버스 안이다.
강찬의 뒤에서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들을 하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당한 장소는 아니었다.
***
날이 서서히 밝는 시간이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반둔두 반군 기지로 대형 트럭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반군 지도자 리테쉬는 가장 앞의 트럭에서 내린 매킨지와 악수를 나누었다.
소총, 탄창, 수류탄, 권총, 대검을 온몸에 걸친 그는 짧은 머리, 다부진 체형, 오기 가득한 눈까지, 어떤 상황에 던져 놓아도 반드시 살아나올 것처럼 강한 인상이었다.
미국의 CIA에서 선택한 인물이라는 것쯤 리테쉬도 안다.
그래서 그가 더 강하고 두렵게 느껴지는지 몰랐다.
반군지도자 리테쉬는 줄줄이 들어서는 트럭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앞쪽에서 완벽하게 무장한 대원들이 내리고 있었고, 뒤편에서는 박격포, RPG-7, 중기관총과 탄약들이 마법 상자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끝없이 나오고 있었다.
“앞에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적들은 네 곳과 길 양쪽의 산으로 반드시 특수팀을 보낼 겁니다. 그들이 안 온다면 계획대로 둘러싼 채 공격하면 되고, 그곳을 노리고 오는 특수팀 대원들이 있다면 우리가 모두 제거할 것입니다.”
매킨지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Move! Move!”
뒤편에서 고함이 터져 나오며 대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연히 말 길게 하는 건 죽음을 끌어들이는 일이다.
“멋진 승리를 기원하오.”
리테쉬는 얼른 손을 내밀어 대화를 끝내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전했다.
“적의 숫자가 상당합니다. 시체를 처리할 곳을 준비해 두는 게 좋을 겁니다.”
매킨지는 강렬한 한 마디를 남기고 대원들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오광택을 보내고, 사무실에 들어선 것은 오후 6시 20분쯤이었다.
다들 지치고 피곤한 얼굴이었다.
“김 팀장님이 7시에 오기로 했으니까 그때까지 적당하게 씻고, 저녁은 간단하게 김밥 같은 거로 준비해.”
“알았소.”
씻는데 시간 오래 걸릴 사람들은 아니었다.
김태진까지 대강 씻었고, 저녁은 배달시킨 김밥과 유부초밥으로 해결했다.
7시에서 담배 하나를 피우고 났을 때쯤 김형정이 들어섰다.
“저녁은요?”
“간단하게 먹었습니다.”
시간 끌 것 없었다.
“이리 앉으세요.”
강찬의 권유에 김형정이 테이블에 자리했다.
석강호와 김태진,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까지 죄 앉았고, 커피와 담배까지 올려놓아서, 얼핏 잡담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지금껏 준비했던 것들이 있습니다. 확신이 서지 않은 부분도 있었고, 혹시나 우리가 준비하는 것을 적이 알아차리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따로 말하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
다들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강찬의 말에 집중했다.
“잠수함 사건 때였습니다. 북한의 잠수함 기지를 이용하려면 최소한 미국이 눈감아줘야 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정도의 능력이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했습니다.”
“흠.”
김태진이 나직한 신음을 흘려냈고, 김형정이 동의한다는 것처럼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그 뒤에 중국의 양범 씨가 구금되었고, 일본은 금지된 요원 활동을 아프리카에서 벌였습니다. 또, 영국이 중국에 지진까지 일으키면서 차세대 발전시설을 위협하기도 했구요.”
김태진을 제외하면 다들 이 사건과 관련해 움직였던 사람들이다. 게다가 김태진은 이 정도 설명으로도 충분히 상황을 이해할 수준의 인물이었다.
“잠수함을 막아내고, 스파이를 잡았지만, 한 가지가 남았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영국은 반드시 고성 근처에 지진을 일으킬 겁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에라도 바로 지진을 일으키면 되지 않나?”
김태진의 질문이었다.
그런데 질문이 나온 뒤에 다들 답을 바라는 눈으로 강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지진을 일으키기 전에 나, 아니면 대통령님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그래서 가동일까지는 기다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왜 그렇지? 그냥 지진 한 번이면 끝나는 일 아닌가?”
거듭된 김태진의 질문이었다.
막말로 언제고 지진을 만들 수 있는 적이 구태여 시간을 끌 이유가 있겠냐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 필요한 얼굴이었다.
“내가 프랑스 정보총국 부총국장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영국이 고성에 지진을 일으킨다면, 그 뒤에 내가 무슨 짓을 할지 걱정되기 때문에 그 전에 제거하고 싶을 겁니다.”
“그렇다면 임기가 6개월밖에 남지 않은 대통령님은?”
“한국에서 내가 활동할 수 있는 버팀목이니까요. 만약 대통령님을 대신할 분이 국가정보원의 조직을 흔들거나 증평의 특수팀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한국에서는 답이 없거든요.”
김태진이 소리 내지 않은 채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최근에 미국과 몇 개 나라들이 핵융합을 발전 시켜서 그걸로 우리가 만드는 차세대 에너지 시설에 대응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다시 질문을 하려던 김태진이 입을 다물었다.
자꾸 강찬의 말을 끊는 것이 미안했던 눈치였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들이 그런 기술을 개발했다면 굳이 우리가 가진 차세대 발전 시설을 파괴할 이유가 없잖나? 충분히 경쟁이 된다면 말이지?”
“그것도 알아봐야 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급한 걸 먼저 처리해야 합니다. 차세대 발전 시설이 가동하게 되면 영국은 반드시 고성에 지진을 일으킬 거라는 거지요.”
“그래서 영국에 가서 지진 발생 시설을 파괴할 생각이었잖소?”
이번엔 석강호가 불쑥 튀어나왔다.
“만약 그 작전에 실패하면 고성은 물론이고, 서울과 대한민국 전체가 날아갈 수도 있어.”
김형정이 이제야 제대로 된 이유를 알겠다는 강찬을 바라보았다.
***
강철규와 차동균이 임시 막사에 들어서자 박철수는 한쪽에 놓인 탁자를 가리켰다.
바닥이 맨땅이어서 퀴퀴한 흙냄새가 막사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차 대위에게 말은 들었습니다.”
강철규의 붕대를 힐끔 본 박철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고 하셨는데 혹시 어떤 종류인지, 아니면 어디인지는 알 수 있습니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박철수가 무당을 앞에 두고 묻는 것 같았는데 세 사람의 표정만은 몹시 진지했다.
“장군님. 적의 기지와 혹시 노리는 지점이 있다면 그 부분을 미리 수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철수가 고개를 끄덕인 뒤에 몸을 세웠다.
무시할 수 있다.
장군이 세운 계획을, 그것도 병실에 있느라 어떤 계획인지도 모르면서 나서는 강철규쯤 박철수는 얼마든지 명령에 따라달라고 명령할 수 있었다.
“이 지도를 기준으로 작전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박철수는 작전 지도를 가져와 강철규에게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두 가지가 걸립니다. 작전 전에 수색을 한다고 해봐야 결국은 대원들이 이곳에 올라가야 합니다. 적이 이곳에 함정을 파놓았다는 최악의 가정을 하더라도 우리 대원들이 이곳을 향해 가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설명을 마친 박철수는 내심 고개를 갸웃하며 강철규를 보았다. 그의 눈빛과 표정에서 어쩐지 강찬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작전 시간은 정하셨습니까?”
“17시 45분입니다.”
강철규의 볼이 씰룩한 다음이었다.
“장군님. 제게 증평의 대원 12명을 지원해 주십시오. 반드시 작전 시간 전까지 수색을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강철규와 박철수가 시선을 마주쳤을 때, 차동균은 강철규의 가슴에 감은 붕대를 보았다.
저런 상처로 움직인다는 것은 무리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서 차동균은 단단한 음성으로 의지를 밝히고 나섰다.
“자네는 다른 임무를 수행해야 해.”
다른 임무?
박철수가 차동균을 슬쩍 본 뒤에 강철규에게 시선을 가져온 다음이었다.
“장군님. 이곳 지형에서 적이 기다린다면 무조건 저격수나 특수부대 출신일 겁니다. 이런 일은 우리 비무장 팀이…….”
강철규가 멈칫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임무입니다.”
뜨거운 눈빛과 함께 건넨 말이었다.
그런 강철규의 가슴에 감은 붕대가 기괴한 문양처럼 피를 알록달록 머금고 있었다.
***
“그래서 아프리카에 새로운 발전 시설을 지으려는 겁니다. 중앙아프리카에 그걸 짓고, 우리와 손잡은 국가들에게 전기를 공급합니다.”
강찬이 설명을 이었고,
“후우. 그런 방법으로 아프리카 연합을 구성하겠다는 거였군.”
김태진이 감탄 같은 말을 쏟아냈다.
“차세대 발전 시설부터 전기를 공급하는 과정, 도로까지, 초기 투자가 상상을 초월하겠는데? 물론 수익도 어마어마하겠지만.”
“우즈만이 내일 새벽에 우리나라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전에 다윗의 별이 소유했던 자금도 있구요.”
“정말 이런 모든 것을 혼자 계획했나?”
강찬은 “그렇습니다.”한 뒤에 바로 말을 이었다.
“이런 제 계획을 이미 짐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라노크 대사, 이번에 방문하는 우즈만도 그렇고, 러시아의 바실리까지, 그들은 모두 제 계획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우리 정보원은 아직 정보 습득 능력이 너무 부족하군요.”
김형정의 한탄 같은 대꾸가 나오며 대화가 잠시 끊겼다.
“담배나 피우고 합시다.”
역시 석강호가 분위기는 정말 잘 바꾼다.
김태진은 커피를 마셨고, 그 동안 남은 사람들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난 다음이었다.
“자네, 혹시 아프리카에 파병을 요청할 때부터 이런 계획을 생각하고 있었나?”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대신 아프리카가 기회가 될 거란 생각은 했었습니다.”
“그 뒤에 일이 이렇게 벌어졌다?”
강찬은 “예.”하고 답하고 머그잔을 입으로 가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통치권자가 바뀌는 것이 우리에게 그것이 가장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칫하면 지금껏 싸웠던 모두가 비무장팀 대원들처럼 버려질 수도 있구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 놓고 싶었습니다.”
“그랬군. 그럼 증평의 특수팀을 보낸 것도 같은 맥락인가?”
“둘 다입니다. 그들의 능력이 필요한 것도 있고…….”
“북한군! 그래서 10만이 넘는 북한군이 필요했었던 거구나!”
이것저것 뒤엉켰던 생각이 하나로 툭 정리된 모양인지 김태진이 느닷없는 말을 꺼내들었다.
그동안 담배 하나를 다 피웠다.
재떨이에 담배를 끈 강찬은 테이블에 앉은 이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스웨이든이 홍코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도이슨이 홍콩으로 향했다는 정보를 보면…….”
“그 새끼가 홍콩으로 오는 거요?”
불쑥 끼어들었던 석강호가 “그 새끼 말을 들으니까 갑자기 흥분해서 그랬소.”하며 상체를 뒤로 뺐다.
“둘이 홍콩에서 만났을 거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노리는 건 하나밖에 없지요.”
“미국 대통령의 방한입니까?”
김형정이 덜컥 놀란 듯 던진 질문이었다.
“거기에 우즈만과 라노크 대사님이 내일 새벽 한국에 도착합니다. 어쩌면 지금쯤 러시아의 바실리가…, 바실리 대통령도 방한을 신청했을지 모르구요.”
김형정은 말할 것도 없고, 석강호와 김태진, 그리고 최종일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강찬을 바라보았다.
***
스웨이든이 만족한 것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라노크와 우즈만까지 축제에 참가하겠다니 고맙다는 인사라도 전해줘야겠군요.”
“우즈만은 삼성동의 호텔에서 묵을 예정입니다. 라노크도 당연하게 그곳에 투숙할 것 같은데, 전에 남산 호텔을 자주 사용했던 기록이 있으니 그쪽까지 대비하는 것도 좋겠지요.”
도이슨의 말에 스웨이든은 또다시 만족한 눈으로 태블릿을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주문했던 무기와 병력이 반군 기지에 도착했소. 특히나 지휘관의 경력을 보고나면 그깟 무기들이 의미가 없을 정도일 거요.”
이번엔 도이슨이 재미있다는 것처럼 입술 한쪽을 들어 웃었다.
“이틀 남았군요. 새로운 역사의 출발이.”
“한국과 아프리카에서 상처받은 그가 어떤 모습일지 몹시 기대됩니다.”
스웨이든이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미국 대통령의 방한까지 이틀입니다. 그 안에 차세대 발전시설을 아프리카에 건설한다는 발표를 해야 합니다. 고성에 지진을 일으켜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리고, 이 모든 걸 준비하는 게 나라는 것도 알려야 합니다.”
“너무 급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 정도 자금을 운용하려면 다시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즈만이 이곳에 오는 겁니다. 공식적인 자금을 지원할 테니까요. 지진을 일으켜봐야 또 다른 생산시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가장 시급합니다.”
김형정이 물었고, 강찬이 답을 한 다음이었다.
“그렇다면 자네가 완벽하게 표적이 되잖나? 자네 말대로 된다면 차세대 발전 시설부터 아프리카 연합까지, 그 모든 걸 막을 유일한 방법이 자네를…….”
차마 뒷말을 하기 어려웠던지 김태진이 말끝을 흐렸다.
“그래서 아프리카로 가려는 겁니다. 그곳에서 끝장을 내려구요.”
“후우-!”
볼을 부풀린 것처럼 김태진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부원장님. 이번 방한 일정 내내 적이 기회를 노린다면, 경호도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준비해야 하지 않습니까?”
“스웨이든과 도이슨이 손을 잡고 준비한 거라면, 전에 유라시아 철도 발표회장에서 있었던 수준 이상의 테러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둘러앉은 이들의 얼굴만큼이나 분위기까지 딱딱하게 굳은 느낌이었다.
“팀장님은 정보원장님과 전 실장님께 지금 의논한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있다는 말도 빠트리지 말고 함께 전해주시구요.”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마음이 얼마나 바빴던지 김형정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무실 입구로 걸어가는 그 짧은 순간이었다.
“팀장님. 고성 시설과 청장님 경호에는 문제가 없나요?”
이번엔 강찬이 질문을 던졌고,
“청장님은 가동일까지 아예 고성에 계신다고 했고, 시설은 자체 경비단을 3공수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김형정이 자신 있는 음성으로 답을 했다.
“원장님과 실장님을 뵙고 난 뒤에 전화 드리겠습니다.”
“예.”
건강을 챙기라는 말 따위 하지 못했다.
당장 그가 해야 할 엄청난 업무들을 빤히 아는데 그런 입에 발린 말 해봐야 전혀 도움 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특별하게 도울 일이 없다면 나도 일단 집에 가 있겠다.”
김형정이 나서고 난 직후에 김태진이 일어섰고, 그길로 사무실을 나섰다.
강찬이 테이블로 돌아온 다음이었다.
“그래서 도이슨과 스웨이든, 그 개새끼들은 그냥 둬야 하는 거요? 나라도 가서…….”
“다예.”
강찬이 담배를 짚으며 부르자 석강호가 멈칫했다가 “예.”하고 답을 했다.
최종일과 우희승이 눈치를 살피고, 커피를 타는 이두희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누구냐?”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향어처럼 눈을 깜박이는 석강호의 얼굴이 꼭 그랬다.
찰칵.
강찬은 먼저 담배에 불을 붙였고,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남 선배의 죽음을 이대로 넘어갈 것 같냐?”
“푸흐흐흐.”
석강호의 잔인한 웃음이 탁자를 타고 넘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