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역사의 시작. (3)
하루를 장례식장에서 보낸 강찬은 다음 날도 계속해서 자리를 지켰다.
“바쁜 거 아니냐? 내가 지켜드릴 테니까 가서 일 봐.”
연신 전화를 받는 강찬이 염려된 모양이었다.
목덜미와 턱 아래에 거즈를 붙인 오광택의 눈빛이 그렇게 보였다.
강찬은 나직하게 “괜찮아.”라고 말했다.
“담배 하나 피우자.”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석강호와 김태진이 대원들과 요원들을 맞이하고 있어서 잠시 휴식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힘든 일도 아니고 고작 담배 하나 피우자는 건데 이런 걸 싫다고 할 이유가 뭐 있겠나.
강찬이 몸을 일으키자 오광택이 앞서서 장례식장을 나섰다.
“어후!”
바깥으로 나선 다음이었다.
햇볕에 던져진 흡혈귀처럼 오광택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긴, 꼬박 하루를 지하에만 있다가 나왔으니 충분히 그럴만하지 싶었다.
오광택은 담배를 씹듯이 입에 물고서 라이터를 디밀었다.
찰칵.
한 손으로 바람을 가린 그가 강찬의 담배에 먼저 불을 붙여주었고, 이어서 입에 문 담배로 라이터를 가져갔다.
“후우-!”
강찬은 벽에 기댔고, 오광택은 맞은편 사각 화단 벽에 엉덩이를 걸치고 섰다.
“동식이 형님 죽었을 때는 그럭저럭 견딜 만했었는데, 그때는 강 이사님이나 일규 형님이 있어서 그랬었나?”
노려보듯 먼 하늘을 향했던 오광택의 시선이 다시 강찬에게 돌아왔다.
그리고는 삽시간에 그의 눈이 빨갛게 물들었다.
“목을 잡힌 형님이 칼 맞는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씨발! 내가 옆에 있었는데! 니미! 그런데 형님이 칼을 맞은 거야.”
말을 하다가 감정이 다시 끓어오른 게 분명했다.
오광택은 “후!”하고 감정을 가라앉혔다.
“복수할 거지?”
강찬이 화단에 놓였던 종이컵에 담배를 집어넣은 다음이었다.
“나도 가게 해주라.”
이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래놓고 오광택은 답을 요구하는 눈을 하고 서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차민정처럼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모인 게 아니라고?
아니면, 너는 견디기 어려운 싸움이라고?
“나는 거창하니 대한민국이니 태극기니 몰라. 깡패가 팔에 태극기 달고 애 유치원에 갔으니까 그것도 과분하다.”
역시나 종이컵에 담배꽁초를 넣은 오광택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당하고만 있는 건 아니잖냐? 네 말대로 다시는 못 개기게 밟아줘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 앞에 나 세워주라. 안 되면 시다바리라도 할 테니까 나 넣어달라고.”
“오광택.”
“야! 너 박기범이하고 붙어서 죽을 뻔한 거 구해준 거랑 병원 치료 깔끔하게 받게 한 거, 그거 갚아주라. 치사하고 더럽다고 욕해도 좋으니까 그 핑계로라도 나 끼워줘.”
강찬이 하려던 말을 짐작한 것처럼 오광택은 물러서지 않았다.
“나 끼워준다고 약속만 해주라. 뒈져도 좋고, 팔이나 다리를 잃어도 너 절대 원망 안 할게. 무릎을 꿇으라면 여기에서…….”
강찬이 고개를 젓는 것을 본 오광택이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일단 있어 봐. 장례식 마치고 김태진 대표랑 몇 가지 의논해야 하니까. 네 말 기억하마. 의논이 끝난 뒤에 보자.”
“고맙다. 더 있다 들어올래?”
오광택이 물었고,
“같이 들어가.”
강찬은 그와 함께 움직였다.
***
테오를 앞세운 데다, 위고까지 동행하고서야 에르완은 라노크의 별장에 들어섰다.
프랑스 정보총국의 총국장이다.
그런데도 속된 말로 그는 대가 부족해 보였다.
라파엘의 안내로 2층 테라스에 올라선 에르완은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치를 감상하기보다는 암살을 염려하는 눈치였다.
“라노크 위원장님이십니다.”
2층 테라스까지 안내를 맡았던 라파엘이 자긍심 넘치는 음성으로 라노크의 등장을 알릴 때, 테오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마치 에르완의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비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군.”
“그렇습니다, 위원장님.”
에르완과 악수를 나눈 라노크가 함께 온 테오와 위고에게는 간단한 눈짓으로 인사를 전했다.
“앉지.”
“감사합니다.”
쪼로록.
라파엘이 홍차 잔을 채워주고는 얼른 물러났다.
“바쁠 텐데 어쩐 일인가?”
질문을 던졌던 라노크는 에르완의 시선을 확인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총국장. 그는 내가 안느만큼이나 신뢰하는 사람이다. 그 정도도 알아보지 않고 이곳을 방문했나?”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변명으로 라노크의 시선을 물리친 에르완이 얼른 홍차 잔을 들었다.
클레르 몽페랑(Cremont Ferrand) 근교, 리드 라 폴르(Ned de la Poule)는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부서지는 햇살과 청량한 바람, 그리고 녹음의 냄새가 홍차와 시가의 맛을 또렷하게 만들어주는 오전이었다.
“부총국장의 아프리카 계획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찻잔을 내려놓은 에르완이 감춰두었던 본론을 꺼내 들었다.
“아시다시피 프랑스는 아프리카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무슈 강이 아프리카를 뺏어간다고 하던가?”
“부총국장이 중앙아프리카를 차지한다면 충분히 그럴 소지가 있습니다.”
뾰족한 인상의 라노크가 시가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하는 이유는?”
“부총국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라노크가 시가에 불을 붙이는 것을 본 에르완이 잠시 말을 멈췄다.
“계속하게.”
“이곳에서 위원장님의 의견을 들은 뒤에 오후에 대통령을 뵐 예정입니다.”
라노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총국장.”
“예, 위원장님.”
“그가 프랑스를 적으로 돌릴 거라면 구태여 문바키를 가르칠 이유가 있을까?”
“문바키를 통해 완벽하게 정보총국을 손에 넣을 계획일 수도 있습니다.”
가면을 쓴 것 같은 라노크가 차가운 웃음을 그려냈다.
“무슈 강이 당신을 제거하겠다고 결심하면 가능성이 얼마나 될 것 같나?”
에르완은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다르게 표현해 주지. 그가 아프리카를 손에 넣었다고 가정하자. 프랑스 부총국장인 그가 우리와 적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
“그건 그때 상황을 봐야만…….”
라노크의 눈과 입 끝이 좀 더 확실하게 올라갔다.
“이런 식으로 그를 자극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할 거란 생각은 안 해 봤나?”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를 들려주시겠습니까?”
“아프리카 전역을 차지할 완벽한 기회다. 몇 개 나라를 통제하기 위해 들어가는 예산과 병력을 투입하고 아프리카 전체를 얻을 수 있는 기회.”
“무슈 강은 한국의 이름으로 아프리카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라노크는 지친다는 표정으로 테오를 보았다.
이런 총국장을 따르느라 고생 많다라는 것처럼 보였다.
“손바닥만 한 스테이크를 혼자 먹는 것과 식탁만 한 것의 30%를 먹는 것. 어느 것이 더 현명한 판단이지?”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가 마지막에 배신했을 때를 생각하셔야 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라노크가 강찬을 흉내 내는 것처럼 피식 웃었다.
“앞에 질문을 잊어버린 것 같군. 다시 묻겠다. 무슈 강이 자네를 제거하겠다고 결심하면 가능성이 얼마나 될 것 같나? 아! 그건 테오 자네가 대신 대답해 주는 게 좋겠다.”
“제 판단을 말씀드리면 되겠습니까?”
“물론이다.”
에르완과 위고는 물론이고 라파엘마저 궁금한 얼굴로 바라보는 앞이었다.
“죄송하지만, 100% 가능한 일로 느껴집니다.”
“이유는?”
“부총국장 은골로의 제거 현장에서 직접 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했습니다. 부총국장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한, 경호원들은 총국장을 지켜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모욕을 참는 것처럼 에르완이 숨을 토해낸 다음이었다.
“간단하군. 무슈 강이 자네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부총국장의 직위를 해제하는 것과 아니라면 그와 손을 잡는 것. 한 가지는 명심하게.”
라노크는 시가를 돌려가며 재를 털어냈다.
“부총국장의 지위를 해제하는 순간, 프랑스는 아프리카의 지분을 피로 찾아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네가 제거 대상 1호가 된다는 것.”
“직위를 해제한다고 해서 제가 제거 대상이 돼야 합니까?”
“자네가 프랑스와 무슈 강의 사이를 갈라놓는다고 판단할 테니까.”
라노크가 시가를 찍듯이 재떨이에 눌렀다.
오늘의 대화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겠다는 의미로 보였다.
“의심은 사람을 병들게 하지. 그리고 상대가 실제로 등을 돌리도록 계속해서 꼬드겨. 판단하는 사람은 성공하지만, 의심하는 사람은 늘 배신을 당한다.”
시가를 내려놓은 라노크가 손을 다리에 올려놓고 에르완을 바라보았다.
“믿음을 원한다면, 먼저 믿음을 보여라.”
“이 세계에서 누구도 믿지 말라고 하셨던 분이 바로 위원장님입니다.”
라노크가 또다시 가면 같은 미소를 그려냈다.
“원하는 것만 기억하는군. 내가 분명 믿어도 되는 사람이 있다고 했었다. 그게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을 텐데?”
“위기에서 변하지 않는 사람……?”
생각난 것처럼 답을 하던 에르완이 멍한 얼굴로 라노크를 보았다.
“이만 일어나지.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자리에서 일어서는 라노크를 향해 테오와 위고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
삼일장이라 다음 날 아침이 발인이었다.
김형정이 마라톤을 뛰고 난 듯한 얼굴로 들어서더니, 저녁을 먹고 난 뒤에 탈수기에 넣어서 기력을 완전히 쑥 빼낸 얼굴을 한 전대극이 도착했다.
최근에 강찬이 만나는 사람은 대개 이런 얼굴이었다.
“저녁은요?”
“아직 전인데 자네는?”
“저는 김 팀장님과 먹었어요.”
요원 두 명이 전대극의 앞에 육개장을 놓아주었고, 그는 5분도 걸리지 않아서 저녁 식사를 마쳤다.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으니 사실 전대극이 이곳에 들른 것만 해도 엄청나게 무리한 일이었다.
“가보셔야죠?”
“그래야지.”
남일규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석강호와 김형정과 아는 척을 했으며, 저녁을 먹는 데까지 꼭 10분 정도 걸린 거다.
그런데도 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배웅도 할 겸, 담배도 하나 피울 겸해서 강찬은 입구까지 함께 걸었다.
“혹시 프랑스나 다른 나라에서 이번 방한과 관련한 정보는 없었나?”
그런데 장례식장 계단을 올라선 전대극이 지나가는 말처럼 슬며시 질문을 꺼내놓았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렇다기보다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확실하게 대비하려는 거지.”
얼버무리는 전대극은 처음 본다.
그런데 강찬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달려드는 위기를 느끼는 것이야말로 강찬의 특기인 거다.
“뭔가 걸리는 게 있으신 거네요?”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전대극은 이런 사람 아니다.
그런데 얼마나 마음이 급했던지 강찬이 던진 미끼를 석강호만큼이나 냅다 물었다.
“무슨 일이신데요?”
독극물을 넣었던 담배 사건 때 문재현을 구해냈던 강찬이다. 아무리 경호라고 해도 그런 강찬에게 감출 일이 뭐가 있겠나.
“원래 미국 대통령 방한은 그쪽 경호실에서 직접 경호를 맡고, 우리는 협조하는 형태거든.”
“그 정도인가요?”
“전 세계 어딜 가도 마찬가지라 그것까지는 이해할 만하지.”
강찬은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은 어쩐지 좀 이상해.”
시간에 쫓기는지 전대극은 기다리는 차량을 힐끔 보았다.
“공식 만찬을 제외하고 나머지 동선을 당일에 알려주겠다는 것도 그렇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그는 듣는 사람이 없는지 주변을 확인해가면서 말을 잇고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테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면 서둘러 돌아가는 게 맞지, 미군기지 방문, 그 외에 대사관과 문화원을 따로 방문한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아서 그래.”
“그 방문 장소와 시간을 당일에 정해준다는 거구요?”
“그렇지.”
다 듣고 났지만 별다른 느낌은 들지 않았다.
“별거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쓰이는 거 있잖나? 내가 너무 예민해져서 그럴 수도 있는 건데.”
말을 마친 전대극이 “쯧.”하며 답답한 심정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자네에게 말하고 나니까 좀 후련하네. 아무튼, 내일 오전에 함께 하지 못하는 거 미안해.”
“그러실 게 뭐 있어요? 남 선배도 다 알고 계실 겁니다.”
강찬의 팔뚝을 두어 번 다독인 전대극이 기다리던 승용차로 움직였다.
어둠이 깔리는 시간이었다.
장례식장 주변 건물이 하나둘 불을 켜고 밤을 준비하고, 철 모르는 나방이 외롭게 가로등 주변을 맴돌았다.
강찬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찰칵.
“후우.”
힘이 없는 건 서글프다.
그래서 사람을 떠나보냈는데, 그러고도 강대국의 누군가가 온다는 이유로 그 마지막도 지키지 못한다.
이 꼴이 싫은 거다.
소중한 사람을 하나둘씩 보내는 것과 떠나는 사람이 정말 보고 싶었을 사람들조차 참석하지 못하는 이런 꼴이.
담배를 빨아들이자 빨간 불빛이 피어났다가 하얗게 변한 재속으로 숨어들었다.
“후우.”
강찬은 피식 웃으며 어두운 하늘로 시선을 들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저쪽으로 계속 날아가다 보면 온 세상 강한 놈들을 다 만나게 될 거다.
다시는 대가리를 못 들게 때려줘야 하는 놈들 말이다.
다시는 대가리를 못 들게 때려줘야 하는 놈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