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불행했던 과거는 놓고 가세요. (2)
남일규는 연락할 가족이 없었다.
그렇다고 국가정보원 이름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장례는 오광택이 맡기로 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강찬은 전화기를 들어서 우선 차동균과 먼저 통화했다.
“남 선배가 한 시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강 선배님은 그때쯤 일어났다가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여기 의료진이 판단하기에 위기는 넘긴 것 같답니다. 그리고…….]
감정을 누르려는 것처럼 잠시 끊겼던 차동균의 음성이 다시 전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일규 선배님이 왔었냐고 물으셨습니다. 아프리카에 남아달라고 피를 토하며 매달리셨다고.]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남일규가 강찬의 말을 다 들었구나 싶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강철규를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어서였다.
[장군님은 두 시간 뒤에 도착 예정입니다.]
“도착하면 전화 부탁드린다고 전해주고. 남 선배의 일을 전하는 것은 알아서 판단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묵직한 답이 건너온 다음이었다.
“아프리카의 전투가 갖는 의미를 알고 있어?”
강찬이 질문을 던졌고 답을 생각하는 것처럼 차동균은 잠시 시간을 끌었다.
이런 질문이 나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솔직히 임무를 수행한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 외에 막연하게 아프리카의 무한한 자원과 영토를 이용해서 우리나라가 더 발전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군인인 차동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대답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지 지휘관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라르도 그렇고, 다예도 그렇고, 최종일도 마찬가지였다.
강찬의 지시에 따라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위한다는 일념으로 아프리카에서 저렇게 싸우고 있는 거다.
그 싸움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모르면서 말이다.
“알았다. 박 장군님 도착하면 전화 부탁해.”
강찬은 그렇게 통화를 마쳤다.
“커피 있어?”
아무렴 사무실에 커피와 담배 떨어질 일이 있겠나.
석강호가 몸을 일으킬 때 우희승이 잽싸게 한쪽에 놓인 테이블로 움직였다.
“최종일! 집에 다녀오라는데 왜 아직 거기 있어?”
“인사 같은 거 하러 왔다고 하면 마누라가 바로 내쫓을 겁니다.”
커피를 타던 우희승이 진짜 그렇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자 픽하는 웃음이 나왔다.
“감정은 좀 가라앉았소?”
“언제는 높이 올라갔었냐?”
“에헤이! 아까 심각했었다는 건 인정합시다.”
우희승이 머그잔 두 개를 가지고 다가왔다.
“그러지 말고 다들 이리와.”
강찬의 말에 모처럼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까지 다가와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아프리카에 파병 나간 진짜 이유부터 알고 시작하자.”
담배에 불을 붙이던 석강호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눈으로 강찬을 바라보았다.
“브리핑이 아니니까 담배 피우면서 들어.”
이런 거 사양할 사이 아닌 거다.
강찬을 시작으로 남은 세 사람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짙게 피어난 담배 연기가 삽시간에 회오리 형태로 천장의 환풍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이번에 우리를 노리는 적이 절대 개인이나 사소한 조직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럼 나머지는 뭐가 있소?”
“후우. 생각해봐. 중국에서 양범을 가둘 사람이 누가 있지?”
“그야 당연히……, 주석? 주석이라는 양반 아니겠소?”
강찬은 담배 연기를 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랑스 정보총국이 돌아선 것도 그렇고. 미국, 영국, 이스라엘, 일본 정보국이 핵융합 시설 건설이라는 목표로 손을 잡은 것도 그렇고.”
석강호가 빨리 답을 달라는 눈으로 강찬을 바라보았다.
“앞에 싸움이 정보국 간의 치열한 전쟁이고, 막판에 다윗의 별이 나온 거라면 이번 싸움은 분명 통치자들이 개입된 국가 간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역시나, 석강호는 이해하지 못한 눈을 하고 있었다.
“어둠 속의 정보국 싸움과 다르게 밝은 쪽의 통치자들이 움직인 거지. 무엇보다 양범을 구금한 게 그 증거다. 대놓고 전쟁을 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정보국 싸움이라는 구실을 깐 걸 테고.”
“그럼 이번의 일들을 통치권자들이 꾸몄다고 생각하는 거요?”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을 일으키기는 어렵고. 우리가 가진 차세대 발전 시설은 무너트려야겠고. 공식적으로 압력을 넣어야 먹히지는 않고.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명분이 내가 몸담은 정보국 싸움이겠지.”
“흠. 그렇다면 우두머리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요?”
“그래서 아프리카에 병력을 파병한 거다.”
석강호는 이번에도 말귀를 못 알아먹었다. 담배 피우는 향어처럼 눈을 끔벅이는 모습이 딱 그랬다.
“아프리카를 차지하면 대한민국과 강대국의 싸움이 아니라 아프리카와 강대국의 싸움으로 바꿀 수 있을 테니까. 정보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점령한 아프리카. 우리는 싸움을 그리고 끌고 간다.”
“하아!”
“왜?”
“정말 거기까지 생각했던 거요?”
감탄과 놀라움이 뒤섞인 석강호의 질문이었다.
뭐, 굳이 대답할 것은 아닌 거다.
강찬은 대답 대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제부터 정보국의 싸움은 잊어라. 앞으로는 미국이나 영국, 이스라엘과 일본 전체를 상대하는 싸움이 될 거다. 한둘을 죽여서 끝나는 게 아니라 통치권자가 고개 숙이는 싸움.”
“흠.”
엄두가 안 나는지 입맛을 다신 석강호가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내가 말한 각오는 그런 뜻이다. 필요하다면 미국의 주 하나를 가라앉힐 수도 있고, 영국이나 일본을 완전히 바다에 가라앉힐 수도 있다. 이제부터 그런 싸움을 할 거다.”
“무지하게 죽어 나가겠소.”
“그렇겠지.”
강찬은 덤덤한 얼굴로 답을 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내놓고 완전히 항복할 때까지 오늘처럼 우리를 한 명씩 차례로 죽일 테니까.”
테이블 주변에서 퍼진 무거운 침묵이 사무실 전체로 번져나갔다.
“혹시 잘못 판단한 거면……? 내 말은……?”
“아프리카에서 증명될 거다. 중앙아프리카가 우리 손에 들어올 때쯤이면 본색을 드러낼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리는 건 시간이 너무 걸리는 거 아니요?”
“그렇다면 그 시간을 당겨줘야지.”
고개를 갸웃했던 석강호가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는 얼굴로 머그잔을 들었다.
***
미국 대통령 라우드는 직통 전화를 연결하고 기다렸다.
[니하오?]
중국어로 넘어오는 대꾸에 “안녕하십니까?”하는 나직한 영어 통역이 아래에 깔렸다.
“우리는 CIA 전 책임자 스웨이든의 계획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귀국은 어떻습니까?”
[우리 역시 준비가 끝났습니다. 러시아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점이 부담스럽지만, 일본과 우리, 미국이 협조한다면 한국은 완벽하게 고립될 것입니다.]
“좋군요.”
라우드가 감탄처럼 중국 주석 석등량의 말을 받았다.
“미스터 강이 귀국이나 우리 미 합중국에 태어났다면 굉장한 성과를 이룰 인물이 되었겠지만, 불행하게 그는 한국인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과거처럼 조용한 나라여야 합니다.”
[안타깝지만 그 점에 동의합니다. 그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로 인해 한국이 본국에 대해 무리한 요구와 과도한 조치들을 취한 점.]
석등량은 차를 마시는 것처럼 잠시 시간을 끌었다.
[세계 곳곳에서 부당한 군사작전을 감행하는 점들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서 나는 귀국과 뜻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석등량의 음성 아래에서 통역이 빠르게 영어로 그의 말을 전해주었다.
“이번에 한국에서 스웨이든이 또 다른 테러를 일으켰고, 작은 소득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또한, 내 방한과 더불어 몇 가지 작전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대략 6개월 후면 한국은 다시 얌전한 고양이로 변할 거라고 믿습니다. 아프리카가 정리된다면 말입니다.]
“그 점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스웨이든이 계획한 일에 제대로 된 힘을 실어줄 예정이니까요.”
[좋은 결실이 있는 방한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10분에 걸친 통화가 끝났다.
수화기를 든 라우드는 내선 스위치를 누른 뒤에 입력된 번호를 눌렀다.
[DIA 프레드입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스웨이든의 위치는?”
[현재 홍콩에 도착해서 안가에 은신했습니다.]
“미스터 강은?”
[그의 사무실에 있습니다. 도이슨이 홍콩으로 이동 중인 것 역시 스웨이든을 만나기 위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라우드는 오른손 검지로 책상을 콕콕 찍었다.
“오늘 자정을 기해 아프리카에 대통령 직속 특수팀 파병을 허가하겠다. 한국의 특수팀을 빠른 시간 내에 와해시키고 복귀하도록.”
[명령을 수행하겠습니다.]
전화 통화를 마친 라우드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작은 휴대전화기를 꺼냈다.
그가 통화 버튼을 누르자 입력된 번호가 차례대로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신음이 두어 번 울린 다음이었다.
[그라펠트입니다.]
이스라엘 정보국의 책임자 그라펠트가 단단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다.
“계획은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다윗의 별이 지닌 영광을 위해 남은 일들을 수행해라.”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스웨이든에게 넘겨준 자금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라우드가 입술을 들어 웃었다.
“죽기 전까지 만족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가 죽는 순간에 모조리 회수하도록. 그리고 미스터 강의 아래도 들어간 멍청이도 제거해.”
[알겠습니다.]
“명심해라. 다윗의 별이 지닌 힘과 명예를 되찾을 마지막 기회다.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번만큼은 절대 방심하지 말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최선을 다하도록 해.”
[그는 아직 정보국의 싸움이라고 판단하는 눈치입니다. 그가 혹시 이런 계획을 알게 된다면 그때는 한국의 특수팀과 그의 주변이 모두 제거된 다음일 것입니다.]
라우드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하필이면 바실리, 그 인간이 러시아의 대통령이 되었는지. 흠! 우즈만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도록.”
[분명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라펠트.”
[예.]
“아프리카의 파병만 아니었다면 한국은 벌써 끝났을 거다. 미스터 강은 본능적으로 위기를 알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지만 방심해서 과거의 아픔을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준비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라우드는 버릇처럼 “좋아.”라는 말을 감탄처럼 쏟아낸 뒤에 전화를 마쳤다.
“미스터 강이 후계자라면…….”
혼잣말을 중얼거린 라우드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리는군.”
그는 끔찍한 일을 생각했었다는 것처럼 웃고 말았다.
***
반둔두 현장에 도착한 박철수는 가장 먼저 잠든 강철규를 보았고, 다음으로 곽철호를 찾았다.
곽철호의 볼과 목에 두툼하게 감긴 붕대 위로 시커멓게 피가 배어 나와 있었다.
“장군님.”
입술만 겨우 움직인 그를 향해 박철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부상자가 무리하는 건 좋지 않아.”
그리고는 투박한 손을 들어 곽철호의 손을 두어 번 다독여주었다.
“이렇게 얼굴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말을 마친 박철수는 병실을 나와 준비된 막사로 움직였다.
“북한군은?”
“들어오는 길의 왼편 막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환경이 좋지 않던데?”
막사의 휘장을 손으로 젖힌 박철수가 안으로 들어섰다.
책상과 의자, 테이블과 선반, 그리고 간이침대가 전부인 글자 그대로 야전사령관의 임시 막사였다.
“이곳 지도는 확인했다. 내가 따로 알아야 할 게 있나?”
“부원장님이 도착하시는 대로 전화를 부탁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전화기는?”
차동균이 조끼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바로 번호를 눌러줘.”
“예.”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른 차동균이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여보세요?]
“박철수입니다. 지금 막 반둔두 기지에 도착했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남일규의 일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강찬은 덤덤한 음성이었다.
[장군님. 아프리카의 싸움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통화를 요청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박철수가 테이블 앞에 앉자 차동균이 물병을 꺼내 올려주었다.
[우리가 상대하는 적은 개인이나 정보조직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확실히 드러난 건 영국, 일본, 중국, 이스라엘 정도이고, 미국도 분명 개입되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박철수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강찬의 말이 아니라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했을 정도로 상대해야 하는 적의 진실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중앙아프리카를 점령하려는 첫 번째 이유는 한국에서 벌어질 싸움을 그쪽으로 가져가려는 것입니다.]
“그렇군요.”
박철수는 특수팀 야전 사령관이다.
적이 엄청나다고 해서 물러나는 사람은 아닌 거다.
[다음으로는 만약 한국에서 정권이 바뀔 경우, 강대국의 압력에 버려질지 모를 우리 정보국 요원들과 특수팀 대원들을 지켜내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박철수가 이를 악무는 바람에 그의 볼이 씰룩했다.
[다시는 버려지는 요원이나 대원이 없도록 지켜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중앙아프리카를 차지한다면 그 어떤 정권도 우리 요원들과 대원들을 함부로 하지 못할 겁니다.]
차동균을 힐끔 본 박철수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부원장님의 말씀은 해석하기에 따라 위험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위험한 생각을 했다면 프랑스의 부총국장으로 아프리카를 점령했을 겁니다. 그랬다면 프랑스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영웅으로 남을 테니까요.]
이건 뭐라고 반박하기도 어려운 말이었다.
[미국, 영국, 중국, 일본, 이스라엘이 대한민국과 아프리카의 우리 군을 노립니다.]
강찬이 이 정도로 말한다면 이게 사실이다.
박철수는 이제야 왜 강찬이 10만이 넘는 북한군 병력을 이리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전쟁이라고 생각하세요. 강대국 연합을 이겨내고 아프리카를 우리 손에 넣는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은 그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진짜 강대국이 될 것입니다.]
강찬의 말이 끝난 다음이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의미심장한 박철수의 답이 있었다.